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풍성한 자원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류국가들은 기름의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름이 풍성하게 그들의 땅 밑에 매장돼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일본 같은 막대한 무역 흑자국은 돈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중공같이 사람이 많은 나라에는 인적인 자원의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있을 때 고민하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을 때는 여러분 마음속에 없음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그 고통과 괴로움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자가 되시므로 자기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담대하게 신앙고백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하나님,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신앙고백이 바로 여러분과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이와 같은 담대한 신앙고백을 우리는 과연 할 수 있을까요? 그와 같은 신앙고백에 비교하면 우리들은 그 얼마나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과 불평 중에...다윗은 어떻게 하여 부족함이 없는 신앙을 얻게 되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그 비결을 알아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을 하는데 오늘날 우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없습니다. 못합니다. 안됩니다. 부족합니다. 절망입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그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꿈을 꾸고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어떠한 신앙고백을 하는가, 이것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의 꿈을 가지고 그런 마음의 생각을 가지고 그런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이러한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나 항상 그 마음속에 나는 못해요. 나는 안돼요. 나는 할 수 없어요.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와 같은 꿈을 갖고 그와 같은 부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시 그 사람에게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네 생각과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은 비참한 파격을 맛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며 어떠한 마음속의 꿈을 가지고 어떠한 믿음을 가지며 어떠한 말을 하는가 이것이 여러분과 나에게 흥하느냐 망하느냐 성하느냐 쇠하느냐 승리하느냐 실패자가 되느냐의 중대한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위대한 인생을 살았었습니다. 그것은 그는 위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위대한 꿈을 가지고 있고 위대한 신앙을 가졌으며 위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그러면 다윗이 이와 같이 위대한 신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목자가 양을 거느려서 푸른 초장에 가서 실컷 풀을 뜯어먹게 해서 살찌게 하는 것은 목자가 하는 사명이요, 일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목자가 되시므로 자기를 항상 어떠한 여건에서도 푸른 초장에 누이셔서 그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먹고 마시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신앙을 고백했는데 여러분 우리의 목자는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의 목자는 바로 다윗의 목자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삯꾼이 오는 것은 자기 목자도 아니고 또 자기 양도 아니므로 이리가 오면 달아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참 목자라 나의 양을 위해서 나의 목숨을 버린다고 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신 목자인 것입니다. 그는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오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여러분과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푸른 초장은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 다윗은 푸른 초장에 자기를 누인다고 했는데 여러분과 나를 누일 초장은 어디일까요? 이것은 갈보리 산 십자가 밑이 바로 예수께서 만드신 푸른 초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짓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저주와 절망과 지옥의 세력으로 죽어 가는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그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갈보리산 위 십자가 밑에 우리가 들어 누울 수 있는 푸른 초장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남녀 노유, 빈부 귀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 이 시간에 십자가 밑에 나가면 여러분과 내가 거할 수 있는 푸른 초장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먹을 수 있는 푸른 풀이 그곳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갈보리산 십자가 밑에 예수님께서는 어떤 풀밭을 만들어 놓았을까요? 예수님은 그곳에 용서의 풀밭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나가면 여러분과 나의 죄를 용서하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풀밭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죄를 가지고 있는 이상 죄책을 가지고 있는 이상 결코 우리 영혼 속에 휴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죄에 쫓기고 있는 사람 치고 그 마음속에 평안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대개 악인에게는 그 마음에 평강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오면 거기에 푸른 풀밭이 있습니다. 용서의 풀밭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한 몸에 걸머지시고 그 몸이 찢기고 피를 쏟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여 주셨기 때문에 갈보리 십자가 밑에 있는 은혜의 풀밭에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용서를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어떠한 죄인이라도 그 죄 때문에 버림을 당하거나 지옥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 밑 예수께서 만드신 은혜의 풀밭에 가서 용서를 받아먹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오늘 여러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라도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용서의 풀밭에 가서 용서의 은혜를 받아 먹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다시 갈보리 십자가 밑에 있는 풀밭에는 화해의 풀밭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한 이후로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이 예비한 세계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그들은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서 죽어야만 했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 있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의 불의에 대해서 무서운 진노를 가지고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까? 누가 우리를 이끌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만들어 줄 수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달려서 인간의 모든 반역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다 받아 그가 청산함으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이제 인간의 반역의 죄는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고 하나님과 원수된 담은 허물어지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갈보리 십자가 밑에 가면 여러분 하늘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하늘 문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보리 십자가 밑에 가면 하늘 문이 열려 있고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여러분과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우리의 짐을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된 장소가 바로 갈보리 십자가의 푸른 초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날 어떠한 종교를 따라가도 소용없습니다. 의식을 따라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철학을 따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날 위해서 하나님과 나의 사이에서 원수된 것을 허물어 주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만이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에 의지해서 십자가 밑에서 아버지께 나가면 하나님이 말합니다. "잘 왔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이제 나의 예비하신 동산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화해의 풀밭에 우리는 들어 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 들어 누울 때 치료의 풀밭에 들어 누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병든 인간들인 것입니다. 영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들었었습니다. 병든 인간이 만드는 가정은 병든 가정이요, 병든 사회요, 병든 국가요, 병든 세계인 것입니다. 나는 우리 한국의 정치가들이 마음이 병든 정치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2대동안 우리가 국회를 개원했지만 언제 한번 진실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가 대길한 것 우리가 보지 못했었습니다. 지금도 새로워질 줄 알고 우리가 열심히 국회의원을 선출해 놓았는데 국회 개원도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 밖에서 벌써부터 서로 물고 찢고 땡기고 자기의 당의 이익이나 도모하고 국민들이야 배를 굶던 국민들의 경제상태가 어려워지는 것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러므로 요사이 국회의원들 볼 때 배신감을 마음속에 느낍니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선출했을 때는 우리 국민의 평안과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 이 어려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일을 해야 될 것인데 서로 당약을 위해서만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정치인들이 그 마음속에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정치인들이 국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갖지 못하고 국회의원 선거 나올 때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만 가지고서 권력만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나라의 정치가 잘될 리가 만무한 것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국회의원들이 회개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국민들 앞에 회개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진실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돼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치료받아 마음이 고침을 받아야 참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앞에 나오면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질병을 다 걸머지고 갔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앞에서 치료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내가 마음의 병, 육신의 병, 생활의 병을 가지고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와서 그리스도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고 우리에게 영, 육간에 건강을 주시는 치료의 풀밭에 눕혀 주시는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 참으로 개인, 가정, 생활 뿐 아니라 육체의 치료가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떠한 우리 갈보리 십자가 밑에 들어 누우면 그곳에는 축복의 풀밭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죄를 다 짊어져 주셨습니다. 아담 이후로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우리는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살아왔고 아무리 애를 쓰고 힘을 써도 이마에 땀을 흘리며 고통 가운데 살아왔는데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다 제해 버리시고 이제는 축복의 은혜의 풀밭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할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갈보리 십자가 밑에 은혜의 풀밭이 생겨 있습니다. 이것은 축복의 은혜의 풀밭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십자가 밑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예수이름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긍정적인 자세를 취할 때 주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축복을 해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은 자손들이요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저주가 다 옮겨지고 가시밭이 다 옮겨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갈보리십자가에서 누우면 또다시 놀라운 목장이 돼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생 천국의 풀밭인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밑에 나갈 때 예수께서 재림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가서 우리 볼 때 이곳은 영생의 풀밭이요, 천국의 풀밭입니다. ?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해 놓은 축복의 약속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져도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약속을 얻은 장소가 바로 갈보리 십자가 밑에 은혜의 풀밭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 여러분과 나의 목자로서 여러분과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이 찢기고 피를 쏟으심으로 말미암아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여러분가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될 목장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여러분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누구나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십자가 밑에 서면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이 푸른 초장에 누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푸른 초장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먹고 은혜의 풀을 뜯어먹고 여러분과 나의 생각이 바뀌어 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바꾸어지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축복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넘치도록 능히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는데 마음의 생각이 부정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고 절망적이 되고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가난하다. 이와 같이 돼 있으면 이러한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무런 축복의 역사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는데 우리 마음의 생각을 달리 할 무슨 조건이 있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조건 없이 우리 마음의 생각을 바꿀 수가 있나요? 갈보리 십자가 밑에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세워놓은 그 은혜의 풀밭에 들어 누울 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용서의 은혜를 받고 화해의 은혜를 받으며 치료의 은혜를 받고 축복의 은혜를 받으며 재림, 영생, 천국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 마음의 생각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 십자가 밑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그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 밑에 오면 여러분 예수의 보혈을 통하여 여러분과 내가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이유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건져내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둘째로, 이 다윗은 말하기를 그가 부족함이 없는 이유는 쉴만한 물가로 주님이 인도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7장 37절에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그의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마음에 갈급함을 가지고서 방향을 잃고 허덕입니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믿음, 소망, 사랑, 거룩함, 평강과 희락 같은 것이 없으면 그들의 삶은 허무한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보화만 보환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위대한 보화는 바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속에 거룩함이 있고 믿음이 있고 평강이 있고 희락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을 때 이것은 눈에 보이는 보화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보화인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오늘날 사람들이 믿음을 얻을 수 있어요? 소망을 얻고 사랑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거룩과 평강과 희락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앞에 나와서 우리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생수를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여러분의 속 사람이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을 인정도 아니하고 환영도 아니하고 모셔들이지도 아니하며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밥을 먹되 물이 없이 먹는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 물 마시지 않고 밥만 먹으면 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받아먹었다 할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아니하면 생수가 마음속에 넘쳐 나지 아니하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함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서 성령의 생수로 말미암아 이 목마름을 없애 주시옵소서.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목마름에서 우리를 건져내어서 우리의 속에 믿음, 소망, 사랑, 의와 희락과 평강이 강물처럼 넘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다윗처럼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다윗은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의 극심한 생존경쟁 속에서 심신이 지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염려와 근심이 먼지와 티끌처럼 내게 쌓여올 때가 있습니다. 불안, 초조, 절망이 나를 짓밟고 짖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 그만 마음이 지쳐 버리고 피곤해져 버리고 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50만 성도를 모시고 있는 저에게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이 교회를 받들고 세계적인 선교 사업을 해 나가다가 지쳐 버릴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도 그런 체험이 있었습니다. 로뎀나무 밑에 가서 "주여 이제 넉넉하오니 내 영혼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기도한 적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지치고 피곤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언제나 지치고 피곤함이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때 주님께 나가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주께 내려놓고 염려와 근심을 주께 다 내려놓으면 신기하게도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퍼부어 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소생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주지 아니하면 절대로 이 교회를 이끌어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완전히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할 정도로 지쳐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이 소생되지 아니하면 그 자리에서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와서 엎드려서 기도하고 모든 짐을 다 아뢰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다릴 때 주의 말씀의 위로를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지친 마음이 다시 건강하게 되고 기쁨이 없는 곳에 기쁨이 들어오고 소망이 채워지고 믿음이 들어와서 자신이 생기고 생기가 다시 복구되고 그리고 기도하고 난 다음 털털 털고 나올 때는 정말 새로워져서 믿음, 소망, 사랑으로 넘쳐나고 용기가 백배되어서 또다시 마귀의 진을 향하여 도전하면서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또 전 세계적으로 큰 방향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기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철야기도가 있으며 금식기도를 하고 또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기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진실로 소생되어서 날로, 날로 ????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살려면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 시간 이상 기도하지 아니하고 여러분의 영혼이 소생될 수가 없습니다. 말 할 필요 없이 주의 종은 몇 시간이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심신이 소생이 되면은 매일, 매일같이 새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나 한번 은혜 받았다. 옛날에 성령 충만 받았다. 옛날에 기쁨 얻었다. 그런 것 가지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매일 같이 일어나서 만나를 거둔 것처럼 여러분 매일,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매일같이 마음이 소생되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감 같을 것이요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달음박질해도 곤비치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낙심하고 절망하여 쓰러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넷째로, 성경은 말씀하기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난해서 말하기를 "기독교는 부도덕을 조장하는 종교다. 왜냐하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들, 올 때마다 자꾸 용서해 주기 때문에 이것은 죄 지으라는 것밖에 더 있느냐? 죄 지은 것마다 벌을 주거나 그를 처결하지 아니하고 용서해줌으로 말미암아 부도덕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꾸 죄지으라고 조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사람의 힘으로 이길 수 있나요? 바울 같이 위대한 사람도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한 것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속에 있는 타락한 심정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성의 자랑에 잡혀서 이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 죄요, 듣는 것이 죄요, 말하는 것이 죄요, 생활이 죄악 가운데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죄악의 세력에서 건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여러분,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나면은 하나님께서 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와 사망보다 더 강한 힘이 여러분과 나의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깥 것의 유혹이 들어오고 내 육신의 죄악을 행한 정욕이 고함치더라도 이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생명의역사가 일어나서 죄와 사망의 세력을 격파해버리고 우리를 의와 거룩함으로 이끌어 주는 이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는 거룩하게 살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이름을 불러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을 입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 보니 더 나쁘더라. 예수 믿는다는 사람 무슨 집사, 권사, 장로, 목사들이 거짓말도 더하고 사기도 더 잘 치더라." 그런 말을 합니다. 이것은 공격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흰 종이에 검은 점 하나 떨어지면 더 검게 보입니다. 그러나 검은 종이에 아무리 검은 점을 찍어도 검게 보이지 않습니다. 온 세상은 다 검은데 예수 믿는 사람 보혈로 씻음 받고 희게 되었는데 조그마한 결점 하나만 나도 크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고 물고 찢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수 믿었다고 해서 당장 천사가 되고 날개가 돋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로써 내일엔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우리는 의와 거룩함으로 변화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여러분 태어나서 성년이 됐는데 20년이 걸리는 것처럼 농사를 지어도 일년이 걸려야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어떻게 우리가 예수 믿었다고 해서 당장 그 자리에서 의와 거룩함의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의지해서 우리 죄를 지으면 주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백하고 보혈로 씻고 또 성령으로 새로워지고 이래서 매일, 매일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우리의 삶을 주님께서 만들어주기 때문에 우리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유 없는 긍정적 고백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심으로 하나님이 자기 삶의 모든 자원이 되심으로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밝은 고백을 했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계시적 지식을 가지고 오직 예수님을 목자로 삼고 살 때 강하고 담대하게 부족함이 없는 삶을 믿고 주장하고 믿으며 시인하며 진정코 이유 있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조건하고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죄를 짓고 부지하고 추악하며 저주를 받고 영원히 죽어야될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울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나의 모든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화목케 해 주시고 채찍에 맞음으로 질병을 다 감당해주시고 저주받아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의 저주를 다 제껴주시고 죽어서 사흘동안 무덤에 있다가 부활하시므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해주셨으므로 예수 십자가 밑에 주님께서 만들어 놓은 그 목장 주님께서 만들어놓은 그 쉴만한 물가 그곳에 가서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서 새사람이 되어 우리가 남에게 꾸러줄지라도 꾸지 않는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예수님께 의지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푸른 초장에 누울 수 있고 쉴만한 물가로 나아가서 그 물을 마실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이 소생되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여러분과 나를 매일같이 의와 거룩한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어떤 종교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어떤 의식 때문 아닙니다. 예수 때문에, 어떤 인간 철학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때문에 인간이 잘나서, 노력해서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때문에 나를 위하여 십자가 못 박혀 피 흘려주시고 나를 위하여 저주와 절망과 죽음에서 건져주신 그 예수 때문에 여러분과 나는 오늘 이 시간에 다윗처럼 말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 없으면 우리 삶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예수 없으면 우리는 지금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예수 없으면 지금도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예수 없으면 우리는 아직까지 영과 마음과 몸이 병든 채로 있을 것입니다. 예수 없으면 아직도 가시와 엉겅퀴를 헤치고 가야만 될 것입니다. 예수 없으면 우리는 영원히 죽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때문에 갈보리 산 위 십자가 밑에 주께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만들어놓은 것을 감사 하옵나이다. 오 사랑하시는 아버지. 웬말인지 웬일인지 이 큰 은혜를 예수임으로 말미암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 안에서 오중 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담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 안에서 성령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 안에서 기도함으로 매일 영혼이 소생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축복하고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