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31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
죄로 인해 부패와 사망이 가득찼지만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만유를 회복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좋아하던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나 좋아하던 일이 성취되었을 때 마음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좋아하는 일만 있지 않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들, 환경을 늘 만나게 되고 슬프고 탄식하고 불행해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1. 행복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 빛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바다와 육지와 초목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새와 물고기와 곤충과 짐승들을 보시고 기뻐하셨으며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시편 104편 31절에 “야훼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야훼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기뻐하셨을 때 우리는 기쁨으로 웃으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좋아하고 기뻐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면 웃으며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동물들은 웃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웃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필립 얀시는 그의 책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에서 “인간은 최소한 세 가지 면에서 동물과 다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세 가지란 웃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일하는 것으로 모두 하나님과 닮은 모양이라고 얘기합니다. 데일 카네기도 ‘웃음 예찬’에서 “웃음은 인간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웃음은 “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고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웃음은 빌려서 웃을 수도 없고 도둑질하여 웃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웃음은 사람이 행복감을 느낄 때 속에서 자연스럽게 넘쳐나오는 것으로 이 웃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을 나타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은 환경을 초월하여 행복을 느끼고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후 3,4개월부터 처음 웃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가 웃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이러한 어린아이는 5∼6세 때 가장 많이 웃습니다. 왜냐하면 이때에 왕성한 신체발육이 이루어지고 또한 환경을 인지하는 사고와 마음이 발달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인격이 형성되어 능동적인 활동을 하며 자라게 될 때 가장 많이 웃는 것입니다. 또한 웃음은 근육, 폐, 성장뇌를 비롯해 평소 쓰지 않던 230여 개의 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극합니다. 그러므로 웃을 때 정상 세포가 활동하므로 심신이 더욱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후에 기뻐하시고 더 없는 행복감으로 크게 웃으신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하나님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므로 유쾌하게 웃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을 따라서 늘 웃어야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사건
오늘날 우리는 웃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국내 일간지들은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을 다루었습니다. 2003년 한 해 동안 음주로 인한 한국 사회의 경제 소비 비용이 24조 2700억 원을 넘었습니다. 이는 불과 3년 전인 2000년에 비해 62%나 증가한 것으로, 다른 선진국의 음주비용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보건대학원의 정우진 교수는 “음주 인구는 3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지만 주1회 이상 술을 마시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 비용이 증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기쁨을 잃어버린 자들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술에 의지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도 기쁨을 잃어 버리고 슬퍼한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이 세상을 마귀가 점령하여 부패와 사망을 가져왔을 때 하나님을 슬프게 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므로 사망과 부패가 점령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은 슬퍼하셨습니다. 극도로 부패하고 가증스럽고 사망으로 꽉 들어찬 세상를 바라보시고 하나님은 슬퍼하시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이 들어와서 악한 원수 마귀가 세상을 점령하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사람들을 미혹함으로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고 세상을 따라 멸망으로 가는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슬프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5절로 6절에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부패하여 어느 곳에서든지 썩은 냄새가 납니다. 가정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부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되고 문화가 향상되면 부패가 사라질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작년 12월에 국제투명성기구(TI)는 세계 69개국을 대상으로 ‘2005년 국제 부패측정조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나라마다 부정부패가 가장 심한 곳은 정당과 국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사대상 69개국 중 45개국에서 가장 부패가 심한 곳으로 ‘정당’을 꼽았고, 그 다음이 ‘국회’와 ‘법조’ 순이었습니다. 또한 교육기관의 부패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학원에서의 부패가 우리의 미래를 멍들게 하고 있다’는 별도의 보고서도 내놓았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 국가의 대부분인 48개국에서는 지난 3년 간 부정부패가 점차 늘었다고 대답한 반면 부패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다고 응답한 국가는 6개국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부패 아래 있는지를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세상은 아담의 타락이후 마귀의 지배하에 있게되므로 극도로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만연되어 있는 사망과 부패로 인해 하나님은 슬퍼하시고 또한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부패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났을 때 하나님은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멸망할 예루살렘성을 감람산에서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병든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할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오늘날 우리를 바라보시고 기뻐하심으로 웃으시기도 하지만 또 우리로 인해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일
그러나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좇아 인생과 세상를 구원하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오실 때에 하나님은 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크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만물을 다 포함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사람들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온 세상이 타락했을 때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고 하나님은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타락 후 대속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린 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마음으로 못박히신 것입니다. 그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마귀의 세력을 멸하고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 것을 보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11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대속의 사업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 8장 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고 따를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여기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영의 부모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관계와 같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잘되면 부모의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에게 반역하고 잘못되면 부모의 마음은 슬프고 불행해지고 또 부모의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들이 되게 하시므로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기뻐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4. 우리의 영원한 행복
사람들은 이 세상을 취함으로 행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얻음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전서 1장 24절 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 아름답고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모든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옛말에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을 가는 권세가 없다”는 말로서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신속히 시들어 버리고 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부귀와 공명이 극에 달한 솔로몬은 전도서 1장 2절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함으로 이 세상에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임을 알고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관계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일서 3장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돈과 쾌락을 추구하고 권력을 얻는 것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만이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한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안에서 끝없는 기쁨의 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 103편 2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기쁨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회생활 48년 동안에 제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때 헐벗고 굶주리고 환경이 어렵고 궁핍한 가운데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천막교회에 가마니를 깔고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춥고 덥고 굶주렸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의 샘이 넘쳐났고 이로인해 행복했던 것입니다. 시편 103편 2절로 3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슴속에 깊이 모시고 의심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내 구주로 고백하고 예배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기뻐지고 행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가정상담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행복한 우리집’ 5월호에는 깨진 가정이 행복이 넘치는 가정으로 변화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40대 남성이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는데, 그는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중학교 2학년의 아들을 둔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가출을 밥 먹듯 하고 상습적으로 본드를 들이마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는 풍족했지만 부부가 서로 물건을 던지며 할퀴면서 싸우기가 일쑤였습니다. 상담자는 그에게 자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부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교독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장보러 갈 때 혼자가지 말고 부부가 나란히 장보러 가라고 했습니다. 그 40대 가장은 상담자의 말대로 해보겠다고 돌아간 후 3주 후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소중한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아이들이 더 이상 가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기뻐했고, 9개월이 지났을 땐 밤늦게 공부하던 큰 아들이 “아빠, 제가 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 나가고, 말씀읽고, 함께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온 가족들이 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게 되므로 그 가정 가운데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되어 모든 불행이 사라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다가오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2절로 13절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야훼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준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우리의 행복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행복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행복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듯 행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철학자 중에 힐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인간 행복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적인 방법과 논리,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행복을 추구하려 해도 이는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그가 발견한 것은 성경을 읽고 성경 안에서 참다운 행복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힐티는 모든 사람들의 추앙받는 행복론자가 되었고, 77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복론’에서 “주 안에 있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며, 찬송하는 시간이 평화로운 시간임”을 확실히 깨닫고 증거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책상에서 빛 바랜 낡은 성경과 ‘영원한 평화’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논문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그리스도에게 있으니 파랑새를 잡으려 하는 허황된 행복론자들이여 어서 속히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만 인간은 가슴 가득한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밖에 있는 것은 다 거짓이요, 허위요, 마귀의 속임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전도자의 말과 같습니다. 물거품은 분명히 있지만 붙잡아 보면 그 속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요즘은 건강에 좋은 운동 중에서 ‘유산소 운동’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우리 몸에 산소를 충분히 섭취하면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심폐 지구력을 기르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건강을 촉진시키는 유산소 운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와 섬김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성령 충만한 성도가 기쁨도 행복도 충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멀리서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참된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알고 이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기쁨과 행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 넘치게 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게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모여 크게 기뻐하고 더 없는 행복으로 웃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