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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by 삶의언어 posted Jul 08, 2024 Views 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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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사랑
예배드린 날 1985-06-02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18장 21절로 35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t53Lb21Zx1c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용서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 용서한다는 것은 심히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용서는 오직 피해를 입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삼자는 아무도 개입해서 용서해줄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유대인만이 육백만 유대인을 살해한 독일의 히틀러와 그의 종자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강대국인 미국이라도 미국의 대통령인 레이건이 유대인을 대신해서 독일을 용서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한국인만이 과거 삼십 육 년 간 한국을 강점했던 일본인들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련이 강대국이라도 소련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일본사람을 용서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상처 입은 마음을 극복하고 상처 입은 손을 내밀어 자기에게 상처 입힌 자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용서하기 위해서는 미움과 원한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죽여야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사람은 아닙니다. 용기 있는 사람, 위대한 사람만이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소인배나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자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용서해야 할까요.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아야 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우리가 용서해야 될까요.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용서하는 자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을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나에게 범죄한 사람을 일곱 번만 용서해 주면 충분하겠지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자기에게 범죄한 사람을 연속해서 일곱 번 용서해 준다는 것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용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베드로를 가만히 보시고 하신 말씀이 이 사람아 사람이 범죄하고 회개하고 다시 나오면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를 해 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사람이 아무리 범죄를 해도 사백 구십 번 하루 우리에게 범죄하고, 회개하고 나오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이런 예화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임금이 회계를 하게 됐는데 그 부하 한사람이 자기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란 미화로 말하면 일천만 불이요,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약 팔십 칠 억 원 정도의 빚을 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빚을 갚으라 하니까, 어떻게 한사람이 팔십 칠 억 정도의 빚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정을 했습니다. 제발 나에게 말미를 주시면 내가 빚을 갚겠나이다. 그런데 임금님이 분노해서 빚을 갚지 못하면 처자를 다 종으로 팔고 있는 재산 다 차압해서 빚을 갚도록 하라. 이 사람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사정을 하면서 임금님이여, 제게 말미를 주시면 반드시 갚겠나이다. 하도 간청하기에 임금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그 돈 전체를 탕감해 버렸습니다. 빚을 갚지 않아도 좋다. 다 탕감한다. 그래서 이 사람이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임금님에게 경배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사람을 만났습니다. 백 데나리온이면 미화로 이십 불이고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약 만 칠천 사백 원 정도가 됩니다. 약 만 칠천 사백 원 정도 되는 동료한사람, 자기에게 빚진 사람을 만나서 멱살을 잡았습니다. 야 이 녀석아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그러자 그 동관이 손을 빌면서 말합니다. 내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시간을 주면 내가 반드시 만 칠천 사백 원을 갚겠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 분노해서 말하기를 나는 네게 시간을 줄 수가 없다. 너는 내게 빚지고서 갚지 않았으니 너는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된다. 그래서 자기 부하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어 넣으라고 했습니다. 이래서 만 칠천 사백 원을 빚진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어 넣었습니다. 그 처참한 정경을 보고 친구들이 임금님께 고발을 했습니다. 임금님이 그 말을 듣자 분개했습니다. 자기가 간절히 간구하고, 울고, 몸부림을 치며 용서해달라고 하기에 내가 팔십 칠 억 여 원 되는 빚을 탕감해 주었거늘, 자기는 마땅히 자기 친구가 불과 만 칠천 사백 원 정도 빚진 것을 용서해 주어야 옳겠거늘, 그렇지 않고 그를 잡아 감옥에 넣었으니 그 악한 자를 붙잡아 넣어라. 그래서 도로 그 사람을 체포해 왔습니다. 그리고 임금이 말하기를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에게 붙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안이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는 한없이 많은 죄악의 빚을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와서 우리 인간으로서 계산할 수 없을 만한 일생의 죄악을 용서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에게 범죄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는 다면 팔십 칠 억을 탕감 받은 사람이 만 칠천 사백 원을 용서해주지 않아서 도로 잡힘으로 말미암아 옥졸에게 붙임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에게 잡히고, 질병에 걸리고, 심적 고통을 당하고, 생활의 어려움 등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젊은 법학도가 병원에 왔는데 그는 피를 흘리는 위계 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현대의학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치료를 했건 만은 계속 위에서 피를 흐리고 창백해져서 그 젊은 청년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머리가 비상히 예민한, 훌륭한 청년 이였는데 의학으로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만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인격자였습니다. 하루는 의사 선생님이 그 청년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의학적으로 당신의 병을 고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의 이 위계양은 의학적인 병보다도 정신적인 병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혹시 용서해 주지 못한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는 한참 있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이었었습니다. 우리 집은 이웃집 농토와 인접을 하고 있었는데 농지에 관한 분쟁이 붙어 가지고서 이웃집 부자사람이 우리 할아버지를 밀어서 죽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웃사람의 폭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농토를 빼앗겼습니다. 나는 그때 내 마음에 분개했습니다. 너무나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고 내가 장차 법관이 되어서 기어코 이 원수를 갚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그 날부터 오늘날까지 자나깨나 원수 갚는 것에 내 마음이 묶여 있습니다. 일순간도 원수 갚을 것을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위계 양을 앓는 것은 마음속에 한시도 쉬지 않고 미움을 가지고 원한을 품고 있는데 그 미움이 당신의 위장을 파괴해가고 먹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원수를 용서해 주기 전에는 아무리 약을 써도 당신의 위계양은 나을 수가 없습니다. 그 청년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죽인 사람을 기어코 나는 원한을 갚을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원한을 갚기 전에 당신은 위계 양으로 죽고 말 것입니다. 용서해 주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그 원한이 당신의 건강을 해치고 있습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이 청년은 이제 견딜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몸부림치면서 의사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은 크리스천 이였습니다. 둘이 함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원한 진 그 사람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해주었습니다. 용서 하자말자 비로소 그 청년의 얼굴에 평화가 다가왔습니다. 그 마음에 평안히 왔습니다. 이제 밥 먹는 것이 소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쓸 때 약의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 청년의 위계 양에서 고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기록을 제가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남편을 미워하든지, 아내를 미워하든지,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미워하든지, 며느리를 미워하든지, 형제간, 이웃 간 서로 원한 져서 이를 갈고 용서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을 옥졸에 붙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가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옥졸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마귀요, 질병이요, 심적 고통이요, 생활의 여러 가지 어려움 들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가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쓰고 힘을 쓰고 기도해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진실로 내 이웃을 용서하지 안을 때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은총과 축복을 허락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와 계신 여러분,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만일 원한 진 사람이 있는가. 용서해 주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 보시고 예수께서 얼마나 큰 용서를 여러분에게 준 것인가를 생각하고, 얼마나 용서에 빚진 자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웃을 용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용서받는 자에 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용서받는 자는 아무렇게나 범죄 한 다음에 용서만 자꾸 바라면 될까요? 여러분 범죄자는 삼중고를 겪게 됩니다. 자기가 범죄하면 나라에 법에 심판을 받아서 나라의 법이 끊임없이 따라오므로 쫓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양심의 법에 쫓깁니다. 아무리 철면피라 할지라도 양심은 자기 것이 아니라 남의 것입니다. 양심은 끊임없이 따라오면서 주야로 심판합니다. 그러므로 양심으로부터 도망자가 되어서 끝없이 도망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 앞에서 도망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도망자가 되다는 것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호의호식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도망자의 생활은 마음의 불안과 고통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비록 국법을 어기지 아니하였다 해도 양심의 법을 어기면 끊임없이 양심 앞에서 도망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세상에서 범죄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평강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대게 악인에게는 그 마음에 평강이 없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아무리 부귀영화, 공명을 다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평화가 없는 삶은 참 행복의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어갈 때 마음의 기쁜 평화를 가지고 두 다리를 뻗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마음에 큰 평안으로 기지개를 켜고 새 날을 맞이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부귀영화로도 견줄 수 없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자의 가슴속에는 평안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범죄자가 범죄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말씀하기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용서받는 조건으로서는 철저치 자기 자신을 낮추고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용서란 용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회개란 것은 자기의 죄악을 다 고백하고 그를 청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용서받나요? 아닙니다. 용서란 것은 반드시 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상처나 손상을 입힌 대에 대한 최선의 보상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보상 없는 용서란 것은 아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실컷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난 다음에 가서 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로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용서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지불해야 진실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한국에 와서 일했던 존 스펫스라는 선교사님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하루는 학생시절에 자동차를 몰고 주차장에 자동차를 대려다가 옆에 있는 자동차를 받아서 자동차가 찌그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그는 신속히 차를 타고서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그것이 마음의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무섭게 마음을 꾸짖습니다. 네가 주인이 보지 않는다고 남의 차의 옆구리를 받아서 찌그려 트려 놓고 도망을 치면 될 것인가? 네가 그 사람에게서는 도망을 칠 수 있어도 너의 양심과 하나님의 눈길 앞에는 도망을 칠 수가 없다. 그는 정신적으로 번뇌하고 고통스러워서 그 주인을 찾아가 보았으나 주인을 찾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자동차를 고칠만한 액수의 돈을 가지고서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교회에 긍휼을 베푸는 부서에 그 돈을 지불하고 비로소 그 마음에 평안을 얻었다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아주 어려운 목회를 할 때이었었습니다. 그 당시의 우리 성도들은 다 아현동, 현저동에 있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가난한 성도들이 이었었습니다. 생활을, 끼니를 잇지 못하는 성도들이 모여서 우리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내는 헌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헌금으로 우리가 교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난한 신학생이 한사람 있어서 그 신학생을 교회에서 먹여주고, 재워주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그 신학생이 저녁에 우리 교회에 헌금 금고를 깨어 가지고서 그 날 들어온 헌금을 하나도 없이 훔쳐서 도망을 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에 오니까 헌금 통이 비어지고 금액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신학생은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엽전한푼씩 모아 가지고서 낸 그 헌금 액을 다 잃어 버렸으니 우리의 정신적인 고통과 타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울고 부르짖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해 주셔서 그런 모든 슬픔을 다 벗고서 잘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내가 어느 교회 부흥회를 하러 가니까 그 신학생이 나를 찾아 왔었습니다. 그는 우리 돈을 다 훔쳐가서 잘먹고 잘사는 것 같이 보였는데 그 옷은 그때보다 더 남루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날 찾아 와서 싱긋이 웃으며 하는 말이 목사님 그때 돈을 다 훔쳐가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나는 그 사람 정면으로 보면서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그때 우리 돈을 다 훔쳐가서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하는 말로서 때워 버릴 줄 알 지만은 당신이 일평생 하나님께 아무리 기도해도 당신은 그 가난한 사람이 내어놓은 그 헌금을 도로 가지고 와서 보상하기 전에는 당신의 기도는 절대로 하나님께 상달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용서란 것은 입술로 회개만 한다고 해서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마음으로 통회하고 자복하고 입술로 회개했으면 그 죄에 대한 대가만큼은 반드시 보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에 죄를 지었으면 국가에 보상해야 될 것이요. 이웃에 죄를 지었으면 이웃에 죄를 보상해야 될 것입니다. 보상 없는 용서란 것은, 값싼 용서란 것은 용서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값싼 용서를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용서를 받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에서 소외됩니다. 그러면, 영혼도 구원받지 못합니까? 그것은 별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범죄해서 상처를 입혔으면 반드시 그 상처에 대한 보상을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실로 회개가 되고 참으로 용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란 어떤 것일까요?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태어난 사람 중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짖고 하나님께 쫓겨나고 그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받아 태어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요. 그 원죄의 뿌리 되고 수없이 많은 자범 죄를 지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셔서 외쳐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죄를 버리고 순종의 길로 들어서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히 회개해야 되겠지마는 우리는 죄를 보상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보상하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죄의 값은 죽음이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영원한 죽음의 심판을 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우리의 죄를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회개는 할 수 있어도 죄는 보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해서 보상 물을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죄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죄 없이 삼십 삼 년을 사시고 여러분과 나의 죄의 보상이 되셔서 자원하여 하나님 앞에 십자가에 올라서 심판을 받아 그 몸이 찢어지고 그 피를 쏟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어린양 같아서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나의 갚을 수 없는 죄악에 대한 보상이 되셔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그 일생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부어버리고 찢기고,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의 일평생의 죄악을 대신 청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사람들은 이제 우리 죄를 철저치 통회하고, 자복 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보상 물로 받아들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수양이나 도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설 수 있는 자격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죄를 짖지 않는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죄를 대신해서 그 값을 갚아 주신 보상 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나의 보증으로 모셔들이고, 나의 구주로 모셔들이고, 예수께 의지하는 길 이외에는 천하 인간이 구원받을 길이란 전혀 없습니다. 수양도 좋습니다. 도덕도 좋습니다. 윤리와 도덕적 행위도 좋습니다. 수많은 종교도, 철학도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개인의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탕감 받고 용서받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보상 물인 예수 그리스도 밖에 의지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구원받을 힘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우리의 보상 물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일생의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탕감해 버리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접하사 여러분과 나를 의롭다고 청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의 죄 갚음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의 보상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의 용서와 의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유노유, 빈부귀천,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다 보상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영혼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의롭게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의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죄가 탕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 가지 보상이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은 예수님이 보상이 되시기 때문에 어떠한 죄인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축복은 내가 죄지은 자에게 최선의 보상을 해야 하나님께서 세상의 축복을 허락해 줄 수가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마십시오.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원한 죽음에서 보상을 얻고 구원을 얻어서 천국은 갈 수 있습니다만, 이 세상에서 내가 이웃에 죄지은 것 내가 보상하지 아니하면 내가 아무리 회개해도 이 세상에서 축복은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 축복을 하나님 앞에서 누리고 영원한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고 영원한 영생의 보상으로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죄를 자백하고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부모에게, 이웃에게 죄지었으면 회개하고 보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다는 것은 인간생활을 구원하고 축복을 받게 하는 좁은 길입니다. 이 길로 들어가기는 힘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움과 복수와 거짓의 넓은 길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가시밭,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용서의 길은 좁은 길이라 그곳에는 영생과 축복과 영광이 깔린 황금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모두다 마음속에 용서의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짖고, 불의하며,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긍휼히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보상으로 내어 주시고 그리스도가 우리대신해서 죄악을 갚음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받아들이는 이 마다 하나님께서 저희 보상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용서하고 탕감하고 구원해주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은즉, 여러분과 나는 사랑에 빚진 자들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는 용서에 빚진 자들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말씀한 대로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내게 죄를 짖고 와서 잘못했다고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용서는 여러분과 나의 영혼을 치료합니다. 용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치료합니다. 용서는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치료합니다. 우리는 용서해 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자는 자기가 용서받은 만큼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상을 하도록 전력을 다하십시오. 나의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상처 입은 그 액수대로 보상을 못할지 몰라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참된 용서를 누리게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의 보상은 예수님 이외에 아무것도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생의 보상은 받았습니다. 영생의 보상은 예수를 통하여 지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일에는, 회개했으면 이웃에 찾아가서 보상하십시오. 그를 통해서 여러분은 진실로 기도가 응답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용서에 빚진 자들인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용서해 주셨은즉, 우리도 마땅히 우리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용서에는 회개와 보상이 따르지 않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혼은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보상으로서 예수님이 죽어 주셨으니, 예수께서 우리 죄의 갚음이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이웃에게는 우리가 잘못했으면 회개하고,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잘못을 보상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막힌 담도 없고, 이웃하고도 우리사이에 막힌 담이 없는 진실로 화목한, 진실로 서로 불쌍히 여겨 하나가 되는, 위대한 삶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우리 형제, 자매 중에서 아직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원수 된 상황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에 하나님의 보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이고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구원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내 부부간에, 내 부모, 자식간에, 이웃 간에, 형제간에 미워한 것 있으면, 원한 진 것 있으면, 다 용서하고 성찬에 참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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