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구원 (14)

by 삶의언어 posted Oct 08, 2024 Views 42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예수님
예배드린 날 2014-03-16
오늘의 성구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ifOkg7gGZKg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장 8∼9절

 

인류는 심판과 사망의 저주에 묶인 절망적 존재
구원은 오직 값없는 은혜와 믿음으로 얻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에 다른 길은 없어


 인간은 어느 곳에 살든지 어느 민족에 속하든지 구원을 받아야 내일의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해 빠져버린 절망의 수렁에서 나와야 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알게 모르게 모두 그 수렁에 빠져있습니다. 죄책의 수렁에 빠져 허덕이고 허무와 무의미의 수렁에 들어가 헤매고 죽음과 무의미의 절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인 인류는 죄의 종으로 심판과 사망을 받아 마땅한 절망적 존재입니다. 이 절망적 존재가 희망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이 죽음의 병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유전적인 죄짐을 짊어지고 살아온 우리들이 구원을 받을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1.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짐

 이 세상에는 종교가 참 많습니다. 기독교 뿐 만아니라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 온갖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종교들 모두 우리에게 구원을 준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보면 우리 기독교 이외에 어떤 종교도 진정한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교들은 구원에 어떤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일을 행해야 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고 영광된 일을 하여 그 대가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달려있는 가격꼬리표를 보니 그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쉽게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가면 가격꼬리표를 보지 않습니까? 때로 정말 기겁을 할 만큼 비싼 물건은 도저히 살 수가 없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꼬리표가 하늘에 닿도록 비싼 가격으로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대가를 미리 지불해 놓고 구원의 꼬리표에 우리의 이름을 딱 써 붙여 놓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려고 꼬리표에 가격은 모두 지워 버리고 우리의 이름을 다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가 잘났기 때문에 구원을 소유한 것도 아니며 잘 보였기 때문에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너무 너무 귀하고 값비싼 것이라 값을 따지면 우주를 주고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 예수님께서 그 값비싼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 죽음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고 산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디도서 3장 4절로 7절은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을 값없이 은혜로 받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값이 없다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은혜는 공짜로 선물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러한 값없는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하고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조건을 붙여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왔는지 묻지 않으십니다. 우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그 문제는 훗날에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화와 행함의 문제는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미래의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 할 일입니다. 구원은 바로 지금 조건 없이 받는 것이며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서 공짜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여러 가지 방해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 대신 일을 다 해버렸으니 너희가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데 행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잘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위한 비싼 가격의 꼬리표는 이제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로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너무 행복하고 그저 그저 감사한 일입니다.


 2.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믿음임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다 이루어 놓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너무 뚜렷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큰 은혜를 베풀어 놓으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20장 31절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몸 찢기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생수의 근원이 되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의 우물가에 계실 때 한 여인 물을 길러 우물에 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 대화하는 중에 저는 남편이 여섯이나 있었으나 마음에 만족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 우물을 마시면 결국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목마르다’는 것은 물을 먹지 못해 목마르다는 의미도 되지만 더 깊게는 이 세상살이에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여섯이나 있었어도 재미가 없다. 돈을 많이 벌어도 재미가 없다. 좋은 집을 지어도 그것으로 행복하지 못하다. 새로운 자동차를 사도 잠시 뿐이지 마음에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를 마시면 마음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만족과 기쁨의 강이 흐르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그 여인은 그 비밀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진정한 메시아인 것을 깨닫자마자 그 마음에 생수와 기쁨의 강이 넘쳐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의 신앙이란 형식과 의식에 매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나면 마음에 생수의 강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평안과 기쁨이 흐르고 즐거움과 소망이 넘쳐나는 큰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변화가 다가와야 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생기가 넘쳐나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생수의 강이 넘쳐흐를 뿐 만 아니라 생기가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권능이 마른뼈 같은 우리의 인생을 생기발랄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한 골짜기에 가셨는데 그곳에는 마른 뼈들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마른 뼈가 태산처럼 쌓여 있는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에스겔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아시나이다”하고 덜덜 떨며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너희 마른 뼈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야훼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야훼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라고 대언하기를 명하셨습니다. 

 에스겔이 그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그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돼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에스겔에게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라고 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고 곧 살아서 일어나더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사는데 생기가 없어 기가 축 늘어지고 소망이 없고 기쁨이 없을 때 생기의 근원되신 예수님께 기도로 말씀하십시오. “예수님! 주님께서는 저의 생기가 되시니 제 속에 들어와 주옵소서! 생수가 넘쳐흐르고 생기가 넘쳐흐르게 해 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속마음부터 달라집니다. 구역질나던 세상이 사라지고 마음에 생수의 상쾌함과 생기의 즐거움이 넘쳐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정말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얼마나 가깝습니까? “아버지”라고만 하지 말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 이 얼마나 허물없이 다정합니까? 우리가 “아빠 아버지! 저와 같이 계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하면 우리의 아빠 아버지이신 좋으신 하나님께서 “오냐! 사랑하는 내 자녀야!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라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에베소서 1장 13절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성령은 반드시 우리 안에 와서 거하십니다. 성령은 생수이며 생기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으로 인해 우리 안에 생기와 생수가 넘쳐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악한 마귀의 세력도 다 씻겨나가고 죄악도 다 씻겨나가고 절망도 씻겨나가고 소망의 생수와 생기가 넘쳐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인정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 모두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그렇게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와 동행하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은 성령을 모시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활동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그러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3절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참으로 간단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은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은 금식이나 훈련이나 수행을 통해 얻는 열매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이미 그 믿음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으면 이 말씀대로 우리의 집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셔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고 그 말씀이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영국의 기독교 문학가인 루이스(C. S. Lewis)는 누군가에게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해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 중 기독교만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은 바로 은혜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종교에는 은혜가 없지만 기독교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이 은혜가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구원을 말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우월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3.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

 우리는 이제 인간적인 어떤 수단과 방법 아니 그 무엇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장 30절로 31절에도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그 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좌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혜가 우리의 지혜이며 예수님의 의로움이 우리의 의로움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거룩함이 우리의 거룩함이며 예수님의 구원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인간의 행함의 구원의 조건에 포함되면 대가성 구원이 됨으로 자랑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정한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주 안에서 절대로 자랑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을 자랑해야지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적인 사상과 행함에 근거한 종교나 철학이 아닙니다. 구원은 단지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받은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받았지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주시고 믿고 감사하는 자를 품에 품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그저 하나님의 이러한 놀라우신 호의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선물로 주셨으니 우리는 감사할 것밖에 더 행할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감사뿐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더 감사할 수 있는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 세상의 인간들에게 구원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 받아야 됩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금욕을 해야 된다. 고행을 해야 된다.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며 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은혜와 선물이라는 두 단어에 실려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가만히 서서 입을 딱 벌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은혜이며 선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가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구원은 주시는 이의 호의에 의하여 거저 주시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는 첫째는 믿음으로, 둘째는 믿기만 하면, 셋째는 오직 믿음만으로 받는 보배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배들이 전부 우리의 믿음과 기도만을 쳐다보고 앉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격스럽고 기가 막히게 기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를 보시고 대단히 기뻐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보시기만 해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날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값없이 우리에게 은혜로 베푸신 선물을 누릴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항상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