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4∼6절
인생의 길을 잃은 인류
에덴 동산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
우리의 삶과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길’입니다. 세상에는 오솔길, 황토길, 논길, 자갈길, 가시밭길, 신작로, 국도, 고속도로 등 수많은 종류의 길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의 형편과 정비례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서구 문명의 중심지였던 ‘로마’ 하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듯이 로마 제국의 문명은 이 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IT 강국’이라고 불리는 지금 우리나라의 도로 포장률은 98%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어느곳에 가나 사통팔방으로 길이 뚫리고 고속도로가 열리고 포장되어 있어서 교통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한 나라의 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의 형편과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1. 길을 잃은 인류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인생의 길을 잃어버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담이 살던 에덴 동산은 사통팔방으로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께 내어 쫓긴 이후로 길이 막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3장 24절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담이 천길, 만길,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에게서 가로막아 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는 비극적인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또한 그와 같이 하여 생긴 문제는 먹고 사는 길이 막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장의 호구지책을 위해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온 땅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를 내므로 땅을 개간해도 수확이 쉽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눈물과 고생, 가난과 괴로움이 그들의 운명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했으므로 그때부터 생로병사의 슬픔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신분도 정체성도 다 잃어버리고 천지간 재앙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나올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9절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야훼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청이 지난 해 말 발표한 ‘2005년 사회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먹거리 불안’, ‘범죄 불안’, ‘노후 불안’ 등 3대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05년 6월 통계청이 전국 3만3000 세대의 15세 이상 7만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 이상이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안전성을 믿을 수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50% 이상이 범죄 피해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경찰대 이웅혁 교수는 “일가족 살인 등 엽기적인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속에서 국민들의 공포감은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60세 이상 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노후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고 말해 노후에 대한 강한 불안을 표시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길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인류의 먹고 사는 길은 저주로 막혀 버렸고 이 저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은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적막함으로 꽉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2. 인류 역사는 길을 찾는 역사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인류 역사는 길을 찾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유토피아 또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모두 다 길 찾는 노력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타락한 이후 하나님과 영생을 찾으려고 애써 왔습니다. 그것은 종교라는 길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영생을 찾아보려고 몸부림쳐 온 것입니다.
세계복음운동(The Global Evangelization Movement)이 1999년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95.5%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혼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라도 말은 못하지만 가정예배에 와서 ‘손 모아’하면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하면 머리를 숙입니다. 또 ‘아멘’하라고 하면 아멘합니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영혼이 없으므로 영원의 세계를 사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말을 못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영혼에 대한 인식이 있으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장성하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95.5%의 종교인구 통계수치는 그것 자체로도 사람들이 영생을 얼마나 간절히 찾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의지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영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를 찾아 방황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므로 방황하게 되고 아무리 길을 찾아 보아도 모든 길은 전부 막다른 골목이요, 잘못된 길이요, 구불어진 길이요, 멸망의 길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정치를 통해서 에덴 동산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독재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온갖 주의를 다 동원해서 이 세상을 빈부귀천이 없는 잘 먹고, 잘 입고, 평안하게 잘 살 수 있는 에덴 동산으로 만들려고 노력해 왔지만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 아직 그 에덴 동산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 어느 곳에 가나 가난이 있고 질병이 있고 양극화 현상이 있고 그리고 부정과 부패가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과 학문을 바탕으로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이 함께 성장,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죄악성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이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얻게 된 유익함들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어 내는데 사용되고 문명의 이기들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될수록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리고 불안과 대량살상의 위험속에 처해 있고 마음은 점점 더 고독해지고 황폐해지게 되었습니다. 문명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만큼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어서 왜곡된 성격과 고독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과학문명을 통해서는 에덴 동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의학이 발달되면 건강을 얻고 무병장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망상입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언젠가 우리 몸은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이미 이 지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1975년 이후 평균 수명이 늘어나지 않고 있고 의학이 지속적으로 발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생명은 연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생명의 연한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신종질병이 자꾸 생겨나는데 ‘에이즈’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시카 윌리엄스가 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몇 가지 사실들」이란 책에 보면, 아프리카의 보츠나와 같은 나라에서는 에이즈 때문에 2002년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 수명이 고작 39살에 불과하고 2010년이 되면 27세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무한정 늘어날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수명은 늘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신종 질병이 속출해서 영생의 꿈이 허상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건강함과 장수의 꿈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꿈들은 예수를 믿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어야 금세에서 장수하고 내세에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는 에덴 동산을 찾아가는 길, 곧 지상낙원의 길을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했고 장차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문을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107편 10절로 12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단증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난 다음 인간이 아무리 정치와 과학과 종교와 철학, 의학을 통해서 이상향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길은 막혀버렸고 오히려 흑암속에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내가 곧 길이요
주님은 2천년 전에 오셔서 에덴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보여주셨는데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죄악의 막힌 담과 에덴 동산의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용서받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길을 잃어버린 인생들을 위해서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다 청산하시고 막힌 에덴 동산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에게 성결과 성령충만의 길이 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깨끗해지고 거룩해지고 성령충만해 질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되고 또한 성령을 보내 주셔서 거룩해 지고 성령충만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변화된다는 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낸 바 되고 함께 부활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이상 아무리 교육과 환경을 통해서 겉사람을 변화시켜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고 성령이 오시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치료의 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저주, 시기, 분노, 질투, 사악함이 꽉 들어찬 병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시는 길은 예수님을 믿을 때 열리게 됩니다.
말라기 4장 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오면 치료하는 태양의 광선이 비춰서 우리를 치료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치료하는 광선이 모든 사람들에게 비춰지게 됨으로 마음의 병과 육체의 질병이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장마철에 집이 눅눅하고 온갖 벌레가 다 있을지라도 햇빛이 쨍쨍 보이고 공기가 건조해지면 모든 병균들이 다 죽고 벌레들이 도망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광명한 빛이 비치면 그 치료하는 광선에 모든 마귀와 귀신들이 쫓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치료의 길이 되십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면 마음에 치료하는 광선이 비치고 내 몸속에 계시면 내 몸에 치료하는 광선이 비치고 우리 가정에 계시면 가정에 치료하는 광선이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치료의 길이 그리스도 안에 열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는 축복과 형통의 길이 있습니다. 복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주시는데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 받는 길이 되고 형통한 길이 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담의 모든 저주를 대신 갚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오는 길은 예수믿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축복과 형통의 길도 예수믿는 길이요, 영생 천국의 길도 예수믿는 길입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이 땅에서 잠시동안 살다가 육신의 장막집을 허물고 떠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으킴을 받아 하늘에 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우리를 앉게 하실 이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부활하사 영광을 나타내신 분은 우리 주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영생복락의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진리의 길입니다. 세상에는 거짓된 길, 진흙탕 길, 가시밭 길, 막다른 골목길이 많지만 예수님은 참된 길, 진리의 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십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금세와 내세의 생명의 길, 기쁨과 행복과 성공의 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대책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참된 삶을 위한 길이 되십니다.
4. 매일의 삶도 길 찾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길을 찾았으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항상 주님이 주신 길을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길을 찾아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삶의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서 앞길이 캄캄하고 갈 길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주님은 만세전에 이미 우리의 갈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가에 다다랐을 때 앞에는 홍해수요, 뒤에는 애굽군대의 공격을 받아 살길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통곡을 하면서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불러내어 죽이느냐?”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경우든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길이 예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길을 예비하는 것을 알고 있는 모세는 강하고 담대함으로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처럼 그 열린 길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항상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도록 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가 오른편으로 가야 될지 왼편으로 가야 될지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면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렇지만 고요한 호수가 흙탕물로 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처럼 탐욕의 흙탕물이 우리 마음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얻을 수가 없게 됩니다. 고요한 호수의 맑은 물에는 하늘의 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수양버들 나무가 비춰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고 잠잠하게 하여 주를 앙망하고 기다리면 성령님은 우리의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길을 잘못 선택하면 실패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서 인도해 주시는 길로 가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길을 예비하실 뿐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면 매일같이 주님이 인도해 주시므로 주님께 기도하고 기다려서 깨달음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믿는 사람을 위해서는 주께서 길을 예비해 놓으실 뿐 아니라 그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그 길을 가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라갈 때 마귀들은 우리의 길을 막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 땅으로 갈 동안에 광야에서 아말렉이 쳐들어 와서 거의 멸망당할 뻔 했습니다. 그럴때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서 싸우고 모세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언덕에 올라가서 전쟁을 내려다보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여 주셔서 힘을 더하심으로 아말렉을 쳐서 다 멸하고 그 길을 보호하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음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되다고 했는데 이 시온의 대로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시온의 대로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수님이고 이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우리는 잃어버린 옛 에덴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와 과학과 학문이 제시하지 못하는 그 길을 예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패하시고 모든 이들에게 주님품에 머물러 주님의 길을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를 용서와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에덴 동산에서 뛰어나온 이후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가 길이 되어 주신 것을 너무나 감사합니다. 길 되신 예수님!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슴속에 시온의 대로가 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의 능력을 의지하고 아버지께 복 받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