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너희가 믿을때 성령을 받았느냐

by 삶의언어 posted Nov 25, 2024 Views 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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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성령/성령충만
예배드린 날 1990-07-29
오늘의 성구 사도행전 19장 1절로 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jKr238SweuM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말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900년대 초에 나타나기 시작한 성령운동은 이제 전 교파를 초월하여 전 세계에 걸쳐서 영원의 불길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2천년 전 오순절 다락방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이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충만하게 채운 운동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먼저 이른 비 성령을 주셔서 교회를 탄생시키고 그 후 마지막 때에 늦은 비 성령을 주심으로 교회를 성장시키고 열매 맺게 해서 급기야 추수해서 천국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주님이 교회를 성장시키고 열매 맺게 해서 이제는 스스로 하늘나라를 주기 위해서 그와 같은 성령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지금도 성령운동을 비난하고 반대하는 평신도나 신학자나 목사나 있습니다. 나는 이런 분들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저의 마음속에 안타깝기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어떤 목사가 우리 교회와 저를 공격하는 글을 쓴 중에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령님께 관하여 너무 강조하여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비난한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글을 읽고 저는 실수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삼위일체가 무슨 의미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 4천년 동안은 삼위일체 중에 아버지 하나님이 정면에 나오셔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은 야훼의 사자로 또 성령은 야훼의 영으로 나타나셔서 아버지 배후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3백 여번 이상 예수를 보내 주시겠다고 늘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대로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제는 아버지는 뒤로 물러서시고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2위인 예수님이 정면에 나타나시고 아버지와 성령은 그 배후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으로부터 계시록까지 전혀 예수께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님도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사역의 마지막 때에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계속 강조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오순절 날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이제는 성부, 성자, 성신의 시대가 아니라 성령시대가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도 성령의 배후에서 성령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시대에 우리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이나 아버지를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성령님을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치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령께서 정면에 나와서 일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수도 없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령께서 정면에 나와서 일하시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므로 우리가 성령을 올바르게 알고 성령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아버지도 아들 예수도 모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운동을 비난하는 사람은 삼위일체의 역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을 비난하는 사람은 오늘날 마귀와 짝을 해서 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을 비난하고 난 다음 하늘나라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 싶은 것은 첫째로, 예수님과 성령님의 관계를 우리 한번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셨습니다. 눅1:35에 보면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잉태할 때도 벌써 성령을 통해서 잉태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마리아의 몸에 잉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셔서 30이 되시자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셨는데 주님은 성령 세례 받으시고 난 다음 성령을 통해서 3년 반동안 사역을 하셨습니다.
마3:16~17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로부터 증거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곧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나가서 40주 40야 금식하시고 마귀를 정복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3년 반의 사역이라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주님은 말씀하시고 기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역사를 베풀었지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 역사하지 않았었습니다.
눅4:18~20에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란 전혀 성령님의 역사 없이는 이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때도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는데 오늘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난 다음 성령시대가 되어서 성령을 통해야만 예수님께서 역사할 수 있는데 오늘 성령을 인정도 아니하고 환영도 아니하고 무시하고 성령역사를 비난하는 이러한 따위의 교회나 목사는 바로 마귀의 사도요, 하나님의 사역자라고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 대해서 철저히 소개를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성령 없이는 주의 사업이 계속되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주님은 자세하게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다른 보혜사로 소개하셨습니다.
요14:16~17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처음 보혜사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우리를 돕는 자를 보혜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귀신을 쫓아 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굶주린 자를 먹이시며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승천하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허공을 쳐다보고 탄식을 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아와 같이 되었구나. 우리는 버림받았구나. 예수님 없이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느냐?” 그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한 것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줄 것이다. 처음 보혜사 나는 가지만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 이 다르다라는 말은 헬라원어는 ‘알로스’인데 똑같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혀 같으나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영으로 오셨으나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 곁에 와서 항상 계시며 우리를 돕는 자로써 와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으신 여러분에게는 벌써 성령께서 와 계신 것입니다. 이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너희 속에 계시며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계시겠다고 했으므로 여러분 영으로 왔었으므로 눈에는 안보이지만 성령은 여러분 속에 와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와 계신 것입니다. 이 성령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그리고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돕는 자로써 와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이 성령께 의지하고 살 때 우리는 약한 자가 되지 않고 강한 자로써 신앙에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선생님으로 소개했습니다.
요14:25~26에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우리에게 대해서 모든 하늘나라의 진리를 가르치고 예수님의 것을 생각나게 하는 보혜사 성령은 우리 선생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학생이 선생 없이 배울 수가 있나요? 또 학생이 선생과 같이 계시면 선생을 무시고 멸시해 버리면 어떻게 선생이 가르치겠습니까? 학생은 선생을 존경하고 선생에게 모르는 것 자꾸 물어야죠. 그러면 선생이 가르켜 주지 묻지 않고 가만히 있는 학생이 어떻게 깨달을수 있습니까? 성령은 보혜사로써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 와 계시므로 우리는 성령께 모를 때 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가르켜 줄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공경하고 성령을 존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은 오늘날 우리의 선생이 되셔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게 만들어 주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령님을 예수님에 대한 증인으로써 소개하셨습니다.
요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믿을 수 없습니다. 재판정에 가서도 증인이 있어야 원고나 피고가 주장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되 우리 마음속에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실히 증거를 해주셔야지 성령이 증거를 안해 주시면 우리가 아무리 머리 속으로 믿는다고 애를 써도 마음속에 의심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들어갔다 나왔다하고 신앙이 확고하지 못한 이유는 성령의 증거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계신 성령이여 예수를 내 영혼 속에 증거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부탁했더라면 성령이 그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를 증거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우리는 머리 속에서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확고부동하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예수를 믿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증언은 오직 성령께서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의 증거를 받는 자마다 여러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성령 보혜사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늘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예배를 드릴 때 저희 셋째 놈이 어릴 때였습니다. 이제는 미국으로 유학가고 없지만 그가 국민학교 다닐 때 하루는 가정예배를 보는데 반발을 해요. “왜 반발하느냐?” 하니까 “아버지 아무리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해석하고 가정예배를 봐도 나는 안 믿어집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 목사집 아들이 안 믿어져?” 그러니까 “아버지가 목사지 내가 목삽니까? 아버지가 항상 예배보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나와서 내가 보았지 난 안 믿어집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서 살 동안은 내가 할 수 없이 아버지가 와서 예배보자고 하면 볼 수밖에 없지만은 독립하면 나는 안 믿을래요. 안 믿어지는 것 어떻게 믿어요.” ‘야~ 큰일 났다. 이것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고 다른 사람 주께로 인도하면서 자기 자식은 구원으로 이끌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잠자리에 가서 내가 머리에 안수하고 “하나님이여, 조용기는 이 사람을 믿게 만들지 못하지만은 보혜사 성령은 믿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여 예수를 이 마음 가운데 증거해 주시옵소서. 내가 아무리 입으로 증거해도 그것은 머리속에만 들어가지 마음에 증거는 안 됩니다. 성령이여 증거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몇 주간을 계속해서 잠자리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고 성령께 부탁을 했는데 하루는 기도하러 가서 보니까 “아버지 이제는 오지 말아요.” “왜 그러느냐?” 그러니까 “이제는 믿어요. 이제는 내 마음속에 감동이 되어서 내가 확실히 예수가 구주된 것을 믿게 되었어요. 이제는 믿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예수님의 계시자로써 소개했습니다.
요16:12~15에 보면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여기에 보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께 대해서 알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께 관한 증거만 하지 성령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 받았다는 사람이 “내가 성령이다~ 내 말을 들으라!” 이렇게 하면 이것 가짜입니다. 성령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도 예수님께서 성령을 소개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내 영광을 가지고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에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자신에 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을 우리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자체의 충만이 아니라 바로 예수 충만인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분이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면 예수밖에 우리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 충만 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충만 입니다. 이것이 참된 삼위일체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 안에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지 성령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므로 진실로 삼위일체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성령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우리가 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까요? 여러분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회개 및 중생을 시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가 회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악 가운데 태어나서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에 성령의 빛이 비춰야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고 버림받은 것을 알고 회개합니다. 온 세계 각지에서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잠시 교육 TV를 보니까 티벳 사람들이 히말리아 산을 향해서 하는데 오체예배라고 해서 한발자국 뛰고 난 다음에는 팔 다리 다펴서 땅에 엎드려서 산을 향해서 절을 하고 그 다음 일어나서 또 한발자국 뛰고는 또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합니다. 온 얼굴이 흙 판이고 온 몸 전체가 벗겨졌습니다. 그러면서 히말리야 산을 향해서 예배를 드리면서 갑니다. 자기들의 죄가 용서함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탄식 스러웠 습니다. 여러분 온 세계 어느 곳에 가나 종교는 다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서 짐승은 종교가 없지만 사람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사람 속에는 영이 있기 때문에 영은 신을 사모합니다. 영은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람치고 마음속에 종교심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은 사람은 육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영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이 바른길을 얻지 못하면 이 티벳 사람처럼 히말리야 산을 보고서 오체예배를 드리며 피를 흘리고 행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16:7~11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성령이 오시면 이 세상 모든 사라들이 예수 안 믿는 죄를 책망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 때문에 지옥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했는데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성령은 오셔서 예수 안 믿는 죄가 멸망의 죄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우리가 이것을 깨달아 알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성령이 오셔야 비로소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다 청산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아버지 하늘나라에 올라가셨으므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을 보여 주시고 성령이 오셔야 만이 원수 마귀를 드러내고 원수 마귀는 십자가에서 이미 무장 해제되고 원수 마귀는 이미 패배했고 원수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권한이 없다는 것을 가르켜 주시므로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고 마귀를 이기고 승리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께서만이 우리에게 구원의 도를 확실히 보여 주시고 회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야 죄와 사망을 이기게 해주십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모하되 육신은 약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따라 살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술취하고 세상 쾌락을 따라서 갈 때가 많습니다. 바울사도도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러므로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체로써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했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육신이 약해서 여전히 죄악가운데 끌려 들어가면서 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가 우리를 도와 줄수 있습니까? 여기에 성령을 알면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롬8:1~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한 것 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온 성령께서는 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죄를 멸하고 마귀를 멸해 버리기 때문에 그 권능을 가지고 오셔서 성령께 부탁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셔서 죄의 사슬을 끌러 버리고 사망의 사슬을 끌러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만이 죄악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죄악이 홍수처럼 몰려올 때 우리는 “보혜사 성령이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나 육체는 죄의 법에 끌려갑니다. 보혜사 성령이여 나를 도우소서.” 성령께 부탁하면 오늘날 성령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우리를 도우시고 붙들어서 죄악의 사슬을 끌러 버리고 우리를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있고 난 다음 의와 거룩하기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죄악과 육신의 정욕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혜사 성령에게 부탁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를 죄악의 사슬에서 놓아주고 사망의 사슬에서 끌러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 충만해서 성령 세례 받으면 하나님 능력이 오시는 것입니다.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능력이 없는 사람 많습니다. 기도에도 능력이 없고 전도에도 능력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의식과 형식적인 예수를 믿지만 폭발적인 그러한 파워가 없습니다. 다이나마이트 같은 힘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아주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고 남에게 예수를 척척 전도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 그것은 성령세례 받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예수 믿으면 성령이 와 계시지만 간절히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세례란 충만의 체험을 하게 되면 권능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권능과 능력이 임해요.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능력한 이름만 믿는 신자가 아니라 정말 그 생활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기도의 힘을 주십니다.
롬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성령께 기도의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 신앙이 성장하려면 기도를 해야 돼요. 적어도 하루 1시간 이상 기도해야 되겠는데 기도하는 것이 안 됩니다. 기도가 나오지 아니하고 기도가 힘이 들고 졸음이 오고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가 성령인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이여 나를 붙들어서 기도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할 때 성령이 능력을 주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므로 우리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오시면 성령은 여러 가지 은사를 나타내 줍니다. 우리가 전에 갖지 않았던 그러한 능력이 우리 속에서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하면 계시의 은사로써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나타나고 발성의 은사는 방언과 방언통역, 예언도 있고 권능의 은사로는 믿음의 은사도 있고 병 고치는 은사도 있고 기적의 은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로마서 12장에 보면 섬기는 은사가 있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고, 구원이 하는 은사가 있고, 구제하는 은사가 있고, 다스리는 은사가 있고,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충만 하면 전에 없던 이런 은사들이 나의 생애 속에 나타납니다. 성령을 통해서 이런 은사가 나타나면 이 은사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몸 된 교회를 잘 섬길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굉장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모두다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 어떤 은사든지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사를 받아서 역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늘나라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광의 이와 같은 관계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이 성령을 우리가 어떻게 모시고 인생을 살까요?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은 구약 4천년 동안 역사하여 주셨고 예수님은 신약 33년 동안 역사하고 승천하셨는데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2천년 전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성령은 교회 안에 거하시고 예수 믿는 성도들안에 거하십니다. 이러므로 오늘날의 시대는 성령시대요,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의 수레를 타고 우리에게 오시고 성령을 통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성령님을 모시고 함께 살아야 되는데 성령을 어떻게 모실까요?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격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후13:13에는 성령을 인격적으로 모시고 교통하라고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 강단과 교통 안 됩니다. 인격이 없습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교통이 안 됩니다. 꽃은 인격이 없습니다. 이 교회 건물하고 교통이 안 됩니다. 인격이 없기 때문에 교통 안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과는 교통이 됩니다. 대화가 됩니다. 여러분은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보혜사 성령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을 인격으로 대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도 남편이 인격을 가지고 있고 아내가 인격을 가지고 있는데 인격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면 그 가정은 파탄에 이릅니다. 남편이 아내의 인격을 무시해 버리면 아내는 소멸됩니다. 아내가 남편의 인격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면 남편은 인격이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집에 들어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이 인격으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이요, 인격자인 성령님을 존중하고 감사드리며 성령께 예배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에 의하면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하고는 이야기하고 예수님께는 기도하라 했지만 성령께는 기도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신데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느 하나님에게도 우리는 대화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아버지가 신약 33년은 예수님이 이제는 성령께서 책임을 지고 일하시는데 성령과 이야기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한 가족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이 있으면 가족이면 어느 가족 멤버하고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과 대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며 성령께 도움을 청하면 성령이 우리를 도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령과 인격적인 교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 성령 인정한다고 성령 합리화 한다고 성령 모셔 들인다고 성령을 강조한다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 사람들은 그러면 누구를 의지하고서 하나님을 믿습니까?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를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 강조한다고 공격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마귀지 하나님의 역사라고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령과 인격적인 교통을 해야 되고 언제나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께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해야 됩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영혼 속에 하나님은 이미 와 계신 성령을 더욱 충만하게 채워 주셔서 더욱 영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예를 든다면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은 자기를 위하여 있지 않고 다른 이를 비취기 위해서 있습니다. 거울을 아무리 닦아 놓아도 거울은 날 봐라. 날 봐라. 그러지 않습니다. 거울은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거울을 돌아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것입니다. 성령은 거울과 같아서 성령은 아무리 우리가 충만해도 성령은 보이지 않고 성령을 들여다 보면 아버지와 예수의 얼굴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할수록 그것은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교회도 있을수가 없고 우리 신앙생활도 있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성령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기도는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역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첫째도 성령, 둘째도 성령, 셋째도 성령.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바울사도가 에베소에 가서 그곳에 있는 맥 빠진 신자들보고 제일 먼저 질문한 것이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가 늘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됩니다. ‘너는 성령으로 충만 하느냐? 너는 성령과 함께 교제하고 있느냐?’ 성령 충만하고 성령과 함께 교제하면 성령은 사라지고 그곳에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구약 4천년의 긴 세월은 아버지가 역사하여 주시고 신약 33년의 짧은 세월은 아들 예수가 와서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시고 이제 신약 2천년의 긴 세월은 성령의 시대로써 성령이 오셔서 아버지의 일한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고 아들의 일한 것을 우리에게 성취시켜 주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아버지의 4천년 준비도 헛것이고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한 것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전달해줄 성령 보혜사야 말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하나님이시오, 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며 성령으로 충만해서 사는 신앙생활은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아무리 강조해도 더 강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악한 원수 마귀의 꾀임에 속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현대주의나 신신학자들의 공격에 넘어가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주님이 강림하는 그날 말세에 부어지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도와 주옵시고 성령의 은혜 중에 생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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