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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

by 삶의언어 posted Jun 09, 2024 Views 1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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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3-05-08
오늘의 성구 에베소서 5장 22절로 33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P4qJUhtD0zQ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 이상 가정은 계속해서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에 와서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파괴되지 않고 존속하는 가정들 중에도 이미 사랑은 식어지고 황막한 사막같이 된 가정들이 수없이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우리들의 생활과 신앙의 가장 기초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건전한 가정이 많은 국가와 사회는 건강하고 불안정하거나 파괴되어 가는 가정을 많이 가진 국가와 사회는 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가정은 바로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인류 가운데 세우신 제일 첫째 가는 제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녁 서늘할 때면 에덴을 방문하셔서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심방 하여 주시고 저들과 함께 대화하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을 귀히 여기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화목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떻게 하면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일류 첫 가정의 비극이 왜 다가오게 되었는가 그 사실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여러분 아담이 하나님께로부터 그 아내 하와를 선물로 받아서 에덴에서 첫 가정을 이루었는데 그 첫 가정이 처참하게 실패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무엇보다도 첫 가정의 가장되는 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내를 잘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그 가정의 머리가 되었다면 그 아내를 잘 돌봐야 했을 것인데 아담은 아내에 대해서 무관심주의를 취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냐고 질문한다면 그 아내가 마귀와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들어가서 그것을 중지시키고 말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마귀와 대화를 했습니다. 마귀는 뱀의 형상으로 와서 하와에게 말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동산의 모든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와가 하는 말이 "동산의 모든 실과를 다 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그렇게 말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하와가 말한 것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의 인용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인용한 거짓인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마귀와의 거짓된 대화를 하고 있는 그 아내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는 아내에 대한 무관심 이것은 대단히 아담에 대해서는 직책상의 잘못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내가 중대한 범죄를 할 때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 아내가 손을 내밀어서 그 과실을 따먹는 그 장면에서 아담이 바로 그 옆에 있으면서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는 그 아내의 하는 짓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볼 때 아담은 그 아내의 행동에 관해서 무관심한 대표적인 남편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에덴 동산의 실패는 바로 아담의 지도력 상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아내가 그 실과를 따먹고 도 그 실과를 따서 자기에게 줄 때 그는 두말하지 않고 아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앎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거역하면서까지 아내가 주는 실과를 그대로 먹고 같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보게 될 때 아담은 전적으로 그 부인에게 꼼짝못하는 남편의 대표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등한히 한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진리 위에 굳게 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를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그 아내에게 철저히 교육을 시키지 못한 잘못한 죄가 아담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또한 에덴 동산에서 그들이 쫓겨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장차 그 아들 예수를 보내시사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인류를 구출하실 것을 설명하시고 그에 대한 상징으로 가정에서 어린양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했는데 이것을 철저히 자기 자녀들에게 교육을 했더라면 가인이 나가서 인본주의적인 제단을 짓고 어린양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고 자가가 손으로 수고한 곡식을 제사를 드리는 인본주의적인 제단을 만들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정의 머리로서 그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았고 가정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성실히 행하며 그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가장으로서 실패하고 아버지로서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로 가정이 풍비박산이었습니다. 맏아들이 둘째 아들을 쳐서 죽이는 비참한 비극을 가져오는 실패한 가정을 갖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아담이 저지른 그 잘못이 대대후손인 오늘 우리에게까지 수많은 슬픔과 절망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의 본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담과 같이 비극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까요? 우리는 그 대책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나갔다면 그른 슬픔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에 서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가정마다 슬픔으로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올바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는 에베소서 5장 22절로 8절에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반드시 세워야 할 위계질서가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에 그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위계질서와 그 있을 자리를 분명하게 설정해 주고 잇는 것입니다. 아담이 실패한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행복하고 화목된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도록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남존여비다 여존남비다 남자가 위다 여성 상위시대다 여러 가지 인간들이 지어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남자도 위에 있지 않고 여자도 위에 있지 않고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대 동등하게 창조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잇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셨을 때 아담의 머리뼈를 취해서 지었더라면 하와는 남자보다도 더 높은 여성 상위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자의 머리뼈를 취해서 하와를 짓지 않았습니다. 만일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면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셨을 때 남자의 뒷발꿈치 뼈를 취해서 여자를 취하셨으면 여자는 남자의 뒷발꿈치가 되었을 텐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을 때 아담의 뒷발꿈치 뼈를 취하여 짓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의 옆구리 뼈를 취했다는 것은 옆으로 동등 하라는 것입니다. 왜 구태여 아담의 뼈를 취해야 되었는가 이것은 서로 두 사람이 아니라 두 몸이 연합하여 한 몸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옆구리 뼈를 취했으니 옆으로 동등하며 심장에 가장 가까우니 두 사람이 뜨거운 사랑과 소망과 신뢰로써 하나가 되라고 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녀의 관계는 상위도 하위도 없이 동등하며 그리고 사랑으로서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가 남편과 아내가 되어서 한 집에 살 때는 반드시 위계질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가정에서 머리는 남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한 가정의 머리는 남편이니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성경은 말씀하기를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걸머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몸 찢고 피 흘려서 교회를 속량하고 구원한 것처럼 그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내의 모든 연약하고 못나고 실수하는 것을 자기가 책임지고 이것을 속량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해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위계질서와 사랑과 복종의 관계 없이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만 강요한다면 이것은 독재적인 가정이 되고 말 것이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만 하고 아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간다면 아담과 같이 무질서한 가정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므로 한 가정이라는 것은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함과 동시에 부인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희생적인 사랑으로 부인을 사랑해서 앞에서 사랑으로 인도해 주고 뒤에서 믿음과 복종으로 밀어주면 두 사람이 연합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복종과 사랑 그 어느 것이 적어도 절름발이 가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가정이 있으면 자녀가 있지요. 아담과 하와는 그 자녀들을 잘못 길렀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도 잘못했고 형제 우애하는 일도 잘못했고 부모를 효도하는 일에도 잘못했습니다.
성경은 부모와 자녀의 사이를 에베소서 6장 1절로 4절에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 부모와 자녀 관계는 성경 말씀 가운데 공경과 효도로서 일관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효도의 종교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절대 순종하고 복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도 오직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에만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른 지키지 않으면 심판을 명령해 놓았으나 부모 공경하는 계명에 대해서는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자녀들이 진실로 세상에서 화목된 가정을 이루고 잘되고 장수하려면 부모를 효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에게도 좋고 자녀에게도 좋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순복해야 할 것이요 또 부모들은 자녀를 폭력으로써 다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 개인 소유가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하길 자녀는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시고 상급으로 주셨으니 이를 받아서 또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기 때문에 폭력으로 하지 말고 잘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돌보고 주안에서 훈계와 교양으로 길러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부부간의 위계질서가 올바르게 서고 부모 자식간에 효도와 사랑으로써 하나가 되는 가정이 되어야 비로소 그 가정에 행복이 싹트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 반드시 부부간에 지켜야 할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란 농부가 농사짓는 것과 같아서 애쓰고 힘써서 땀흘려 노력해야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그와 가정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어서 좋은 가정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씨만 뿌려놓고 난 다음에 가을에 좋은 곡식을 수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농부의 어리석은 생각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노력하며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좋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믿고 함께 바라고 함께 사랑하는 생활의 합일점 여기에 온 가정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일하고 또 어머니도 직장 혹은 가정에서 일하고 자녀들은 학교 가고 서로 자기 맡은 바 직무를 따라서 뿔뿔이 바쁘게 헤어져서 돌아간다 할지라도 온 가족 성원이 한 가지 점에서 마음이 합일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정 예배로 함께 모일 때 한 하나님을 모시고 한 구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한 성령으로 충만해서 믿음이 하나요 소망이 하나요 사랑이 하나가 되어서 마음에 합일점을 가져야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합일점이 없이 뿔뿔이 헤어져서 자기 관심사만 추구한다면 몸만 집에 갖다 놓았지 마음은 저 구만리 장천으로 멀어지기 때문에 한 가정에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함께 믿고 함께 바라고 함께 사랑하는 생활의 합일점을 얻기 위해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일을 거룩이 지키고 성경을 함께 읽고 함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성경을 읽고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언제나 함께 남아 있다고 옛말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남편이 단호하게 함께 성경 읽고 함께 기도하는 것을 인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먼저 할 일을 먼저 하지 아니하면 나중 할 일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갈급함 이것을 먼저 채워 놓아야 우리는 참으로 이 세상에 슬기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 상호간에 친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족이 한 지붕 밑에 살고 한 솥에 밥을 먹으면서고 서로 친밀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서로 친밀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심을 가져주고 서로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은 서로 이용만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이용하고 돈 버는 기계로써 이용하고 또 남편은 아내를 가정사를 돌보는 일군으로써 이용하고 자녀는 부모를 이용하고 부모는 자녀를 이용만 한다면 그런 가정은 아무 냉랭한 가정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어떻게 보느냐고 조사해 보니까 아버지는 술 마시는 사람, 회사 가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으로는 하나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되었길래 아버지가 신문 보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회사 가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까? 이것은 오늘날 아버지의 실패입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수많은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삐뚤어진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즐길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내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서로서로를 기뻐하십시오. 나는 마지못해서 당신과 산다는 이러한 것은 절망인 것입니다. 서로를 즐거워하고 서로를 기뻐하는 이러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바쁘다고 해서 자기끼리만 정신을 팔면 안됩니다. 여유 있는 시간이 있으면 남편을 자기 친구들끼리 나가고 부인도 자기 친구들끼리 나가고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방황하고 이래서 한 가정이 삭막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힘을 쓰고 노력해서 어떻게 하든지 함께 즐길 수 잇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밥상도 따로따로 먹지 말고 기다리더라도 함께 먹는 것이 좋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이 함 밥상에 둘러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함께 모여서 예배 보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됩니다. 또 함께 나가서 외식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가지고 함께 들과 산으로 같이 나갈 수 있는 그런 여유를 시간도 힘을 들여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많이 만나고 많이 대화를 할 때 친밀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해하고 동정해야 합니다. 무정함은 독버섯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깊이 마음에 동정심이 가야 합니다. 남편에 대해서 아내가 깊이 동정심을 가지고 아내는 남편에 대해서 또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서로 동정심을 가지고 짐을 나누어 져야 되는 것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가 죽든지 말든지 내가 상관할 바가 뭐냐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이기주의적인 이런 태도는 독버섯같이 되어서 가정을 파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사람이 살다보면 성이 안 날 수 없지요. 그러나 성이 날 때는 사랑이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에 원치 않는 말을 해 버립니다. 그 결과로 좋은 관계가 파괴됩니다. 자기 자신도 아주 비열하게 보입니다. 성내고 난 다음에 나중에 기분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내지 말아야 됩니다.
저는 원래 성을 잘 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나만 나쁜 게 아닙니다. 가만히 내가 지난 과거 생활을 돌아보니까 우리 아버지도 성을 잘 내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부전자전으로 성을 잘 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무리 해도 내가 이길 수 없어 조그만 일만 생기면 성이 와락 나는데 성을 내고 난 다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내 자신이 비열하게 보이고 그 다음에는 내 인격이 땅에 떨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가정에 냉랭한 분위기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제가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성이 안 날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되 먹었는데 성을 안 낼 수가 있나요? 또 성이 나오는데 성을 안 내면 속에 병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결심을 하기를 성이 내 마음속에 나거든 30분을 기다리고 말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집사람과 이야기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마음에 화가 나면 그 때부터 시간을 들여다봅니다. 30분 후에 내가 말하리라 성 날 때는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 앉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가만히 있고 시계를 봅니다. 30분 후에 대답을 하겠다고 기다리고 있다가 30분 후가 되면 성이 다 날아가 버리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야, 잘 기다렸다. 아까 내가 말했더라면 무척 파괴된 말을 했을 텐데 30분을 기다리고 나니까 나중에 그렇게 성나고 고까웠던 것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최근에도 내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교회 일 몇 가지를 얘기 하다가 우리 집사람과 서로 마음이 성당이 틀어졌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하는 말이 남자들은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말에 속이 어찌 상하든지 입에서 말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30분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30분을 기다렸습니다. 30분을 기다리고 난 다음에 성이 다 사라지고 나서 보니까 남자들은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말이 뭐가 그렇게 나쁜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성내었으면 한 주일 동안 식은 밥 먹었을 텐데 하나님 덕분으로 따뜻한 밥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내지 말아야 됩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성내고 나면 그 결과가 가져오는 파괴라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받고 용서하는 그러한 습관을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인데 내가 무엇 때문에 고백하겠는가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잘못은 서로서로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하고 자기만 옳다고 고집할 때 교제는 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자기 가정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분들을 온 가족이 합심해서 도와주게 될 때 우리 가정에 대한 긍지가 생기고 고마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나만 잘 살 것이 아니라 이웃에 나보다 못사는 가정을 도와주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그리고 셋째 할 일이 있습니다. 셋째 할 일은 서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인격이 있습니다. 남편은 남편의 인격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인격이 있습니다. 옛말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서로 인격에 손상을 갖다 주면 그 가정이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고 호의호식하고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해도 내적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자기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존심에 심한 파괴를 가져오면 어떠한 환경에도 사람은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서로 부부간에 인격을 존중하십시오.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 내지 말아야 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과거에 사람인 이상 잘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 과거를 들추어내서 당신을 언제 그렇게 했지, 너는 뭘 잘했노? 과거를 들추어내면 인격에 무서운 모욕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는 지나갔으면 예수의 보혈로 덮어 버리고 좋은 과거만 들추어서 말하고 나쁜 과거는 말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그리고 현재 약점을 찌르지 마십시오. 이 세상사는 사람 치고 약점이 없는 사람 없습니다. 남편도 약점이 있고 아내도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쳐다보고 있다가 언제나 싸움이 벌어지면 자기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남의 약점을 들추어내서 약점을 찌릅니다. 여러분 상처 입은 손에 주먹으로 때려서 아프다고 안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약점을 들추어내서 상대방의 인격적인 모욕을 느끼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격을 무시하는 언동과 모욕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됩니다. 인격을 무시하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모욕감을 가져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더구나 자녀들 앞에서 남편에게 모욕을 주고 아내에게 모욕을 주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이것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다 자기 가치와 자기 존재 적인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내가 살 의미가 있다.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대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가 아내로서의 가정에 참으로 가치 있고 존귀로운 것을 늘 말해 주십시오. 아내는 남편이 얼마나 귀하고 존귀하다는 것을 알려 주십시오. 서로서로 삶의 가치가 있고 삶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때 삶에는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생기고 소망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행복할 때 이 사람을 사회 생활을 나갈 때도 생기 발랄하고 소망차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용기 잇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주께서 성령으로 역사 하여 주셔서 아담의 가정과 같이 파괴적인 가정이 되지 말고 참으로 화목 되고 행복된 가정을 주안에서 우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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