1983

무엇이 나를 실패케 하는가

by 삶의언어 posted Jun 17, 2024 Views 20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그리스도인
예배드린 날 1983-07-31
오늘의 성구 누가복음 1장 8절로 23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6QPYPvMggHQ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무엇이 나를 실패케 하는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례요한의 부모님은 연로하도록 아기를 낳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으로 자시 차례가 와 성소에 분양하러 들어가서 마침 성도에 분양을 하고 있는데 세단 오른편에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가브리엘을 보고 깜짝 놀랬었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요한 이라고 하라 그러나 이 갑작스런 소식을 듣고 도저히 사가랴는 믿을 수가 없어서 의심에 꽉 찬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어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그러자 천사 가브리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냈음을 입었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하려니와 따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사가랴는 그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그 아들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같이 가혹하게 사가랴를 벙어리로 만들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가랴가 천사가 전해준 말을 믿지 않고 계속 부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말을 하면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불신앙과 부정적인 말이 하나님의 사역에 얼마나 방해가 된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주님이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것을 믿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지 차라리 부정적인 말을 해서 하나님의 말을 사역을 막을 바에는 벙어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가랴를 통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가랴의 불신앙과 부정적인 말을 방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를 쳐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실패를 하나님이나 이웃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 실패의 원인이 사가랴처럼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에게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들이 우리들을 실패케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나를 실패케 하는 요소를 지적해 주므로 말미암아 사가랴처럼 실패하지 않고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믿음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자존심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등의식과 좌절감과 자기 비하의 심정을 가지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은혜를 받거나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 이와 같이 내심 끊임없이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부정적인 파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실격자로 믿는 이상 그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격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을 주셔도 이것을 다 담대한 믿음으로 소유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존심을 상실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그릇이 준비 안된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간증을 읽어보았었습니다. 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죄만 짖지 아니하고 세상에 죄란 죄는 다 지었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나이가 50길에 이르고 보니 이제는 지쳤습니다. 면도할 때 자기 얼굴을 거울 속에 들어보면 미운 생각밖에 없습니다. 야 이 못난 자야. 이 죄인아 이 더러운 녀석아 너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이 없다. 그래서 열등의식과 좌절감과 자존심을 전혀 상실한 생활 속에서 살기 때문에 말도 행동도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었습니다. 아내에게 멸시를 당하고 자식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그가 회사 생활에도 승진하지 못하고 언제나 말단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교회출석해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난 다음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을 죄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면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성령으로 인을 쳐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서 하늘과 땅을 상속으로 받을 후사로 만들어준다는 말을 듣고 그 마음속에 깊이 충격을 느끼고 그는 하나님께 엎드려 통회하며 자복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다 고백하고 용서를 받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내 자신을 내가 용서해 주면 나는 나를 미워했습니다. 나를 멸시했습니다. 나를 천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경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말도 존경받을 만한 말을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히 변화되어 자기 스스로를 존경할 수 있는 자가 되어서 그는 말과 행동을 하자 얼마 있지 아니하여 자기 아내에게 존경을 받고 자녀들에게 추앙을 받게 되었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다 그를 존경하게 되고 그의 지위가 향상되고 축복 받은 삶을 살게 됐다는 그와 같은 간증을 적은 것을 읽어보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 자존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 나 같은 사람은 버림받을 존재다 나는 스스로 미워한다 이와 같은 열등의식과 자기 혐오와 자기 조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도 도와줄 수 도 없고 축복해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 모두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서 스스로를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열등의식과 좌절감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자기를 조소하고 자기를 비난하며 사는 인생들이 십자가 밑에 와서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하나님께선 그 사람에게 값없이 죄사함을 주시고 의롭다 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영원무궁한 왕 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용접해서 친자식으로 만들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상속으로 받을 자로 만들어 주시니 이 얼마나 위대한 자격과 은총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용납을 받고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가 새사람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바울 선생은 외쳤습니다. 이와 같은 새사람을 볼 때 자기 스스로를 존경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어느 심사, 행동을 존경받을 자로 행하게 될 것이요, 이렇게 되면 가족에서 이웃에서 그리고 불신자의 사회 속에서 존경을 받게 되는 자존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존심을 가질 때 어깨를 펴고 살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 담대하게 기도 할 수 있고 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를 실패케 하는 것은 자존심을 상실할 때 실패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은 예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에 서서 살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위대한 자존심을 얻을 수가 있고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우리를 실패케 하는 것은 꿈을 상실하고 살 때 우리를 실패케 하는 것입니다. 꿈은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나는 열심히 기도하고 애쓰면 많은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꿈이 없으면 아무런 믿음도 소용이 없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신념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 나는 믿는다고 말할 때 무엇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그 무엇이 없습니다. 내일에 대한 목표가 없고 꿈이 없는데 무엇을 믿는다 말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 목이 쉬도록 고함을 쳐도 그는 믿음의 대상이 없는 이상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오직 큰 꿈이 있을 때 큰 믿음도 생겨나고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생존경쟁 속에서 승패는 우리의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심전?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여러분과 나를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지 마음의 불안과 공포와 좌절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인생을 승리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꿈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믿음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더구나 젊은 사람은 젊을 때 자기 인생의 목표를 신속히 설정하려면...........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1983년도 마지막 무엇이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금년 한해 동안에 무슨 목표를 세우고 살았었습니까. 앞으로 5년 후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 무엇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20년 후에 여러분은 무엇이 성취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그런 목표도 없이 그 목표가 이루어질 꿈과 환상 가운데 살지 아니하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인생 365일을 그대로 먹고 자고 깨고 먹고 자고 깨는 사람은 패배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은 여러분 목표를 향해서 추구해 나가도록 지어져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 진실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1년 동안에 목표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앞으로 5년 동안 여러분의 가정의 경제 상태, 사업, 여러분의 자녀, 여러분의 건강, 여러분의 행복에 대한 목표를 설정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향후 20년 동안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을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꿈을 꾸고 그것을 바라보고 믿습니다. 라고 외칠 때 하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행이 일어날 것이다. 설마 잘되겠지, 연말에도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설마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행이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목표를 설정하고 꿈을 가지고서 그 목표가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거기에 취해서 전력을 기울일 때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 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아니하면 믿음은 실상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것은 죽은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목표와 꿈이 없는 믿습니다를 하지 않고 끊임없이 꿈을 가지는 여러분이 될 때 여러분은 그 꿈을 통해서 위대한 인생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개인, 꿈이 없는 청년, 대학생,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기도하는 가운데서 1년의 꿈을, 5년의 꿈을, 20년 후의 꿈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여러분 자신을 상실한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상실하고 자기 상실증의 병에 걸려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할 수 없다 병인 것입니다. 할 수 없다 병에 걸린 사람은 정신적인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나이 늙어 아들을 낳을 수가 없다는 할 수 없다 병에 걸린 것을 보고 할 수 없다 병을 입으로 말하지 못하게 할려고 입을 쳐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차라리 할 수 없다 말 할 바에는 벙어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입술의 적은 혀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큰 영향이 있을 것이냐,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 한마디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입술의 말을 통하여 움직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여러분의 입술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마치 큰 광풍에 화물을 잔뜩 심은 배가 이리 저리 마음대로 조종해서 항구로 나가는 것처럼 여러분의 적응 혀도 그렇게 여러분의 인생에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혀가 적어서 날름거리고 말을 하지만은 그러나, 그 혀의 말을 따라 밑에 거대한 능력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혀는 마치 질풍처럼 달리는 말의 입 속에 자갈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적은 자갈은 눈에 안보이지만은 이것으로 말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처럼 여러분의 혀의 말로 따라서 거대한 창조적인 힘이 그 말에 따라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적은 불이 온 도시를 태우는 것처럼 혀의 적은 것이 온 도시를 태울만한 위대한 능력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나의 생애에 위대한 창조를 가져오기 위해서 창조적인 위대한 능력인 성령께서 와 계시지만은 여러분과 나의 입술의 말을 통하여 이 위대한 창조능력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할 수 없다 병에 들려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면 여러분을 살릴 도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왔었습니다. 열두 정탐꾼을 40일 동안 정탐시켰는데 그 중에 정탐하고 온 사람 중에 10명은 할 수 없다 병에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할 수 없다고 외쳤었습니다. 우리가 정탐한 땅은 산은 높고 골은 깊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성은 하늘을 찌를 것 같고 그곳의 산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들은 키가 장대하여 그들이 우리 보기에 여치새끼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었습니다. 이와 같은 할 수 없다 병은 유행병처럼 돌아서 온 이스라엘 300만이 땅을 치고 밤새도록 울면서 우리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 할 수 없는 유행병에 걸렸었습니다. 그곳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할 수 있다. 들어갈 수 있다. 그 땅을 점령할 수 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나타나서 열 정탐꾼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300만 이스라엘 백성을 저 광야로 회진 시켜서 그들이 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모두다 죽어 벙어리가 될 때까지 주님은 사십 년 동안 광야를 배회시키셨습니다. 이래서 할 수 없다 백성이다 죽어 그 입술이 벙어리가 되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다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앞세워서 그 후손들을 데리고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서 할 수 없다고 외치면 사가랴처럼 주님께서 여러분을 벙어리로 만들던지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죽어 무덤에 들어가서 그 입술이 벙어리가 되게 하든지 해야 되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왜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여러분 편에 계시고 예수께서 십자가 걸머지시고 죄를 속해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질병을 치료해주시고 저주를 다 제하여 번창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재림할 약속을 주셨는데 왜 여러분이 할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까. 여러분에게는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긍정적인 할 수 있다의 말을 외쳐야 됩니다. 저는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침대에 들어 누우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거대하게 그리스도안에서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성공 자다. 그리스도가 나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도 따라하라고 그럽니다. 안 따라할 도리가 있나. 별수 없이 따라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말합니다. 나는 성령님과 하루 같이 일한다.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성공자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오늘 모든 일을 다 성공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웃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내가 그 말을 통해서 내 배후에 있는 위대한 창조적인 능력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조목사는 왜 그렇게 활기 차게 교회 목회를 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그러한 목회를 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나는 이 혀를 올바르게 사용해서 자신 없는 자신을 상실하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내 속에 천지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그 동력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로서 여러분이 묶인 바 되었으며 사로잡힘 바 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자신의 이 위대한 능력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시시각각으로 긍정적인 ??을 사용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게 되면 자신을 상실한 무기력한 생활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기대를 상실하고 사는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패배합니다. 만일 우리가 아직 낭패와 실망과 저주와 죽음을 바라고 산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행하고 고통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대다수의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안개가 끼듯 언제나 아련하게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 모르게 내게 불행한 일이 다가올 것이다. 불안한 일이 생길 것이다. 낭패와 실망이 생길 것이라는 무언가 모르게 공포심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에 보면 욥이란 사람은 그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난 다음 외쳐 말하기를 내 무서워하던 그것이 내게 미쳤고 내 두려워하던 그것이 내 몸에 미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인생을 살면 파괴적인 것 밖에는 인생에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같은 여러분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매일 매일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사십시오. 나는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 성령이 함께 계시므로 나는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므로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난다.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므로 기적이 일어난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저는 폐병에서 살아나고 난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하나님 성령께서 저의 마음속에 역사해 주셔서 희한하게 부정적인 기대를 깡그리 버리기로 작정을 했었습니다. 아무리 눈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거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어두운 가운데서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저는 언제나 잘될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승리할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축복 받을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1958년 신학교를 나와서 저 불광동에 가서 다 떨어진 천막을 치고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비참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 나는 매일 같이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저가 그곳에서 우리 집으로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 한 통에도 슬픔과 고통에 대한 말을 적은 적이 없었습니다. 현재 배고프고 춥고 괴로웠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을 편지에 기록해서 아버지께 붙인 적이 없습니다. 왜 언제나 저의 맘속에는 기대가 살아 있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진다. 다음날은 ??날보다 나아진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진다. 어둡고 캄캄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므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줄기찬 기도를 가졌었습니다. 만일 이 기대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저는 파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교회를 지을 때 정말 절박같이 어둡고 캄캄할 때 슬픔과 고통과 절망이 홍수로 휘몰아 올 때도 무언지 모르게 뼈 속 깊은 곳에 샘물같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난 살 수 있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합동하여 유익을 이룬다. 그러므로 뒤로 물러가면 안 된다. 믿음으로 나갈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대에 꽉 들어찬 믿음이 오늘날 저를 살려주시고 큰 교회를 이끌고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바로 이와 같은 줄기찬 기대를 가진 사람이었었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 이하에 보면 그런즉 이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나니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공구?나 핍박이나 ??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신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나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사들이나 현재일 이나 장래일 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이라. 줄기찬 긍정적인 기대인 것입니다. 그에게는 어떠한 어두움도 바울 선생을 정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줄기차고 힘찬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 밝고 맑고 환한 기대를 저버리고 살수가 없는 것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가운데서 빛이 있으라고 외치매 어두움이 떠나가고 빛이 다가오게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칠흑 같은 어두움도 하나님과 함께 기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어두움이 함몰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떠나서 저 하늘과 땅과 좌우의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저버린 사람은 자기 인생을 저버린 삶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운명과 환경을 탓하기 전에 마음의 바탕을 새롭게 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이 마음을 정돈하고 정리해서 그래서 여러분의 자존심을 가지고 꿈과 환상을 가지며 할 수 있다 믿음을 가지고 기대에 꽉 들어찬 인생을 살아갈 때 성령이 함께 역사하사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충성하게 얻는 승리로운 삶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예배에 모인 우리 성도들 위에 성령으로 역사 하여 주시옵소서. 자존심을 버린 사람들, 꿈을 버린 사람들, 할 수 없다 인생, 기대를 저버린 사람들 모두 다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새롭게 해서 성공자로 만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바탕이 변화됨으로 말미암아 우주의 능력이 하나님의 권세가 그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축복하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