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는 질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4월 첫 주간에 저는 청주에 있는 한국도자기 회사에 미국과 일본 및 한국 텔레비전 프로를 제작하기 위해서 내려갔다 왔습니다. 놀란 것은 그 회사 규모가 국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도자기를 만드니까 조그만한 규모에 아마 도자기 재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러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작업장이 어찌나 깨끗하던지 안방같이 정결했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적인 시설이 되어 있었습니다. 회장이신 신천 성결교회 김동수 장로님의 각고의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제가 분명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에는 한 달에 300만개의 도자기를 생산하여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어서 우리 한국에 부귀를 선양하는 자랑스러운 회사였었습니다. 저는 그 도자길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돌아보면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토기 장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도자기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밝히 알아야 할 것은 첫째로, 여러분 우리 한사람, 한사람,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그릇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릇을 만들 때는 무엇을 그 속에 담아 놓기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요사이 치장하기 위해서 만드는 그릇도 있겠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릇을 만들 때는 그릇 속에 무엇을 담기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밥그릇은 밥을 담기 위해서 적당하게 만들고 국그릇은 국을 담아 놓으며 반찬그릇은 반찬을 담아 놓고 물그릇은 물을 담아 놓아야 그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질그릇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필경 여러분과 내 속에 하나님은 담아놓기를 원하셔서 만드신 것입니다. 무엇을 담아놓길 원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 및 여러분과 나를 그릇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담아놓기 위해서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와 더불어 마시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속에는 비극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꾀임을 받아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그 속에 모시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려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을 저버린 그 빈 그릇이 빈 그릇으로써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빈 그릇을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그릇 속에 사탄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래서 아담, 하와 이후로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사탄의 영이 인간의 그릇,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서 인간을 점령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아들들의 영 가운데는 공중의 권세 잡은 악마의 영이 그 속에 거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귀의 영이 옛날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하게 만든 것처럼 오늘날도 사람들 속에 있어 가지고서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므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배반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들 마음속에 그들 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한치의 땅도 발걸음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마귀는 세상 풍속을 좇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 자랑을 따라 살게 하며 하나님 알지 못하는 이 물질위주의 삶만 살게끔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이 반역의 이은 불순종의 영이 그릇으로 담겨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누가 우리 속에 있는 악령을 내어쫓고 여러분과 나를 자유케 해서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대로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신 그릇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종교가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철학이나 의식이나 형식인 이렇게 만들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위대한 변혁이 일어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일어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모두 다 온통 걸머지고 십자가에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몸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죄악을 모두다 혼자 맡아서 청산하시고 여러분과 나를 안고서 십자가에 죽어 장사지냄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을 철폐해버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새사람들이 되어 일어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지내 버림으로 마귀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옛사람 속에 있는 마귀는 다 쫓겨나가 버리고 그리스도안에서 부활하여 새사람으로 일어날 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생이 주어지고 성령이 와서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로마서 7장 1절로 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이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고 사탄에 대해서 죽고 우리는 이제 부활해서 다른 이 곧 예수그리스도에게 가서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성령 충만한 그릇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 같은 사람으로써 다 같이 밥 먹고 옷 입고 사는데 무엇이 다르냐? 여러분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은 악령이 거하는 그릇이 되어 있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거하시는 그릇이 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같은 그릇이되 옛 그릇 속에는 불순종의 영이 와 있고 새 그릇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어떠한 영이 들어와 있느냐, 여기에 따라서 여러분과 나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불순종의 영이 들어와 있는 사람은 옛 그릇으로써 계속해서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불 신앙하고 반역하며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을 좇아 살며 물질중심으로 살고 정욕중심으로 살다가 멸망의 길로 가지마는 그러나 여러분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시고 성령이 와 있는 그릇은 성령이 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모셔들이며 순복하고 거룩하게 살며 의롭게 살며 천국을 사모하며 말씀을 그리워하도록 성령께서 여러분 마음을 이끌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구원받은 자, 구원받지 않은 자의 근본적인 차이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이 만든 그릇이요 그릇 속에는 무엇이든지 담아놓아야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불순종의 영을 담아 놓을 것이냐, 순종의 영 성령을 모시고 있을 것이냐 옛 그릇이냐 그리스도안에서 새 그릇이 되었느냐 이것이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제가 한국 도자기 회사 이 도자기 전시실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은 그릇의 종류와 형태가 그렇게 많더란 것입니다.
한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릇, 작은 그릇, 이쁜 그릇, 좀 덜 이쁜 그릇, 뭐 이 쟁반, 종지, 온갖 종류의 그릇이 있더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만드실 때 얼굴 똑같은 사람 두 사람 만든 적이 없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각각 다른 은사와 특기를 주어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누구 한사람 반드시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형형 색색의 다른 은사를 주시고 특기를 주어서 만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 주의 종이라도 주의 종이 다 똑같은 주의 종이 아닙니다. 혹은 사도가 있고 선지자가 있고 복음 전하는 자가 있고 목사가 있고 교사가 있습니다. 저는 옛날에 목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었습니다. 목사는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지 말고 나는 부흥사가 되어야 되겠다. 그래서 제가 우리 한국의 저명한 부흥사이신 이승목 목사님의 부흥회의 설교를 모조리 갖다가 읽어 가지고서 그 설교 흉내를 많이 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면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부흥회 가는 곳마다 실패를 하고 말았었습니다. 부흥회만 가면 몸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부흥회가 안돼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나는 부흥사가 되지 않습니까?" 하고 기도하니깐 하나님께서 "너는 목사요 교사지 부흥사가 아니다. 왜 자꾸 국그릇이 밥그릇이 되겠다고 하냐 너는 목사와 교사가 되라." 그래서 제가 그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부흥사 될 것을 그만두고 목사가 되기를 전념하고 가르치기를 전념한 결과에 오늘날 목사가 돼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더라도 자기 그릇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평신도들은 여러분 예언하는 능을 주신 평신도가 있습니다. 예언이란 것은 사람들에게 말을 해서 덕을 세우고 근면하고 안위하는 요사이 소위 말하는 구역장, 조장들이 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섬기는 일을 주셔서 봉사하게 하는 은사가 있고 또 가르치는 은사를 주어서 교사가 되게 하고 구원의 하는 일을 은사를 주시고 구지의 은사를 주시며 다스리는 은사를 주어서 행정을 돌보게 하고 긍휼 베푸는 일을 주시고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의 그릇을 똑같은 그릇으로 만들지 않고 형형색색의 그릇을 만들어 형형색색의 은사와 특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 삶에도 자기의 소질과 특기를 좇아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만드신 것입니다. 모두 다 여러분 정치가가 되나요? 모두 다 거부가 되나요? 모두 다 교수며 모두 다 군인이 되는 것입니까? 모두 다 장사꾼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 만드실 때 그 사람들에게 소질과 특기를 주어서 만든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그릇인가를 빨리 알아내어서 거기에 전념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사이 부모가 자녀 키울 때 자녀들의 소질이나 특기를 무시해버리고 부모가 자기 안된 것 자식에게 되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된 대통령 자식보고 돼 달라고 하고 자기가 못 됐으니까 너는 국회의원 되라. 너는 재벌이 되라. 그래서 너는 예술가가 되라. 이렇게 강요함으로 말미암아 자녀가 무서운 정신적인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 교육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자녀교육은 어릴 때부터 소질과 특기를 알아내어서 특기와 소질을 좇아 하나님이 만든 그 그릇대로 자기 본분을 다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원하는 대로 자식을 만들지 말고 자식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소질과 특기를 받았는가 그것을 살려 가지고서 그대로 만들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들만 셋을 주셨는데 왜 딸을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해도 응답을 안 해 주셔요. 그런데 아들 셋을 두고 그 중에 주님께 세 사람이 다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것도 안돼요. 그 중에 한사람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해도 그것도 안돼요. 첫째는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가 되겠다고 나가버렸고 둘째는 어떻게든 장사꾼이 되지 목사 안되겠다고 그러고 셋째는 기술자가 되지 목사 안되겠다고 그럽니다. 아버지 마음대로 한사람도 안돼요. 그래서 내가 사정도 해보고 설교도 해보고 협박도 하다가 생각하니까 '아니다. 하나님이 만든 그릇대로 도와줘야지 내가 아버지 마음대로 아버지가 목사니 너희도 목사 되라고 강요를 할 순 없지 않으냐.' 그러므로 "좋다. 너희들 소질대로 너희들 원하는 대로 도와 줄 테니까 소질과 특기를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가라." 내가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어제 저희 사무실에 백발이 성성한 한국의 저명한 대학교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아버님이 목사였었는데 아버님께서 늘 어릴 때 넌 목사가 되라. 목사가 되라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의 소질이 없고 목사에 소명이 없어서 미국 가서 공부하셔서 우리 한국의 저명한 학자가 됐습니다. 영문학자가 됐습니다. 한국에서 그 어른 이름 말하면 학계에서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이제는 머리가 백발이 되었는데 이제야 와서 혹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지 않느냐 우리 아버님이 늘 목사가 되라고 했는데 내가 목사가 안되고 학자가 되었으니 이제 이일을 어찌할까? 그래서 저에게 와서 "목사님, 가기엔 늦더라도 이제 신학교가서 새로 목사 될까요?" 그렇게 합니다. 내가 계산해보니까 신학교 가서 졸업해서 전도사 생활하면 은퇴하게 돼요. 그래서 내가 "교수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아버지가 목사였다고 해서 어릴 때 너 목사 되라고 했다고 해서 자식이 반드시 목사 될 일은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저명한 교수 아닙니까? 저명한 영문학 박사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제 교수로써 영문학 박사로써 그 속에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거 다 집어치우고 이제 백발이 되어 가지고서 신학교 4년 졸업에 전도사 2년 하면 은퇴해버리고 마는데 목사는 언제 하고 마는 것입니까? 그러지 마십시요." 그러니까 "나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우리 아버님 소원을 들어 드리지 못해서" "글쎄 아버님 소원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떠한 그릇으로 만들었는가 그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만든 그릇에 충성하면 당신 되는 것이니 그 길로 나가십시요." 그리고 난 다음 제가 축복기도를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릇은 다 한가지 그릇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그릇이 있는 것처럼 나는 하나님 나라에서 어떠한 직분이 있는가.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소질과 어떠한 특기를 주었는가. 그를 따라서 전념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셋째로, 제가 또 한국 도자기 전시실에서 가만히 도자기들을 보니까 그곳은 아름다운 그릇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그릇도 있고 또 좀 못난 그릇도 있어요.
자 똑같은 그릇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아주 고급 그릇으로 대단히 비싸게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고 어떤 그릇은 중간쯤 되는 그릇을 만들고 어떤 그릇은 별로 귀하지 않게 천하게 쓸 그릇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제가 크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토기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 때 우리의 능력을 크게 준 사람도 있고 적게 준 사람도 있고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 사람도 있고 평범하게 그렇지 않으면 또 험한 일도 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토기장이는 진흙 한 덩어리로 귀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도 있고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같이 하나님백성으로써 이 땅에 살 동안에 하나님께서 내게 어느 정도의 능력을 주었는가 자기 능력을 반드시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큰그릇이냐 적은 그릇이냐를 알아야 됩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둥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여러분 한 회사에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줘서 사장으로 만든 사람은 그 능력이 있어 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회사 직원이 볼 때 똑같은 인간으로써 저 사람은 사장이고 나는 직원이니 에라 집어치워 버려라. 나는 사장 안되니 나는 일 안 하겠다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일해서 월급도 평범한 똑같이 준다고 했는데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 사업이 침체 돼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월급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까? 능력이 많은 사람 능력이 작은 사람. 큰그릇, 작은 그릇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자기 능력대로 일해야 돼요. 여러분 이 세상에 많은 주의 종들이 나와서 일하고 있지마는 어떤 목사님은 평생에 300명을 가지고 목회하고 다른 사람은 천명을 가지고 목회하고 어떠한 사람은 만 명으로 목회하고 어떠한 사람은 십만 명을 가지고 목회하고 어떠한 사람은 오십만 명을 가지고 목회 합니다. 그 사람이 잘나서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도록 그렇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큰일을 했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가서 큰 상급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맡은 능력이 크던 적던 저기 맡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충성을 따라서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큰그릇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충성 안 하면 벌을 받을 것이요, 적은 그릇이지만 거기에 충성했으면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한 주인이 먼 나라로 가기 전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또 한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기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가고 난 다음 이 사람들이 다 일을 했는데 두 달란트 가진 사람은 자기 능력을 다해서 네 달란트 만들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은 너무 작다고 해서 일하지 않고 그것을 천에 싸서 숨겨 놓았었습니다. 먼 훗날 주인이 돌아왔을 때 두 달란트 가진 사람은 자랑스럽게 와서 "주인이여 나는 두 달란트..."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일을 맡기마"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이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 주셨는데 열심히 일해서 배로 열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일을 맡기리라"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와서 "당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주지 않은 데서 받는 것이므로 내가 겁이 나서 한 달란트 고대로 놔두었다 가져왔으니 당신 돈이니 받으소서." 주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니가 내 돈을 차라리 은행에 맡기던지 사람들에게 맡겨서 이자를 받아야 될 것 아니냐 그것도 안 했으니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바깥 어두운 데 내어쫓아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능력을 주셨으면 자기 능력이 작던 많던 그 능력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이 거기에 따라서 축복을 해주시는 것이지 크게 일했다고 하나님이 많은 상급을 주고 적게 일했다고 하나님이 적은 상금 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우리의 능력이 크냐 적으냐에 따라서 자기의 충성할 것이요 원망 불평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또 가만히 보면 여러분 그 그릇마다 특성이 있어요. 그래 보니까 임금님 밥상에 올라가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부잣집 밥상에 올라가는 것이 있고 평민들의 밥상에 올라가는 그릇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다 같은 그릇이라도 귀히 쓰는 사람이 있고 천히 쓰는 사람이 있고 또 평범하게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과 우리를 비교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전능자가 우리 그릇을 만들 때 어떠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책임 지워서 귀하게 쓰십니다. 어떠한 사람은 평범하게 쓰십니다. 어떠한 사람은 또 험한 일도 하도록 주님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 당신의 마음속에 작정해서 여러분과 나를 쓰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자신을 남에게 비교해서 늘 불평하고 원망하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서 내가 충성을 다하면 이 땅에는 잠시 잠깐 후에 지나가고 우리 이 세상에서 일한 데로 상급을 주는 영원한 세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여러분과 내가 어떠한 일을 맡았던지 거기에 대해서 가장 충성스럽게 일한 데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상급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저 사람 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고 저 사람 나보다 더 고급한 일을 하니까 나는 저 사람을 미워한다. 시기한다. 어떻게든 할퀴어서 바지 가랑이를 땅겨 못하게 하고 그 사람은 망하게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직분을 주어서 세워서 일 시키는데 그것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겸히 자기에게 하나님이 주셔서 앉혀놓은 그 자리에서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여러분과 나는 질그릇인 것입니다.
질그릇이란 것은 영원성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젠가 깨어집니다. 사고가 나서 깨어지고 부주의로 깨어질 수도 있고 수명이 다해서 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금그릇도 아니요, 은그릇도 아니요 쇠그릇도 아닌 것입니다. 질그릇이란 언제고 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느니라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여호와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모두 다 전세방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전세방이요, 우리의 삶의 기한도 전세 기한인 것입니다. 전세 기한이 차면 여러분과 나 할 것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육체를 떠나고 세상을 떠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로 가겠습니까? 사람이 가장 슬픈 곳은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집이 없어 이 집, 저 집 쫓겨 갈 때 그 슬픔 말할 수 없죠. 여러분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이 세상 어느 곳에 가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난민이 되면 그 처참함이 어디 한 것입니까? 사람은 있을 곳이 없다는 것 참으로 불쌍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서 사람은 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살 자리, 누울 자리, 일할 자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자리는 우리 그릇은 잠시 있다 깨어지는 그릇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릇이 깨어지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 이 진흙의 흙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부활의 그릇이 있습니다. 영원 집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깨어질 수 없는 영원하고 아름다운 그릇입니다. 추하지 않고 영화로우며 육체가 아니고 신령하며 그리고 약하지 않고 강한 부활의 그릇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부활의 몸을 얻어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여러분과 나는 진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그릇으로 만들어서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안에 와서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은 여러분과 나의 속에는 성령이 와서 거하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가 그곳에 계시고 예수님이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우리는 이 질그릇 속에 하나님의 보배로운 영광을 담고 있은 즉 우리의 일어서고 앉는 것과 일거수 일투족 어느 심사 행동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마다 여러분의 그릇을 통하여 의를 대접받고 평강을 대접받고 희락을 대접받게 하십시요. 믿음이 여러분 그릇에서 넘쳐 나오고 소망이 가득 차고 넘치며 사랑이 여러분 그릇가운데서 넘쳐 나서 여러분의 그릇을 받아서 그곳에서 이 하나님의 귀한 은총을 먹고 마시고 난 다음에 모든 사람들이다 우리처럼 회개하고 예수 믿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그 가슴속에 담아 놓는 그릇이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그릇으로 만들어서 우리 한국 사회에 혹은 온 세계에 우리의 그릇을 주님 수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마다 우리의 그릇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그 속에서 바라보기를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부르셔서 옛 그릇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죽고 깨어지고 장사지내 버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로 지은 그릇이 되어 성령이 거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 드리옵나이다. 아버지 옛날엔 우리 속에 불순종의 악령이 거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따라 살고 멸망의 길을 걸어갔었는데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옛것은 지나가 버리고 새것이 되고 성령이 와서 거하시므로 믿음, 소망, 사랑이 꽉 들어차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 나며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생을 향해서 천국을 추구하며 살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 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되 우리의 능력을 따라 살고 자기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어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자 주신 처지에 따라서 충성을 다하고 우리 마음속에 시기와 분노와 질투를 저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제 맡은 직분 충성스럽게 다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중에 칭찬 받고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귀한 상급 받는 자리에 들어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