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by 삶의언어 posted Nov 11, 2024 Views 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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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8-12-11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11장 27절로 30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U4d5YE3N2L0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우리가 벗으려고 애를 쓰지만, 실로 짐을 다 벗는 날은 그 날이 우리 죽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죄 책의 짐이 우리 어깨 위에 얹혀 있습니다. 허무와 무의미의 짐도 있고, 죽음에 대한 공포의 짐도 있고, 삶의 실패와 고통에 대한 짐도 있고, 인간 관계의 짐, 불화의 짐, 일과 삶의 수고로운 짐, 그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짐이 우리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태어난 이상 우리에게 짊어진 이 짐을 우리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 짐을 지고 살아나가야 되는데, 이 짐이 우리가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될 때 우리는 파괴되고 영·육간의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학교의 어느 유능한 학생이 학교 뒷산에 올라가서 목매어 자살을 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 보면 '학업의 짐이 너무 견딜 수 없이 무거워서 감당할 수 없으므로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짐이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어느 누구도 마음속에 행복을 가지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짐을 진 우리 인생들을 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너희는 내게 와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그리하면 네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럼 오늘 우리 다 함께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서, 우리의 인생에서 벗을 순 없지만 그러나 우리의 짐을 쉽고 가볍게 걸머지고 나아가는 길을 한번 배워 보아야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멍에'라고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당장 언짢은 생각이 납니다. 멍에라는 것은 수고하고 괴롭고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멍에는 반드시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적으로 멍에를 사용해 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짐승들에게 짐을 지울 때 멍에를 메워서 짐을 지어야지, 멍에를 메지 아니하고 짐을 지우면 등이 벗겨지고 가죽이 찢어지고 상처를 입습니다. 기왕 짐승이 짐을 질 수밖에 없다면 맨 등에 짐을 지우지 말고 멍에를 얹고서 짐을 지어야 그가 쉽고 가볍게 짊어지고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는 오랫동안 시골에서 지게가 생활의 수단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게가 없이 무거운 짐을 그대로 어깨 위에 걸머지면 굉장히 무겁습니다. 그리고 온 어깨에 상처투성이가 되고 허리뼈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왕 짐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지게를 걸머지고 그 지게란 멍에 위에 짐을 지면 짐을 더 많이 질 수가 있고 쉽고 가볍게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멍에란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만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비의 수단이 되고 우리가 짐을 쉽고 가볍게 걸머질 수 있는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멍에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반드시 부정적으로 멍에를 보지말고, 멍에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자비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오늘 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봐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여러분, 우리 아담과 하와, 우리 조상이 만든 멍에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 우리 조상이 만든 멍에는 우리 인류들에게 비극을 가져온 멍에였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의 멍에는 인본주의의 멍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늘도 예비하고, 땅도 예비하고, 바다도 예비하고, 그 가운데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다 예비하시고, 에덴 동산의 아름다운 낙원도 예비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살라고 했었습니다. 그가 그대로 살았었다면 하나님이 예비한 동산에서 걱정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본주의적으로 '내 중심으로 살고, 나를 믿고 살고, 나를 섬기고 살고, 내 맘대로 살지, 내가 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믿고 살고, 하나님을 따라서 살겠느냐'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만든 멍에가 바로 인본주의적인 멍에인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인 멍에를 가지고 그는 하나님을 떠나버리고서 자기 중심으로 섰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능력만 의지하며,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만 섬기는 그런 철학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떠나고 에덴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만큼 실력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때,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것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을 때 안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인간은 자기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식은 사라지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모두 자기 힘으로 예비하기 때문에 마음에 불안하고 고통이 다가오고 수고하고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만든 멍에가 바로 인본주의 멍에인 것입니다. 이제 사람의 수단과 방법과 지식과 능력으로 모든 짐을 짊어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쳐둔 인본주의 멍에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인본주의 멍에는 죄 짐을 감당하지는 못했습니다. 죄 짐이 무겁게 눌러오는데 인본주의 멍에를 가지고서 받아보니까 그 멍에가 부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의 포로가 되고, 죄의 노예가 되고, 죄에 짓밟혀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죄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무겁기 때문에 인본주의 멍에로써는 죄의 짐을 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육체의 병의 짐을 감당치 못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다가오는 마음과 육체의 무거운 병의 짐이 오는데 인본주의적인 멍에로써 의약을 발전시켜서 아무리 걸머져봐도 이건 감당할 수 없어요. 결국 사람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병들어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과 저주의 짐도 감당치 못합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밥 먹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배불리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만큼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어야 좋은 옷도 필요하고, 좋은 집도 필요하고, 세상에 정치도 필요하고, 예술과 문화도 필요한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무슨 예술이니, 문화니, 좋은 옷이니, 좋은 집이 필요합니까? 그런데 인류는 내내 이 밥 먹는 문제 때문에 고통을 해 온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는 무거운 짐 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이 멍에를 가지고서 가난과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오늘날 아프리카나 저 아시아 일대의 수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굶주린 창자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난과 저주의 짐도 인간이 만든 인본주의 멍에로서는 걸머질 수가 없어 그 멍에가 부러지는 것입니다. 죽음과 절망의 짐을 어떻게 우리가 감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본주의에 서서 하나님께 나오려고 하지 않고 그 멍에를 가지고서 이 짐을 져 보겠다고, 그래서 인간이 과학을 점점 발전시켜서 인본주의의 멍에를 점점 강하게 하면 걸머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날이 갈수록 인간이 만든 멍에는 다 부러져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우리는 미움, 공포도 전쟁도 이 수많은 짐들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도처에 인본주의 멍에는 산산조각으로 부러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인간을 바라볼 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고 난 다음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에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이제 잘 산다고 구구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우리 인류의 생활 전체를 바라보게 될 때에 인간은 절망에 이르는 병에 처하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 인류 문화는 이 지상에서 큰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릴지 알 수 없는 그러한 처지에 놓여있게 된 것입니다. 누가 인간을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진실한 삶과 도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번 대만 성회에서 그것을 절실히 느꼈었습니다. 대만이 우리보다 배로 잘 산다고 말하지만 성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옷 입은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모두 다 아주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얼굴들을 보았었습니다. 기름기가 없습니다. 수고하고 지친 모습들, 어느 곳에 가나 수고하고 지친 모습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수고하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 속에서 하루 하루를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인간 치고 l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걸머지는 인본주의적인 멍에, 하나님 믿지 않은 그 멍에는 어느 곳에 가나 다 부러지고, 다 실패하고, 우리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 번째로 알아보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멍에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멍에는 이제 실패했으니까 내 멍에를 걸머져라"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실 때 여러분과 저를 구출하기 위해서, 우리의 인생의 짐을 지기 위해서 당신의 멍에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기왕 짐은 져야 되니까, 짐이 없으면 그것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짐을 지기는 져야 되는데 이 짐을 쉽고 가볍게 짊어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만든 멍에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멍에는 뭘까요? 예수님의 멍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복종하는 신본주의 멍에인 것입니다. 인본주의 멍에가 아니고 신본주의 멍에를 가져야 합니다. 이 신본주의 멍에는 무엇이냐? 절대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으로 사는 것을 뿌리 채 뽑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는 것이 예수님이 가져온 신본주의 멍에요, 그리고 하나님을 삶의 근본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내어놓기 전에 물질 세계도 다 예비하시고 영적 세계도 다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말씀하기를『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인본주의 멍에를 걸머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눈에도 안 보이고 귀에도 안 들리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마음에 깨달아 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신본주의로 돌아서고 하나님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 나오면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세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깨달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이 가져 온 멍에인 신본주의 멍에를 걸머지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그 모든 세계로 하나님의 성령이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놓으셨을 때 사람이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인간의 노력으로 피투성이가 되어서 살기를 원해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여 주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아래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예비한 세계 속에서 안식을 갖고 살기를 원했었습니다. 안식이란 마음의 쉼인 것입니다. 마음에 큰 쉼을 가지고서 인생을 살도록 그렇게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가져 온 멍에는 바로 이와 같이 우리 마음속에 안식을 갖다 주는, 하나님을 삶의 근본으로 의지하고 사는 멍에요, 하나님만을 섬기는 철학인 것입니다. 내 인간의 육신의 정욕과 탐욕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 속에 하나님만을 섬기는 생활, 이것이 그리스도가 가져 온 멍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우리는 자나깨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살고, 먹거나 마시거나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살고, 우리가 사업을 하나 무엇을 하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살고 우리의 생활 전체가 하나님 중심이요,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살고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을 확실히 믿고 가는 이 신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걸머진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능력으로 삽니다. 내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내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둡다 할 지라도 우린 한가지를 압니다. 이것은 '나는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멍에를 걸머지고 있다' 이 멍에는 하나님이 만든 멍에로 이것은 신본주의 멍에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멍에요, 하나님을 섬기는 멍에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멍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있는 것을 없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멍에를 걸머진 그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파도 이는 바다에 걸어가면 파도를 잠잠케 하는 능력이 있고, 배고픈 군중들이 모이면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게 하는 능력이 있고, 죽은 나사로를 만나면 사흘만에 무덤에서 불러낸 능력 있는 멍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매어준 멍에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멍에요, 그 멍에는 부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멍에는 죄를 걸머지고 용서해 버리는 멍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멍에인 십자가를 통해서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죄를 멸해 버리고, 그리고 오늘날 죄를 이기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하나님 중심의 멍에를 우리가 걸머지면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죄를 다 용서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 포로가 되지 않습니다. 넉넉히 죄를 감당하고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걸머지고 있으면 우리는 심신의 병을 다 고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병든 자를 다 고치셨습니다. 제가 이번 대만 성회에서 우리 교회에서 간 20여 명의 성도와 함께 절실히 느낀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단순하게 주를 믿는지라 많은 병든 자가 나은 것입니다. 중풍 병 환자를 한 가족이 데려다 놓고 앞자리에 앉혀 놓았는데 제가 보니까 그 영감님은 자기가 왜 왔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증거하고 난 다음 병자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데려다 앉힌 걸상에서 못 일어납니다. 걸상에 데려다 놓았었는데. 그래서 부인과 아마도 딸 같은 분이 자꾸 '일어나라,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강단에서 볼 때 그가 살며시 일어나니까, 일어나지니까 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자기를 보더니 살며시 앉아 보더니만 또 살며시 일어나 보고 또 살며시 앉아보더니 또다시 일어나 보고 싱글싱글 뒤를 보고 웃으며 일어나진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몸을 이렇게, 이렇게 움직여 보더니 그 다음에는 일어나서 대중 앞에 서서 걸어나옵니다. 걸어나오는데 처음에는 지팡이를 의지해서 나오더니 그 다음에는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그 다음에는 그 부인하고 같이 그 앞을 왔다갔다하고 그러다 신기해서 아주 못 견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병 나은 자기가 자기를 보고 어찌나 신기하게 생각하는지 손을 이렇게 쳐다보고, 고개도 흔들어보고 그리고 왜 걸어 다니는지 자기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신 그 멍에를 우리가 함께 걸머지면 병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멍에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멍에, 이 병의 멍에를 예수 그리스도는 능히 걸머질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멍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멍에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다 해결한 멍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해결 못합니까?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비를 주시고, 물을 주시고, 모든 삼라 만상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러므로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걸머지고 나가면 하나님이 예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 가난의 문제, 저주의 문제를 넉넉히 해결하고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의 문제도 이미 그리스도의 멍에는 다 해결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어서 음부에 내려갔다가 사망을 철폐하고, 음부를 철폐하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과 음부도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앞에서는 꼼짝달싹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우리가 함께 걸머지면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는 죄도 너끈 걸머지고, 심신의 질병도, 장애도 너끈하게 걸머지고, 저주와 가난의 문제도 짊어질 수 있으며, 사망과 음부의 문제도 다 짊어지고 격파하는 그와 같은 실력 있는 멍에인 것입니다. 이 멍에를 걸머지면 미움 대신에 사랑을 가져올 수 있고, 공포 대신에 믿음을 가져올 수 있으며, 전쟁 대신에 평화를 가져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멍에 속에 들어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짐을 너끈히 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 속에 안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네 번째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어떻게 걸머질까요?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므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했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우리 각각의 멍에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큰 멍에, 예수님의 멍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멍에는 신본주의 적으로 사는 것이 예수님의 멍에요, 하나님이 준비한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예수님의 멍에요, 그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멍에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멍에가 뭔지를 여러분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중동에서는 밭을 갈 때 옛날에는 소를 사용했는데, 그 소가 송아지를 낳지 않습니까? 이 새끼소는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꽤 자라면 이 새끼소에게 어미처럼 논과 밭을 가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 소가 논과 밭을 갈 때 똑바로 서서 밭고랑을 쭉 따라 가야지, 뒤에서 "아 이놈, 쯪쯪쯪" 하는데 소가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 이건 곡물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는 똑바로 가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데, 새끼가 어떻게 배웁니까? 이제 새끼가 논이나 밭을 갈 만큼 장성하면 밭가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어미가 멍에를 메고 있는데 밑에다가 집어넣습니다. 어미가 멍에 멘 그 옆에다가 새끼를 갖다 붙여 놓고 난 다음에는 같이 밭을 갈게 합니다. "이놈, 쯪쯪쯪" 하면 어미가 끌고 갑니다. 멍에는 어미 목에 걸려 있는데 그 옆에 새끼가 들어가서 어미 가는 길을 같이 따라갑니다. 어미가 힘을 써 가면서 애를 쓰고 끌고 가는데, 이 새끼는 옆에 붙어서 가보니까 '어, 이거 아무것도 아니네, 왜 어머니가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을 당하나, 아무 것도 무겁지 않는데 왜 그러냐.. 괜히 흥감으로 어머니가 고통을 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멍에는 어머니 목에 걸쳐 있고 그 새끼는 옆에 그냥 멍에 밑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끄는 줄 알고서 따라 가는데, 실제 짐은 어머니 목에 다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동 지구에 보면 새끼소들을 멍에를 메고 밭을 갈게 가르치는데 어미의 밑에 넣어 가지고서 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설교하실 때 바로 그 장면을 보고 설교하신 것입니다. 어미 소가 멍에를 걸머지고 있는데 그 옆에 새끼소가 그 멍에 밑에 들어와서 어미와 같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보아라, 내가 바로 저 어미 소다. 멍에는 내 목에 얹혀 있다. 네가 나를 믿고 나를 순종하고 내 곁에 와서 배우면, 실제 짐은 내 어깨에 다 얹혀 있고 너는 옆에 공짜로만 따라 붙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멍에를 메라고 했지, 너희 멍에를 따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너희는 내게로 와서 내 밑에 들어오너라, 내 밑에 들어오는 방법이 무엇이냐, 신본주의로 살고, 하나님이 예비한 것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러한 삶을 살면 바로 너희는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 멍에 밑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인생을 살면 내가 이제 너희 짐을 다 짊어지겠다. 멍에는 내 목에 얹혔지 네 목에 얹힌 것이 아니다. 그래서 끌기는 내가 끌고 너는 따라만 오너라. 그러면 네 멍에는 쉽고 네 짐은 가볍다." 가벼울 수밖에, 나는 하나도 안 짊어지는데 뭐, 무거울 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은 '예수님 믿고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으로 들어 오라, 그리고 예수님께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은 온유하다는 것은 길들임을 잘 받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잘 길들여 가지고서 자기 혼자 자꾸 밖으로 나가지 말고 순종 잘 하는 것을 온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고 예수님을 잘 순종하면 바로 예수님의 멍에 속에 늘 딱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겸손하다는 말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해 가지고서 '내 지혜대로, 내 지식대로, 내 능력으로 살겠다'는 것은 교만하지만, 겸손해 가지고서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믿습니다" 그래서 온유하여 순종 잘 하고, 겸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 마음을 가지고서 예수님에게 바짝 붙어 있으면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멍에를 걸머지고 있는 이상, 너희 짐은 내가 끈다. 짐의 무게는 내 목에 걸렸지, 네 목에 걸리지 않았다. 너는 내 곁에만 붙어서 내 멍에 밑에서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자." 삶의 짐을 지는 멍에는 예수님의 어깨에 걸려있고, 우리는 그저 순종하고 믿고 따라가면 멍에를 끄는 분은 우리가 아닌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무거운 짐이 있다 하더라도 우린 눈으로 구경하는 것이지, 실제 끄는 것은 예수님이 끌어주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의 멍에를 보고 내 곁에 와서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멍에를 걸머지고 그 멍에 밑으로 여러분에게 들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도 들어오너라, 너도 들어오너라, 그 짐을 왜 네가 걸머지고, 인본주의 멍에를 가지고 끌지도 못할 것, 목에 잔뜩 힘줄 내고 상처입고 땀을 뻘뻘 흘리고 그러냐, 인본주의 멍에를 버리고 회개하고 나를 믿고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오너라, 아버지의 예비한 세계를 믿어라, 아버지를 섬겨라, 마음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내게로 들어와서 바짝 내게 붙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 짐을 끌어 주마. 그러므로 사람들 보기에는 너희들이 짐을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너희는 내 멍에 밑에 있어서 내가 끌고 가주마. 그러므로 너희는 평안하게 살수가 있다"
우리는 인생으로 태어난 이상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절대로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짐을 인본주의 멍에를 메고 끌고 갈 때 결코 성공하지 못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모셔들이고 예수님의 멍에인 신본주의 신앙 속에 들어가 순종과 믿음으로 살게 될 때 인생의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짐을 끌어 주시는 이는 하늘과 땅과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이시오, 우리는 자연히 예수님 곁에 서서 감으로, 가벼운 예수님의 멍에 아래 쉽게 인생의 짐을 끌고 승리에 꽉 들어찬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그 멍에 밑으로 들어오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아담의 후예로서 교만하고 건방져서 인본주의의 멍에 위에 모든 짐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의 인본주의 멍에는 인류의 짐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 너무나 뚜렷하게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멍에는 꺾어지고, 온 인생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피투성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제 하나님이 만드신 멍에, 그리스도의 멍에, 신본주의 멍에로 돌아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회개하고, 신본주의로 돌아오고, 하나님 예비한 능력을 믿고 돌아오고, 하나님 섬기는 삶으로 돌아와서 우리 매일매일 같이 예수님께 우리의 짐을 기도로 다 맡기고 바짝 예수님께 붙어서 순종과 믿음으로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럴 때 멍에는 예수님이 걸머지고 짐은 예수님이 끌어주고 우리는 예수님 곁에서 쉼을 갖고 평안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오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눈물과 고통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 다 회개하고 그 짐을 다 예수님께 맡기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 곁에 바짝 붙어서 걸어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하나 남김없이 다 끌어 주시는 줄 확신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께서 오늘 이 진리를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폭풍우일고 이 수고롭고 괴로운 세상에 살면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마음에 휴식을 가지고, 평안을 가지고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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