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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야훼의 산에 오를 자 누군가

by 삶의언어 posted Jul 04, 2024 Views 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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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축복
예배드린 날 1984-10-07
오늘의 성구 시편 24편 1절로 6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rblCYyD5UV8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군가란 제목으로 오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한 주일 전에 남미의 페루와 베네수엘라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돌아왔습니다. 페루는 철광석과 아연이 풍부하여 한국에서도 매년 약 삼 억 달러의 원광을 수입하고 있는 자연 자원이 굉장히 풍부한 나라입니다. 또 베네수엘라는 문자 그대로 석유에 둥 떠 있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 매장 양이 너무나 엄청나서 사우디 아라비아 못지 않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에 부러움이 한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연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놀랍고 놀라운 사실은 이 두 나라가 모두다 막대한 외국의 빚을 걸머지고 있고 또 빈부의 차가 극심하여 부자는 한없이 부자인데 대다수의 국민들은 무척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무질서하고 심히 혼란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주일동안 이 페루와 베네수엘라에서 복음을 증거하면서 마음속에 느끼고 배운바가 대단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가 자연의 혜택을 그렇게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도 가난하고 혼란할까? 그것은 그곳 사람들의 마음의 자세가 잘못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부는 부정부패로 꽉 들어차고 일반 시민들은 용기를 잃고 희망을 던져버리고 일하지 않는 게으른 상태에 있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 나라들이 진실로 살아나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정부에서부터 시작해서 일반 사람들까지 모두다 통회하고, 자복하여 양심의 부활을 가져오고, 신념을 되살리며, 소망과 사랑이 부활되지 않고는 나라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저는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 나라는 마치 금 방석에 거지 깡통을 차고 앉아서 구걸하는 형상 이였습니다. 실제로 국민 정신이 부흥되고 나라가 부정부패에서 돌아서게 되면은 얼마든지 잘 살수 있는 소지가 있는 나라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지킬만한 것 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무리 자연 자원이 풍부할 지라도 사람의 마음의 자원을 개발하지 못하면은 환경에 자연자원의 그 풍부와 축복을 추어도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며 하나님 앞에 의를 얻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얻을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상의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나라와, 우리의 민족도, 우리가 자연자원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천만 동포의 가슴속에 마음의 자원을 개발하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 의의를 얻고 축복을 받게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의 손이 깨끗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께 의의를 얻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성경을 통하여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난 다음에 백성들 앞에서 대야에 물을 떠오게 해서 그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빌라도가 책임이 없을까요?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심문해본 결과에 예수님께서는 사형을 받을만한 아무런 죄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소리쳐서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면은 로마의 제왕 시저의 충신이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의 대왕 시저에게 잘못 보여서 자기 명예나, 지위나, 권세를 잃어버릴까 싶어서 자기의 개인적인 일신상의 명리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준 것입니다. 그러나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있어서 사람들 앞에 대야에 물을 떠와서 손을 씻고 나는 이 사람의 피와 상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진짜 상관이 없을까요?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 에게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 자신의 행위는 불의하고 추악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는 지금 음부에서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손이 깨끗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아무리 손을 내밀어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불의한 손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범죄한 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이나 도덕적인 계율이나 나라의 법률을 어기고 죄악을 범하는 손은 불의한 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의한 손을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아무리 부르짖어 봤자 주님께서 그 손잡아 주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손이 짧아 도와주지 못함이 아니요. 귀가 둔하여 너희 기도를 듣지 못함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죄악의 담이 가리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부정한 손이 있습니다. 야비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지위나, 명예나, 권력이나, 재물을 모은 손은 부정한 손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권력형 부정이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권력을 사용하여 더러운 손으로 야비하게 재물을 모으고, 지위를 얻고, 명예나 권력을 얻어서 잘 사는 것같이 행동 하지만은 이러한 사람은 결단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손을 회개로 씻고 그러한 곳에서 손을 떼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그 영혼이 복을 받고 또 하나님께 의의를 얻어 영생을 얻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들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불의와 추악을 한 몸에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사 몸을 찢기시고 피를 쏟으셔서 우리의 죄악을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나오면 그 불의한 손이 씻음을 받고, 그 부정한 손이 정결함을 얻어서 예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고 하나님 앞에 그 손 내밀어 기도 할 수 있으며 이 세상 떠날 때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사람이 살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불의한 손으로서, 부정한 손으로서 세상에 부귀영화 공명을 얻어 잘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잠시 잠깐 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해서 몸부림 칠 때 그의 불의한 손과 그 부정한 손이 영원토록 자기를 정죄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예비해 놓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앞에 나가서 그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불의한 손과, 부정한 손을 씻고 그곳에서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들어설 때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에 오를 수 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에 나갈 수 있고, 의의를 얻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와서 제일 먼저 외치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란 우리의 마음이 변화됨을 말합니다.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돌아서며 세속주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돌아서는 회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서고 회개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영생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면 가장 위대한 변화가 양심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은 양심이 짓밟혀있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그 속에 양심이 부활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양심종교인 것입니다. 양심을 저버리고 아무리 하나님께 나와서 주여, 주여 부르짖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양심을 져버린 기독교는 무당종교요, 그것은 샤머니즘에 불과한 것입니다. 양심이 없이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샤머니즘이요, 이것이야말로 기복신앙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우리에게 양심이 살아나는데 그 양심은 세 가지 형태로 살아나서 우리 속에서 역사 합니다. 선한 양심이 살아납니다. 선한 양심은 우리를 이끌어서 하나님을 찾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일 교회에 나오기 싫을 때도 선한 양심은 우리를 끌어서 교회에 나오게 합니다. 성경 읽기 싫을 때도 선한 양심은 우리를 자극해서 성경을 읽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듣기 싫을 때, 기도하기 싫을 때도 선한 양심은 우리에게 충격을 가해서 우리를 말씀 듣고 기도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착한 양심이 있습니다. 이 착한 양심은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인생을 착실하게 살게 만들어 줍니다. 허무 맹랑한 고무풍선 같은 인생을 살게 하지 않고 마음에 내실이 있는 착한 믿음을, 충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며 그 사람은 이웃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의 자세를 주십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 주실 뿐 아니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착한 양심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 다음 그 양심은 또한 깨끗한 양심으로 나타나서 일합니다. 깨끗한 양심이란 우리를 죄악에서 벗어나서 언제나 회개하고 용서를 받게 합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짖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죄악 속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한번 목욕했다고 해서 영원히 몸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목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한번 죄를 회개해도, 구원받고 난 다음에도 끊임없이 죄악의 먼지와 티끌을 덮어쓰게 됩니다. 일평생 사는 동안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깨끗한 양심이 들어와 있는 이상 깨끗한 양심은 우리를 항상 회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데로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면 보혈로 씻음 받고 양심이 살아나서 선한 양심, 착한 양심, 깨끗한 양심을 얻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이 오셔서 이 양심을 전당 삼고 역사 하여서 여러분과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럴 뿐 아니라 이와 같이 양심이 부활한 사람, 마음이 정결한 사람은 이제 사랑이 그 속에서 넘쳐 나와서 고난 당하고 괴로움 속에 있는 사람을 손을 내밀어 도와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니하는 이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정결한 양심을 가진 그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의 역사를 베풀어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고통에 처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허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정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불러서 당신 앞에 서게 하고 의의를 허락하며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정결하지 못하고 더러움으로 꽉 들어찬 사람은 그가 아무리 황금 방석에 앉았어도 그는 깡통을 차고 살수밖에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우리 마음이 정결하도록 회개하고 양심이 부활하여 양심에 따라서 생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산에 올라 거룩한 하나님의 존전에 서고 의를 얻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허탈한데에 뜻을 두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허탈한데 마음을 두고서 천방지축으로 뛰다가 자기도 망하고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사회를 왈칵 뒤집어 놓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허탈한데 뜻을 둔다는 말은 탐욕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탐심이 들어오고 탐욕이 들어오면 정상적인 사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 다고 한 것입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삐뚤어진 생각을 하고 삐뚤어진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나는 나의 목회 생활 중에서 많이 허탈한데 뜻을 두었다가 망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일확천금을 하기 위해서 광산의 '광'자도 모르는데 그만 거기에 속아넘어가서 자기의 재산을 다 털어서 폐광을 사서 거기에 투자하고 망하는 사람도 보았었습니다. 일확천금을 꿈꾸어서, 아주 훌륭한 의사 선생이, 유명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착실하게 돈벌던 사람이, 그만 도박에 손을 넣어서 병원도 다 팔고 일신을 망치는 것을 저는 보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허탈한데 뜻을 두어서 탐욕을 가지면 망합니다. 적은 기업체라도 착실히 일하면 좋은데, 그만 욕심이 생겨서 탐욕으로 말미암아 일시에 거대한 기업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빚을 잔뜩 짊어지고 공장을 짓고 기계를 도입했으나, 사업이 잘 돌아가지 않아서 폐가 망신하고 나라에 빚을 지우는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면 허탈한데에 뜻을 두게 됩니다. 이러므로 자기 분수에 넘는 생각을 하지말고 자기 분수를 지켜서 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아주 초라하게 옷을 입고 신분이 낮은 그런 생활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이 정신이상이 걸린 이십대가 넘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들은 눈에 초점도 잡히지 아니하고 정신이 나갔어요. 그런데 그 할머님이 나에게 와서 울고 손을 잡고서 나에게 사정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정을 듣고 내가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아들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건축 공사장에서 막노동꾼으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느 건축 공사장이 바로 초등학교 옆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건축공사장에 올라가서 일을 하는데, 마침 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주 몸매가 날씬하고 인물이 예쁜 여선생이 애들을 데리고 유희를 가르치는데, 그만 거기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공사를 하다 말고 그만 그 여선생에게 반해 가지고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공사장에서 쫒겨난 다음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그 초등하교 교정에서 그 여선생을 기다립니다. 그러니 그 여선생이 거들떠봅니까? 그 여선생은 대학을 졸업 맞고 교사 자격증을 얻은 여선생인데 도대체, 도무지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는 아파서 누워서 밤낮으로 그냥 보따리장사해서 먹고사는 그 어머니에게 그 여선생 좀 데려다 달라고 그래서 그 할머니가 학교에 가서 여선생보고 내 죽어 가는 아들 살리는 셈치고 우리 집에 와서 우리아들 손목한번 잡아 달라고 아무리 빈들 그 여선생이 올 턱이 있어요? 미친 할머니 나가라고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데리고 나에게 와서 목사님은 훌륭한 목사님이고 이름이 유명하니 어찌하든지 그 여선생하고 내 아들하고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내가 그랬습니다. 할머니 도무지 분수에 맞지 않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옛말에도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처다 보지도 말라고 했는데 초등학교도 못나온 이 노동하는 당신 아들이 인간으로서 인권이 모자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기의 처지와 신분에 맞는 여성을 택해야지 대학을 졸업 맞고 전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국민학교 여선생과 결혼하겠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처지와 신분이 맞지 않기 때문에 도무지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내가 안수를 해주면서 이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원수 귀신아 나오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리고 내어 보냈습니다. 여러분 자기가 분수를 지키지 못하면 자신의 일신도 망하고 이웃도 망하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경제적으로 일본과 미국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일본 사람들과 미국 사람처럼 행색을 하고 그와 같은 경제생활을 하려고 하다가는, 우리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허탈한 생활을 하면 우리 전체가 망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처지에 맞도록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관광객들이 외국에 나가서 돈을 잔뜩 쓰고 온갖 물건을 다 사오는 것을 보면 나는 탄식 스럽습니다. 여러분 저는 세계여행을 아주 많이 하지마는 우리 교인들도 김포공항 세관에서 많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은 나는 나갈 때는 깨끗한 내복 가지고 나가고 들어올 때는 빨랫감 가지고 들어오지 아무것도 안사옵니다. 그건 왜냐? 내가 살만한 것 같으면, 나라를 사랑하는 것 같으면, 우리나라에서 얼마든지 사서 우리 마누라도 줄 수 있고 애들도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국애족이란 우리 현실의 생활에서 우리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애국애족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있는 의류나 전자제품을 왜 외국 가서 사옵니까? 이러한 면에서 우리가 사치를 하고 자기 분수를 잃어버리면 이러한 사람이 허탈한 사람이요. 하나님께서는 허탈한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개인이나 가족들, 우리국민 전체가 나를 사랑하고, 우리가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다면 허탈한데 맘을 두지 말고, 사치하지 말며 우리 스스로가 자기 신분과 처지를 따라 살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 탐욕을 버리고, 자기 분수를 넘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넷째로{{
}} 성경은 말씀하기를 거짓 맹세치 말아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가랴서 8장17절에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이라고 말했으며, 예레미아서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므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단히 다급하면 다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집을 팔아 주면 십일조를 꼭 내겠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내 병을 고쳐주면 재산의 반을 주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이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면 일생을 바쳐서 주님을 위해 서 일하겠나이다.' 급할 때 맹세를 잘해 놓고 난 다음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하나님 그것은 옛날에 한 말 아닙니까! 지금은 사태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맹세해 놓고 난 다음 하나님을 바보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맹세를 지켰으나 사람 편에서 이것을 어기면 그 다음부터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하나님 앞에 아무리 고함쳐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그 맹세를 듣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눈에 보이는 재산만 재산으로 취급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이 얼마나 큰 재산인 줄 압니까? 인간이란, 서로 신용하고서 삽니다. 사람이 신용을 잃어버리면 그는 폐인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상도덕에서나 정치에서나 어디에서나 신용을 상실하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간에 신용도 잃지 말아야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신용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위대한 사사 입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다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블레셋과 싸웠습니다. 블레셋의 대 군대는 수도 많고 무장도 잘되어 있고, 이스라엘은 수도작고 무장도 부실해서 도저히 대결이 안됩니다. 너무나 다급해서 입다 장군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소서. 이 전쟁에 블레셋을 정복하고 이기게 하셔서 우리나라를 구해주시면 내가 집에 돌아갈 때 제일먼저 나를 마중 나오는 사람을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얼마나 급했기에 그런 맹세를 했습니까.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입다의 기도를 들으셔서 성령이 역사 해서 입다가 대승해서 블레셋을 정복하고 대승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금의환향하여 집에 돌아오니까. 집에서는 아버지가 승리하고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무남독녀인 외딸이 채색 옷을 입고 북을 들고서 북을 치면서 아버지를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자말자 제일먼저 대문간에서 딸이 북을 치고 나오는 것을 보고 그만 말에서 내려 통곡을 했습니다. '야! 이놈아 네가 왜 먼저 나오느냐, 개가 먼저 나올 수 있고 닭이 먼저 나올 수도 있는데 네가 왜 먼저 나오느냐', '아버지 왜 이러십니까?','나는 하나님께 이미 서약해서 제일 먼저 대문간에 나오는 사람을 잡아서 재물로 드리겠다고 말했는데, 어찌하여 무남독녀 네가 나오느냐!' 요새 현대 사람 같으면요. '아버지 그 맹세한 것, 그것 다 그만 둡시다. 나는 개나 닭이 나오면 잡아 드리려고 그랬지 사람이 나오는데 어떻게 잡아 드립니까?' 그랬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다시는 신뢰하지 않았을 겁니다. 성경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은 맹세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입다는 자기의 시집가지 않은 딸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재물로 드렸습니다. 여러분 약속이란 얼마나 무섭습니까? 하나님과 약속한 사실이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이와 같이 신뢰를 지킨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 하셨습니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은 떡먹듯이 거짓말을 합니다. 약속을 해놓고, 맹세를 해놓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안 합니다. 더구나 국회의원선거가 가까워 오면 정치인들의 약속은 난발 하는데 그 약속 하나도 믿을 것이 없어요. 오늘 미국이나 구라파나 한국 할 것 없이 정치가들의 약속이란 것은 이것은 허공에 뜬구름 잡는 것입니다. 왜? 너무나 거짓말을 많이 하고 너무나 많이 속았기 때문에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박수도 안칩니다. 두고 봐야지. 이와 같이 신용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여 훌륭한 정치인들을 우리가 선출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상도덕이 이루어져서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루어 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하고 맹세한 것은 손해가 나더라도 기필코 지키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의의를 주고 축복해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맹세하고 너무나 맹세를 어기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하늘로 두고도 맹세하지말고, 땅으로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성전을 두고도 맹세하지말고, 제단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맹세하고도 어기면 그것은 심판 꺼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사람으로 약속하거나 하나님과 약속하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의를 얻고 복을 받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그는 그 마음의 변화를 받아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정결하며 허탈한데 마음을, 생각을 두지 않고 맹세한 것은 손해가 날지라도 반드시 지키는 그런 한 사람을 하나님이 도우셔서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주시고, 복을 허락해 주시고, 의를 허락해 주시며, 주님께서 축복을 명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의 바탕이 이루어진 바탕 위에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가 잘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시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환경의 축복을 원하기 전에 우리가 마음의 변화된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다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불의하고 부정한 손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 씻고 새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회개하고 양심이 부활하여 선한 양심, 착한 양심, 정결한 양심을 따라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허탈한데 뜻을 두어 천방지축으로 뛰지 말게 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여 언약한 것이나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이러한 인격적인 내연을 구비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축복을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한 개인이나 그러한 국가는 결코 망하지 안이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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