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장 9∼10절
예수 믿으면 마음속에 성령이 거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임해
천국을 대망하며 우리 삶에 하늘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풍성한 결실 누리게 돼
제가 1958년도에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충격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농부의 부인이 중풍으로 죽어가다 최자실 목사님과 제가 가서 전도하고 안수기도해 준 이후로 건강하게 나아 7년 동안 드러누워 있던 자리를 박차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그 부인이 제게 찾아와서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 선물을 좀 보내고 싶은데 하나님 주소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황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1.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유대인들은 삼층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은 히브리어로 하늘들이라고 복수 형태로 쓰입니다. 히브리인의 마음속에는 하늘이 삼층천으로 되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습니다. 대기층 하늘은 공중의 새, 구름, 공기, 수증기가 있는 성층권, 오존층, 중간권, 전리층 같은 이런 하늘입니다. 창세기 1장 20절의 새가 날아 다니는 궁창을 의미합니다.
그다음 둘째 하늘은 별들의 세계인 우주층 하늘입니다. 대기층이 아니고 그 위에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하늘이 있습니다. 우리 태양계가 소속한 곳은 은하성자입니다. 이 은하성자에 별이 2000억개가 있는데 우리 지구는 그중에 작은 별일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셋째 하늘은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셋째하늘은 영적인 하늘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 하늘이지만 셋째 하늘은 3차원을 뛰어 넘은 영적인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셋째 하늘에 갔다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에는 천사와 먼저 간 성도가 있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처소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로 2절에 보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분은 바울선생 뿐 아니라 사도요한도 올라갔다가 내려왔으며 그 이후로도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은 이 셋째 하늘에 올라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셋째 하늘인 영적인 하늘에 성도들이 접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주소가 어디 일까요? 예수님을 믿고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우리의 마음이 성전이 되고 그 마음속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와서 계시기 때문에 바로 하늘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소는 곧 우리 마음속이 하나님의 주소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로 21절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바울이 갔다 온 셋째 하늘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기도문 중에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 이후로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여 계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시고 난 이후로 주님께서는 하늘나라가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구원받은 우리 속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5절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임금이신 하나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면 나라가 우리속에 와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서 보좌를 배설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소가 바로 우리의 주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서 구만리 장천에 계시지 않습니다. 3차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개념으로 생각하지만 3차원의 세계를 떠난 4차원 이상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삼층천에 계신 하나님, 그 삼층천이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우리 속에 와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성 어거스틴은 “밖으로 나가지 말라. 내 자신에게로 돌아가라. 진리는 속사람 안에 거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아서 우리가 동분서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늘나라 임금인 예수를 구주로 모신 그곳에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2. 하늘나라가 임하옵시며
그리고 하늘나라는 또 어디에 임하시는가 하면 예배 공동체 안에 임하십니다. 성경에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안에 있겠노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 임금이신데 임금님이 계신 곳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혼자 집에서 예배드린다. 나는 산에 가서 혼자 예배드린다’ 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강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함께 모일 때 그 가운데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구역예배로 모입니까? 주일날 교회에 모이고 삼일날 교회에 모이는데 왜 구역에 모입니까? 우리 지역사회 속에 구역 원들이 함께 모여 하늘나라가 지역사회 속에 임하여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이든지 두 세 사람 이상 모여서 예배드린 곳에 하늘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보면 우리가 모여 찬양하면 찬양을 통하여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로 부흥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힘차게 찬양을 부를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힘차게 찬송을 부를 때 그 가운데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이한 점은 찬양에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찬양하고 두 세 사람 모여도 찬양하고 좋을 때도 춤추며 찬양하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치면서도 찬양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의 특성입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하나님의 보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이란 보좌에 왕림하여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딱 다물고 찬송을 안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지 아니한 증거입니다. 함께 기쁘게 박수치며 찬미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언제나 하나님의 큰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도 선교사로 갔던 스캇 목사님이 한번은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원주민 얘기를 듣고 그들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간단한 짐과 바이올린을 챙겨서 무작정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들이 나오더니 대뜸 창을 들이대며 목사님을 둘러쌌습니다. 시퍼런 창끝이 목 밑에서 번쩍였습니다. 목사님은 말 한마디 못해보고 ‘아,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찬양이라도 부를 심산으로 가지고 간 바이올린을 끄집어내어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가 36장인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 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을 눈을 감고 바이올린을 켜면서 불렀습니다. 그런데 1절을 부르고 2절을 부르는데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떠봤는데 놀랍게도 원주민들이 창을 전부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찬양 속에 하나님이 임재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하니까 모든 마음속에 적개심과 미움이 다 사라지고 은혜가 원주민들의 마음을 녹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빛의 나라이기 때문에 어두움의 나라인 귀신은 빛을 보고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힘차게 부를 때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회개기도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는 말씀처럼 천국이 아무리 우리 곁에 와있어도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속에는 천국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장독 뚜껑을 닫아 놓으면 장독 속에 물이 한방울도 안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로 20절을 보면 우리 문밖에 예수님이 서 계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안으로 모시기 위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마음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두 세 사람 이상 모여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합동으로 회개할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을 통해서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이 우리 한국을 휩쓸었습니다. 한국의 오순절이 바로 그때로부터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증거 중에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말씀 들을 때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하늘나라가 임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읽든지 말씀을 듣든지 말씀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9절과 23절을 보면 말씀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기 때문에 마귀는 어찌하든지 말씀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빼앗고 말씀을 못 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정을 변화시키는 것 중에 큰 능력이 말씀 증거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 많은 사람을 납치하고 살해했던 흉악범 막가파가 교도소에 있을 때 얼마나 흉악했던지 아무도 근처에 못 갔는데 장로님 한분이 국민일보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가 세상 뉴스를 보고 싶으니까 국민일보를 읽다가 선교란에 말씀을 접하자 말씀이 그 마음속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 장로님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 찾아가서 성경을 주고 구원의 도를 가르쳐 주었는데 막가파 두목이 말씀을 읽고 완전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사형을 받기 전에 300명을 전도해서 구원으로 인도한 기록이 있습니다. 말씀이 변화시킨 것입니다. 국가권력도 그를 재활시키지 못하고 변화시키지 못했는데 말씀을 통하여 그 일생이 변화되고 같은 교도소에 있는 300여 명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변화시킨 것입니다. 나중에 사형을 받는날 장로님을 청해서 기도를 받고 난 다음 “장로님! 제가 먼저가니 뒤에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천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말씀이 증거 된 곳에 하늘나라가 임하므로 오늘 우리가 말씀을 나누는 이곳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임재 중에 하늘나라가 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성령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말씀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는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임하고, 찬양할 때 임하고, 회개하고 기도할 때 임하고, 말씀을 전할 때 임하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할 때 하늘나라가 임하는데 이 하늘나라가 무슨 문자와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위엄이 따르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권세와 능력과 위엄은 죄인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하늘나라는 회개시키는 역사인 것입니다. 새카맣게 세상 때가 묻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오면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게 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보혈로 깨끗이 씻어주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하늘나라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죽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하늘나라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임하면 또한 귀신이 쫓겨나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귀신에 대한 소리를 별로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하신 사역 중에 가장 많은 사역이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주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가장 먼저 행하신 것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입니다. 열두제자와 칠십 인의 제자를 불러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했고 주님이 세상을 떠날 때 유언으로 남긴 것도 제일 처음 대목이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하던 그 당시와 똑같이 사단 밑에서 귀신들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수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하늘나라가 임하므로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귀신이 와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들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좌절,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내 심리적인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배후에 귀신이 와서 흑암의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있으면 귀신은 쫓겨 나갑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으면 병이 나아야 합니다. 병 고침은 바로 하늘나라의 기초입니다. 하늘나라의 기초는 치료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는데 치료가 없으면 그 하늘나라는 종이하늘나라입니다. 우리 속에 지금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습니다.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였으면 예배드릴 때 병이 나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치료하는 권세와 능력과 위엄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4장 23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자가 다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권세와 위엄과 능력입니다.
시편 103편 3절과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병 고치는 나라인 것입니다. 치료하는 나라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시면 영·육간에 가난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난은 하늘나라에 소속된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세상나라로 쫓겨났을 때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저주가 따랐습니다. 세상나라에서 하늘나라로 들어오면 하늘나라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속량하는 넘치는 은혜가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이 하늘나라인데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면 이속에서 저주가 낙엽 떨어지듯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를 위해서 내가 가난하게 된 것은 나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6장 14절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는 말씀이 하늘나라에 임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신 곳에는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풍랑은 원수마귀가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하였으며 시편 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속에 풍랑이 일어나고 가정에 풍랑이 일어나고 생활에 풍랑이 일어났었을 때 우리가 예배드리고 회개하고 말씀 듣고 찬양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나라 야훼 샬롬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오면 하늘나라 역사는 죽은 심령을 되살립니다. 한주일 내내 세상살이에 너무나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마음이 가라앉았을지라도 주일 교회와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 속에 들어오면 심령이 살아납니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나라가 떠나가고 마귀가 떠나가고 하나님의 생기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별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가슴속에 하늘나라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하늘이 우리 속에 임하여 있기 때문에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 버리면 우리는 눈깜박할 사이에 삼층천에 올라갑니다. 삼층천이 이미 우리 속에 임하여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셋째 하늘이 우리 속에 임하여 계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임하여 계시고, 예배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가 말씀들을 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할 때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와계신 놀라운 은총을 받은 것이 우리들입니다. 마음속에 하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의 영광이 임하여 있는 백성들이 우리들입니다. 마음속 하늘과 예배 공동체 하늘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하여 계시고 거기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고 그것이 하나님 영광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외로운 사람이나 버림받은 사람이나 짓밟힌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빛이 있고 하늘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빛이 있고 하늘이 있으면 흑암과 무의미와 공동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하늘나라는 이것이 이뤄지는 나라가 하늘나라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땅에 살면서 우리속에 하늘나라를 모시고 살고 하늘이 우리속에 임하여 있으니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시고 하늘나라의 속성인 회개와 구원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치료와 풍랑을 잠잠케 하는 것과 심령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열매맺게 됨을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배 공동체속에 임한 하늘나라로 인하여 변화받고 능력과 영광과 축복이 임한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