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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by 삶의언어 posted Jun 27, 2024 Views 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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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믿음/순종
예배드린 날 2009-09-13
오늘의 성구 누가복음 8장 22절로 25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kV-lFfEfkO0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누가복음 8장 22∼25절

 

믿음의 없고 적음은 우리의 생각일 뿐
환경적 시련에도 말씀만 의지해야
인내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기도응답


 예수님께서 하루는 갈릴리 호숫가에 제자들과 함께 섰는데 푸르고 맑고 조용하고 훈풍이 부는 아주 좋은 날씨였습니다. 주님이 배를 준비시키고 제자들을 타게 한 후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배가 순식간에 뒤엎어질 것 같습니다. 놀라 당황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죽게 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나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바람과 파도가 즉시 그치고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으면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갖지 않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었습니다.

 

 1.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마가복음 4장 40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대도 믿음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없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의학 세미나에서 미국의 한 저명한 내과 의사는 “만성환자의 90%는 병을 두려워하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 기침을 하거나 가슴앓이를 하고 위산 과다 현상을 보이고, 늘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기는 신체적인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그 병이 든 것이 아니라 병을 두려워하므로 말미암아 그 두려움에 대한 신체적인 반응으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속이 늘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의 말씀을 바라보았더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정반대입니다. 믿음이 가득하면 두려움이 쫓겨 나가고 안믿으면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예수님이 보고 “믿음을 어디 두었느냐? 네 믿음이 왜 없느냐?”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적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믿음이 작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생각일 뿐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로 3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원천이 되셔서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우리의 자원이 있습니다. 주님이 하늘에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주님은 가나안 여인의 탄원을 통해 믿음이 큰 사람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다가 한 여인의 고함을 듣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대답을 안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붙잡고 “주님께 말씀드려서 우리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하며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막고 애원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대답을 듣게 됩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감동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주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2. 믿음과 시련

 믿음은 그냥 평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적인 시련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믿음은 시련을 통해서 확실한 믿음인지 가짜 믿음인지 증명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 말씀에 보면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고 말씀합니다. 평안하게 저 호수 건너편으로 가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풍이 다가와서 호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믿고 가는 길에도 마귀가 훼방하는 것입니다. 시험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8절로 30절에 보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나가는데 시련이 다가오고 환난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와서 정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때 믿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고 계속 믿음을 잡고 있으면 그 시련은 잠시 후에 지나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련이 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이 “네 믿음을 어디 두었느냐?” 하시는 것도 제자들이 믿음을 말씀에 두지 않고 환경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불리는 페니(J. C. Penney)에게 하루는 친구가 와서 물었습니다. “페니, 자네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큰 성공을 이루었는가?” 그러자 페니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난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가난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그는 주님께 의지하고 열심히 일한 결과, 그 믿음을 통해서 그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난이 클수록 영광도 큽니다. 현재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견뎌 나아갈 때, 우리는 더욱 강인한 성품과 지혜를 얻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더 큰 믿음이 생겨나고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믿었으니까 믿음을 훼방하는 고난이 다가와도 그것을 극복하니까 한 계단 더 믿음도 커지고 성공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러한 고난의 역경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윌리엄 케리는 인도 선교의 꿈을 가지고 인도로 파송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그는 그 곳에 인도어 성경이 없는 것을 보고 인도어를 공부해 성경을 번역한 후, 출판을 하기 위하여 영국에서 인쇄기를 도입하고 기술자들을 불러 조판을 다 마쳤습니다. 그런데 케리가 지방 순회를 하는 동안 화재가 나서 인쇄기와 원고가 모두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성경 한권을 옮겨쓰는데도 몇 달이 걸리는데 인도어로 번역을 해놓은 것이 불타 버렸으니 절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케리는 그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나는 반드시 인도에 복음이 증거될 줄 믿습니다. 마귀가 훼방하는 것이니 믿음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801년도에 벵골어 성경을 필두로 24종의 인도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출판해서 오늘날 인도선교의 기초를 닦은 것입니다.

 또 우리가 믿을 때 육체적 감각에 의지하기가 쉽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반대현상이 보이고 몸에도 별 반응이 없어보입니다. 안수기도를 받고 하나님 은혜를 입어 병이 나았다고 믿고 있는데 점점 병이 더 아파지고 더 괴로워집니다. 그럴때 믿음을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설령 내 믿음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계속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환경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정복하고 환경을 만드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환경은 3차원이고 믿음은 4차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졌으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씀합니다. 보이는 것 때문에 행하면 안됩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결점은 보는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 한 분이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병원치료를 받았으나 그래도 절뚝 거리고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신유기도시간에 “오늘 다리가 짧아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길게 해 주셨다”는 선포를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보니 여전히 절뚝거리더랍니다. 그 이튿날도 절뚝거리고 또 그 다음날도 절뚝거리고 한주일이 지나도 낫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어머니가 잘못들으신것 같다고 포기하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아멘으로 받아들였으므로 끝까지 믿음을 잃지않았고 결국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것 처럼 믿음으로 행하고 의심치 아니했던 결과였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마귀는 우리에게 의심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하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흔들리면 잡히게 됩니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는 우리를 예수님과 떼놓습니다. 기도 못하게 만들고 성경 못읽게 만들고 예수님이 마음에서 떠나게 만들고 그리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데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계시기 때문에 마귀가 공격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귀의 시험에서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믿음의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믿음을 흩어 놓으면 안됩니다. 믿음의 초점을 맞추는 방법은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적어서 늘 손에 들고 보고 말씀을 붙여 놓고 말씀을 보고 말씀 그대로 되리라고 확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늘 고백하십시오. 많은 성경 말씀을 외워서 입술로 고백하면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초점을 두십시오.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입술로 말씀을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다.

 

 3. 믿음과 인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에 갈대아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100세가 되어서야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기도하고 난 다음 25년의 세월을 기다려서야 아들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0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라고 말씀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셔서 홍해앞에 다다랐는데 다리도 없고 배도 없고 바다를 건널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바로왕이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러 쫓아오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과 14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있어 잠잠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9절에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했는데 그들이 믿는다는 것은 그들이 마음에 잠잠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같은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인내로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돕니다. 히브리서 11장 30절에 보면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말씀합니다. 21일 동안 기도했던 다니엘의 기도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강가에 나가서 금식하면서 기도하는데 열흘동안 기도해도 아무 응답도 없습니다. 20일동안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다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다니엘은 21일 만에 기도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 10장 12절로 14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열매를 기다림과 같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로 8절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세월을 인내하고 기다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100세에 받았으니 25년을 기다렸고 야곱은 하나님께 축복받겠다고 약속을 받은 후에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머슴살이 한 끝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셉은 17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형들에 의해 애굽의 종으로 팔려서 종살이, 감옥살이를 하고 13년이 지난 후인 30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한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기다리고 난 다음 80세에 하나님이 응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중에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대상이지 과학이나 철학적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토론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기도하며 끝까지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살아계시고 영화로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셔서 역사하심을 감사합니다. 눈에는 안보이고 우리 손으로 붙잡을 수 없어도 바람과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의 백성들이 낙심하지 말고 항상 위를 쳐다보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환경을 바라보지않고 하늘을 쳐다보며 주님의 뜻을 찾아서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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