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

신앙의 재고정리

by 삶의언어 posted Apr 24, 2024 Views 5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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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앙의 제고정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 누구든지 한 해가 다 저물어 가는 이 때가 되면 잘 살아 왔던 못 살아왔던 지나온 일년을 되돌아보고 자기 마음속에 새로운 삶의 각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연말에 일년 사업을 정산해보고 수지결산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고정리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인 들도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 하나님 앞에 양심의 등불을 밝혀 놓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열어놓고 일년동안 나의 신앙생활이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를 회개하고 살펴보는 귀한 신앙의 제고정리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여러분과 함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신앙의 제고정리를 철저히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일년을 살면서 정말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서 살았는가?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일년동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사랑했느냐? 가짜로 사랑했느냐? 내가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반드시 지켰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아버지 사랑 안에 거하는 것처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나의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는 계명은 무엇일까요? 너무 잘 아는 십계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십계명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고 내가 과연 지난 한해동안에 이 계명을 지키며 살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는 일년동안 단군신을 세우려고 하는 무리들에게 적극적인 대처를 해서 반대를 했습니다. 단군을 국신으로 삼으려고 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교회적으로 일어나서 열렬히 반대했습니다만 과연 내 앞에 개인적으로 다른 신을 혹시 둔 적이 없는가? 내가 시험에 들어서 혹시 다른 종교에 가서 우상에게 절한 적이 없는가? 이러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에게 절은 안 했지만 혹시 내 마음에 보좌에 하나님을 앉혀놓는 대신에 내 부모나 형제,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라도 또 부귀 영화 공명이나 세상의 권력을 신으로 앉혀놓고 신앙은 하나님의 악세사리로 삼고 살았지 않은가? 여러분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탐욕의 우상을 네 가슴에 보좌에 앉혀놓고 탐욕의 노예가 되는 것은 무서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이런 우상 숭배를 했으면 그 탐욕의 우상을 오늘 박살을 내고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의 보좌에 앉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이름을 장난 삼아 쓸데가 많습니다. 혹시 망년회에 가서 혹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서 장난 삼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희희낙락한 적이 없습니까? 저도 어느 파티에 참석을 했는데 그곳에서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 중에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넣어서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섬뜩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지극히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호는 지극히 경건되고 거룩하게 사용해야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죄 없다 여김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했는데 우리는 우리 개인적인 사업 때문에 생활 때문에 능히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자기 개인의 일을 추구하지 않았었습니까?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나는 부모에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오히려 부모를 대적하고 공경하기는커녕 부모를 박대하는 그런 죄를 짓지 아니하였습니까? 눈에 보이는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단 말인 것입니까? 성경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실제로 칼을 들어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살인하고 싶을 만큼 미움과 원한을 가진 적은 없습니까? 성경에는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실제로 간음한 죄가 있는 사람은 물로 말할 필요 없이 철저히 이 죄를 회개하고 버려야겠지만 마음속에 혹시 추한 마음을 품고 마음속으로 범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신앙을 가장 근원적으로 파멸하는 것이 바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인 것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우리가 우리의 이웃 것을 도적질하지 않았나요? 선한 의미에서 빌려오고 난 다음에도 이것을 갚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도적한 것이 되지 않았나요?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이 해가 지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을 다 갚고 청산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네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회에 이웃 사람의 잘못 아닌 잘한 것조차도 나쁘게 보고 이것을 악행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말로 전달하지 않았나요?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웃의 집이나 재산을 탐하고 심지어는 이웃에 있는 자녀나 이웃에 있는 부인까지라도 탐한 적이 없나요?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는 손을 얹고 철저히 계명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인 것입니다. 계명은 바로 거울입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죄의 때가 묻었으면 곧장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죄를 짓지 아니한 의인은 없다고 말했었으나 또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기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거짓말한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 묵은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십계명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고 우리의 죄악을 오늘 이 시간에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나는 일년 동안 실천적인 믿음의 생활을 해왔는가? 이 사실을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신앙 지적인 신앙만 가지고 있으면서 행동이라고는 없는 신앙을 갖지 않았는가?
성경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요.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윤리와 도덕적이 면에서 실수를 많이 한 사람이지마는 그는 신앙은 실천하는 행위의 인물로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가 되어 나은 아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귀엽고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을 때였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청천 벽력같은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네 외독자 이삭을 잡아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제물로 드려라" 이것이야말로 어느 부모든지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 그는 자기 아내 사라와 의논하지 하지 않았습니다. 사라의 믿음이 약하다면 한사 결단으로 아브라함을 부여잡고 그 일을 못하게 하기 때문에 자기 아내하고도 의논하지 아니하고 아들하고도 의논하지 아니하고 이삭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지내러 모리아산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하루 길을 걸어가서 여관에서 자면서 그는 잠자는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칼로써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귀하고 아름다운 아들을 잡아서 각을 떠서 장작불로서 태워서 그리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 폭풍우가 그 영혼 속에 불어왔을 것입니다. 이틀 길을 걸어가고 또 여관에서 하루를 자고 사흘째 되는 날 모리아산 산밑에 와서 종들을 두고 그는 자기 아들 이삭에게 정작을 지웠었습니다. 손에 칼을 들리우고 불을 들리우고 올라가는데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여기에 칼도 있고 불도 있는데 제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야, 재물은 하나님이 예비하신다." 그 두 사람은 산에 올라가서 함께 힘을 합쳐서 제단을 다 만들고 난 다음에 아버지는 급기야 아들에게 달려들어 아들을 묶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아들을 제단에 얹어놓고 그는 날카롭게 갈은 칼을 빼어 들고 하늘을 높이 들어 아들을 내리치려고 할 찰나에 벽력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마라 네가 네 아들 네 외독자도 아끼지 않고 내게 내놓았으니 내가 내 이름을 가지고 맹세한다. 네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창대케하고 창대케하리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고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데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축복을 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 가운데 빌립과 안드레의 믿음도 보십시요. 예수께서 광야에 나가서 수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병을 고쳤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도취돼 있다가 해가 지매 배가 고팠었습니다. 그들은 배가 고파 허기져서 쓰러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놓으시고 난 다음에 그 중에 빌립을 지적해서 "빌립아,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학자였었습니다. 종교가였었습니다. 실천성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당장 예수께 말씀하기를 "주여,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먹이려고 하더라도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이 필요합니다. 돈도 없고 떡 살 공장도 없습니다." 먹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해결하겠지. 그러나 그 중에 안드레만은 실천성 있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나가서 군중들 가운데 가면서 떡이 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았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점심 도시락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서 그것을 가지고 예수께 나왔었습니다. "주여, 이 많은 사람에게 이 떡과 이 고기가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만 주께서 기적을 베푸시면 할 수 있나이다." 주님께서 빌립을 제껴놓고 안드레의 편에 와서 그것을 받아 실천 있는 신앙 위에 축복하여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만 명을 배불리 먹이고 나니 열두 바구니가 남은 것입니다. 안드레는 신앙의 실천이었습니다. 전에도 안드레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서 구원받았었을 때 즉시로 그는 가서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형제여 너도 가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자고 간청을 해서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한 것도 바로 안드레였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드레야말로 신앙의 실천인 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나는 과연 믿음 실천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과연 매일같이 하나님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기도생활을 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주일 교회 갔다가는 성경말씀에 먼지가 쌓이도록 성경말씀은 선반에 얹어놓고 기도는 눈곱만큼 하고 그러고도 예수 믿는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신앙인 이라면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생활을 해서 하나님이 알고 마귀가 알고 가정 식구들이 다 알 수 있는 그런 신앙생활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 나는 과연 살면서 내 가족들과 내 이웃, 친지, 나와 함께 일하는 일터에서 다른 사람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전도했냐는 것입니다. 일년을 살면서도 자기 입을 한일자로 테이프를 붙여놓고 자기만 믿고 남에게 예수란 말 한마디도 전도하지 못하는 벙어리 신자가 아니었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했는데 자기 입으로 한마디도 전도하지 못하고 시인하지 못하므로 자기 구원까지라도 희미한 등불처럼 사라져가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오는 것이 부끄러워서 성경책을 보따리에 싸 가지고서 교회에 왔다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난 다음에는 다시 보따리에 싸서 나갑니다.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이 부끄러워서야 어떻게 천당을 가겠습니까?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일년을 살아가면서 나는 교회 와서만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교회밖에 나가면 한번도 입을 열어 전도하지 않는 실천성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은총과 축복을 달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너를 시인하겠거니와 네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나님과 천사 앞에서 너를 부인하겠다"고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진실로 한해를 살면서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고 살았습니까? 또 십일조, 십일조라고 말하는데 제가 십일조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물질입니다.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엔 다 물질에 현혹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기를 네 물질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소속한 십일조를 도둑질하고도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 십일조에 하나님께서 신랄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라기 3장7절로 9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니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 아닙니까?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돌아오는 조건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림으로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로 돌아가리라고 하셨으니 오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십알조와 헌물을 도적질하고서 아무리 기도한들 그 기도가 어떻게 하늘에 상달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도둑놈의 기도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십일조를 드리고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내가 네게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그의 대한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제물을 도적질하고 하나님이 섭섭하게 여기셔서 마음을 돌리고 있는데 철야하고 밤낮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모두다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 도적질하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너희 온 나라가 저주를 받았다 오늘 사람들은 애쓰고 힘써서 좋은 집도 짓고 좋은 물건도 갖다 놓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지마는 그 집이 저주를 받았고 물건이 저주를 받았고 생활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옛날보다 더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더 많은 고아들이 생겨나고 범죄가 더 많아지고 불행한 사람이 더 많아지는 이유가 왜 그렇습니까? 눈으로 보기에는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놓지마는 하나님의 저주가 같이 따르고 있기 때문에 축복과 행복은 사라져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의인의 적은 재산이 악인의 많은 물질보다 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적게 가지고 있더라도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서 살면은 그곳에 젖과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생활에 저주를 제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실천적인 신앙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살았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그 여러분의 생활 속에 붙은 그 저주를 떼버리기 위해서라도 회개하고 새해에는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질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셋째로, 나는 일년동안 긍정적인 인생관을 갖고 살았는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며 좌절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하고는 절대로 같이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가데스 바냐에 왔을 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서 40일을 정탐하고 오게 했는데 그 중에 10명은 인간적인 척도로써 사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이 산은 높고 골은 깊고 땅은 주민을 삼키고 성벽은 크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네피린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가 살아서 우리가 스스로 비교해봐도 여치새끼 같더라.....땅에 바래지게 만들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눈으로써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는 말이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더라 우리 그 땅에 들어가서 점령하자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이 갈렙, 여호수아는 40년 광야의 방황에서 살아나서 그 후손들과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비관적으로 인생을 보려면 얼마든지 그 재료가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 가운데 나는 못산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절망이다. 나는 비관적으로 본다. 그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정적으로 국가, 사회적으로 비관하려면 비관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통해서 인생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면 또 얼마든지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으로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는 그 사람하고 하나님은 같이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서 퍽 우려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5천년 역사 가운데 억센 역사의 도전을 이겨온 민족인 것입니다. 5천년이나 살아오면서 이겨온 이 역사적 도전을 현재 20세기에 와서 다가오는 도전을 우리 민족이 이기지 못할 리가 만무합니다. 더구나 우리 한국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만 명이나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와 같이 있겠다고 했는데 일천 만의 성도가 주야로 하나님을 부르짖는데 이 땅에 하나님이 같이 안 계실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나는 확신하지만 말세에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선택하여 제상의 국가를 삼아서 아시아의 황금시절에 온 아시아 전역에 세계 만방에 복음을 증거 할 제상의 국가로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 아들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신학적인 면에서 우리 조국과 민족을 바라볼 때 우리 조국과 민족에는 창창한 미래와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소련과 중공과 극악한 이북의 괴래집단을 머리에 이고 있고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도 많고 경제적으로 국제경쟁에서 시련이 많지마는 우리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이 모든 것을 능히 이기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살아갈 수 있다고 저는 희망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저버리지 아니하면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여 주셔서 우리의 내일을 찬란하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살펴보고 싶은 것은 우리는 진실로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왔느냐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보좌를 확실히 점령하고 있었는가 정말 나는 나라를 사랑했는가, 여러분 나라 없는 민족의 슬픔을 보십시요. 유대인들은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방황하면서 가는 곳마다 핍박을 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2차 대전 때는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 명이 학살을 당해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것은 나라가 없는 민족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월남을 보십시요. 그렇게 나라가 있을 때 나라가 부패하고 날이 지고 날이 새도록 계속 학생들의 데모, 종교인들의 데모로 나라가 뒤엎어져서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나를 잃어버린 월남 난민들이 배를 타고 남진 하에 떠 있어도 누구도 구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천대와 멸시를 당합니다. 우리는 비록 붉은 이리떼에게 북반구를 강점 당했지마는 그러나 우리가 발붙일 나라가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 나라는 남의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이기 때문에 내가 공중도덕하나라도 지키고 공공 기물하나라도 아끼고 사랑해서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땅에서 잘살고 우리 후손이 잘 살수 있어요. 나라를 위해서 내가 세금을 바칠 것은 세금을 바치고 공세를 바칠 것이 있으면 바치고 군대의 의무도 다하고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진실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살았냐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잘 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나만 잘 살 것이 아니라 우리 다 함께 잘 살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한국 땅을 보면 비위생적으로 만드는 간장, 농약을 쓴 콩나물 같은 부정 식품을 만들어 가지고서 사람들은 죽던 말던 자기만 돈을 벌면 된다는 악덕 상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사형제도를 동의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한사람이지마는 나는 부정식품을 만드는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썩은 간장을 만들고 농약을 넣어서 콩나물을 만들어서 이를 먹은 사람들이 암이 걸리고 생명이 단축 된데도 남을 희생해서 돈 벌겠다는 악덕스러운 상인들, 부정식품업자는 반드시 근절되고 이런 사람들은 사형에 처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함께 잘 살아야 돼요. 남을 희생하고 그 희생의 피의 대가로써 자기만 잘 살겠다는 무리를 우리의 집단에서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한 그 계명을 우리는 지키고 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우리는 자연 및 생태계를 사랑했는가 물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해요. 사람은 나무하고 풀하고 같이 살아야 되고 벌레하고 꿩이나 토끼나 노루하고 같이 살아야 돼요. 여러분 자연이 왕성할 때 사람도 잘 살게 돼요. 사람이 잘못 살게 되면 자연도 폐하고 말아요. 나는 나무를 쉽게 베어서 내팽개치는 사람 보면 분노를 느낍니다. 나무 한 그루 키우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20년, 30년이 걸립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나무를 그냥 단숨에 도끼로 찍어서 화목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나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참을 나라가 흥하려면 자연을 사랑해야 되고 생태계를 사랑해야 돼요. 한강 물이 악덕기업주들 때문에 죽어간 것을 잘 알지요? 공장 폐수가 흘러 들어와서 물고기가 다 죽어버리고 그리고 오리 떼가 다 날아가 버리고 철새도 없는 죽은 한강이 되었을 때 여러분 서울은 얼마나 삭막하고 서울 자체가 죽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지 않았습니까? 한강 재개발로 말미암아 이제 이와 같은 물들을 정수를 하고 하수도를 처리하고 그렇게 해서 물고기가 다시 살아나고 철새가 돌아오고 한강 물이 살아나면 서울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여러분 혼자 못삽니다. 사람은 나무와 풀과 같이 살아야 되고 사람은 새들과 벌레들과 같이 살아야 돼요. 이것이 자연 속에 우리가 찬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생태계를 정말 사랑해야 됩니다. 서울시내에 토끼가 뛰어 놀아야 되는 것입니다. 서울 시내 길거리에 노루가 가도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은 토끼나 노루가 가면 어디에서 모가지가 터질지 모릅니다. 자연과 생태계가 함께 살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나는 우리 한국에서 개발한다고 하면 불도저를 가지고 와서 언덕도 무너 버리고 나무들도 무너뜨리는데 가슴이 메입니다. 선진국에 가서 여러분 도시 개발하는 것 보면 나무가 있으면 나무를 피해서 집을 짓습니다. 아름다운 언덕이 있으면 언덕을 피해서 집을 지어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하나님이 만든 것인데 이걸 사랑하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러므로 우리는 자연과 생태계를 사랑하지 못한 죄도 회개하고 새해에는 나무 한 포기, 풀 한 포기 그리고 무해한 동물까지라도 사랑하면서 함께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노라고 외치셨습니다. 회개란 자기 잘못을 뉘우쳐버리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서 여러분 새로운 삶과 축복이 이루어질 수 없고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천국이 그 마음속에 이루어질 것이요 가정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요 한 사회와 나라가 집단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천국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주팔자가 좋아서 잘 살게 할 것이다. 무슨 운 띠를 만나서 잘살게 될 것이다. 그런 웃기는 소리를 하지 마십시요.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서 축복이 올 때 운 띠가 필요하고 사주팔자도 펴지는 것이지 회개하지 않은데 자연적으로 운수대통이라 그런 어리석은 미신을 우리는 믿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해를 보내면서 이 하나님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 마음속에 크게 회개하고 변화를 받고 돌이켜서 새해에는 하나님이 축복을 줄 수 있는 우리 모두다 그릇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도 뻔뻔스럽게 살았었습니다. 그러고도 필요할 때는 주의 이름을 남보다 더 목청을 돋구어서 불렀었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했는데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명은 어긴 것이 너무나 많았으니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지적으로 믿었지 실천성 없는 신앙으로 말씀도 기도도 등한히 하고 전도도 등한히 했으며 십일조 도적질한일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데 죽은 믿음을 가진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괴롭힌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도 나라도 이웃도 자연도 착실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들을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 살기 바쁘고 급해서 그렇다고 변명을 하지마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 사니까 그렇게 세상이 살기 힘들고 급하지 않습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더하시리라고 해주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아버지 새해에는 진짜로 믿는 사람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