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오순절의 의의

by 삶의언어 posted Jul 30, 2024 Views 8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2-05-30
오늘의 성구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ADfDrrXXXzM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오순절의 의의"라는 말씀으로 바로 오순절 기념일인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순절이라는 것은 50일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순절을 어떻게 쳤느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유월절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 애굽에서 출발해 나왔습니다. 그때 이후로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으며 그 다음에 50일 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지 아니하고 가나안 땅 변경에서 처음으로 땅에서 난 곡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밀의 추수를 한 맥추절로써 오순절을 지킨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유월절부터 계산해서 50일만에 율법을 받은 기념일입니다. 처음 추수를 한 맥추절기로써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일이란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실 것을 그림자로 보여준 것인데 바로 유월절 날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죄악의 애굽 세상에 묶여 죽어 가는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유월절날 못 박혀 돌아가시고 그 날로부터 계산해서 50일 날이 되는 오순절 날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한 열흘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방 안에 가득하더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있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은혜의 새로운 법인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법이 주어졌고 교회가 세워졌고 첫날 베드로가 설교하매 첫 열매로서 삼천 명이 구원받아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것처럼 오순절 날은 교회의 탄생이요 은혜의 법이 전파된 날이요 오순절 날은 바로 처음 열매가 맺어진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성령감림과 교회는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성령이 강림해서 교회가 탄생했고 교회 안에 성령께서 역사 하시고 그리고 성령은 교회를 통하여 나타나시다가 교회를 데리고 천국으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순절 성령 운동이란 교회에게는 생명입니다. 성령 역사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역사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운동이 우리와 갖는 깊은 의미에 대해서 몇 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령이 이 땅에 임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사역에 도장을 쳐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았으면 예수님의 사역이란 보잘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역은 유대 땅이란 한정된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고 예수님 자신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말구유간에 태어나셔서 그 다음 이름도 없는 나사렛 시골에서 30년의 세월을 지났고 복음을 증거 한 것도 불과 3년 반, 제자라고 택한 것은 저 시골뜨기 갈릴리 시골의 부랑 무식한 너저리한 어부들만 택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 치고 교육 많이 받은 사람, 권세 있는 사람, 세도가, 돈 있는 사람, 눈알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다 시골에서 고기나 잡고 혹은 세금이나 받던 갈릴리 촌사람들을 한 열두 명 모아서 제자라고 하고서 주님께서 떼를 지어 다니면서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복음을 증거 하면서 걸식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종말이 좋지 않은 것은 유대인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로마의 심판을 받아서 예수님은 강도들과 함께 처참한 처형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어 버리고 그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쳐 버리고 그리고 열흘이 지나고 스무 날이 지나고 30, 40 일이 지나고 50일이 지나니 예수 사건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어버리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라는 그 한 사건은 이제는 없던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만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지금쯤 되었으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조그마한 기록할 가치조차 없는 사건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하신 역사가 세계 중심에서 하신 큰일도 아니고 유대의 팔레스타인의 한정된 조그마한 곳에서 그것도 한 30년 산 생애 중에서 3년 반 동안 주님께서 역사 하신 것밖에 없고 제자들이라고는 하나도 똑똑한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끝장나고 만 것입니다. 그러한 사건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순절 나에 화산이 폭발할 정도로 폭발한 것입니다. 갑자기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했다. 예루살렘에서 폭발처럼 예수님의 복음이 폭발을 하더니만 이것이 마치 노도와 같이 휘몰아쳐 오는 것입니다. 홍수와 같이 휘몰아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는 데 사람들이 감당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날 일어나서 행한 설교를 보면 사도행전 2장 32절로 33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로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사건을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변화시키고 만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사건이란 조그마한 사건이요 잊어버리고 만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자말자 이 예수 사건을 붙잡고 난 다음에 불가항력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성령이 일고 전도하니까 제자들을 잡아서 감옥에 넣어보기도 하고 죽여보기도 해도 성령을 감옥에 넣지 못하고 죽이지도 못하므로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계시가 홍수처럼 쏟아졌습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유식, 무식을 불과하고 예수의 소식만 들으면 그들이 이성을 초월해서 성령의 홍수가 휘몰아쳐와서 그 가슴속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의 막 감당의 절대 능력으로 사람들은 꼬꾸라졌습니다. 이와 같이 영혼을 불길같이 번져 가는 복음의 위력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끝까지 전파되어 가는데 이 일은 하나님의 성령이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은 하나의 국제적이고 한정된 시간의 사건을 성령이 오셔서 세계적인 사건으로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주적인 사건으로 구원의 사건으로 메시아 사건으로 변화시켜버린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만 사라지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의 2천 년 전에 일어난 비극의 사건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이상 2천 년 전의 사건은 오늘의 우리를 구원하는 메시아적 사건으로 온 역사적, 온 세계적, 온 우주적, 온 영혼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중앙교회가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극동 아시아의 맹장 만한 반도에 여의도에 불과 23만여 명 교인을 모은 것이 무슨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성령이 역사 하셔서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에 인을 쳐주시고 하나님으 성령이 이 교회에 같이 역사 하시니 이 교회를 들어서 주님께서는 하나의 세계적인 하나의 역사적인 하나의 우주적인 복음 선교의 센터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성령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이 없는 신자는 산 자가 아닙니다. 성령이 없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사건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치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역사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이 십자가 사건에 성령의 불을 던져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평범한 사건이 아니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메시아 사건이요 주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실제로 세상에 보내셔서 그가 우리의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영원히 증명을 하실 수 있게 되신 것입니다. 성령강림 안 했더라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은 기천, 기만, 수십 만 명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고 난 다음 소식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성령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이 여러분 마음을 비춰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오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 성령, 성령,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이 마귀의 세계를 정복하고 흑암으로 꽉 들어찬 이 세계에 영혼들을 마귀의 발톱에서 건져내어서 예수를 믿게 하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역사를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렇게 되니까 이제 우리가 묻는 질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인 것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글쎄,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면 큰일이겠죠. 성령은 여러분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중생 시킵니다. 우리 부모로서 태어난 것은 육신으로 태어난 것이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영으로 태어나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는데요. 그렇게 하는 역사를 성령은 회개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에게 와서 육신대로 살면 우리가 반드시 죽을 것을 보여 주십니다. 육신 안에서 행한 모든 마음과 몸의 정욕의 죄악의 삶을 그대로 살면 멸망 받을 것을 성령이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오직 우리가 살 길은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성령은 우리에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은 만나 본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 옷자락을 만진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불가항력적으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머리를 통하지 않고 여러분의 가슴속에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홍수처럼 다가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가와서 여러분이 죄 가운데 살면 멸망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육신으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 앞에서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도록 예수가 유일하게 구원주가 되신 것을 성령이 보여 주셔서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러분은 영생을 얻고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계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예수께서 여러분 속에 지금 잉태되어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께서 여러분 속에 믿음으로 들어와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중생 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세례의 체험이라는 것은 구원의 영이신 성령을 이제 권세와 능력의 영으로 다시 체험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120문도가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세례 받고 권능을 얻는 것처럼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니 구원을 받고 물로 세례를 받아 사람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매 성령의 권능을 받은 것처럼 또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방언을 말하고 권세를 받았으니 이것처럼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으니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한다"고 하매 예수를 전도하고 물세례를 베풀어서 구원을 받게 하고 안수하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열두 사람쯤 되더라는 이와 같은 권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를 구주로 믿고 중생한 사람은 이제 그 같은 속에 있는 성령을 권능의 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주님께 일심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한 체험을 달라고 하면 성령 충만이 오시면 그때로부터 권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권능을 말씀 증거의 권능을 신앙의 권능이 다가오고 그래서 뜨거운 헌신과 전도열이 생겨나고 이로 말미암아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계시의 은사로서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 지혜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나타나고 발성의 은사인 방언의 은사,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주는 사람도 있고 능력의 은사로서 믿음의 은사, 기적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를 받는 사람도 있고 혹은 섬기는 은사를 받아서 열심으로 능력 있게 섬기게 되는 사람, 가르치는 은사를 받아서 잘 가르치고 능력 있게 가르치는 사람, 권위 하는 은사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열심히 잘 권위 하는 사람, 구제하는 은사를 받아서 돈만 벌어서 많이 구제하는 사람, 다스리는 은사를 받아서 행정적으로 잘 다스리는 사람,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받아서 낙심하고 슬픔에 처한 사람을 잘 받들어 긍휼에서 일으키는 이러한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은사 중에 하나님이 택하시는 대로 여러분에게 몇 개씩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인간의 힘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섬겨야 효과 있는 권세와 능력으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는 '하나님 내게 어떤 은사가 있는지 가르쳐 주옵소서' 혹은 지혜 지식, 영분별 혹은 방언, 통역, 예언 혹은 믿음, 기적, 신유 혹은 섬기는, 가르치는 혹은 권위 하는 혹은 구제하는 혹은 다스리는 혹은 긍휼을 베푸는 어떠한 은사가 내게 있나이까? 주께서 은사를 가르쳐 주고 깨달아 주는 대로 그 은사를 가지고 일할 때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믿을 때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성령의 권세로써 오늘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 맺는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의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우리가 사는 사회, 환경 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에 950만 성도가 있다고 하는데 4천만 동포 가운데 약 1천 만 명이 예수를 믿습니다. 네 살 중에 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 그러면 만일 이 네 사람 중의 한 사람의 우리 신자들이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우리가 정말 성령 충만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다면 한국 사회에 이렇게 어둡고 썩어져 가는 부조리와 부정, 부패는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고 떼를 지어서 교회 왔다갔다하고 부흥회는 왔다갔다해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어둠과 짝을 같이 하고 부패와 짝을 같이 하고 그래서 마귀와 같은 짝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이렇게 부조리와 부패로 썩어 문드러져도 이것을 치료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교회의 책임이요 성도의 책임입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이 빛이지 안 믿는 사람은 빛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소금이지 안 믿는 사람은 소금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어지러운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회개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받았으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격적인 변화가 와야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이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같은 인격의 변화가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다고 해서 성령 받았다고 날뛰면서도 싸움은 누구보다도 잘하고 남의 돈은 더 잘 떼먹고 흉이나 보고 가정에 불화나 가져오고 그러고도 주여 주여 예수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보고서 예수를 믿지 말고 내 주먹이나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개인적인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지 아니하면 성령 받은 것을 무엇으로 나타내 보이겠습니까? 성령 받은 사람은 마땅히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허랑 하고 거짓말하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없어져야 됩니다. 인격적으로 의롭고 거룩하고 성결하고 착하고 이와 같은 행실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우리 한국 사회에 우리 기독교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요 또 나아가서 사회 환경 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어두우면 우리 교인들이 가서 빛을 비춰주고 진리의 빛을 비춰주고 썩어지고 문드러져가는 부조리와 부패 속에는 소금의 역할을 해서 우리가 먼저 탐관오리하지 말고 부정부패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정말 사랑하고 우리의 공중도덕과 도의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먼저 지킬 줄 알고 이래서 개인적인 변화와 그가 있는 사회 환경 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새치기는 누구보다 잘하고 버스 탈 때 줄 세우려고 하면 달려들어서 팔이나 물고 공중도덕은 남보다 안 지키고 그러고도 주여 주여 이렇게 한다면 누가 그 주를 믿겠습니까? 누가 그 주를 따를 수 있습니까? 주를 믿음으로 하나님 공로로 말미암아 천국은 겨우 턱걸이로 갈지 모르지만 빛과 소금이 되지 않는 이상 누가 그리스도를 여러분 생애를 통해서 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와 한국 성도 실패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가 세상과 타협을 해서 세속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어둠은 그대로 남아 있고 썩어진 부패는 그대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교인 수는 8백 만에서 9백만으로 9백만에서 1천만으로 늘어가는데 수만 늘었지 변화를 가져오는 역사가 사라졌으니 성령의 역사가 도대체 어디에 갔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시고는 가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는데 여러분 귀신이라는 것이 반드시 뿔이 나고 눈이 부리한 귀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와 부정과 부패가 바로 귀신인 것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야 됩니다. 여러분의 개인에서 가정생활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부조리와 부정, 부패를 가져오는 이 모든 귀신을 내어쫓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너희가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귀신이 부조리와 무질서와 부조화를 가져오지 성령을 그런 것 안 가져옵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우리의 환경에 부조리와 무질서 이것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병이란 곧 육신의 병만 병이 아닙니다. 영적인 병, 마음의 병, 육신의 병, 가정의 병, 생활의 병, 사회의 병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 있는 처소에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이것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로써 행함으로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내 자체로부터 시작해서 내 있는 자리에서 부정과 부패가 물러가도록 기도하고 우리 가정에서 부정과 부패가 물러가고 내 사회 속에서 부정과 부패가 물러가도록 내가 기도하고 내가 또 소금이 되어서 솔선수범 실천해서 빛과 소금으로서 이 사회를 변화시키라고 했지 우리 교회가 일어나서 플랜카드나 들고 데모나 하고 몽둥이 들고 치고 받고 때리고 부수고 정치적 결사를 하고 멱살을 잡고 변화시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화가 아닙니다. 빛이라는 것은 비취고 있으면 어두움이 자연히 물러갑니다. 소금이란 썩은 데 갖다 놓으면 썩은 것이 자연적으로 물러갑니다. 여러분과 내가 진실로 우리 있는 자리에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예수 이름으로 내 있는 자리에서 내 손이 미치는 대로 치료하고 변화를 가져오면 이것이 한 사람, 두 사람 연결되어서 온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국은 중증의 병이 걸려 있습니다. 귀신이 경제 사회, 정치 사회, 우리 인간 사회에 들어와서 온갖 부조리와 부패를 가져오고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아무리 국회가 수술하려고 애를 써도 신문이 수술을 하려고 애를 써도 그러나 이것으로 귀신이 안 쫓겨나갑니다. 이것으로 낫지 않습니다. 성경에 지랄 병든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와서 할 수 있으면 내 아들을 고쳐 주옵소서 하는데 얘가 지랄을 해서 드러누워서 거품을 물고 온몸을 비틀고 야단입니다. 그 지랄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예수께서 오셔서 귀신을 내오 쫓으시매 귀신이 쫓겨나가고 지랄병이 나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금 경제적인 지랄병에 걸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 지랄 병이 쫓겨나가지 않습니다. 이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습니다. 귀신 들렸다고 국회에서 아무리 손가락질하고 정치적으로 아무리 한다고 귀신이 나가나요? 신문에 아무리 떠든다고 귀신이 나가나요? 지랄병을 쫓을 수 있는 사람은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기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잔소리하지 말고 이 지랄 병이 낫도록 우리가 한국 경제를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가 있는 그 처소에서 우리의 회사에서 우리의 공장에서 우리의 사업장에서 이 자리에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그 자리에서 빛이 나타나고 소금이 나타날 수 있도록 행동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한국 사회가 치료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순절날 이 기념일에 우리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성령의 불이 떨어지고 성령이 비가 임하여서 처처에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이 고침 받고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손과 손을 마주잡고 기도의 용사들이 되어 나갈 때 이 한국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살길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의지할 곳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앞에는 홍해수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협공을 하는데 어디에 피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우리를 피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 너희는 가만히 있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을 보라 이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기 전에는 우리가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에야말로 얼마나 절박하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기도를 해야 될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이 죽고 사는 것은 기독교회가 깨어나서 기도하느냐, 안 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회개하도록 기도하고 부패와 부정이 사라지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는 성령강림으로 탄생하여 성령 안에서 성장하다가 성령으로 승천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운동은 교회의 생명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빛의 역할도 할 수 있고 소금의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없는 인간의 힘으로는 빛과 소금도 되지 않습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죄악의 세상과 타협해서 흘러갈 따름인 것입니다. 순복음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충만해서 일어나서 어두운 데 빛을 부패에서 청결을 가져오는 위대한 십자군들이 되어서 여러분이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들이 다 고침 받아서 가정의 병, 사회의 병, 국가의 병이 고침 받고 기정과 사회와 국가를 흔드는 귀신들이 여러분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아 쫓겨나가고 변화 받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우리가 기필코 천국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천국복음 증거 하는 것도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서 우리가 비취고 우리가 부패를 막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입술로만 오랫동안 주여주여 하고 살아왔으면서도 성령 받은 자기 개인의 변화도 못 가져오고 자기 환경 적인 사회적인 변화도 못 가져오는 한국 교회가 되고 말았사옵나이다. 교회는 많고 성도 수만 많았지 그것이 빛도 못되고 소금도 못되었기 때문에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조금도 없사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오순절 날에 우리 순복음 교회 제4부예배라도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깨닫고 열매맺는 성도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가 가정이 우리 사회가 변화 받을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병을 고치게 도와 주시옵소서. 가는 곳마다 부조리, 부패, 부정의 귀신들이 소리치며 나가버리고 앉은뱅이와 절름발이 된 우리 사회와 경제와 우리 나라가 다 건강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치료함이 다가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오늘 이 시간에 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40730-0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