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두가지 폭풍우

by 삶의언어 posted Oct 17, 2024 Views 2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고난
예배드린 날 1987-09-20
오늘의 성구 누가복음 8장 22절로 3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tf3t-b0F1zI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 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 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 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 쌔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말씀]
오늘 저는 ‘두 가지 폭풍우’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배나 비행기로 여행하는 사람은 그 누구나 풍랑이나 악 천우를 만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하도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여러 번 공중에서 악 천우를 만나 수 시간씩 심한 시련을 겪고 고통을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여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좋은 기상을 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고 비행기 여행이 편안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를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는 제가 어느 곳에 가나 편안하게 여행을 하고 기상이 좋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깨달은 것은 미리미리 기도를 해놓아야지 막 어려움을 당한 그 자리에서 기도하면 벌써 때가 늦다는 것을 깨달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지라 미리미리 우리의 문제를 상의하고 하나님께 부탁하면 하나님께서 앞서서 우리의 길을 평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런데 인간생활은 이와 같은 자연적인 풍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은 우리의 삶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인생 풍파인 것입니다. 우리는 풍랑이나 풍파가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이 인생을 살면서 풍랑이나 풍파를 당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풍랑이나 풍파가 다가올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알지 못한다면 풍파에 휩쓸려 희생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 가운데 보면 유대 땅에 거라사란 지방이 있습니다. 거기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부모를 잘 모시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며 형제간 우애가 있고 친구들 간에 인기가 있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어서 그는 생활과 사업에 굉장한 충격을 받는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실패가 마음속에 아주 쓰리고 아팠었습니다. 이것이 집착관념이 되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나는 이 일에 실패했다.’ 그 실패로 말미암아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것을 빨리 마음속에서 털어 버려야 마음이 고침을 받겠는데 그렇지 않고 그 상처를 계속 가지고 있다가 이것이 점점 마음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 가지 일에 실패했는데 이제는 이것이 확대 되어가지고서 나는 인생 실패자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래서 그는 무기력하게 되고 이제는 부정적이 되고 매사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잘 울고 그리고 낙담을 했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압박되어 있으니까 불명증도 걸리고 머리도 아프고 먹은 것이 소화도 되지 아니하고 그리고 온 전신이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는 놓여남을 받지 못하고 계속 생활해 나가니까 서서히 이것이 더 깊어져서 우울증에 걸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제 사람들과 말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모들이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식하고도 대화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더 친구들하고는 만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밤늦게까지 잠을 안자다가 혹은 잠을 자면 아침 해가 높이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잠을 잡니다. 그리고 혼자 앉아서 울고 탄식을 합니다. 이러면서 그 우울증이 점점 뿌리가 깊어지자 그는 몇 번이고 자살을 하려고 기도했었습니다. 가족들이 안심하고 그를 놓아 둘 수가 없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우울증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성이 무너지면 원수들이 점령하는 것처럼 담이 무너지며 도적이 집을 침범하는 것처럼 그의 마음속에 그 스스로를 막던 그와 같은 힘이 없어져 자포 자기하게 됩니다. 될 대로 되라고 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자기의 마음 문을 열어 제켜 버리자 마귀 떼들이 구름떼같이 와서 그 마음을 점령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섭게 정신이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 본인의 인격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와서 그를 점령하자 마귀의 성품이 그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부모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무서운 난폭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속에 심한 고통의 폭풍우가 휘몰아쳐 왔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마귀는 불안과 공포와 미움과 고통과 절망의 폭풍우를 마음속에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의 마음속에 불안, 공포, 미움, 고통, 절망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믿음을 주십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사랑을 주십니다. 소망을 주십니다. 이러므로 마귀의 일과 하나님의 일은 밤과 낮처럼 분명하게 분별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여러분과 나를 붙잡아서 고통의 폭풍우 속으로 휘몰아치는 것입니다. 이 거라사인은 그만 그 마음속에 마귀가 들어와서 점령하자 그 영혼의 깊은 곳에 쓰디쓴 고통의 홍수가 닥쳐왔습니다. 거대한 고통의 회오리바람이 그 마음속에 불어왔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속의 폭풍우에 휘말려 그는 광야로 공동묘지로 뛰어 나갔었습니다. 옷을 다 벗어 제켜 버렸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땅을 향하여 고함 고함치며 몸부림쳤습니다. 그리고 돌멩이를 들고 그를 찍어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었습니다. 그는 이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마귀가 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귀가 오면 개인의 가슴속에 고통의 풍파를 가져옵니다. 가정에 고통의 풍파를 가져옵니다. 사회와 국가가 고통의 홍수에 휘몰아치게 되고 고통의 폭풍우가 불어오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로 나와서 우리의 피난처를 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여러분과 나를 고통의 폭풍우 속에서 건져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종교를 주기 위해서 오신분이 아닙니다. 철학이나 어떤 윤리나 도덕적인 강령을 주시려고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주인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내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를 무기력에서 건져내 주시는 주님인 것입니다. 마귀의 고통과 질병에서 건져 주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생활에 가시와 엉겅퀴와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는 예수여 종국적인 죽음의 가장 처절한 절망에서 생명의 영원한 광명을 비춰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을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기 위해서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우리 사람들을 고통에서 건지는 것이 그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와 함께 이 자리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이 고통의 풍랑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서 두 손을 활짝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바로 이 거라사인의 고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아버지, 어머니의 가슴에 고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처자의 슬픈 눈물과 탄식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육신을 쓰고 오셨지만 그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안을 받지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는 천리 밖의 일을 환히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마귀가 와서 이 거라사인의 가정을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바로 우리를 황폐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광야같이 만들고 공동묘지 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에게 마귀가 와도 그 사람의 가슴과 가정과 생활을 광야로 그리고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공동묘지로 휘몰아쳐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처참한 환경을 바라보시고 이들을 건져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시고 우리가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왜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는지 몰랐었습니다. 날씨가 맑고 좋았습니다. 순풍이 불었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바다가 잠잠했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끌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배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벌써 거라사 지방에는 마귀는 예수께서 와서 이 고통당하는 사람 몸에서 그들을 쫓아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어찌하든지 결사적으로 예수님을 막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에 풍랑을 일으켜서 예수님이 타고 오시는 배를 뒤엎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깨어 있는 이상 마귀는 예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가지고 계십니다. 어떠한 마귀도 예수님을 대적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주무시게 해야 그 배를 뒤엎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에 들어오자마자 마귀의 영은 와서 제자들로 하여금 관심을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기울이게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 부귀, 영화, 공명에 대한 생각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서로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만 마귀의 미혹에 빠져서 그들은 세상일을 생각한다고 옆에 예수님이 배에 탄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아무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홀로 두셨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그만 배를 타고 가시는 중에 주무셨던 것 입니다. 예수님이 주무시자마자 마귀는 이때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무실 때는 그들이 배를 뒤엎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대낮에 맑은 하늘에서 강한 바람을 일으키고 갈릴리 바닷물을 뒤엎었습니다. 바닷물이 산더미처럼 떴다가 배에 떨어집니다. 물이 가득해 집니다. 제자들이 있는 힘을 다해서 바닷물을 퍼내려고 하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물을 덮어썼습니다.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이 빠져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자 비로소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예수님이 그들과 같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그들은 예수께 가서 주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빠져 죽게 되었는데 주님은 무관심 하시나이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보시고 난 다음에 즉시로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습니다. “바람아! 잠잠하라! 바다여! 잠잠하라!”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의 뒤에 있는 원수 마귀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꾸중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바람과 파도가 잠잠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꾸짖었습니다. “왜 두려워했느냐? 너희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너희 믿음을 내게 두지 아니하고 너희 믿음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 자랑, 부귀, 영화, 공명 이런 것에 두었기 때문에 마귀가 너희들을 공격해 온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마귀는 우리들을 언제나 관심을 예수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려고 결사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있는 이상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있는 이상 예수님이 우리 생활 가운데 있는 이상 마귀는 풍랑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잠재워 놓기만 하면은 우리에게 와서 마음대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풍랑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속에서 예수님을 잠재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잠재우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도하기를 그치고 말씀 읽기를 그치고 찬미하기를 그치며 모여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그치면 예수님을 잠재워 놓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에서 예수님이 잠자고 계십니다. 종교의 형식만 있지만은 이미 신앙은 잃어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예수님을 잠재워 놓았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교회가 되어서 인간적인 것을 말하고 정치, 사회, 경제 같은 것을 말하지만 살아있는 예수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아니하며 찬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모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교회가 예수님을 잠재워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잠재워 놓고 나면은 원수 마귀는 그때부터 풍랑을 휘몰아쳐 옵니다. 개인의 가슴속에 고통의 풍랑을 가정에서 풍랑을 사회와 국가에 무서운 풍랑을 가져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는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므로 기도하므로 말씀을 읽으므로 예배 드리므로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게 만드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종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는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10월 3일 여의도 광장에서 적어도 200만 이상의 성도가 모여서 하늘을 향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나라에서 깨워 일으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며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오며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갈릴리 풍파를 잠잠하게 한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정치적인 사회에서 풍랑을 잠잠케 하며 우리의 사업장에서 풍랑을 잠잠케 하며 우리의 학원에서 풍랑을 잠잠케 하며 우리의 사회에서 주님께서 평화를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이와 같이 주님께 깨어나서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고 주께서는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요번 일본 성회를 하는 동안에 한 교포를 만났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50 평생은 산분인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열렬한 크리스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늘 찬송을 가리켜 주고 기도를 해주고 말씀을 가리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해서 집을 떠나고 난 다음부터 세상에 나가서 살자니 한국인으로써 일본 사회에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뿌리를 박자고 무수히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점점 예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소리, 어머니의 찬송소리가 귀에 가물가물 들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 그는 완전히 하나님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동경에서 부동산 장사로써 손꼽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좋은 집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옷도 입고 그리고 호사스러운 삶도 삽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치명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당뇨병에 걸렸습니다. 얼마나 당뇨병이 심했던지 음식은 눈으로 구경만 하고 먹을 수가 없습니다. 돈은 많이 벌어 놓았지만은 이제 한참 살 중년에 고통 속에 떨어졌습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당뇨병이 악화 되어서 다리뼈에 구멍이 뚫어졌습니다. 양다리 허벅지에 구멍이 뚫어졌는데 병원에서 의학적으로는 고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두 다리를 잘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한참 살 50대에 두 다리를 잘라 버린다면 사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절망에 처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의 생활 속에 무섭고 거대한 풍랑이 다가왔었습니다. 그는 돈으로 의학으로 인간의 지식으로 이 풍파를 잠잠케 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과 절망에 처했을 때 그 동생의 부인이 한국서 자라서 예수를 열심히 믿다가 일본으로 시집온 분인데 그 아주머니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병은 한국으로 나가야 삽니다. 한국에 가면 기도원이 있는데 기도원에 가서 죄를 회개하고 옛날 시어머님께서 모시던 그 예수를 모시고 돌아와야 주님께서 고쳐야 고치지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간절한 청원에 못 이겨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서 일어서서 걸을 수가 없으니까 휠체어에 앉아 가지고서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산리 기도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옛날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기억하고 땅을 치고 회개를 하고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말했습니다. 그 결과로 신기하게 그만 일주일 이내에 그 당뇨병은 낫고 그렇게 구멍 뚫어진 것이 다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걷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건강해졌습니다. 새로운 삶의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이래서 저를 만나러 오니까 제가 일본 오사카에 성회를 가고 없습니다. 그래서 오사카로 급히 비행기를 타고 오니까 또 저는 한국으로 나와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또 오사카에 성회를 가니까 일본 동경에서 온 가족이 다 함께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제 목사님, 나는 죽음에서 삶을 얻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래서 에라! 이제부터 크게 내가 협박을 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보통 말해서는 또다시 세상으로 흘러가면 안 되기 때문에 제가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나가서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이 거센 풍파로 말미암아 돈이 소용이 없게 되었다. 아무리 물질이 많은들 당신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죽음에 처했을 때 어머니의 기도가 하늘에 쌓아 놓았다가 당신을 고쳐 주었다. 이제 다시 한 번만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용서 없이 사정없이 때려서 이번에는 데리고 가버린다. 다시 병 고치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에게 할 일을 보여 주겠다. 당신 동생이 있으니까 동생에게 사업을 다 맡겨라. 이제는 부동산 회사를 동생에게 맡기고 당신은 회장으로 물러앉으라. 그리고 난 다음에 그 많은 돈과 당신의 청춘과 시간을 받쳐 주의 사업을 하라. 일어나서 나를 따르라. 이제 내가 선교 여행 하는데 당신 따라 붙이고 그래서 남은 여생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을 전하면서 살아라. 그러면 당신의 생명 한껏 살 수 있을 것이요. 하늘나라에 가서도 상급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가 간절히 안수하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풍파가 다가오는 것은 그들이 예수를 저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혹은 예수님을 잠재워 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주님께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환경에서 고통의 풍파가 다가올 뿐 아니라 여러분과 내 가슴속에 고통의 풍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고통의 풍파를 가져와서 여러분과 나를 광야로 생명이 없는 공동묘지 같은 처절한 인생으로 전락 시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부여잡고 그 날개 아래 피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은 마귀의 일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오늘날도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자유케 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려고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군대 마귀 들린 자의 처절하고도 불쌍한 상황을 주님께서 보시고 그의 간구를 들어 주셔서 주님께서 그를 고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탄 배가 육지에 대자마자 마귀는 이미 자기가 진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별 도리 없이 예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마귀는 군대 마귀 들린 자 그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뛰어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왜 우리를 괴롭히려고 합니까? 우리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말하지 마십시오.” 무저갱은 마귀나 귀신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마귀를 보고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우리는 군대입니다.” 로마시대에 군대라는 것은 2천명의 군인이 모이면 한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의 가슴속에 2천 마리의 귀신이 들어와 있으니 이 사람의 마음의 풍랑이 얼마나 거세었겠습니까? 이 사람의 고통이 어찌 극에 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2천 마리가 아니라 수 억 마리의 마귀라도 예수님 이름 앞에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했었습니다. 사람의 몸이란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 있게 되어있지 귀신이 들어와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단호하게 나오라고 하자 이 귀신은 말했었습니다. “우리를 저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곳에 수천마리의 돼지가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귀신은 사람 몸에 들어오던지 그렇지 않으면 심지어 짐승의 몸에 들어가야 됩니다. 귀신은 사람 몸이나 짐승의 몸 밖에서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은 어찌하든지 엉망으로 사람에게 붙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해서 수많은 일들이 귀신 때문에 일어납니다. 더러운 생각, 음란하고 방탕한 일, 악한 일이 생기고 분열이 생기는 일, 거짓말 하는 일, 도둑질 하는 일, 여러 가지 풍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귀신들이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처처에 가서 천국 복음을 증거하고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이란 천국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최후에 이 땅에 남긴 말씀 중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이라.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서 우리의 개인의 생활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서 사회에서 우리 국가에서 귀신을 내어 쫓으라는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매 성경을 밝히 말씀하기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귀신이 소리치며 나가고 많은 절름발이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기쁨이 충만 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사회에 제도와 환경이 절름발이가 되고 앉은뱅이가 된 것은 귀신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은 복음으로써 귀신을 쫓아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길이며,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나사렛 예수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받아들이고 그 앞에 엎드려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 사람이 되면 구신은 쫓겨 나가고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과 소망과 믿음과 사랑과 축복으로 넘치게 하여 주십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명령하시매 이 귀신들이 나와서 일시에 돼지 떼에 들어가매 돼지들이 그만 미쳐서 전부 산비탈로 뛰어 내려가 호수에 들어가서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귀신은 고통을 가져옵니다. 짐승에게 붙어도 짐승이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서 전부 호수로 내리달아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귀신이 나간 이 사람은 이제 완전한 사람이 되었고, 그는 머리를 바로 고치고 옷을 깨끗하게 입고 아주 훌륭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서 얼굴이 환하게 빛나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 만해도 온 동리를 공포로 몰아넣고 삼천초목을 떨게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몸에 상처를 입힌 이 사람이 그 마음속에 폭풍우가 나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풍랑이 나가 버렸습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평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과 모인 사람들에게 “너희는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아버지, 어머니, 너희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동리 사람에게로 돌아가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를 얼마나 긍휼히 여겨 주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더 풍성히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시면 우리의 개인이 가정이 우리의 사회와 생활이 정상적으로 변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것은 2천 년 전에 일어났지 오늘날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만에요. 2천 년 전에 귀신은 오늘날도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마귀는 오늘날도 파괴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을 대신하여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당한 고통과 흘리신 피로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을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 주시고 이제 예수님은 이러한 성도를 통해서 이러한 교회를 통해서 성령으로 임하여 주셔서 귀신의 일을 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와 같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흘리신 보혈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역사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정말 주님 가까이 갈수가 있습니다. 저는 방언으로 많이 기도합니다. 방언은 영의 기도인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끌어 가는 위대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들의 찬미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여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찬양할 때 그 찬양을 보좌로 삼고 와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내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나와서 그 이름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 보혈을 의지하고 그 성령을 의지하고 찬미하며 나올 때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그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 주셔서 환경에 풍파를 가져오고 우리 속에 고통의 풍랑을 가져오는 원수 마귀와 귀신을 모두 다 쫓아내고 여러분과 내 영혼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과 소망으로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삶의 수많은 풍랑은 그 배후에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이 풍랑의 이유가 나라에 있다. 부모에 있다. 이웃에 있다. 형제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풍랑의 근원은 원수 마귀에게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우리를 파멸하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이유를 안즉 우리는 나라를 원망하기 전에 이웃을 원망하기 전에 부모를 원망하기 전에 우리 자신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여러분과 나의 우명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여러분과 나를 내적인 풍랑과 외적인 풍랑에서 놓아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야 말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라의 풍랑을 잠잠케 하여 주시옵소서. 사회의 풍랑을 잠잠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노동현장, 학원, 우리의 가정에 풍파를 잠잠케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으로 하여금 여러분과 나를 돕기 위해서 찾아오게 합니다. 이 거라사인의 부르짖음 그 부모와 그 처자와 그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예수님이 들으시고 갈릴리 호수를 넘어서 거라사인을 찾아오신 그 예수께서는 오늘날도 여러분과 나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만일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역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라는 법칙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전능한 하나님은 오늘 성도들이 기도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 주님은 오늘 그 기도를 통해서 나타내 주셔서 여러분과 나의 운명과 환경에 풍파를 잠잠케 하시고 여러분과 내 마음속에 믿음이 넘치게 소망이 넘치게 사랑이 넘치게 평화가 넘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과 나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여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오늘 일어나 예수님 앞으로 나가십시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우리는 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우리의 가슴에 일어나는 그 무서운 풍파들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죄악과 탐욕과 탐심의 풍파들이 일어나서 우리의 삶을 광야와 같고 공동묘지 같이 만들어 버리고 우리의 가정을 황폐하게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풍파가 일어나서 우리 사회와 국가를 뒤엎어 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원수 마귀는 오늘날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풍랑을 가져옵니다만 이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은 오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기다리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가 기도하고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이 풍랑의 현장에 나타나서 풍랑을 우리 속에서 내어 쫓아내고 환경에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주님 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옵고 원하오니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셔서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도와 주시옵시고 풍랑 가운데 있는 사람은 회개하고 주님을 잠에서 깨어 일으키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41017-0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