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착하고 충성된 관리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관리자는 소유자가 아닙니다. 관리자란 소유주의 임명을 받아서 소유주의 재산이나 사업을 잘 보존하고 다스리며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관리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자는 항상 소유주의 뜻을 알아서 그 뜻을 따라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고 충성스럽게 일해야 칭찬을 받습니다. 만일 관리자가 오만 불손해서 자기 멋대로 소유주의 재산이나 사업을 관리하여 큰 손해를 끼치고 사업을 낭패하게 만들면 소유주로부터 벌을 받든지 아니면 파면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땅에 살고있는 여러분과 나는 이 우주 가운데서 소유주로 태어났나요? 관리자 즉, 청지기로 태어났나요? 어떠한 사람들은 우리 인생이 태어나면서 소유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이 주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관리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 우리에게 옳을까요?
첫째로 우리가 뼛속에 아로새기면서 알아야 되는 것은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소유하신 분은 유일 무이한 만군의 야훼, 우리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지었을 때 만일첫째 날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여, 나 혼자서 천지를 지을 수 없으니 나와 함께 하여 공동 사업으로 이 우주를 짓자." 그래서 이 우주를 지었다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공동 사업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공동 소유주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단독으로 이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혼자서 첫 날에 빛을 지으시고, 이튿날에 궁창을 지으시고, 사흗날에 모든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육지가 드러나서 열매맺는 초목이 나게 하시고, 나흗날에 해와 달과 별이 비취게 하시고, 다섯째 날에 하늘에 새들과 물 속에 물고기를 지으시고, 여섯째 날에 곤충과 모든 짐승을 다 지으시고, 최후에 사람이 손가락 하나 옮길 일이 남아있지 않은 그때,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이 창조에 추호라도 보탠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공동 소유주라고 주인 행세할 거리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에덴 동산까지도 하나님께서 동방에 에덴을 창설하시고, 상함도 해함도 없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를 나게 하시고 "아담아!" 하고 불러서 이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담은 관리자로써 인생을 임명받았습니다. 관리자라는 것은 주인의 재산과 사업을 지키며 다스리며 발전시키는 것이 이 관리자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관리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수칙이 있습니다. 언제나 관리자는 관리자라는 것을 꼭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창세기 2장 17절에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네 임의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관리자의 수칙은 '너는 관리자이지 소유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소유자인 내가 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내 것으로 남겨 놓았다. 즉 관리자가 손대면 넌 죽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 살면서 '자기는 주인 밑에서 청지기로써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다가와서 유혹을 했습니다. 사탄이 현대로 따지면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주인이 되어서 살지, 뭘 관리자나 청지기로 사느냐. 너도 하나님처럼 주인이 될 수 있다. 저 선악과를 따먹어라. 관리자의 수칙으로 내놓은 저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도 눈이 밝아 주인 행세를 할 수 있게된다. 주인이 될까 겁이 나서 하나님이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관리자의 수칙을 깨치고 독립을 선포하고 주인이 되라." 그 말이 얼마나 달콤합니까? '관리자나 청지기로 있지 말고 주인이 되라' 그래서 주인이 되겠다고 관리자의 수칙을 깨뜨리고 선악과를 따서 먹자, 그는 주인의 명령을 거스리고 배반했기 때문에 주인에게 벌을 받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영혼은 죽고, 그 육체도 기한이 차면 흙으로 돌아가도록 명령을 받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그들은 쫓겨났는데, 쫓겨만 난 것이 아니라 쫓겨나가 보니 마귀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슬픔과 고통이 끝없는 강물같이 흐르는 마귀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꼭 요사이 공산당이 이 마귀의 계책과 전혀 똑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제 3세계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나라마다 어떻게 했습니까? 공산당들은 와서 말합니다. "우리 공산당은 노동자, 농민을 위한 당이다. 그리고 농민들은 모두 토지의 소유주를 내어쫓아라. 그러면 소작농 여러분에게 논을 갈라주어서 여러분이 소유주가 되도록 할 것이다. 여러분은 소작농이 아니다. 주인이 되게 하겠다. 그러므로 농토를 가지고 있는 주인들을 물어 다니며 쫓아라." 그리고 도시 근로자에게 또한 말합니다. "근로자로써 임금 노예 생활할 필요가 없다. 너희들이 공장 주인이 되게 하겠다. 너희들이 모든 생산의 주인이 되게 하겠다."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주인이 된다는데. 그래서 소작농들이 들고일어나고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서 '부르주아'라고 하며 소유주들을 모조리 잡아서 인만 재판에 걸고, 죽이고, 추방하고, 그리고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으면 그때 공산당이 딱 들어와서 군대와 경찰력을 가지고서 모든 농토는 당이 소유하고 모든 공장과 생산상도 당의 소유로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고 그 혁명을 일으킨 당사자인 노동자와 농민은 처절한 종으로 붙잡아 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이제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국가와 당의 소유가 됩니다. 사람은 자유조차 잃어버립니다. 정부가 원하는 시간에 깨어나야 되고 그 시간에 자야됩니다. 정부가 원하는 직장에 가서 일을 해야하고 정부가 원하는 그 자리에서 살아야 하지, 더 이사도 가지 못합니다. 세상에 노예도 그런 노예가 없습니다. 오늘날 인류 역사상,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노예 제도가 공산주의 제도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소련이나 중공 같은 나라에도 공산주의가 결코 인류 복지에 기여할 수 없는 것을 늦게 깨닫고, 이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북의 김일성 집단은 철저히 외부하고 단절된 세계 속에서 그곳에 있는 백성들은 처참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러한 노예 집단이 우리 대한 민국을 점령하고 다스리게 하겠다고 학생들을 선동합니다. 그 선봉장으로서 요사이 소위 좌경 용군 학생들이 일어나서 "미군은 물러가라. 파쇼 정권은 무너져라. 올림픽은 못한다. 남북 대화는 우리가 한다." 이렇게 작태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유 대한민국에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지, 여러분 오늘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는 영원한 죽음 밖에 받질 못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오늘 자유를 만끽하고 누리는 우리 자유 민주주의 백성들이 너무 입을 다물고, 너무 잠잠해서 소수의 폭력배들이 나서서 나라를 뒤흔드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망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일어나서 절대로 안 된다고 외쳐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의 거대한 힘으로 극복을 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번에 동대문에서 시민들이 일어나서 30여 명이 이 폭동을 행하는 학생들을 향해서 돌맹이질을 했다는 것을 볼 때, 그 시민이 용감한 시민이라고 마음 속에 생각을 했었습니다. 모두다 입을 다물고 자기에게 해가 돌아올까 싶어 한마디 말도 못하는 데, 나라와 민족이 위험할 때 일어나서 너희가 이렇게 혼란을 끼치는 것을 우리는 안 된다고 말할 권리도 있다. 그렇게 말한 그 시민들이 용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 한국 사람들은 민주주의 훈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먹만 휘두르면 정부에도 꼼짝 못하고, 또 반정부에도 꼼짝 못하고,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그것은 도적들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대한 민국의 국토를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은 여러분과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특정한 정치 단체나 사회 폭군을 기른 단체의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넘어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담과 하와가 자기는 관리자요, 천직이요, 주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인 노릇을 해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빼앗으려고 하다가 처참하게 쫓겨났었습니다. 사탄은 오늘날도 계속해서 휴머니즘, 즉 인본주의를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네가 주인이다. 인간이 주인이다. 인간이 주인이다.' 라고 말합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인간이 주인이면 왜 인간이 자기의 운명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까? 왜 죄책과 정죄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며, 인간이 주인이면 왜 허무와 무의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인간이 주인이면 왜 죽음과 영원한 무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까? 그것은 종의 주인이지 실재 주인은 아닌 것입니다. 주인이란 망상 가운데 빠져서 허덕일 따름이지 인간은 주인이 될 수 있는 아무런 능력과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쫓겨난 인생이 영원히 하나님께 버림받고 이대로 반역적인 생활을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져야만 할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하나님은 제2의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처음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로운 인류의 조상, 우리 주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고, 33년 동안 이 땅에 살면서 아담처럼 주인 행세하지 않고 철저히 인생을 청지기로써 살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살았었습니다. 철저한 관리자로써 인생을 사신 예수님은 한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반역해서 하나님께 쫓겨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기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야훼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된 것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의가 되려하심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반역죄를 다 청산하시고 이 시간은 손을 활짝 내밀고 인류를 향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진실한 회개와 중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회개할까요? 인본주의적인 주인 행세를 한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 중심으로 주인 행세를 한 이 무지무지한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중심이요, 하나님이 주인이고 우리는 청지기지 어디 감히 인본주의적인 주인 행세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깨어져서 '하나님이여, 내 중심으로 산 죄를 회개합니다. 내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한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는 참된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나는 청지기로써 인생을 살겠습니다.'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인 아버지로 섬기고 믿음과 순종의 새 사람으로 변화돼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아담에서는 인본주의였으나 마지막 아담 예수에서는 신본주의로, 처음 아담에서는 주인 행세하였으나 마지막 아담 속에서는 완전한 청지기로, 처음 아담에서는 자기 멋대로 살았으나 마지막 아담 속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는 이런 거대한 인생의 삶의 자세가 변화돼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중으로 하나님의 청지기인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호수가 많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도 배를 하나 가져야겠다 싶어서 돈을 모아서 여유 있는 시간에 열심히 뒤뜰에서 일을 해서 좋은 보트를 만들었습니다. 아주 기뻤었습니다. 그래서 그 보트를 호수에 띄어서 보고 그것을 부두에 묶어 놓았는데 어느 날 밤, 자는 동안에 몹시 비바람이 치고 폭풍우가 일어났었습니다. 아침에 빨리 나가서 선착장에 나가보니 보트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새끼줄이 끊어지고 보트는 사라졌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괴로웠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트 시장에 가보니까 자기가 만든 보트가 상품으로 시장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누가 떠내려가는 보트를 주워서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아무리 자기 것이라고 주장해도 증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의 있는 것 없는 것 다 주어서 그 보트를 샀습니다. 이 보트를 가지고 오면서 자기는 입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는 것입니다. '보트야 내가 너를 만들었으니 너는 내 것이요, 또 너를 잃었다가 내가 값 주고 샀으니 또 내 것이요, 너는 이중으로 내 것이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느낀바가 많았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중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죄로 잃어버린 우리들을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 주고 사셨으니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의 것이요. 이중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라고 행세 할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인생을 관리자로써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의 관리자인데 무엇을 우리에게 맡겨놓으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의의 생활을 우리에게 맡겨 놓으셨습니다. 죄만 꽉 들어찬 세상 가운데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하고 의의 삶을 우리에게 맡겨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 관리자로써 우리에게 주어주신 의로움을 보존하고 다스리고, 의의 생활을 우리와 우리 환경에 발전시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성령 충만과 거룩한 삶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늘 유지하며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에 추함과 더러움을 제하고, 거룩함을 가져오는 이와 같은 관리의 생활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습니다. 육체란 것,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 고 말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몸도 하나님의 것인데 이 하나님의 소유물을 우리가 술독으로 만들고 굴뚝으로 만들어 가지고서 온갖 병이 나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 건강관리 잘못한 책임을 하나님 앞에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도 그렇습니다. 먹고, 입고, 자고, 깨는 것. 그것도 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먹고, 입고, 자고, 깨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남편도 하나님 것이고, 아내도 하나님 것이고, 자식도 하나님 것이고, 부모도 하나님 것이고, 사회와 직장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잠시 동안 맡아놓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주인 행세해서 "내 것,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잔소리냐. 내 마누라 내가 마음대로 때리던지, 내 남편 내가 바가지 긁던지, 내 자식 내가 마음대로 잘못하는지, 누가 상관이냐. 내 마음대로, 내 생활 내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잔소리냐." 어림없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 일상 생활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 앞에 보고하고 계산해야 될 뜻을 알고 마음에 경건함을 가지고 두려움으로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영생 천국의 소망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팔려서 영생 천국 소망을 뒤로하며 살면 이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영생 천국 소망을 항상 귀하게 간직하고 이것을 잘 다스리며 발전시켜서 나도 영생 천국 소망으로 충만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생 천국 소망으로 충만하도록 만들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린 관리자로써 인생을 살아야지 주인 행세를 하다가는 큰 코를 다칩니다. 금세도 하나님께 버림받고, 내세도 영원히 버림받습니다.
관리자는 반드시 세상에 살면서 지켜야 될 수칙이 있습니다. 관리자의 수칙은 뭘까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오늘날 인생 관리자로 사는 사람들의 수칙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고 애를 쓰는 이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관리자로써의 올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리자는 착하고 충성되게 모든 일을 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한 주인이 먼 길을 가기 전에 종들을 불러서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겨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것으로 장사를 잘하라고 말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주인이 돌아왔는데,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뛰어와서 "주인이여, 주인이 주신 두 달란트를 가지고 제가 열심히 장사하고 잘 관리하여 네 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했은 즉,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마." 그다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인이여, 주께서 다섯 달란트 주신 것으로내가 열심히 관리하고 장사해서 열 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받으소서." 주인이 말하기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작은 일에 충성하였은 즉, 아버지의 큰 일을 맡아라."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인이여, 주인은 무서운 사람이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수확하는 사람인줄 알았기에 내가 겁이나서 주께서 주신 한 달란트를 파묻어 놓았다가 가져왔으니 당신 돈을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은 대노하여 말하기를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만일 그렇게 완악하고 무서운 주인인 줄 알았다면 너는 왜 이 돈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라도 타도록 하지 않았느냐. 이 악한 자를 묶어서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던져버려라. 이를 갈며 슬퍼함이 있으리라. 그리고 이 한 달란트를 취하여 저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종이 말하기를 "주인이여, 이미 그분은 열 달란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하기를 "아니라,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리고, 있는 자에게는 더 주느니라." 이것이 관리자를 돌보는 하나님의 태도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열심히 관리자로서 인생을 경건하게 잘 살아가면 하나님은 자꾸 더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인 행세를 하고 못되게 굴어서 착하고 충성되게 인생을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있는 것조차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생명의 권리도 빼앗아서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이든지 내 소유를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무슨 잔소리냐." 이렇게 절대로 말하지 못합니다. 시간도 하나님의 것이요, 물질도 하나님의 것이요, 내 몸도 하나님의 것이요, 삶도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잠시 잠깐 동안 맡아서 이것을 잘 경영하도록 한 청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가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반드시 회개하게 되고 보고하게 됩니다. 그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말을 들을 것이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들을 것이냐 하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여하의 인생을 받아서 누리고 사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인생을 주인 행세하고 살다가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고 맙니다. 관리자로서 청지기로서의 태도를 가지고 살면, 언제나 내 위에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인생을 겸허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참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라는 미망 속에 계속된 반역과 악의 종살이를 하다가 결국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구제 불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조차도 어느 일부분은 인본주의적인 생활 태도에 속아서 하나님을 이용만 하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이용만 하려고 하는 이런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샤머니즘이요, 기복적인 신앙이지 진실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용하시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이용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깨어져서 그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을 할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참된 신앙 생활이란 철저히 자기는 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청지기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단호히 주인을 위한 관리자로서 삶을 살게 될 때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내가 관리자로서 인생을 살 때 내 가족을 입히고 먹이고 잘 살려서 하나님 일을 해야 하는데 그때 힘이 모자라면 '하나님이여, 관리자로서 일을 하려고 하는 데 힘이 모자라니 힘을 주시옵소서.' 하면 주인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인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주인께서 도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장사하는데 밑천도 안대주고 하라고 하겠습니까? 노동하는데 밥도 안 먹이고 하라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관리자로서 겸허하게 인생을 살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주인께 구하면 주인이 우리에게 제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인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와 함께 주인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우리에게 상급을 허락하시고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주인이 아닙니다. 관리자입니다.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잠시 잠깐이면 하나님께 맡은 것을 모두다 청산해야 될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위상을 분명하게 하십시오.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느냐, 관리자로서 인생을 사느냐, 주인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느냐.' 주인으로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원수 된 반역의 자리에 있으며, 하나님께 버림받고 대적된 관계에 있으며, 여러분의 미래는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깨어져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겸허하게 청지기로서 인생의 위상을 차지하면, 구원을 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고 은혜를 받고 기도가 응답을 받고 하나님과 손을 잡고 남은 여생을 자신 만만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내 뒤에서 돌봐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많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고 은혜 베풀어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우리 자신을 심판하고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거만하고 자만하며 오만스럽게 인생 주인 행세를 하고 산 죄를 다 회개하게 도와 주시고 깨어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돌아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