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by 삶의언어 posted Nov 25, 2024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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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믿음/순종
예배드린 날 2013-06-02
오늘의 성구 마가복음 11장 20절로 2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Z_fzomE1xNY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장 20∼24절

 

우리 모두는 이미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
환난 다가올 때 의심하고 흔들려 포기하면 안돼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반드시 기적 일어나


 천국의 화폐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화폐 즉, 돈은 경제의 핏줄입니다. 돈이 없이는 아무런 거래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얻고 생활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것이 돈입니다. 이처럼 천국의 화폐는 믿음입니다. 천국과 관련된 어떤 일도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서 한시도 살 수 없는데 우리는 믿음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하게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1.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믿음이란 참 갖기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얼굴에 이목구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는 마음에 믿음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라나면서 부모님을 믿습니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어린 아이도 믿음에 대해 배우지 않아도 부모님과 형제를 믿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스승을 믿고, 많이 속임을 당할지라도 친구를 믿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삶속에서 믿음을 늘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으면 주님께서 그 분량대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기록합니다. 큰 일을 감당할 사람은 큰 믿음을 주시고 작은 일을 감당할 사람은 그에 맞는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크기는 상관없습니다. 겨자씨만 믿음이어도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므로 자랍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면 알수록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말씀을 듣고 읽으면 믿음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콩나물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콩나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고 기가 막힙니다. 콩나물시루에 콩씨앗를 뿌려놓고 물을 주면 하룻밤 자고 나면 자라나고 또 하룻밤 자고나면 자라납니다. 믿음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콩씨앗과 비교한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도 말씀의 물을 주어야 그렇게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또한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강한 믿음을 허락해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는 예수님께서 자기 대신 보내신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과 그리고 2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믿음이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모님을 믿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지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는 남편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은 아내의 말을 믿습니다. 모든 사랑의 근본은 믿음이며, 그와 같이 믿음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사랑과 믿음은 항상 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높고, 깊고, 넓은 것을 깨달을수록 믿음도 활성화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믿음이 강해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더 믿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자라나고 사랑을 통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서 출발해도 믿음이 자라나서 큰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쪼그라져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믿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믿음이 없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일상생활 하는데 믿음을 실천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우리의 일상생활에 반드시 실천되어야 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믿음을 통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믿음을 통하면 더 쉽고 더 능력있게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선택이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불신앙, 의심, 공포는 항상 우리의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택할 것이냐? 그렇지 않고 믿음을 택할 것이냐?’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4절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록합니다. 누구든지 이 산들을 들리어 바다에 던지라 하면, 그 누구에 우리도 포함됩니까? 당연히 포함됩니다. 과연 산을 옮길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아멘”하는 것이 옳습니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구태여 정말 산을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태산 같은 문제가 다가왔을 때 그것을 향해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문제야 물러가라! 사라져라!”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것은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히브리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을 때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금신상을 세워 놓고 그것에 절하면 살려주고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절하는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유대인으로서 유일한 야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 앞에 잡혀 왔습니다. 그 때 그 세 사람은 “풀무불 구덩이에 던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내 주시겠고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선택입니다. 놀랍게도 그 믿음대로 그들은 풀무불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믿을 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믿음으로 선택해 불퇴진으로 밀고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믿음은 당사자의 굳은 의지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내가 믿음으로 이것을 해결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한번 믿어 보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3. 믿음은 의지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 묘지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옮겨 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주여, 이미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처음부터 믿어보겠다는 생각도 의지도 없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마르다여, 내가 네게 말하노니 하나님을 믿으면 네가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꾸짖으셨습니다. 믿으면 영광을 볼 것인데 믿으려는 생각도 의지도 없이 이미 마음에 낙심하고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우리들도 생활이 어려울 때 ‘주님을 한번 믿어 보겠다’라는 생각과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복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십일조를 드리려고 작정을 하느냐? 안하느냐?’는 마음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도 이렇게 먹고 살기가 힘든데 그것조차 내고 나면 더 어려워 지지 않을까? 어떻게 할까?’하며 복을 받을 길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믿고 실천할 의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안되지요.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은 분명히 일어납니다. 오늘부터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기로 작정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염려와 근심도 주께 아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부족한 것도 주님께 구하면 응답도 주시고 기회도 주십니다. 기도하고 아뢰면 믿음을 통해 문이 열리고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믿음을 늘 실천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반드시 기도 응답을 받겠다고 마음에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결심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민수기에 보면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열 명은 아예 부정적인 마음으로 보고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작정하고 믿음을 가지고 보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13장 30절로 33절은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완전한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과 믿음 없이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바라 볼 때, 육신적인 불신앙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봐야 됩니다. 하나님을 마이너스 해놓고 인간적으로만 보면 낙심과 절망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플러스해서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면 지금 생각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능력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물을 볼 때 인간적이고 부정적인 눈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바라보고 고백해야 합니다.

 

 4. 큰 믿음과 작은 믿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한 이방인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자신의 종이 병들어 눕게 되자 그는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고쳐달라고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 집으로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다시 사람을 보내어 “주님, 우리 집까지 오시기 괴로울 것인데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므로 말씀 한마디에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움직일 것 아닙니까? 백부장인 저도 부하에게 앉으라 하면 앉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며 다 순종합니다. 그러니 주님은 우주의 주인이시니 말 한마디만 하면 만사가 다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을 전해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손바닥을 치시면서 “이 사람의 믿음은 유대인들도 가지지 못한 믿음이다. 그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백부장의 종이 그 병에서 나아서 건강하게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시간도 공간도 거리도 상관이 없습니다. 한번은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이 허리를 다쳐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러 가서 누워 계셔서 제가 심방을 갔는데, 그 병실이 20층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정전돼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중나온 아내 권사님에게 “내가 도저히 이 무릎으로는 20층을 걸어 올라갈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하지요?”하고 물었더니, 그 권사님이 저보고 “힘들게 목사님께서 왜 올라가셔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여기 1층에서라도 기도만 해주시면 위에서 우리 장로님의 병이 다 나을 것입니다. 목사님! 여기 계시다가 5분 후에 기도해 주십니오. 제가 계단으로 올라가서 마음에 준비하고 우리도 그때같이 기도할테니까요”하고 올라가셨습니다. 정확히 저의 시계로 5분 후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20층 위에서 권사님도 자기 남편 허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돌아가려고 나서는 데, 그 권사님 20층에서 뛰어내려와 “할렐루야”를 하고 야단입니다. 제가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당장 나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실제로 가지도 못하고 거리와 장소가 달라도 믿는 것 그것이 큰 믿음입니다. 믿다가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의심하고 포기하고 흔들리면 안됩니다. 일단 믿었으면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끝까지 믿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물위를 걷다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자 의심하므로 물에 빠지게 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이 없든가 혹은 있어도 너무 작고 연약해서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살겠다고 선택을 하고 믿겠다고 마음에 결심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분명히 기적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인생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안심과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만 의지하고 살면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면 낙심하고 탄식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우리의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반드시 기적을 이뤄주십니다. 그리고 마귀가 의심을 가져오면 “원수 마귀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나는 이 말씀위에 선다. 물러가라!”라고 외치며 말씀을 가지고 대적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굳게 잡고 말씀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기적을 이뤄주시는 것입니다.

 영국 고아의 아버지인 조지 뮬러는 5000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그저 무릎을 꿇고 기도하므로 그 놀라운 일을 감당하고 이뤄갔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5만번을 기도해서 5만번 모두 응답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빈손들고 고아원을 시작해 5000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몇 번이나 기도하고 몇 번이나 응답을 받았을까요?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받은 것들을 기억하고 용기와 힘을 가지고 앞으로도 그 믿음을 가지고 실천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전인구원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혼의 문제를 해결인 죄의 문제를 청산하시고 모든 사업에 저주를 제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시고 병을 낫게 하셔서 건강을 주셨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는 삼중축복의 은혜인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에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시편 103편은 “영혼아 야훼를 기뻐하라.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으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한다”고 기록합니다.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시고 물질적인 부족함을 채워 만족케 해주시고 질병을 고쳐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가면 우리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됩니다.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늘 염려하고 근심하면 곤란합니다. 믿음으로 삶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받고 난 후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해외선교도 하고 고아들도 돌보아주고 길거리에 노숙자들도 도와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는 더 많은 여유와 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큰 믿음과 용기를 얻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겨자씨 같이 작더라도 믿음으로 행하겠다고 선택하게 해 주시고, 마음에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믿음을 실천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에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을 누릴 수 있는 전인구원의 삼중축복을 허락하여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 은혜도 믿기로 선택하고 마음에 결심하며 입술로 고백하여 모두 누릴 수 있도록 더 큰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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