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장 9∼10절
인생의 그림 변화시키는 틀은 주님의 선물
십자가를 배경으로 보혈로 그려주신 은혜
믿고 고백하면 오중복음·삼중축복의 복 누려
제가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에 있던 일입니다. 학교에서 미술 숙제를 내주었는데 저는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잘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 친구 중에 그림을 잘 그리던 친구가 그리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그림을 몰래 가져다가 제 이름을 써서 제출했습니다. 다음날 담임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부르셔서 가보니 그 그림을 내놓고 “이게 정말 네가 그린 그림이냐?”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빈 도화지를 내놓으시더니 여기에 똑같이 그려보라는 겁니다. 순간 기가 콱 막혔습니다. 결국 보고 그리는 데도 흉내도 못 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그 그림의 주인이 불려왔어요. 선생님께서 아무런 말없이 “너, 이 그림 한번 그려 보아라” 했더니 그 친구는 ‘슥슥슥’ 그려 내려가는데 꼭 그 그림과 똑같이 그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네 실력대로 살아야지 남의 실력을 훔치려고 하면 이런 낭패를 당한다. 너는 이번 미술 점수는 빵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남의 그림을 훔쳐 내 그림으로 만들려다가 실패한 그 기억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1. 한 폭의 그림 같은 우리 일생
우리의 일생을 뒤돌아보면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우리의 인생이라고 가짜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스스로가 그려가는 한 폭의 그림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배경이 화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화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것이며, 물감은 우리의 희노애락입니다. 우리가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 슬픔, 아픔 그리고 즐거움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물감을 삼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을 그린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림을 그리느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림을 그리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림을 그려 놓으면 그림이 형편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시면 기가 막힌 그림을 그려주십니다.
예를 들어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학교 공부도 못하고 무식하고 물고기나 잡고 술이나 한잔 마시면 주먹질하고 싸움이나 하는 그런 하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갈대’라는 그 이름 시몬의 뜻처럼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스로 그림을 그릴 때는 갈대인생의 그림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예수님께서 그린 시몬의 후반기 인생은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 즉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반석 같은 제자가 되어 교회의 기둥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그려주신 반석된 베드로의 인생 그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로 19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하신 말씀인데 예언적으로 그의 인생을 그려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그림도 변화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그림이 보잘 것 없고 사람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인생이라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그림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틀을 주님께서 제공하십니다. 주님께서 갈대인 ‘시몬’을 변화시켜서 반석인 ‘베드로’라는 놀라운 그림을 그려주신 것처럼, 우리를 택해 우리의 인생 화폭에 주님께서 직접 화필을 가지고 훌륭한 인생의 그림을 그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변화되도록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어느 특정인을 위해서만 지신 것이 아닙니다.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모든 인생들을 불러 십자가의 그림에 화합되게 만들어서 변화된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이미 그려놓으신 내 인생
우리가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통해 대속 받은 인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그림을 그려주십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십자가이며 물감은 예수님의 보혈이고 그 결과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십자가로 초청해서 시몬을 베드로로 변화시킨 것처럼 새로운 그림을 그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용서와 의의 선물을 받은 놀라운 인생입니다. 로마서 5장 17절에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용서와 의를 받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고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모습으로 주님이 그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을 주님이 살리시고 성령을 부어 주셔서 거룩한 삶을 사는 그림을 그려주시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병의 치료와 건강한 삶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관절염, 폐병, 암, 신장염, 온갖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할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약을 먹고 치료받으면서 건강한 그림을 아무리 그리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건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화필을 맡기면 단번에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하시며 건강한 모습으로 그려 놓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초현실적인 현실로 우리가 사는 길을 보여줍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가 이 말씀을 믿으면 말씀이 믿음을 통해서 믿음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현실적인 현실입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믿느냐 안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저주에서 해방과 형통의 삶을 우리의 인생에 그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헐벗고 굶주리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가슴치고 통곡하고 외롭고 버림받은 심정으로 좌절하며 살아가는 그림으로 내버려 둬서는 안됩니다. 오직 주님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복을 우리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저주에서 해방되고 형통한 삶을 우리 마음과 인생의 화폭에 그려놓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성경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채우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꿈을 가져라. 그 꿈을 내가 이루도록 그려주마”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까?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아무리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도 하나님의 꿈으로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위에도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 그 성령이 운행하시면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추한 것은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킵니다. 창조의 역사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은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꿈만 버리지 않으면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지혜와 총명과 재능과 모략을 주셔서 그림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셔서 모두 예비해 놓으셨는데 그것을 성령이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그려 넣을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그림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빛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캄캄한 절벽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시요 생명이시며 구원의 능력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빛의 열매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도록 성령을 통해 그림을 그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는 별 볼일 없습니다. 그러니 온전히 맡기십시다. 우리 한번 예수님께 완전히 맡겨 버리십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지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몸을 찢기고 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그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런 분을 못 믿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우리 한번 맡기고 믿어보십시다.
3. 내 인생의 그림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그려놓으신 구원받은 인생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십자가 앞에 나와서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면 그것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그려주십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신 것처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생을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행함으로 만드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한 인생을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로 10절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절대로 안될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그것을 통해 이런 그림을 그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품고 새롭게 변화될 것을 기대해야합니다. 우리 인생의 그림이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십자가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마라의 쓴물에 나뭇가지를 던지니 물이 달아진 것처럼 십자가는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물을 변화시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쓰디쓴 우리 마음도 주님의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달아 지고, 맹물 같은 인생도 주님 말씀 한마디면 포도주 같은 인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도 십자가를 우리 인생에 끌어안으면 십자가는 변화시키는 권세가 있으므로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합니다. 이제 화필을 주님께 맡기고 우리 주장대로 그리려 하지 마십시다. 우리의 주장대로 그리면 남은 인생을 망칩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셨습니다. “주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놀라운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잠언 3장 5절로 6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수를 놓는 것과 같습니다. 예전에 우리 누님이 수를 많이 놓았는데 저는 누님이 수놓을 때 곁에서 구경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폐병으로 아파 누워 있을 때 피를 토하고 기침하며 누워 있으면 누님이 날 돌본다고 옆에 앉아서 수를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수틀의 뒷면을 보면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입니다. 노랑색, 빨간색, 각종 실들이 왔다갔다하고 뒤엉켜 엉망진창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다 지나고 난 다음 수틀을 ‘탁’ 돌리면 놀랍게도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시냇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동산에 푸른 나무들이 있고 기가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하나님도 이처럼 우리의 인생을 수틀에 놓고 수를 놓고 계십니다. 우리 보기에는 엉망진창인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결국 우리가 놀랄 만큼 기막힌 인생으로 수놓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8절로 30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수천 수만년 전부터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시고, 때가 차매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결국에는 천당으로 이끄셔서 영화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자신의 일생을 우리 스스로 그리려고 하면 휴지통에 버려진 구겨진 낙서와 같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인생이 결국 휴지통에 버려진 도화지처럼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그리도록 맡기면,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하나님이 그림을 그려놓고 사래는 사라로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로 시몬은 베드로로 사울은 바울로 변화시켰던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항상 이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은 엄청나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 놓아서 몸찢기고 피흘려 대속해 주신 그만한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분은 믿고 맡길 만한 분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셔서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맡겨 놓으면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도 우리의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주님만을 믿고 맡기는 인생을 살아서 우리의 인생에 주님께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스스로 인생의 그림을 그리다가 실패한 인생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오직 보혈의 공로로 우리의 인생들이 치료 받기를 원합니다.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오니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우리의 남은 인생을 다시 그려주시고,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다시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고 입술로 감사를 고백하오니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 꿈과 소망을 이뤄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