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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용서와 화해

by 삶의언어 posted May 08, 2024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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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중생/회개
예배드린 날 2008-02-17
오늘의 성구 창세기 50장 15절로 21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gHGd4bInm3Y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중략)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장 15∼21절

상처주고 상처받는 우리인생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 살아야


 아기가 걸음마를 내딛기까지는 약 1500번 넘어져야 된다고 합니다. 부모가 단번에 일어서지 못한다고 화를내면 그 아기는 낙심하여 영영 일어나 걷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부모 형제는 계속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용기를 주어야 어린아이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 가지 일에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약 21번의 실수를 통해야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 중에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면 결코 성공을 바랄 수가 없습니다. 자연도 산불로 새까맣게 타버린 산천을 용서하고 화해하여 다시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아 복구되는 것을 우리는 항상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용서하고 화해하여 새 출발을 해야만 합니다.

 

 1.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하나?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해해야 되는 것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요, 의무요, 특권입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인간에게 참 평화와 행복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 영화를 가지면 행복할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과 화해하기 전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악인인데 악인에게는 마음에 평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오셔서 우리 죄악을 담당하셔서 청산해 주신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용서를 받고 용서를 받아야만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수가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앞서고 화해는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한번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영원히 청산되고 만것입니다. 이제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으면 주님이 죄를 말갛게 씻어주시고 죄책감에서 해방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은 한없이 큽니다.

 비누를 쓰면 미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황인종이나 몸에 때가 묻어 더러워진 사람을 똑같이 씻어주는 것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한방울도 남지 않게 다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씻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굶어 죽은 세 살짜리 여아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아기의 장례식장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에 죽은 아기의 신발을 벗겨서 훔쳐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신발을 팔아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은 아기의 아버지였습니다. 20년 후,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수 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눈물로 회개하며 간증했습니다. “저는 20년 전, 제가 돌보지 않아 굶어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아기의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이었습니다. 그런데 벌레만도 못한 저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용서하여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유명한 부흥사인 멜 트라더 목사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해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해하면 파렴치한 죄인도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됩니다. 또 주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귀한 직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자기를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자기가 너무나 못나 보이고 밉고 탄식스러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너무 싫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72년을 살면서 자신이 미울 때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얼굴 보기도 싫어 세수할 때 얼굴도 안쳐다보고 세수만 하고 얼굴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비하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가질 때 극히 불행했습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고 자기와 화해하지 못하면 이런 불행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야 이웃도 사랑하고 자연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처자도 사랑하고 남편과 자식들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았으면 그 다음 아무리 과거에 자기가 못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빠진 자화상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을 용서하고 자기를 화해하고 자기를 끌어 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9장 17절에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하셨으며 히브리서 8장 12절에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와 화해하고 자책을 그치고 용기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10년, 20년 전에 지은 죄를 지금도 회개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또 회개를 하고 또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 회개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자백하면 한꺼번에 용서해 주십니다. 용서받은 죄를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하도록 하는 것은 마귀가 양심에 가책을 자꾸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한번 용서받으면 영원히 용서받은 것입니다. 한번 회개한 죄는 다시 범하지 않는 이상은 회개하지 마시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반성은 해도 자책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3.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으면 이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외과 의사 선생님의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한 여자가 왔는데 진찰을 해보니 유방암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어떤병을 앓았는가 물어보니 그는 제일 먼저 갑상선 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습니다. 얼마있지 아니하여 간암에 걸려서 또 수술했습니다. 또 얼마 있지 않아 자궁암에 걸려서 수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이 “당신 지금 유방암을 수술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다른 암에 걸릴 것입니다. 이 암은 몸이 나빠서 암이 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병이 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마음에 무슨 병이 있습니까?” 물으니 그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남편은 북한에서 내려온 혈혈단신 피난민이었는데 그와 결혼을 해서 우리는 잘살아 보겠다고 건축 노동장에서 시장에서 온갖 장사를 다 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집도 하나 마련하고 남은 돈은 중견 건축회사에 투자를 했는데 그만 부도가 나서 사장이 달아나고 돈을 다 날리고 있는 집도 빼앗기고 단칸방 월세집에 들어가서 남편과 애 둘을 데리고 사는데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너무나 미워서 이가 갈리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 남편은 탄식하고 울고 고통을 당하다가 혈압이 높아져 뇌일혈에 걸려서 지금 중풍병자가 되어서 집에 드러누워 있고 학교 다니던 두 아들, 딸은 학교도 못가고 그 비좁은 자리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때 나의 마음이 갈갈이 찢어지고 원한에 사무치고 이가 갈리고 그 건축회사 사장을 만나면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이 “그것은 사람이 마땅이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만 당신이 그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이 방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암을 유발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갑상선암, 간암, 자궁암, 지금 유방암까지 걸린 것은 마음에 곪은 것이 터져서 암으로 나온 것이니 먼저 용서해 주고 난 다음에야 수술해도 소용이 있지요. 안그러면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그를 병원에 입원시켜서 복음을 전하고 회개시켜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 여자가 자기를 망하게 한 원수들을 용서하고 미워한 것을 회개하고 비로소 얼굴에 웃음을 찾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자 한 주먹씩 먹던 약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유방암을 수술했는데 깨끗이 나아 버리고 이제는 건강해서 찬송을 부르며 산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미움, 원망, 시기, 질투, 분노, 좌절같은 것은 마음에 생겨난 무시무시한 종기인 것입니다. 이 종기가 자라 육체에 여러 가지 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를 반드시 수술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용서하지 아니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가 남에 대해서 미움을 가지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좌절하면 그 사람은 내 영향력을 받지 않지만 내가 고통을 당하고 내가 좌절하고 병이 들고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중에 예수님 이외에는 완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용서하고 이웃과 화해해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4. 얼마나 용서해야 하나?

 우리는 얼마나 용서해야 합니까? 고약하게 구는 남편을 얼마동안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까? 바람 피우는 아내를 얼마동안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까? 부모말을 안듣고 방탕하는 자식을 얼마나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까? 나에게 가시노릇 하는 이웃을 얼마나 용서해야 됩니까? 우리는 그런 질문을 합니다. 한없이 용서할 수도 없고 어찌할수 있을까요? 내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 앞에 지금까지 몇 번이나 용서받았는지 계산해 보십시오. 주님 앞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몇 번입니까?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수만번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럴때마다 주님이 용서해 주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이웃에게는 관대하지 않으려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악의 공해지대에 살고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부패와 부정과 죄악의 유혹에 꽉 들어찬 죄악의 공해지대에 살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우리가 이 공해가 심한 죄악속에 살면서 다시는 죄를 안짓는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찬을 마치고 난 다음에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니 베드로가 “나는 주님에게 제 발을 씻기게 못합니다”하자 주님이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그러면 내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라고 청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번 깨끗이 목욕한 사람은 다 깨끗하다. 그러나 발은 씻어야 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한번 예수 믿으면 깨끗하게 구원을 받았으나 행위는 늘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구원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발은 더러워지니까 자꾸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발은 행위입니다. 행위는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먼지와 티끌이 많은 세상에 안더러워질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위는 늘 회개하고 용서받고 남도 늘 용서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절로 22절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용서의 횟수가 얼마나 될까요? 하루에 일곱 번이면 충분할까요? 예수님은 “490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예 작심하고 죄를 지어도 490번 못지을 겁니다. 그런데 이웃이 내게 잘못하면 490번 잘못해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아예 용서하기로 작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기고 피흘려서 죽으시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우리를 영원히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5. 위대한 용서와 화해

 요셉과 그 형제들을 보십시오. 부친 야곱이 죽은 후에 형제들이 말을 지어서 아버지의 유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안하고 돌아가셨지만 저들이 요셉을 애굽에 판 죄책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방어벽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뜨니 요셉이 자신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유언을 조작해서 요셉에게 가서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이 두려워서 떠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겼던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18절에서 21절에서 그러나 요셉이 그들이 두려워서 떠는 것을 보고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위대한 용서와 화해인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서 10년간 종살이하고 3년간 감옥살이 했으니 이가 갈리고 온 마음에 한이 맺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줄곧 그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형들을 용서하고 마음으로 화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요셉이 건강하게 살아났지 원한을 품었다면 감옥에서 병들거나 죽었을 것입니다. 그는 용서하고 늘 화해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를 모두 용서했습니다. 비록 자기를 꽁꽁 묶어 빈 구덩이에 던졌다가 남의 집 종으로 팔았지만 그 모든 것을 용서함으로써 애굽의 총리가 되고, 이후 그의 민족도 보살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죄 중에 잉태되고 태어나서 죄의 공해로 가득한 세상에 삽니다. 우리는 먼지와 티끌을 덮어쓰고 살기 때문에 항상 씻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속사람도 항상 하나님의 용서와 자기 자신의 용서와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완전하고 세상이나 이웃의 재판관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한 목사가 ‘용서’라는 제목으로 쓴 시를 읽은 적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마음의 쓴 뿌리는 독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미워하는 상대를 닮아가게 되고 자신조차 미워하게 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가장 큰 피해는 자신이 받습니다. 세상엔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용서받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용서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먼지와 티끌을 덮어쓰고 살기 때문에 항상 씻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속사람도 하나님의 용서와 자기 자신의 용서와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살아야만 참된 행복과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가 없는 세상은 가시밭이요, 흑암이요, 오직 좌절과 절망과 슬픔만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보혈 앞에서 영원히 용서받은 우리들은 영원히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자신을 재판관으로 알고 자기 중심의 척도를 가지고 남을 평론하고 비평하고 살아왔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허물이 많고 죄가 많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자신을 용서하고 이웃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해하여 사랑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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