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소박한 행복

by 삶의언어 posted Oct 22, 2023 Views 3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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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그리스도인
예배드린 날 2006-10-22
오늘의 성구 빌립보서 4장 4절로 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upRQ5gPkeME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4∼7절

본향과 정체성을 잃은 인간의 상실감
겸허와 사랑으로 선한관계를 유지할 때
강건함과 함께 참다운 행복 누리게 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을 그저 덤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또 별로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탄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살펴보면 소박한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삶의 고향을 잃어 버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만들어진 인생이지만 범죄함을 통하여 에덴에서 쫓겨났으므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가슴속에 고향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1장 4절에 보면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야훼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5절에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야훼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다 저주받은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고향을 잃어버리고 갈길을 잃어버린 우리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내가 동물인지, 영혼인지, 물질인지를 분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잃어버린 고향과 우리의 나아갈 길과 정체성을 회복해야 마음에 평화를 갖고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2000년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더불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므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기고 피흘려서 우리의 죄값을 청산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의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서 가장 큰 은총을 받는 것은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발견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깊이 믿고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고향인 하나님의 품을 찾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한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아담의 후손으로 이 땅에 왔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가 영생복락인 천국으로 가야하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삶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자기를 찾아서 확실하고 분명한 신분을 가지고 있으므로 잃어버린 존재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인중에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자녀로 삼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과 제사장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삶의 의미인 하나님, 삶의 가치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 삶의 목적인 천국을 우리가 확실히 마음속에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 14장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소박한 행복을 느낄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향인 하나님을 찾았고, 우리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알게 됨으로 마음속에 평안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스웨덴의 복음가수 레나 마리아는 두 팔과 한쪽 다리 절반이 없는 선천성 장애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장애에 굴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장애인 올림픽에서 수영 4관왕을 차지했고, 세계적 복음가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신실한 청년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스스로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좌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사니까 그의 삶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일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20세기 최고의 여류작가로 불리는 프랑수아즈 사강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에 재학 중이던 18세 때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천재 작가요, 미모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이혼과 도박,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으로 비참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인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낙심하고 탄식하며 하나님을 등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요,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과 행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탐욕을 버린 겸허한 마음

 탐욕은 우리의 인생에 파탄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분량대로 인생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아담이 사람으로 지음 받았으면 사람으로 살아야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은 엄청난 탐욕인 것입니다. 탐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귀가 시험하는 것이지 탐욕이 없으면 마귀는 시험하지 않습니다. 거름 무더기가 있는 곳에 똥파리가 찾아오지 거름 무더기가 없으면 똥파리가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탐심이 바로 우리를 파멸케 하는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탐심이 들어오면 부정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악행을 하게 되고 종국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아담의 탐욕은 결국 자기와 전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구약시대에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은 그의 생애속에 가장 처절한 악행을 저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와 통간한 후 우리아를 속이고 결국에는 우리아를 전선의 최일선으로 보내 죽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탐욕을 가지고 남의 아내를 탐내고 살인까지 저지르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10절에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심판입니까? 남의 아내를 취하고 그 남편을 전장에 내보내 죽게하므로 다윗의 가문에는 칼이 떠나지 않게 되었고 이는 그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통하여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무엘하 12장 14절에 “이 일로 말미암아 야훼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라는 말씀에서 처럼 마귀에게 다윗을 참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탐욕을 품고 행하였을 때 그의 삶은 극심한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탐심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탐욕과 행복은 결코 서로 만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또한 석유 재벌인 록펠러는 “부자가 행복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통계에서 보면 사람이 어느정도의 물질만 가지면 그 이후로는 물질과 환경으로 행복을 느끼지 않다는 것입니다. 15평 집에 사는 사람이 35평 집을 얻을 때는 큰 행복을 느끼지만 35평 사는 사람이 50평 집을 살 때는 많은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좋은 옷을 사 입었을 때는 행복하지만 나중에 화려한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계 결과는 우리가 소유한 물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환경이 우리의 행복에 플러스 요인은 될 수 있어도 온전한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를 섬기고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속에 있을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탐욕이 들어오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 때 행복을 누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때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주시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때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따라 광야로 나아갔을 때는 농사지을 논밭도 없고 짐승도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헐벗거나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아니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므로 거짓이 없으시고 또한 식언치도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구하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므로 우리는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 선한 인간관계를 유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셔서 두 사람이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서 함께 살아야 하고 남녀가 함께 사는 삶이 아니고서는 인생은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부부로 살게 되면 자식을 낳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원만해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형제들과의 원만한 관계도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이웃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 합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속에서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웃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께 의지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경험과 개성이 다양하므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언제나 우리가 서로 좋은 관계속에서 살려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짐을 나누어 지는 자상하고 섬기는 마음을 통해서 올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고 인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도 참고, 둘째도 참고, 셋째도 참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가운데 부부간에도 참아야 하고, 부모 자식간에도 참아야 하고, 형제간에도 참아야 하고, 이웃간에도 참고 또 참고 또 참아야 문제가 해결되고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5절에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라고 말씀하고 있고 에베소서 4장 2절로 3절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잠잠히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 즉 관용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살다보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도 늘 마음이 부딪칠 때가 있지만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관용의 마음을 통해서 가정의 화목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 부부간에서부터 시작하여 부모자식간, 형제간, 그리고 이웃간에 선하고 올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하게 되고 이로써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미움과 증오로 가득차 있다면 우리 마음은 슬픔과 고통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과 행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서로를 동정하고 인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로 14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건강을 감사하고 관리

 소박한 행복은 우리가 누리는 건강을 감사하고 또한 주신 건강을 즐길 때 주어집니다. 우리가 건강할 때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종종 잊습니다. 건강을 잃고 난 후에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릴 때 행복합니다. 시편 103편 2절로 3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시편기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병을 치료받고 강건해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몸이 병들어 있으면 고통과 슬픔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늘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고 또한 우리에게 있는 건강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평소에 건강할 때 감사하지 아니하면 나중에 병들어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치료를 위해 기도하여도 응답은 요원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건강에 투자해야 합니다. 건강관리를 위해서 투자하지 않고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을 갖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깨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에 게으르지 않는 가운데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만 즐거워할 뿐 아니라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는 약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평안을 주면 양약이 됩니다. 그러나 남에게 근심을 끼치면 남을 죽이는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주의 은혜속에 있으면 주께로부터 오는 마음의 즐거움과 평안이 우리안에 양약이 되어 질병을 이기게 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움과 평안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식생활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 잘 먹고 많이 먹어서 질병에 걸릴 정도로 우리의 식생활은 풍족합니다. 그러므로 규모있는 식생활을 통해서 음식을 절제할 수 있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계문명의 발달로 도보로 이동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손상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운동과 함께 많이 걸어야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동안에 이 성전을 건강하게 보수하고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WHO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10∼30%가 고혈압을 앓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운동으로 체지방을 줄이고 야채는 많이, 소금은 적게 먹을 것을 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국립심폐혈액연구센터(NHLBI)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혈압을 막기 위해 하루 30분 이상 운동하고 체중을 관리하며 야채와 저지방 낙농 식품을 즐겨야 한다고 합니다. 하버드 의대와 오키나와 국제대가 25년간 세계적 장수촌인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 생활을 연구한 끝에 발표한 장수비결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신선한 물과 야채, 잡곡을 많이 먹고, 동물성 음식과 술, 담배를 줄이며, 운동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행복을 위해 우리는 먼저 식생활을 개선하고 운동을 하며 건강에 투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우리 몸의 건강을 진찰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병들었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병원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약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행복은 우리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탐욕을 버린 겸허한 마음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또한 선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를 잘 관리하는 삶을 통해서 소박한 행복을 누리게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다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안에서 탐욕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인내하므로 행복한 삶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원이 되고 예수님이 우리의 약이 되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을 통해서 치료의 은혜가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