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거짓되고 헛된 것

by 삶의언어 posted Oct 11, 2024 Views 2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7-07-12
오늘의 성구 요나 2장 8절로 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7VL-J_VSFgQ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선지자 요나는 원수의 나라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만일 니느웨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만에 하나님의 벌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외치도록 명령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니 그렇지 않더라도 철천지원수의 나란데 하나님께서 그를 40일 이내에 멸망시키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러나 니느웨에 가서 회개만 하면 멸망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으므로 요나는 마음속에 애국충정이 넘쳐 나서 그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하기로 작정하고 욥바에 내려가서 니느웨와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배 밑창에 들어가서 도망을 꾀했었습니다. 배는 항구를 떠나서 시중에 바다를 향해서 항해해갔지마는 얼마 있지 아니하여 거대한 풍랑이 다가왔었습니다. 사공들이 전력을 기울여 배를 바로 잡으려해도 배는 점점 풍랑에 부딪쳐 나중에 파선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 풍랑이 다가왔는가 조사해보고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다시스로 도망가는 것을 알고 요나를 붙잡아서 바다에 던져버렸었습니다. 그러나 일시에 풍랑은 잠잠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바다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가 있어서 요나를 삼켜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도 사흘 낮, 사흘 밤을 버티었습니다만 그는 소화도 되지 않고 죽지도 않았었습니다. 어둡고 캄캄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고 그 고통 가운데서 요나는 견딜 수 없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서 그는 회개하고 자복했었습니다. 그가 가슴을 치고 회개하고 자복하며 하나님께서 다시 자비를 베풀어주시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니느웨로 가겠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살아서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언약의 말씀을 받았으나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에게는 도저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의 유체의 오감각은 끊임없이 심장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위장에서 그를 소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덮어씌우는 위액을 온몸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장이 끊임없이 그를 소화하기 위해서 그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게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감각을 통해서 생각할 때 그는 고기 뱃속에서 소화가 되었지 절대로 살아난다고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성적으로 그가 생각해보아도 그가 지중해 바다 가운데 빠졌으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바다 밑바닥 산 뿌리까지 내려갔는데 도저히 살아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그는 마음속에 확신이 돼 있었습니다. 절대로 살아나간다는 것은 허망한 꿈이라고 생각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속에 임하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건져서 다시 니느웨로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깊은 마음의 갈등 속에 그는 괴로워했었습니다. 육신의 감각을 믿을 것이냐, 그 인간의 이성의 경고를 믿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을 것이냐 그러다가 그는 마음에 결단에 도달했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감각이 무엇이라고 말하던 간, 그의 이성이 무엇이라고 반대하던 간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그는 결정을 내리고 육신의 감각이나 이성의 모든 반발을 향해서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 말슴에 반대되기 때문에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고 외쳤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거짓되고 헛된 감각이나 이성의 논리를 숭상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버렸으나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성의 모든 소리도 거짓되고 헛된 소리라고 했었습니다. 감각의 모든 자격도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부여잡고 이것만이 참되고 진실하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 하여 주셔서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토해내게 하고 그는 살아서 나와서 니느웨에 가서 복음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믿음에 대한 중대한 교훈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거짓되고 헛된 것이 있는가 하면 참되고 진실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되고 헛된 것은 불려 내야 되는 것이요, 참되고 진실한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받아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에 반대되는 감각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이 우리의 감각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몸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는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체험하는 감각 속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감각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될 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믿을 것이냐 감각을 믿을 것이냐 갈등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갈등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이미 100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가 90이 되었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보니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았고 자기의 사라의 태도 이미 죽은 것 같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감각적으로 말할 때 그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감각적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래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각적으로는 그들은 완전히 죽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내가 너의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 어떻게 할 것이냐, 내 몸의 죽은 것 같음을 믿을 것이냐,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릴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것이냐 아브라함은 이 마음의 갈등 속에서 그는 결단을 내렸었습니다. 그는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은 것도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사라의 태의 죽은 거 같은 것도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눈에는 암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거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되고 진실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말씀을 부여잡았었습니다. 끊임없이 감각이 그에게 외쳤습니다. 너는 죽은 자와 같다. 너의 아내도 죽은 자와 같다. 그러나 그는 말했습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아 아무리 나에게 고함쳐도 나는 너에게 승복하지 않는다. 진실 되고 참된 것은 하나님 말씀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에 굳세게 서서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고 찬미하고 감사드렸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통해서 육신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는 100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그 아들이 이삭이요,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에 반대되는 모든 감각은 거짓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말씀에 반대되는 이성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아람왕 벳나단의 공격을 받아서 사마리아 성이 첩첩이 포위 당했습니다. 이래서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세 달이 가므로 성안은 크게 굶주려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비둘기 똥을 거액의 돈을 사서 먹으려고 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급기야 너무 배고프기 때문에 오늘을 네 아들을 잡아서 삶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서 삶아먹자. 식인종들이 돼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처절한 절망 상태에 있었을 때 엘리사가 예언을 했었습니다. 엘리사의 예언은 내일 이맘때면 사마리아성문에 고운 가루 한 세에 한세겔을 하고 보리 두 세에 한세겔을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첩첩이 아람의 대군이 포위하고 있고 성안에는 크게 굶주렸는데 무슨 재간으로 내일아침 이맘때면 보리와 밀이 성문에서 넘쳐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가 이 말을 하자 왕이 이제는 장관이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고 대소 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는 이성의 음성을 듣고 크게 비웃었습니다. 상상해 보아라. 저렇게 적군이 대 군대로써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데 적군이 하루만에 사라질 수가 있느냐. 우리는 그들을 대적할 군대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고 그래서 장관은 비웃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에서 엘리사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이냐, 장관의 이성적인 판단을 믿을 것이냐, 갈등 속에 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될 때 어떻게 총명함이 있을지라도 그는 거짓되고 헛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참 되시다고 할 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이튿날에 아람 군데들은 다 도망을 쳐버리고 문둥이 네 사람이 아람 진에 가보니까 얼마나 밀과 밀가루와 보리가 많은지 이것을 보고하자 이스라엘백성이 와서 아람 진을 노략하니 그 이튿날에 성문 밖에서 밀과 밀가루와 보리가 넘쳐났었습니다. 결국 엘리사의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국민학교부터 대학,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이성을 사용하도록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성과 과학이 나쁘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과 반대될 때 그때는 이성과 과학적인 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참되시다고 할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된 것으로 알고 말씀 위에 서면은 말씀은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고 진실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운명과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매 어두운 가운데서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시매 하늘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시매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육지가 드러나고 모든 열매맺는 초목들이 나타났었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시매 해가 나타나고 달이 나타나고 별들이 나타났었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시매 하늘에 새들이 날고 물에 물고기들이 놀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시매 짐승들이 땅에 뛰고 곤충들이 땅에 기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능력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개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었으며 인자가 아니신지라, 식은치 아니하십니다. 어찌 그 하신 말씀을 이루지 아니하며 그 하신 말씀을 성치 하지 않겠습니까? 대개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감각이 무엇이라고 말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은 참됩니다. 인간의 이성이 무엇이라고 말하던 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참됩니다. 그러므로 감각의 어떠한 외침도 하나님 말씀에 반대될 때는 우리는 요나와 같이 이 거짓되고 헛된 감각아 단호하게 반대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이성이 무엇이라고 말하던지 하나님 말씀에 반대되면 이 거짓되고 헛된 이성아 일격에 이성을 격파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고 그에 잡혀서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거짓되고 헛된 이성을 따라가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서 말씀에 서서 나가는 사람은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보십시요. 예수께서 광야에 나갔을 때 남자 오천명 부녀자 함께 기만 명이라고 했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들이 굶주렸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빌립을 부르셔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이성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계산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도저히 계산상으로 그 사람득ㄹ을 먹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말했습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나 되는 떡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지금은 저녁입니다. 광야입니다. 먹을 때도 아니고 장소도 아니고 돈도 없으므로 이 사람들을 흩어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빌립이 이성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자,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이냐, 빌립의 이성을 따를 것이냐, 그럴 때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는 비록 광야이지마는 떡 살 곳이 없지마는 돈도 없지마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나가서 어린아이의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주님께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 거짓되고 헛된 인간의 이성적인 계산을 믿고 있는 빌립을 통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고 참되다고 믿고서 행동하는 안드레를 통하여 그 광야에서 수만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과 내가 사는 이 시대는 광야인 것입니다. 아마 이 시대에 여러분과 내가 위대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광야고 이 세대에 마지막에 처해있고 어려운 경우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감각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지라도 여러분의 이성이 우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요나가 비록 물고기 뱃속에서 자중의 밑바닥에 있을지라도 그의 감각의 외침도 너는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그의 이성의 외침도 너는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건져준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고 진실하다고 외쳤을 때 그는 그 믿은 대로 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은 우리의 생활 환경 가운데 거짓되고 헛된 것은 제껴버리고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 말씀에 서서 사는 것을 배우지 아니하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에 무엇이 거짓되고 헛된 것이고 무엇이 진실하고 참된 것인지를 우리 알아보십시다.

첫째로, 우리는 죄와 용서와 의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태어날 때부터 벌써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우리는 세상에 자라면서 배우는 것은 죄입니다. 죄를 보고 듣고 먹고 마십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모두다 죄인입니다. 저도 죄인입니다. 인간은 죄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감각적으로 생각하기를 우리는 죄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여러분 말씀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는 결코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될 수 없어도 여기에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여러분의 불의, 나의 불의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형벌을 받아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과거의 죄가 청산되었었습니다. 현재의 죄가 청산되었었습니다. 미래의 죄가 청산되었었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용서가 되고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어떻게 말해야 될까요? 우리는 죄에 대해서 거짓되고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희 죄는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너희 죄가 우리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지옥으로 보낸다는 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우리의 오직 참되고 진실한 것은 예수 안에서 용서가 있고 예수 안에서 화목이 있고 예수 안에서 내가 의롭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생활을 했지마는 이것을 이제 예수 안에서는 다 청산되어 버렸으므로 이것이 나를 붙잡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참된 것은 나는 예수 안에서 용서를 받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이제 의롭게 되어서 나는 천국으로 가는 사람이다. 이 확실한 믿음의 신앙을 고백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안에 있으면 값없이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입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이 놀라운 은총을 받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는 이와 같은 축복을 줄 어떠한 종교도 어떠한 신앙도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용서요, 의가 되시고 이 진리만이 진실하고 참된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 여러분은 감각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나는 무능하고 열등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무능한 사람입니다. 나는 열등한 사람입니다. 나는 설교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기도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전도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훌륭한 남편이 되지도 못하고 엄마가 되지도 못합니다. 아내가 되지도 못합니다. 나는 무능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잠재의식 속에서 열등의식과 좌절감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구박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진실하고 참된 것일까요? 여러분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시고 난 다음에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께서 오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성령이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며 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열등의식과 좌절감과 무능함을 향하여 이 거짓되고 헛된 것아 너의 열등의식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너의 좌절감도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너 못한다고 하는 것도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나는 성령이 같이 계시므로 나는 능력을 얻고 도움을 받고 성녀의 생활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참된 것이다. 진실한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이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열등의식과 좌절감으로 많은 고통을 당한 사람 중에 한사람입니다. 나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나는 몸이 건강하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금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었습니다. 저는 빈손 들고 서울에 올라와서 빈손 들고 인생을 출발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열등의식이 고개를 들고 좌절감이 나를 깨물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늘 내 마음속에는 무능하다. 나는 무능력하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것은 내 마음속에 붙은 진딧물같이 고통을 주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게 되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셔서 성령이 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성령이 나와 함께 거하시고 내 속에 계시면서 나에게 연약함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성령이 나의 지혜가 되시고 지식이 되시고 총명이 되시고 판단력이 되신다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제가 내 마음속에 말했습니다. 이 열등의식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이 좌절감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이 못한다는 생각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오직 참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계시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성령을 의지하자 그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을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 의지하자 성령께서는 나의 상상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총명과 하나님의 판단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운명과 환경을 정복하면서 나아갈 수가 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능한자들이 아닙니다. 무능력한 자들이 아닙니다. 열등의식에 처한 사람도 아닙니다. 이것은 마귀가 여러분에게 갖다주는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이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원천이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속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바울 선생처럼 우리는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셋째로,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질병과 고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이 듭니다. 정신적인 병이 들기도 하고 육체적인 병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되었지만 수술을 받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암은 옛날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심장병도 많은 사람을 죽이게 했으며 당뇨병도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신장병도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고 더구나 오늘날 20세기 마지막에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에이즈 같은 병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진실로 병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세상에 병 없는 사람이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병은 우리에게 사실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바라볼 때 우리는 병에 재해서 비웃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하기를 나는 너의 병을 치료하는 야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그의 사역의 삼분지 일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나 70인의 제자에게도 나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고는 병을 고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말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 나라에는 병이 동시에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병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내가 병에서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모를 때는 몰랐거니와 이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진리를 알았을 때는 이제 우리에게 다가오는 각종 병을 향해서 우리는 말합니다. 병이 우리의 몸을 물고 찢고 우리의 몸을 먹어 들어가더라도 이 병아, 너는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나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받았다. 예수께서 나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 그러므로 나는 고침 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것을 주장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병을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병을 받아들여선 안됩니다. 병이 아무리 물고 달려들어도 너는 거짓된 것이다. 너는 헛된 것이다. 참된 것은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은 이 사실은 참된 것이다. 외쳐야 됩니다. 나는 최근에 우리 교회 정기분씨의 간증을 들었었습니다. 강기분씨는 위암으로 죽어 가는 분이었었습니다. 위암 말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은 아주 완전히 깡마르고 시커멓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원에 가서 수술 받는 것을 겁을 내어서 수술하자는 것을 그만두고 집에 왔습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그리고 심지어는 지압까지 받고 해도 이제는 죽음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조장이 우리 여의도 순복음 교회 나가자고 자꾸 인도하므로 그는 사력을 다해서 교회에 와서 예배에 출석했었습니다. 말씀을 듣자 성령이 임하여서 그는 눈물을 흘리고 통회하고 자복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 말씀을 듣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치료가 있는 것을 듣고 그는 살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기도원에 올라갔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사흘동안 금식하면서 결사의 기도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피골이 상접돼 있기 때문에 사흘 금식이라는 것은 건강한 사람의 30일 금식보다 힘이 들었었습니다. 사흘동안 그는 싸웠었습니다. 그 암은 온몸을 먹어 들어가고 있으나 그는 말하기를 예수께서 나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나는 나음을 받았다고 해서 싸웠었습니다. 그는 병을 향해서 이는 병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려고 해도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참된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았다고 외치면서 기도했었습니다. 사흘동안에 그는 암을 다 입으로 토해냈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건강하게 되어서 물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전엔 물도 밥도 못 먹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모든 사람들이 환영을 받고 있었는데 그만 집에 와서 둘째 사위가 미워졌었습니다. 왜냐하면 참 친절하고 좋은 사위지만은 돈을 못 벌기 때문에 사위를 미워하자마자 병이 도로 재발했었습니다. 그래서 도로 기도원에 올라가서 사위 미워한 죄를 사흘동안 금식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난 다음에 사위를 사랑하게 되자 또 병이 나아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는 이제 건강하고 튼튼하고 몸도 살이 찌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병든 것은 하나님보시기에는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건강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되고 진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진리를 알고 난 다음 병을 향해서 이 거짓되고 헛된 것아, 내게서 물러갈지어다. 단호하게 대결하고 여러분 그리스도의 말씀의 진리에 확실히 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의 생활에 저주와 축복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우리는 저주를 당연지시하고 살았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가시가 돋습니다. 엉겅퀴가 나옵니다. 우리의 생활에 저주가 꽉 들어찹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며 패배하며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립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여러분 성경말씀 가운데 보면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음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려하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음바 되사 우리의 저주로 말미암아 오는 낭패와 실망과 슬픔과 패배, 가난과 저주 이것 모든 것을 다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제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 예수를 믿고 살면은 우리의 생활에 다가오는 저주를 바라보고 이 거짓되고 헛된 것아 내 가정에 다가오는 저주를 보고 이 거짓되고 헛된 것아 나의 생활에 다가오는 저주를 보면 이 거짓되고 헛된 것아, 너와 나는 상관이 없다. 네가 아무리 다가와도 너는 거짓되고 헛된 것이요, 너는 아무런 힘이 없다. 나는 예수께서 나의 축복의 근원이 되고 아브라함의 축복이 나의 것이다. 진실 되고 참된 것을 입술로 시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무엇이 너희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 메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라 했는데 메고 푸는 것은 여러분 입술의 고백으로써 메고 푸는 것입니다. 땅에서 하나님의 진실을 우리가 입으로 고백해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여지는 것입니다. 땅에서 부인해버리면 하늘에서도 부인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한시라도 여러분은 저주를 시인하지 말고 이미 저주가 올 때마다 너 거짓되고 헛된 저주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진실하고 참된 것은 나는 예수 안에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외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죽음과 영생입니다.
여러분 죽음이 현실처럼 다가옵니다. 여러분과 나는 죽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들어 죽고 자동차 사고로 죽고 또 많이 늙어서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은 현실적인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사망아, 너의 속은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사도바울선생을 통해서 계시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기를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죽음과 음주를 정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육체적인 죽음이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죽음이란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육신의 장막집 벗어버리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압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것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육신의 장막집 벗어버리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으로 올라갈 것이요, 우리가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같이 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 주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살아나고 우리들이다 변화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은 이제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는 죽음 그 자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바라봅니다. 이러므로 바울선생과 더불어 우리는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속은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이란 거짓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거짓되고 헛된 죽음을 보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죽음 같은 것도 우리는 다 영생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두 종류의 지식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전자는 감각이나 이성의 지식입니다. 후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적인 지식입니다. 여러분 감각이나 이성의 지식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님 말씀에 반대될 때는 모두다 거짓되고 헛된 것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참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신앙인 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하는 이 계시적인 지식을 우리 지식의 가장 기본으로 삼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어긋나는 어떠한 감각도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 어긋나는 어떠한 이성적인 판단도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오직 말씀하고 접합할 때 그 감각은 올바른 것입니다. 말씀하고 일치될 때 그 이성은 올바른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말씀만은 영세토록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우리가 듣고 이 말씀대로 나아갈 때 말씀은 믿음을 가져오며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은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는 거짓되고 헛된 것은 바라보고 소리를 외쳐 너는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너 거짓되고 헛된 것은 물러가라. 나는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말씀대로 될 줄을 아노라. 어떠한 어둡고 캄캄한 길을 걸어가더라도 거짓되고 헛된 것에 잡히지 말고 말씀을 따라 나가면 말씀은 여러분과 나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 기 도 -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거짓되고 헛된 것에 잡혀서 포로가 돼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도 감각을 더 믿고 하나님 말씀보다도 이성을 더 따라왔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기적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구원도 받지 못하고 치료도 얻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감각은 여실합니다. 우리 이성의 반발도 여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말씀에 거역하는 모든 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으로 일축해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직 말씀을 따라 나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241011-0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