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하나님의 주소

by 삶의언어 posted Nov 21, 2024 Views 47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하나님/하나님 나라
예배드린 날 2008-11-23
오늘의 성구 예레미야 31장 35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IZMsbuS-BO4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야훼니라” 예레미야 31장 35절

 

하나님의 주소는 우리 마음에 있어
우리의 생각·꿈·믿음·말에서 하나님 찾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돼


 

 우리는 노숙자가 아닌 이상 주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소를 통해서 연락도 하고 편지도 주고 받습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한 농부의 아내가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하루는 느닷없이 교회에 와서 날 만나자고 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 주소를 좀 알려 주십시오. 긴급히 편지를 쓸 일이 있는데 하나님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편지를 못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주소를 알지 못하니 그냥 기도하라고 하자 “이상하다. 하나님 주소도 모르는 주의 종이니 가짜 주의 종인가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 믿음이 적은 농부의 아내이기 때문에 제가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 미안합니다. 내가 하나님 주소를 깜박 잊어버렸습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시면 하나님 주소를 알아서 편지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돌려보냈는데 하나님 주소를 모르는 저로서는 큰일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엎드려서 “주님 저 농부의 부인이 하나님께 다급한 일이 있어서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주소를 모른다고 나보고 알려 달라고 하는데 나도 주소를 모릅니다. 하나님 주소를 알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다가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지나고 농부의 아내는 연필하고 종이를 가지고 하나님 주소를 알기 위해 왔습니다. “하나님 주소 알았습니까?” “알고 말구요” “그러면 하나님 주소가 어디입니까?” “자매님의 집 주소가 하나님 주소입니다” “웃기지 마세요. 사람 교육 못 받고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아니요. 진짜입니다. 이 성경을 보세요. 성경에 ‘그 날에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똑똑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했고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니까 지금 자매님 마음속에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주소는 자매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구태여 편지 써서 붙일 필요 없이 아뢰면 됩니다. 엎드려서 기도하고 아뢰면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다 들으시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행동을 낱낱이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는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1. 생각의 보좌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생각이 거듭납니다. 세상 생각에서 하늘나라 생각으로, 세상을 따라가던 삶에서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마귀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서 우리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보좌가 마음에 있기 때문에 생명이 마음에서부터 넘쳐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마음에서 넘쳐나는데 마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부정적이면 하나님의 능력이 마음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어두운 생각으로 있는데 빛이 그 생각을 통해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빛이 그를 통해 비춰서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보스턴의 정신병원 지하 병동에 한 소녀가 격리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마음의 어둠 때문에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의사들이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근처에만 가면 괴성을 지르고 몸부림치고 고함을 치고 할퀴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근처에도 갈 수 없고 의사들이 치료도 할 수 없어서 나중에는 포기해서 ‘회복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부모도 아이를 포기하여 면회조차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포기하고 짐승처럼 병원에 가둬 놨는데 어느 은퇴한 간호사 한 사람이 그 아이에게 와서 예수를 전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간호사는 매일 같이 “이 아이는 변화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니까 하나님이 건질 수가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한 달을 와서 전도해도 그 아이는 괴성을 지르고 고함을 쳤습니다. 두 달, 석 달, 의사가 말합니다. “오지 마세요. 도저히 안 됩니다” 그래도 넉 달, 다섯 달, 여섯 달 동안 와서 전도를 하고 기도하니까 아이에게 변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말씀을 듣고 기도받기 시작하고 마귀가 쫓겨 나가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과 같은 정신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소녀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헬렌 켈러를 길러낸 선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변화될 때 우리 생각의 보좌에 하나님이 임하시면 결코 낙심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없다. 못한다.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어떠한 절망의 벽에 부딪혀도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생각을 하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 속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속의 생각 속에 하나님께서 보좌를 펼치고 앉아 계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이 아들 나라로 옮긴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를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변화 받은 새사람을 입었으므로 새 생각을 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사람이 된 자기 모습을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소설이나 연극, 영화 등 그런 것을 보고 그런 생각으로 꽉 들어차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말씀으로 채워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2. 꿈의 보좌

 꿈이란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것은 현재가 아니고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꿈꾸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갖기 전에 태몽을 꾼다고 말합니다. 태몽을 꾸고 장차 태어날 어린 아이가 어떨 것이라고 그렇게 기대하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현재 일어난 것이 아니라 뱃속에 생긴 어린 아이가 장차 어떤 어린 아이가 될 것인지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꿈이란 것은 지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일, 모레 장차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을 꿈을 통해서 바라보는 믿음, 이것이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바라보면 그 꿈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보좌를 배설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만 보고 살면 언제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통이 다가오고 풍파가 심해도 그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면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못해도 우리들 속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꿈을 펼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꿈꿀 수 없어도 예수님이 있으므로 꿈꿀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플러스 인생을 살아야지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들은 내일의 꿈을 가슴 속에 플러스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가난한 화가 밀레는 50달러를 지불하고 물감과 붓 한 자루를 샀습니다. 그리고 25센트를 주고 구입한 작은 화판 위에 자신의 꿈과 비전을 그렸습니다. ‘안젤루스’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꿈을 그 화판에 펼쳤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질 때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 그림은 미화로 10만 5000달러(한화 약 1억 5000만원)에 팔렸던 것입니다. 마음속에 꿈을 품었기 때문에 없는 돈에서 50달러를 가지고서 물감과 붓 한 자루를 사고 25센트를 주고 화판을 사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이 밀레의 만종이 된 것입니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화가가 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실패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대부분 과목에서 낙제했고,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에는 실업자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특허국에 직장을 얻어서 간절한 꿈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 ‘상대성 원리’를 발표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고 인류 문명을 변화시켜 놓는 위대한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성경에도 꿈꾸는 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요셉은 꿈꾸는 자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꿈을 미리 꾸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3. 믿음의 보좌

 우리는 하나님을 굳세게 믿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 말씀을 믿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주께서 우리와 같이 계셔서 지팡이로 인도하고 막대기로 원수 마귀를 쳐 물리치고 구출해 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나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난 다음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선한 행위도 하고 착한 일도 하면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급을 받습니다. 구원은 믿음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구원 받을 수 있는 처지가 못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서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안 믿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으면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을 때 그 믿음의 보좌 위에 하나님이 좌정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이는 인생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고 불리던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폐결핵으로 인생의 황금기인 스물네 살 때부터 13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냈었습니다. 그 뒤에는 직장암에 걸렸고 파킨슨병에 걸려 몸을 덜덜 떨었고 척추병이 계속 그녀의 육체를 공격했습니다. 그녀에게 오직 희망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절망스럽고 캄캄한 삶에서 빛의 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녀는 우리 인간의 타락한 원죄와 그리스도의 구원을 소재로 한 소설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설의 이름이 ‘빙점’인데 이것을 소설 공모에 내놓은 결과, 신문사에서 당선이 되어서 일본 최고의 작가가 된 것입니다. 그 여인이 바로 미우라 아야코입니다. 일본에서 미우라 아야코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13년 동안 폐병으로 드러누워 있고 그 다음에는 암을 앓고 그 다음에는 파킨슨병을 앓고 척추병을 앓아서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인데 그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믿게 되자 하나님은 그 폐인을 통해서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하고 일본 최고의 작가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가 세상을 뜰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질병으로 내가 잃은 것은 건강뿐이다. 그 대신 ‘신앙’과 ‘생명’을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질병을 갖다 주고 고통을 갖다 주지만 생명과 영광은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미우라 아야코가 만일 병을 앓지 않았다면 일본 제일의 작가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사 어떠한 역경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4. 신앙고백의 입술의 보좌

 입술의 고백은 하나님의 수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레타고 오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수레가 바로 우리들 입술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이 하나님 보좌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5절로 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혀를 잘 사용하면 축복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 보좌가 그곳에 앉아서 축복의 샘물이 흘러 넘치지만 혀를 잘못 사용하면 지옥불이 되어서 인생을 불태워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큰 배가 폭풍 이는 바다를 항해해 가는 것은 배 밑에 키가 방향을 잘 못 잡아서 폭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혀는 우리 인생의 키입니다. 혀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결코 긍정적인 곳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혀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결코 부정적으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보통 강한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영원히 지옥에 불탈 것이냐, 영원히 천국 영광에 들어갈 것이냐는 것도 입술의 고백에 달린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었다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 즉시로 그는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할 어반이 쓴 「긍정적인 말의 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삶을,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말이 가진 힘입니다”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긍정적인 말을 택하면 승리자가 되고 부정적인 말을 선택하면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 권한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긍정적인 말을 하겠다면 승리를 택한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부정적인 말을 하겠다면 패배자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을 우리들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까?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언제나 탓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입술의 고백을 통해 나오는 순간 우리 자신에게 영향을 주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말의 힘인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고백을 통한 우리 입술의 고백은 하나님의 손길이며 하나님 능력과 수단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이 말씀으로 변화되면 변화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꿈꾸면 우리들의 꿈속에 하나님이 와서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믿음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입술로 긍정적으로 고백하면 그 고백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멀리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떠났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모실 수 있고 이를 잘못하면 하나님과 거리가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되 우리들 밖에서 찾지 말고 마음 가운데서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우주의 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무한과 영원 속에 사는 하나님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소는 우리 마음에 있으니 우리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영원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우리 마음을 보좌 삼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 생각과 동일하고 우리의 꿈이 하나님의 꿈과 동일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동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