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좋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더욱 풍성히 주시고 우리의 영적인 인격이 자라서 종국적으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천국에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주며 우리를 낭패, 실망케 하고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에덴 동산으로부터 원수마귀가 괴계를 피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아담에게조차도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손해다, 선악과를 따먹어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라, 그래야 네게 유익이 된다'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될 수 있는 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뜻은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좋지 않은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나쁜 것을 하라고 명령하실 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 이 뜻을 행한 사람은 누구든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귀한 뜻을 하나님께서는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 첫 째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에서 기쁨의 날은 적고 슬픔, 염려, 근심, 탄식, 고통의 날은 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실 까요? 사람이 정말 그 말씀대로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마음의 태도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밖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당해도 속으로는 기쁨의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밖에 눈이 내리고 설한 북풍이 불어도 나무의 뿌리는 살아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마음속에 기쁜 태도가 살아있으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의 삶에 위대한 힘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샘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습니다. 진리란 무엇일까요? 진리란 하나님을 알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이 진리입니다. 2천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쏟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대한 변화된 관계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란 무엇일까요? 그 관계란 것은 종교나 의식을 통해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하나님과 맺을 수 있는 관계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사함의 관계를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많은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시고 청산하시고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어주십니다. 그러한 위대한 은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원수관계가 다 사라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우리들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화목하게 된 증거로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보십시오. 절대로 '아버지'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로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신이 우리 속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붙들어 하나님의 품에 거하게 하시고 이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지혜, 지식, 총명, 위로와 능력을 받아 승리하며 살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속에 기쁨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할 때 기쁨이 끊임없이 넘쳐 나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성령은 기쁨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수많은 일꾼들이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핍박, 고통 그리고 죽음을 당한다고 하여도 그 마음속에 끝없는 기쁨을 가진 이유가 마음속에서 넘쳐 나오는 성령님을 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을 충만히 받기를 원하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며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또 기쁨을 갖게되는 이유는 하나님께 나와 치료를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의 치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강물같이 흘러나옵니다. 저는 어제 한 장로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장로님이 실업인 선교회에 나가 한 부부를 만났습니다. 부부 중 남편이 암에 걸려서 6개월 내에 죽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은 시간이 흘러 그 남편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업인 선교회에서 다시 그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살아서 건강하게 나왔더라고 장로님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큰 기쁨을 얻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병이 있습니까? 더구나 성인병은 약으로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병에 대한 공포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24시간 하나님의 치료가 넘쳐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신다고 믿기보다 24시간 하나님의 치료의 강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치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원천에 내가 노출되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병들 수 있겠습니까? 병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넘쳐 나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나는 너희 병을 치료하는 야훼"라고 하셨습니다. 이 치료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나면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원천이 되십니다. 다윗은 노래에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 부족한 것이 없도록 채우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가시와 엉겅퀴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축복, 아브라함의 축복이 내게 와있음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과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차가운 인생 길을 걸어간다 해도 내 마음속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축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에 나는 내 운명과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는 천국이 우리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므로 천국이 내 것으로 준비되어있습니다. 이 세상 나그네 길이 끝나면 우리는 눈물과 근심, 탄식과 죽음,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앓는 것이 없는 천국으로 갑니다. 이 세상에서 있는 것을 다 빼앗긴다고 해도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값을 주고 사신 천국이 나의 것이 되어있으므로 이 안에서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도 기쁘고 죽어도 슬퍼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것은 기뻐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통해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서 생기는 넘쳐 나오는 기쁨입니다. 이것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 속에 기쁨이 넘쳐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오직 기도만이 우리의 육신을 떠나 영적인 세계와 교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는 하나님과 우리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고 신학을 공부하여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어떠한 개인도 기도를 쉬면 영혼이 죽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가 계셔서 좋은 말씀을 증거한다고 해도 교인들이 기도하기를 그쳐버리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24시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할까요? 먼저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잘못을 즉시 회개하여 청산해야 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막히기 때문에 죄지은 즉시 회개하여 씻어야 합니다. 성경엔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 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이 회개는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도 회개입니다. 늘 긍정적인 것을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나는 용서받고 의로움을 얻은 사람이다.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치료가운데 살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고 있다. 나는 영생을 얻은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새로워진 모습을 입으로 끊임없이 인정하는 이것이 또한 회개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자신의 죄를 청산하는 것,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자신이 예수님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시험을 치는 학생은 시험 칠 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사업의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또 부모로서, 자녀로서 우리는 우리 일생 생활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미래를 예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저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시각각으로 마귀는 귀신들과 함께 우리를 미혹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무장하여 원수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마귀로부터 건져주고 지켜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귀의 유혹에 빠져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올무에 빠져 낭패와 실망을 당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즉 하나님께 악한 자로부터 지켜달라고 보호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 형제, 자녀, 이웃, 우리 나라와 세계를 위해 우리는 기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대속의 기도를 할 때 그 기도는 강한 능력으로 역사 하므로 믿음이 약하고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우리의 기도를 통해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니 예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대속의 기도는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 가운데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고있으므로 늘 감사의 기도를 드려 하나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셋째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일에는 감사할 수 있지만 나쁜 일에는 감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도 범사이고 나쁠 때도 범사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음을 어둡고 부정적이며 파괴적이게 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마음을 밝고 환하게 하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같은 에너지를 사용할지라도 불평보다는 감사가, 탄식보다는 찬양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강제적으로라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실 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고난을 통해 평안과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당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반드시 불과 물을 통하게 하신 후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고난을 통한 후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 우리가 원망, 불평 그리고 탄식해 버리면 축복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파멸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왔을 때의 하나님의 뜻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는 마른 광야가 있었습니다. 이 메마른 광야를 통할 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을 알고 감사하며 찬양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2주일 내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사건건이 트집을 잡으며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조차 견디지 못하시고 그들을 고난의 땅에 내던지시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올해보다 나아질 수 있는 그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이를 잊지 마십시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해야만 잔이 넘치는 생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황금 보석 길, 꽃밭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장미꽃도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고난의 길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이 다가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형들에게 버림받고 팔리기도 했으며 오해를 받아 보디발의 집에서 쫓겨나 시위대 뜰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장작 13년의 고난의 길속에서 요셉은 그 마음이 완악해져 원망, 불평, 좌절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그 고난의 길을 통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어떠한 고난을 당하시더라도 주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그 고난의 길이 영광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영광으로 가는 길에 원망, 불평해버리면 그 영광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이끌어주십니다.
또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화선입니다. 여호사밧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적하여 싸울 수 없는 군대와 싸울 때 그들은 원망, 불평, 탄식하지 않고 성가대를 조직하여 앞세우고 적군 앞에서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당기는 도화선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감사와 찬양을 하자마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적군들이 서로 혼전하여 싸웠고 그 결과 적군이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당하고 가정에 환난, 고통, 시험이 다가오면 그 때는 하나님의 도화선을 끌어당길 때입니다. 이 때 원망, 불평, 탄식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쫓아버리고 마귀의 일을 조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혼란과 고통, 괴로움이 다가올 때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의 도화선을 끌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벼락치듯 마귀의 일은 파괴되고 슬픔대신 기쁨이, 혼돈대신에 질서가, 절망대신 소망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빌리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인간적으로는 그들만큼 절망하야 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잡히어 굶주리고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빈대와 벼룩이 와글와글한 감옥에 갇혀 차고를 차고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히 찬양을 드렸을 때 그 찬양은 하나님의 도움을 이끄는 도화선이 되어 옥토가 진동하는 지진이 일어나서 차고가 풀렸고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묶인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실한 자유와 은혜를 얻기 원하신다면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십시오. 울면서 몸부림치며 감사하고 고통 가운데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도화선이 되어 하나님께서 불을 지피실 때 모든 원수의 진을 회파하는 다이나마이트로서 우리의 환경 가운데 폭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나 원망하면 그것은 마귀의 일을 조장하고 하나님을 쫓아내는 일이 되므로 결국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멸망당하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감사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는 연기가 될 수 있지만 감사는 향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들으시며 누구와 함께 일하시겠습니까? 원망과 불평, 탄식하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감사의 제사를 드려 향기가 넘쳐나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찬양과 감사하는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들의 제사를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능력의 손길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이 나그네길을 가는 동안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여 삶의 근원적인 힘을 얻는 것-절대로 좌절하지 않는 것, 범사에 기도하는 것-늘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게 하는 것과 늘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좋아서, 좋지 않을 때는 좋게 만들어주실 것을 알고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의 삶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생활 가운데 실천함으로 우리가 정말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항상 기뻐하는 태도를 가짐으로 생활 속에서 낙심, 좌절하지 않고 배속에서 넘쳐 나오는 용기와 힘을 가지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도화선과 늘 연결되어 있게 도와주시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생활 가운데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것은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니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항상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 하셨사오니 이 뜻을 준행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