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by 삶의언어 posted Nov 13, 2024 Views 6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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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중생/회개
예배드린 날 2005-12-11
오늘의 성구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v-4TW1lPODA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아담의 범죄로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죽은 자
예수의 십자가로 용서받고 의인되어 영적으로 거듭나
오직 믿음으로 새롭게 된 것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해야


 이리가 양의 탈을 쓴다고 해서 양이 되지 않습니다. 돼지에게 사람의 옷을 입히고 넥타이를 메어 준다고 해서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근본이 달라져야 달라지는 것이지 형식을 바꾼다고 해서 근본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다는 것은 외면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아담의 자손인 이전 존재

 

 아담의 자손인 우리들은 성경에 말하는 옛것입니다. 이 옛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어떠한 것이기에 옛것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까?
 옛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화가 끊어진 것을 죽는다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과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습니다.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웃지 못하고 성내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는 산자와 대화가 끊어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이 죽어 버리고 대화가 끝나고 만 것입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 절하고 귀신과 점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또 옛사람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들입니다. 죄를 지었다는 것은 죄가 누룩으로 우리 생애 속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집에서 농주를 담는데 메주 같은 것을 쑤어서 쌀을 찧고 그 속에 넣으면 누룩이 퍼져서 완전히 부패해지고 그래서 술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룩은 부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속에도 죄라는 누룩이 들어오면 인격적으로 부패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죄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벌써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벌써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자마자 그 속에 누룩과 같은 죄가 유전되어 들어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탐욕의 종이 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도덕한 존재로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탐욕을 만족시킨다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옛사람인 것입니다. 옛사람은 심리가 자아중심적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있습니까? 자기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요,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기 때문에 자아중심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즘 리셋증후군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게임을 하거나 자료를 다운받는 젊은이들이 속도가 느려지거나 시간이 한참 걸리거나 문제가 생기고 작동이 잘 안되면 리셋 버튼을 탁 누릅니다. 싹 지워지면 새로 시작합니다. 여기에 늘 익숙해지니까 그들이 이제는 ‘모든 것을 리셋 할 수 있다. 결혼하고도 골치가 아프면 리셋, 싹 지워 버리고 그냥 헤어지고 새로 하자. 또 사회생활 하다가 거친 사람 있으면 미국에도 종종 학교에 일어나고 우리 한국에서도 군대에서 일어났지만 그만 총가지고 싸르르르 죽여 버리고 다 집어 치워 버리고 새로 시작하자’ 라는 생각들이 젊은이들 마음속에 오늘 유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서서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다 새로 시작하자. 이러한 증후군이 유행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부패한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심리현상인 것입니다.
 또한 옛사람은 육체적으로 병든 자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인간은 별수 없이 생로병사의 고리에 걸렸습니다. 태어났으면 늙고 병들고 죽는 고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 할 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시편 107편 10절로 11절, 전도서 5장 17절, 신명기 28장 59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옛사람은 항상 심신에 병이 떠나지 않습니다.
 또한 옛사람은 환경적으로 저주 아래에 있는 자인 것입니다. 환경의 저주라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은 그 이야기를 해도 모릅니다. 애들에게 옛날에 보리죽 먹고 나물죽 먹었다고 하면, “라면 끓여먹지 왜 굶었냐”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은 땅의 저주를 명령했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너희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것이라.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세계식량기구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2005 세계식량불안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한해에만 600만명의 어린이가 사망합니다. 이들은 기아로 인한 영양실조와 영양실조로 인한 면역력 약화로 이질과 폐렴, 말라리아 등 가벼운 전염병에 걸려서 사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1년에 600만명이 못먹어서 죽습니다. 그것도 영양실조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1년에 53만명의 여성들이 영양실조에 걸려서 임신 중에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사람은 영생의 소망이 없는 자인 것입니다. 죽고 난 다음 영원한 생명이 없으니까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일반 철학인 것입니다. ‘내일 죽을 것이다 죽고 난 다음에 하늘나라가 있는 것도 모르고 지옥 있는 것도 모르니 그냥 죽으면 그뿐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비참한 생각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도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렇게 하나님이 없는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죽으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자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속에 영생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

 

 우리가 예수 믿으면 새것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공동체의 머리로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류 공동체의 머리로 오셔서 인류를 대표해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모든 인류의 죄악을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속에 역사해서 성령이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거듭나서 하나님을 보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고 입으로 시인하자마자 성령의 생기가 들어와서 우리 죽은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와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오면 곧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죽은 영이 살아나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오므로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833년 진화론의 주창자였던 찰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진화의 흔적을 찾기 위해 식인종이 살고 있는 한 섬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식인종들을 관찰한 후, 이들보다 더 원시적이고 퇴화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희망도 없고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후, 다윈이 다시 그 섬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식인종들이 교회와 학교를 다니면서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존 페이튼이라는 선교사가 그 섬에 들어와서 예수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새것이 된 자는 영적으로 거듭나 삶의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무식한 사람이 성경 안에서 유식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얻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안에서 새것이 된 자는 영적으로 거듭난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들어와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가 자연히 거룩하게 됩니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부패하고 더러운 존재입니다. 죄가 누룩이 되어서 우리의 인격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그냥 부패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속에 들어오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고 성령이 와서 역사하는데 성령은 침체하는 영이 아니라 바람과 같이 움직이고 물과 같이 흐르는 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읽게 되고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여 우리의 영과 혼을 쪼개고 성령의 불이 우리의 마음속을 역사해서 죄악을 태우고 불의를 태우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었습니다.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속에 거룩함과 성결함으로 변화를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새사람이 되면 마음에 천국이 임하여 주님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은 예수 믿기 전에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의미가 없는 삶으로 공허하고 혼돈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환한 빛이 우리 마음속에 비취게 되는 것입니다. 빛이 들어오며 어두움이 사라지고 공허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천지가 환해지고 앞길이 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된 사람은 치료받고 부활의 희망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께서 영을 죄악에서 치료해 주시고 마음을 절망에서 치료해 주시고 육체를 질병에서 치료하는 치료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천국은 그 기반이 치료에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하시며 주님이 하신 일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평안을 주신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주의 나라는 치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인간을 고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다 병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새사람이 된 사람은 치료의 능력에 잠겨진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치료의 바닷 속에 잠겨진 사람입니다. 우리의 영육간에 치료의 생기가 우리 속에 충만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 동안 하나님의 치료의 은총 속에 살고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하늘나라 집으로 들어가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담과 하와의 자손은 처음에 울면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천당에 태어날 때는 울면서 태어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영원한 축복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이 우리 속에 들어온 사람은 아브라함의 축복이 들어와서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며 번창케 하리라”고 했는데 이 아브라함의 복을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에게도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십시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바라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이미 사망과 음부를 다 극복하고 영생을 얻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장차 영생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영생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을 보면 우리는 벌써 영생을 가졌고 영원히 거할 처소를 주님이 하늘에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가 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노력으로냐 믿음으로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처럼 이전 것을 벗어 버리고 새것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것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말하기를 서서히 노력해서 새것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절대로 사람의 노력으로 새것이 되지 못합니다.
 검은 피부를 아무리 수세미로 씻는다고 희어지지 않습니다. 죄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옛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옛사람입니다. 교육받으면 교육받은 옛사람이요, 수양과 도덕을 닦으면 수양과 도덕을 닦은 옛사람이지 새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서서히 노력으로 새것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장차 하늘에 가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미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 공동체의 머리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므로 말미암아 옛사람은 청산하고 이미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미 과거형세인 것입니다. 장차가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보라 새 것이 될 것이다가 아니고 새것이 되어 간다는 것도 아니고 과거현상인 새것이 되었도다 입니다. 우리는 새사람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되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옛사람은 지나가 버렸고 이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 말씀처럼 우리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새사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새사람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50%만 은혜받고 50% 노력으로 한다면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80%만 은혜받고 20% 노력을 해서 새사람 되려고 해도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99% 은혜받고 1%만 노력해도 새사람 될 수 없습니다. 100%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나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주님은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은혜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너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내가 깨달아 알아야 되고 이것을 마음속에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자기 모습을 가슴속에 받아들이고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늘 나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이미 옮겨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5절로 7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새사람이 된 줄로 이제는 마음속에 확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내가 새사람 안 된 것 같은 느낌을 의지하지 말고 인간의 이성으로 과연 내가 새사람이 될까 안될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 변함이 없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로 27절에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었음을 입으로 시인하시길 바랍니다. 늘 마음속에 ‘나는 아직 별 수 없어요. 나는 아직 죄를 짓고 있어요. 나는 아직 세상 사람이에요. 나는 아직 거룩하지 못해요’ 그런 소리하면 안됩니다. 마음속에 이미 깨닫고 내가 바라보고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6장 2절과 마태복음 10장 32절로 33절에 입으로 시인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시인하면 하나님도 시인하시고 우리가 부인하면 하나님도 부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시인하면 하늘에서도 네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시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을 보면 쉬지 않고 우리는 주님께 새사람이 된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옛사람은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어서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거룩하고 성결하게 되었습니다. 영육간에 치료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육간에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국인이 되었습니다. 소망차게 되었습니다. 입으로 시인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십자가 상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과거에 다 완성된 일입니다. 새삼스럽게 지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전에 주님이 다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되어 함께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함께 부활하여 새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래에 될 것이 아니요 지금 되어가는 것도 아니요 이미 예수님 안에서 다 이루어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옛사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성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축복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버렸고 거룩한 나라가 되고 하나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란 주님께서 다 이루어 놓은 것을 깨닫고 받아 들여서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해서 소유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수단과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일해 놓은 것을 우리가 깨닫고 우리가 이것을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고 시인하고 감사하면 새로운 피조물의 역사가 우리 생애 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를 다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끌어안고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우리는 노력해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쓰고 애써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미 변화된 우리 자신을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고 믿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므로 이루어지는 것이오니 모두다 새사람의 권능 속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