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1∼5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해야 복을 누려
천국·위로·땅을 기업으로 받을 특권
세상에는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평생 고생하지 않고 남의 덕에 잘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한평생 뼈빠지게 고생만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운명적인 복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순종하여 믿고 받아 누리면 받을 수 있는 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주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복은 천국을 소유한 복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올라가는 것이지만 이 땅에 살아있을 동안에도 마음속에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의 놀라운 은총이 마음속에 강물처럼 넘실거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심령을 비웠다는 것입니다. 심령을 비워버린 사람이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아담은 심령을 비우지 못하고 마귀의 탐욕과 욕심으로 채웠습니다. 아담의 마음에는 마귀의 꾀임을 받아서 욕심과 탐심이 꽉들어차 있으므로 욕심과 탐심을 통해서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말하는 탐심과 욕심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에덴의 낙원속에 있으면서도 원망과 불평이 꽉들어차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천국을 잃어 버리고 지옥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가 죽어서 지옥가기 전에 이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그 마음속에 미움, 원한, 분노, 낙심, 좌절, 절망 등이 꽉들어찬 생지옥이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욕심과 탐심을 비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탐욕을 발동시켜 유혹하려고 해도 예수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왜냐햐면 예수님은 마음속에 욕심과 탐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마귀가 노크를 해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탐욕을 완전히 비워버린 것입니다. 40주 40야 금식하고 난후에 마귀가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아들의 권능과 지위를 사용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라고 했습니다. 단호하게 마귀의 탐욕을 거부하셨습니다.
또한 마귀는 예수님을 안목의 탐욕으로 유혹하려고 했습니다만 예수님은 지위나 명예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4장 6절에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마귀가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예수님과 높은 산위에 올라가서 세상 부귀 영화를 다 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이것을 네게 주겠다”고 했으나 이 또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 10절에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도 마음에 탐심과 욕심을 비워 버려야 되는데 어떻게 비울 수 있을까요? 욕심과 탐심을 주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비워 버리면 그속에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예수님이 들어오시고 성령이 들어오시고 천국이 들어와서 마음을 점령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되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잘못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욕심이 생기면 죄를 짓게 되고 죄가 깊어지면 죽음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로 19절에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과 탐심이 있을때 거기에 끌려서 시험에 빠지고 미혹되지만 욕심과 탐심을 회개와 자복으로써 비워버리고 하늘나라의 의와 영광을 구하면 마음속에 성령으로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의와 영광이 넘치게 되면 얼마나 행복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행복은 우리마음의 상태에 있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환경에 다 갖다 놓아도 마음이 지옥이 되어 있으면 행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천국이 마음에 있으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가 살다보면 시험과 환난을 만나게 되는데 마음을 비우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삶에 풍랑이 일어나면 욕심과 탐심의 짐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다를 건너던 배들이 큰 풍랑을 만나면 배에 짐을 먼저 다 풀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풍랑을 만나면 짐을 풀어야 배가 파선되지 않습니다. 욕심과 탐심을 회개하고 자복하게 되고 주님 앞에 부르짖게 되면 주님의 나라가 우리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도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되니까 우리가 깨어지고 회개하고 욕심과 탐심을 자복하면 성령이 도와 주셔서 우리 마음을 청소시켜 주시고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마음에 안주하여 계시고 천국이 우리 심령속에 임하게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이 결코 행복을 갖다 주지 않습니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지 환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불행한 이유를 이웃과 환경에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탐욕과 욕심이 없으면 이웃의 어떠한 어려움과 환경에도 우리는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이란 무엇입니까?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탄식하고 슬퍼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만하는 사람은 애통하지 않습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못나고 처참하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았을때 가슴을 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헝그리 정신(Hungry Spirit)’라고 말합니다. 심신이 배고픈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배고픔을 채우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8절에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상해서 자기의 부족함을 탄식하고 슬퍼하면 주님께서 와서 축복하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인 정근모 박사는 늘 ‘1등 인생’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마음에 애통함이 없었습니다. 경기중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후에 경기고등학교 시절에는 4개월 만에 월반하여 서울대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한 천재였습니다. 24살에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서 ‘꼬마교수’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얻고 미국의 과학계에 두각을 나타내는 놀라운 원자 전문학자가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하며 나아가던 어느날 갑자기 그의 아들이 신부전증으로 투병생활을 하게 되어 그에게 큰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부모에게 가장 괴로움은 자식이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자식의 신장이 망가져 신부전증이 되어서 죽어가는데 이 세상 1등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들에게 자기 신장을 떼주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 중생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의 질병으로 인한 애통함이 없었더라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젊은이가 성공합니다. 젊은이들이 놀러나 다니고 유흥업소나 들락거리고 돈이나 쓰고 좋은 옷만 입고 다니면서 애통함을 갖지 못한다면 그 앞날이 뻔합니다. 지금 웃고 즐기는 사람은 장차 울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가난하고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이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 뼈빠지는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통하는 성도가 성령충만하고 응답의 복을 받습니다. ‘내 은혜가 모자르고 내가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니 너무나 답답한 일이다. 좀더 하나님을 알고 좀더 주님의 은혜를 받고 좀더 성령 충만하고 좀더 능력있는 삶을 살겠다’는 애통한 마음으로 새벽기도 나오고 철야기도하고 혹은 금식기도하며 부르짖고 외치고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은혜로 채워주셔서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성도, 애통하는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평양대부흥 100주년 대회를 위해서 모여서 기도하고 애통하고 있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100년 후에 우리 한국땅에 임하여 달라고 온 한국교회가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통곡하고 부르짖고 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위로가 임할 징조인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만하고 만족해서 부르짖지도 아니하고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결코 부흥이라는 위로를 허락하여 주지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 11절에 보면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한나가 말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가 심히 격분케 하므로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 앞에 애통하며 통곡한 것입니다. 브닌나가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한나는 애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첫째 아내고, 브닌나는 둘째 아내입니다. 둘째 아내는 아들을 낳아서 잘사는데 첫째 아내인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에 고통스럽고 괴롭기 때문에 성전에 올라가서 한나가 애통해 했습니다. 그결과 하나님께서 애통함을 들으시고 위로해서 사무엘을 주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때 여러가지 애통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혹은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사업 때문에 생활 때문에 고통이 다가와서 애통할 때 괴롭지만 그 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이켜 볼때 우리가 가장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은 때가 애통할 때였던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애통할 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응답해 주시고 체험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신앙이 한단계 발전한 것을 우리가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애통하기를 그치면 위로도 그칩니다. 우리가 서울올림픽이 있기 전에는 한국전쟁 이후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애통해 했습니까? 우리도 잘살아 보자고 도시나 농촌할 것 없이 얼마나 허리춤을 매고 고통을 당하면서 일하고 또 일했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 올림픽을 하고 난 다음 자만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애통하는 마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에 사치풍조의 바람이 불고, 노사분쟁이 일어나고 사회 구석구석마다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IMF가 오고 만 것입니다. IMF를 당해서 우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가슴을 치고 애통하고 허리춤을 줄이니까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오늘날 이 시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애통함을 잃어 버리면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내리막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애통할때는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위로하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엘 2장 12절로 13절 말씀에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큰 축복인 것입니다. 영육간에 애통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미래에 위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애통해야 되고, 육적으로도 애통해야 신령한 은혜도, 물질적인 은혜도, 축복도 다가올수 있는 것입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납고 힘세고 무자비한 자가 폭력으로 땅을 차지할 것 같이 생각됩니다. 반대로 착하고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양보하는 사람이 땅을 잃어 버릴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나운 자는 현재 이익을 손에 얻는것 같지만 하나님과 같이 하지 않습니다. 양보하고 빼앗긴 온유한 자가 잃어버린 것 같지만 하나님과 같이 하시기 때문에 종국에는 하나님이 축복으로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높이면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는 자가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유익한 것을 다 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얼마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취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악을 선으로 변하는 기적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1절로 2절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사나운 짐승들이 잘 살것 같으나 실상 사나운 짐승들은 수도 적고 험한 곳에 삽니다. 그러나 온유한 동물은 수도 많고 평탄한 곳에 삽니다. 양은 물고 찢을 이빨도 없고 받을 뿔도 없고 잘 뛰어갈 다리도 없습니다. 아주 온유한 짐승인 양은 뉴질랜드에선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사나운 짐승은 목자가 없습니다. 목자를 따를 이유도 없고 목자가 사나운 짐승을 끌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온유한 짐승은 목자가 끌고 다니기 때문에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목자로 삼기 때문에 하나님이 푸른 초장으로 푸른 물가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므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볼지라도 사나운 나라와 국가는 언제나 망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바벨론이나 파사나 헬라나 로마는 그 당시에 거대하고 사나운 나라였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흔적도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파사와 헬라와 로마에 포로가 되었던 약소국 이스라엘은 지금도 독립국가가 되어서 세계속에 우뚝 솟아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그렇게 사나운 나라들은 다 망해서 흔적도 없는데 그들에게 짓밟히고 고난당한 이스라엘 소수민족은 지금도 나라를 세우고 독립국가를 세우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교훈을 보아도 알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이 온유럽을 다 석권할것 같았지만 나라는 망했습니다. 일본이 사납게 일어나서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온 대동아를 다 점령하였지만 망해버렸습니다. 온유한 나라들이 짓밟히고 죽는 것 같지만 다 살아 일어나고 부활한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공산화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가하고 괴로움을 가해 왔습니까? 그러나 공산주의는 70년만에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나운 개인이나 민족은 반드시 망합니다. 시편 76편 9절에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온유한 자의 목자는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의 편에 서서 일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결국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9절로 11절에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야훼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과 대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나운 자를 대항하시고 심판하시고 온유한 자는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주님 자체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주님은 자기를 붙잡아 가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고 때리는 사람에게 얼굴을 돌리고 수염이 뽑히고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따뜻한 분입니다. 로마의 군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납게 몰아치고 십자가에 죽여서 그들이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로마와 사나운 유대군인들은 온데간데 없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지금도 온세상에 우뚝서 계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천지를 점령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3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팔복 중에 세 가지 복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차별 없이 주기 때문에 우리는 깨닫고 배워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서 천국을 이땅에서 벌써 가지고 살고 애통하여 주님께 부르짖으므로 응답받는 위로를 우리가 체험하게 되고 온유하고 겸손해서 하나님을 믿고 따름으로 말미암아 결국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성공을 이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가짐을 우리가 가져야 그릇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준비된 그릇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마음에 욕심과 탐심을 다 비워 버리고 마음이 가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이 마음을 점령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가 마음을 점령하게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애통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더 많은 은혜를 받기 위하여 애통하십시오. 더 많은 은총을 받기 위하여 애통하고 부르짖으십시오. 위로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며, 송사하여 겉옷을 가지려면 속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는 온유하고 겸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그 편에 서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계시면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아무리 큰소리치고 주먹을 휘두르고 움켜쥐어도 아무 것도 하나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사나운 자는 온유한 자를 위해서 예비하고 준비할 따름인 것입니다. 이와같은 마음의 태도를 준비하는 그 사람은 내일이 있고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마음이 가난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애통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온유한 마음을 갖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세상 철학을 따르지 말고 세상 지혜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 마음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