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 포도주가 모자란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를 금욕과 고행의 종교라고 오해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탐욕과 방종에 이르지 않는 한 자유와 기쁨과 축복의 종교인 것입니다. 인간이 베푸는 예식 중에 가장 기쁨 예식이 결혼 예식인 것입니다. 더구나 결혼 예식을 마치고 난 다음 피로연은 즐거움에 넘치는 잔치인 것입니다. 바로 이 결혼의 피로연에 예수님의 어머님,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청함을 받아 참석하여 즐거움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게 될 때 예수님께서는 결코 금욕적인 종교를 세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는 금식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철야기도도 하고 보행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평범하고 일반적인 생활 속에 지속적으로 우리가 금욕적인 삶을 살라고는 주님께서는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하늘과 자연과 이 삶을 선물로 받아드려서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하나님께 찬미하며 참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으로 살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도적이 오는 것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의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갔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속박하고 병들게 하고 고통을 가져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또 그 문제를 지금도 우리가운데서 해결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친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돌보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셨고 볼지어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항상 너희와 있겠다고 말씀하시므로 함께 계신 예수님께서 그 하늘과 땅과 모든 권세를 가진 힘으로 여러분과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우리에게 참 생명과 기쁨과 행복과 승리를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오늘 주님의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아 보십시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그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해서 혼인 잔치가 한참 무르익어 갈 때 갈리리 혼인 잔치에 생각지 않는 불행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포도주가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의 사회에서 잔치에 포도주는 음식에 중심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고 나니 이 잔치가 낭패가 될 수밖에 없고 이제 신혼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이 남녀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셔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는 의미 심장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문제만 관심이 계셔서 죄를 용서하고 인간들을 죄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피안의 세계인 천당에 보내는 것만 예수님의 관심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또 의례히 그렇게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어머님은 예수님을 그렇게 알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예수님을 품에 안고 그 젖꼭지를 물려서 키우고 돌보는 마리아이기 때문에 육적으로는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알고 또 영적으로도 예수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마리아는 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즉시로 예수님께로 와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재난사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시고 해결할 권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마리아는 밝히 알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그리스도보다는 마리아가 아는 예수그리스도는 더 달랐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문제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영적인 문제밖엔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마리아는 예수그리스도야말로 정 인간을 구하려고 오셨으며 인간의 영혼의 문제와 생활의 문제와 건강의 문제를 다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포도주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마리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이해할 때 마리아처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의 영혼의 문제만 관심을 가지고 죄를 용서하고 천당에만 보내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인간이 겪는 수많은 고통과 눈물의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은 중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과 나의 가운데 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며 지금 여러분과 나를 향해서 두 손을 활짝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해 주겠다고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영적인 문제도 될 것이요. 개인 문제 가정 문제 생활 문제 자녀 문제 여러 가지 문제가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무거운 짐을 주께로 가져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휴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여기에 포도주라는 것은 기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그냥 물과 달라서 포도주는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 기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 삶에서 기쁨이 상실되면 삶의 기력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기뻐하면 우리는 놀라운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쁨을 상실하는 사람은 아무리 호의 호식한다고 하더라도 살아갈 힘과 기력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마음속에 포도주를 잃어버릴까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기쁨을 상실하지 않게 되기를 주님께서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비상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 문제를 오늘날도 예수님은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늘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가정에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활에 오늘날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은 그 자리에 기쁨을 채워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여러분 마음속에 넘치는 기쁨을 주어서 여러분의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요. 혹은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므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쁨으로 넘치도록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주님께 달려 있지만 여하간 주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 마음속에 기쁨의 포도주가 넘치게 되기를 원하지 포도주가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든 것은 처음 행한 기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들어와서 우리 주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기쁨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해주는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빌립보서 3장 1절에 보면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외적인 표적은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굴에 우울한 색깔을 가지고 마음에 침울해서 산다면 이것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 같은 비상한 사태에 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쁨이 살아지면 여러분의 신앙이 살아졌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병들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이것은 정상적인 삶이 아닌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고해야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마음속에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내 신앙의 생활이 병들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내 신앙이 활달하게 생기 발달하게 성장하느냐. 그것을 시험하는 중요한 도구가 마음에 기쁨이 있느냐. 없느냐 가 그 판가름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는 신자는 병든 신자인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진 신자는 정상적인 신앙을 하는 신자가 아닌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여기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여기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저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떨어졌습니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그 잔치는 낭패가 되고 피로연은 모두다 박살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결혼한 부부의 생활은 슬픔에 꽉 들어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반드시 예수께 나와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와서 저의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기적적으로라도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것은 중대한 잘못입니다. 제가 화란에서 대 성회를 하고 있을 때 화란의 목사들이 내게 굉장한 반대했습니다. 화란은 극 칼빈주의인 것입니다. 그들은 와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전치 전능 무소 부지하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줄 것이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구하느냐는 것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렇게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학자들은 신학적으로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14절에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게 구하라고 말했지 가만히 있으면 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구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포도주가 떨어져도 예수님께서는 아무 일도 행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주님께 구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지 아니하고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우리의 정상적인 삶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귀를 기울이시고 반드시 응답하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일방적인 독백이 아닙니다. 인간 편에서 종교의식이나 형식이나 집행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늘에서 대답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여주겠다고 성경에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11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매일 같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에 기쁨을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할 때 마음에 평안과 안심과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응답의 때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께 나와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니까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여자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한 것은 불 경건한 말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의 사명을 다 할 때 마리아가 친어머니라고 해서 혈연관계 때문에 응답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보여주기 위해서 마리아를 한 여자 중에 한 사람으로써 취한 것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혈연 중에 관계가 있어서 응답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평범한 우리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으로써 기도할 때 그때로부터 주님은 응답의 때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고 난 다음 조금 기다렸다가 곧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할 때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교회에 열심히 한 신앙인 박용부씨의 간증을 들어보고 깊이 마음에 간증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와 5년 교제한 후에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박용부씨는 교회에 나기지 않기 때문에 아내는 열심히 한 신자임에도 불과하고 결혼한 다음에 엄히 명령해서 교회를 못나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교회를 못나가니 그때로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서 5년이 지나자 그 아내는 거의 죽게되었습니다. 이제는 의사가 약으로 고칠 수 없는 심각한 심신의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아내를 우리 여의도 순복음 교회로 보냈습니다. 교회를 나오자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던지 병이 감쪽같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감동이 되어서 그 남편도 교회에 따라 나오기 시작해서 성경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성경대학 졸업을 하고 그 다음 구역장이 되어서 일을 하고 있는데 1982년 7월 의사이신 둘째형이 간암에 걸려서 간의 90%가 암으로 덮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한양대학 이과대에서 조사해보니까 길게 살면 석달 살고 빨리 죽으면 열흘만에 죽는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간의 90%이상이 파괴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가 없어서 그만 그 형은 집에 와서 세상을 뜰 작정을 하고 퇴원을 해서 집에 왔습니다. 이것을 알자 우리 교회에 나오는 구역님은 다급해서 자기와 전도사님과 구역장님을 모시고 가서 예수는 예 자도 모르는 그 형님 집에 가서 예수 믿으라고 하고 찬송을 부르니까 형과 형수가 좋지 않게 여겼지만 그러나 죽음에 임박했으니까 다급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자리에서 따라서 회개를 하고 찬송을 하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그 근면을 받아서 곧장 보따리를 싸서 일주일 동안 금식하기 위해서 기도원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여러분 이런 결단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수없이 암에 앓는 사람들 아직 몸이 건강한 사람들을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라. 아직 기도할 힘이 있을 때 부르짖어라 고 말해도 끝까지 그렇게 하지 않고 링게루에 바늘을 꽂아놓고 요행을 바라보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틀림없이 열에 열 다 죽어나갔습니다. 여러분 일단 의학적으로 안되겠다고 결심하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름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기도해 줄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내 기도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내가 부르짖어야지 내가 죽을 판인데 다른 사람이 해 줄 줄 알고 그 자리에 편안히 드러누워 있으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구역님의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의사요.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내와 함께 봇짐을 싸고 기도원에 올라가서 일주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이여 나를 살려달라고 있는 힘을 다해서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전혀 변을 보지 못했는데 변을 보기 시작하고 몸이 부었던 것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금식하고 난 다음 상당히 회복되어서 집에 내려왔다가 1983년 정월에 한양 병원에 입원하여 종합진단을 해본 결과 간암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현재 서울시내에서 병원을 개업해서 돈 잘벌고 있어요. 만약 이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은 중대한 문제에 부딪쳐서 죽고 말았겠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즉 예수께서 때를 만들어서 주님의 방법으로 치료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은혜 받을 것을 생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점잖은 사람에게 은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같이 마음이 깨어져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에게 오늘날도 주님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어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내게 속삭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사람이 어떻게 속삭입니까. 답답한 사람이 목숨 받쳐서 부르짖을 것밖엔 없지 않습니까. 부르짖을 때 우리 주님께서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제 셋째로, 예수님이 어떻게 기적을 행하였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 정원에 결계통 항아리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 이 결례통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집안에 들어올 때 손과 발을 씻는 그런 결례의 의식인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들이던지 아님 손님들이 오면 반드시 종교의식에 좇아서 손발을 씻도록 결례통에 담아놓는데 이 집 식구는 굉장히 많은가 봅니다. 왜냐하면 항아리가 여섯 개 있었습니다. 항아리 하나에 75ι해서 115ι의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항아리 여섯 개면 450ι-690ι의 물을 담아놓 수 있는 굉장히 많은 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오자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물을 퍼다가 그 결례통 항아리에 부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종들이 열심히 물을 퍼다가 여섯 개 결례통 안에 물을 잔득 채우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제 그 물을 퍼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은 순종해서 그 물을 퍼서 연회장에 갖다주니 연회장이 그 물로써 된 포도주를 마셔보더니 기가 막히게 맛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기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보통 집에서는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었다가 나중에 사람들이 취하면 물을 섞은 그런 포도주를 내 오는데 이 집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것만 내는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주시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것 주시지 처음에 좋았다가 나중에 나빠지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젊을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백발이 되어도 주님을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처음과 나중이 일년같이 좋은 것이지 내가 청춘일 때만 좋고 백수가 되면은 버림받는 그런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중대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을 초월합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퍼서 결례통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하는 말이 무엇이든지 예수님께서 시키신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면 우리는 적은 것 같은 일이라도 무조건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으로 역사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맡겼으면 하나님이 때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 결례통에 물을 부어서 그를 기적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가지고서 주께서 대접하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순종과 믿음이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하지 아니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에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물인 대도 불구하고 이 물을 퍼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할때 주님께서 기적을 만드실 것이라고 믿고 믿음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하고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음으로 실천하면 그 행함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비유로 배워야 할 것은 여러분과 내가 바로 이 세상에 놓인 돌 항아리입니다. 이 세상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이 세상은 죄 짓고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으며 병들고 저주받고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돌 항아리는 바로 여러분과 나 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우리 가정에 돌 항아리요. 우리 직장의 돌 항아리요. 우리 사회에 돌 항아리 인 것입니다. 일본 형제 여러분은 일본에서 그리스도가 포도주를 만드는 돌 항아리요. 대만, 말레지아, 싱가폴, 인도네시아에서 오신 여러분은 여러분의 나라에서 여러분의 사회에서 돌 항아리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진실로 우리는 주님이 사용하는 돌 항아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과 내가 텅빈 돌 항아리가 되어서 형식이나 의식적인 기독교 신앙만 가지고서 실제로 절망과 고통을 부르짖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면 여러분과 나의 돌 항아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포도주가 아닌 물만 가득하여 학문적인 기독교 학문적인 종교만 가지고 있지 실제로 살아서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예수를 전도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기독교만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과 나는 포도주를 담은 항아리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포도주가 담은 돌 항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결례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끗한 항아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더러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결레통 깨끗하게 씻어서 다른 사람도 깨끗하게 해 주는 결례통에 물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생활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과 내가 죄를 회개하고 마음이 정결해야만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물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 놓고 약속으로 채워놓고 성령으로 채워놓아야 언제나 하나님이 사용하려고 할 때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결례통에 말씀으로 채우고 성령으로 채우고 난 다음에 그리고 언제나 주님께서 명령하면 순종하고 믿고 실천하면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입술을 통하여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통하여 용서의 포도주가 성령충만의 포도주가 치료의 포도주가 그리고 축복의 포도주가 영생의 포도주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기적을 가져오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문제가 많고 슬픔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안 보이는 모습으로 늘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참으로 정결하고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여 언제나 문제의 해답을 가져오는 믿음과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20세기의 돌 항아리인 여러분을 통하여 오늘 기적을 베푸사 슬픈 대신에 기쁨을 절망 대신에 소망을 질병 대신에 건강을 지옥 대신에 영원한 천국을 가져오기를 원하시는 좋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만군의 야웨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그곳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처럼 우리에게 떨어진 것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모자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절망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 이 모자란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오늘도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와 계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시므로 갈릴리 혼인 잔치에 와 계시는 그 예수님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든 그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자리에 함께 와 계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오 사랑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기적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맹물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다 기쁨의 포도주로 다 채워주시옵시고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변화받게 도와 주시옵소서. 악한 사탄에게 놓여남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