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누가복음 10장 27절
하나님 향한 사랑 반드시 절대적이어야
상대적 사랑은 저주와 멸망을 불러와
마음 뜻 정성 목숨 다하는 절대 사랑 필요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것이 있고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무난한 상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절대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
1. 선악과와 생명과
창세기를 보면 선악과와 생명과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시험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을 꼭 시험해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계처럼 만들어 조종하고 그대로 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가? 타협하여 상대적으로 사랑하는가?’를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으면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 같으면 그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상대적인 순종은 적절한 상황에 처하면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짓고 하나님이 사랑하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까지 주셨는데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 명령을 절대적으로 준수하지 아니하고 마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마음에 괘씸한 생각이 생기고 모욕적인 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내가 별로 중요하지 않구나. 내가 중요하다면 내 말을 저렇게 무시할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존재가 아담과 하와에게 절대적이지 않고 조건적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절대적이 아닌 선택의 대상이 되는 상대적이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범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분노케 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모욕감을 느끼시고 자존심이 상하시고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아 에덴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사랑한 사람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한 사람 중에 으뜸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니까 무조건 순종해서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웃으셨고 기분이 좋으셨습니다. ‘저들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나의 말에 순종하는구나’ 아브라함이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들 앞에서나 마귀들 앞에서 한번 자랑을 하고 싶어서 아브라함을 시험했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이 10대가 되었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때 그를 제물로 드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외아들을 다시 제물로 내놓으라고 할 때 아브라함은 두말하지 않고 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비교해서 우리의 생애를 돌아보면 우리는 이런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이 부족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는 타협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잘못된 죄악의 씨앗이 우리에게 심겨져 하나님을 절대적로 사랑하고 절대적로 존중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사랑하고 상대적으로 존경합니다.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사랑하고 그렇지 못하면 안합니다. 그런 조건부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참으로 좋아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고 기록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왕으로부터 이스라엘 군인들까지 골리앗이 한번 고함을 치면 모두다 혼비백산해서 숨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나아가 골리앗과 싸워 이겼습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입니다. 골리앗 앞에서 그는 담대한 믿음의 선언을 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기록한 것처럼, 다윗의 신앙고백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윗은 하나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존경했습니다.
다윗은 개인적인 결점이 많았으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안했는데 시편에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은 고난을 경험한 뒤에는 탄식시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응답되었을 때는 감사시를, 하나님의 위엄과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을 때는 찬양시를 지었는데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시편 18편 1절에서 다윗은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최초로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말에 감동하시고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도, 전쟁을 나갈 때도,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 왕을 대할 때도, 밧세바를 범한 후 회개 할 때도 다윗은 항상 먼저 하나님을 찾았고 곤란할 때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믿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처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잊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고 올바로 섬기며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의 믿음과 존경과 사랑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며 경외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며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택적인 대상으로 삼아서는 절대 안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믿음!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계에 부닥친 후에야 비로소 인간적인 계산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절감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순종과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사랑하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믿음과 순종과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으시는 것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믿음도 믿고 안믿을 수 있다. 순종도 하고 안할 수 있다. 사랑도 하고 안할 수 있다고 선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은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마음을 다하라! 목숨을 다하라! 힘을 다하라! 뜻을 다하라!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다시말해 절대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미가 6장 8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기를 원치 않고 절대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적인 사랑도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할 때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살펴봅시다.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절대적으로 나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 이외에 너는 돈도 우상이 되지 못하고 지위나 명예나 권세도 우상이 되지 못하고 출세도 우상이 되지 못한다. 나를 절대적으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나의 이름으로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절대로 존경하고 보호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니 날 꼭 만나러 와야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날 등한히 하지 말라. 내 제일주의로 살아라. 무엇이 바빠도 안식일은 교회와서 날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 나를 만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절대적으로 축복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4. 우리가 극히 신중해야 할 일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무엇도 사랑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냥 우리가 배반해도 허허 웃고 사람 잘못봤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은 질투심을 가지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에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야훼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다가 다 멸망 받았지 않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천번이고 만번이고 참으시는 것은 정말 우리를 귀하여 여겨서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며 불붙는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만큼 질투심이 생겨납니다. 하나님 마음에 질투심을 일으키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9절로 20절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야훼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야훼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고 기록된 것처럼 그만큼 질투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절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소유했으면 하나님은 “너는 절대로 내것이지 다른 사람하고 나누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에 금이 가면 하나님은 모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인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을 만들어 세워 놓고 난 다음에 거기에 절하지 아니하면 불타는 불못에 던지겠다고 할 때 모두다 금신상에 절했으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뻣뻣이 서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분노해 풀무불을 칠배나 뜨겁게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불에 던졌을 때 뒤에 네 번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함께 손잡고 강강술래 춤을 추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보고 놀랐습니다. 분명히 세 사람을 던졌는데 네 사람이 춤추고 있는 겁니다. 이 네 번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 같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사랑한 사람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 17절로 18절에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 위해서 몸찢기고 피흘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 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증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겠다”고 하나님께 아뢰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습니다. 남편이 나를 기뻐하면 기분 좋습니다. 아내가 나를 기뻐하면 내가 기분이 좋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뻐하면 자식들이 좋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기뻐하면 좋습니다. 자기를 인해서 사람들이 기뻐하면 좋아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무한이 영광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지위나 명예나 권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혼합해서 사랑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랑할 것과 사랑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야 할 것을 사랑하기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첫째,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는 마음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둘째는,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에 사람의 마음의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벌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벌되 돈을 사랑하지 말라. 그러므로 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돈을 사랑하면 안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극히 신중해야 할 일은 하나님 이외 또 다른 것을 겸하여 사랑했다가 하나님께 꾸중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러나 더 긴밀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아내로 여기십니다. 아가서에 보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순결하고 정결한 아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수록 질투심이 강합니다. 그리고 절대소유를 주장합니다. 독점욕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굉장히 독점욕을 강하게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한 독점욕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해 주시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좋은 일입니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로 생각하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너 없이는 내가 못살겠다”고 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입술로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주신 우리 주님!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셔서 영원히 우리를 놓지 않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없도록 우리를 모든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