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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길

by 삶의언어 posted Jul 28, 2024 Views 1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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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성령/성령충만
예배드린 날 2009-03-15
오늘의 성구 로마서 8장 1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i98DoH4i-pw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4절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원하셔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
기적을 경험하는 위대한 삶 살 수 있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서 애를 태웁니다. 성령님은 한두 가지 결정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기에 쉽게 이 방법으로 하라, 저 방법으로 하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특별계시를 통하여

 성령님은 특별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데 그 특별계시란 꿈이나 환상이나 예언 등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로 18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릴 때 꿈을 통해 요셉에게 알리셨습니다. 또한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니 애굽으로 피난가라고 지시할 때도, 이제 헤롯이 죽었으니 고향땅으로 돌아오라고 하실 때도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꾸는 꿈은 다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꾸는 꿈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꿈에 예수님이나 천사가 나타나서 계시를 할 때 진실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계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말할 때도 있고 인간의 생각으로 꿈을 꿀 때도 많습니다. 오직 꿈에 하나님의 사자나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성경에 어긋나지 않을 때 진실로 하나님이 계시한 꿈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환상이 있습니다. 환상은 자지 않고 깨어 있는데 영화나 TV를 보듯이 눈앞에 하나님이 말씀하고 싶은 것이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1절로 3절에 보면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넬료라는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많이 하고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그러니까 오후 3시 경에 가정예배를 보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고넬료가 깜짝 놀라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자가 말하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환상입니다. 이 환상도 우리가 잘못 보면 안 되지만 주님께서는 결정적일 때 환상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음성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든지 예언을 통해서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로 3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말씀합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음성에 순종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 선교사로 파송한 것입니다. 제가 대조동에서 목회할 때 이 음성을 수차례 들었습니다.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고 처참한 상황입니다. 완전히 가난이 철철 흐르고 먹고 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몇 사람 모여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하는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저보고 일어나서 팔을 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팔을 펴니까 천막 안을 빙 돌면서 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천막 안을 도니까 하나님이 “장차 네가 온 천하만국을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저는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지금 사흘에 죽 한 그릇도 못 먹는 처지에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영어로 설교할 기회가 많을 터이니 열심히 영어 공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국말로도 겨우 몇 사람 앉혀 놓고 설교하는데 제가 무슨 영어로 설교를 한단 말입니까?”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영어로 설교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행여나 싶어서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는데 하나님께서는 1970년대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종종 선지자를 통해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음성이 다 주의 성령께서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마음속에 새겨 놓고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묵시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생각을 떠오르게 하셔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로 26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지시가 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누가 말도 안했는데 마음에 깨달음이 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은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난 다음에 이런 병이 나았다거나 저런 병이 나았다고 하시는데 무엇을 보고 그렇게 하십니까? 어떻게 아십니까?” 제가 어떤 병이 나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음에 지시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는 마음에 하나님이 그런 지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지시를 주시는 것이 꼭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에 지시가 떨어지면 제가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구나’하고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그 지시에 따라 병이 나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제 믿음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의 소원을 통하여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주로 이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냥 일반적인 소원은 우리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일에 대해서 뜨겁게 마음에 소원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그 소원이 사라지지 않고 그 소원과 함께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동반될 때 하나님이 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내 생각이나 마귀의 생각은 마음에 넘치는 평안을 안줍니다. 소원이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생각 밖의 일이 마음속에 소원이 되더라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제가 미국 선교를 시작했을 때 미국에 많은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주의 종을 미국까지 보낼 수가 없어서 미국에서 주의 종을 양성했으면 하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LA 해안에 있는 조그마한 섬에 가서 하루 종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주님의 뜻이면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랬더니 굉장히 마음이 뜨거워지고 소원이 일어나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옵니다. 그 일을 안 하려고 생각하면 마음이 슬프고 외롭지만, 그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하고 소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 저는 이곳에 돈도 없고 신학교를 세울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일이 주님의 뜻이면 주님이 기적을 행하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나서 섬에서 나와 조그마한 집회를 했는데 제가 그 이야기를 하니까 한 집사님이 “저에게 지금 안 쓰는 집이 있으니까 신학교를 세울 때까지 그 집을 써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가보니까 집이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가 받아서 거기서 신학교를 시작한 것이 오늘 미국의 베데스다대학교가 된 것입니다. 보통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있는데 그 소원이 기도하면 할수록 더 뜨거워지고 소원과 함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뜨거운 소원이 오고 평안과 기쁨이 오더라도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로 왔는지 아니면 사탄이 말하는 것인지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오는 소원은 말씀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동반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탄이 갖다 주는 것은 마음이 불안하고 기쁨이 없으며 성경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3. 주위환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주위 환경을 통하여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나는 아무런 특별한 계시도 받지 않았고 마음에 소원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환경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환경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갈 데가 없이 그 길밖에 갈 데가 없게 하셔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여의도로 나올 때 서대문에서 참으로 어려움에 처했었습니다. 서대문에서 1만여 명이 예배를 드리니 교통이 하루 종일 마비가 돼서 더 이상 예배를 드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시경에서는 교통 체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되겠다고 예배를 중지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교회를 지어 나가려면 막대한 돈이 드는데 저희는 돈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산동네에 있는 판자촌 땅을 얼마 사가지고서 거기에 천막을 치고 교회를 옮기자는 분도 계셨습니다. 또 정부하고 싸우더라도 이곳에 있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교회를 쪼개자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여의도가 개발됐습니다. 사실 우리는 꿈도 못 꾸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환경이 자꾸 여의도로 가도록 그렇게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시 서울 시장을 만나게 해주셔서 여의도에 땅을 확보하고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도 많았고 고생은 많이 했지만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 인도해주셔서 오늘날 이 교회를 짓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보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예비해놓은 것입니다. 그 예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 길로 걸어가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4.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마음속에 말씀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있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로고스’라는 말이 있고 ‘레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로고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신 똑같은 성경 말씀, 이것이 로고스입니다. 그러나 이 로고스인 성경을 읽다가 성령이 감동하셔서 마음이 찡해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구나’라고 할 때는 그 로고스가 레마로 변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레마입니다. 레마가 오면 마음에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냥 로고스인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로고스가 마음에 깊이 감동이 되고 마음이 찡해져서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레마가 되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그냥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콱 집어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던지 듣던지 하다가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마음이 찡해지고 코가 시큰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도 설교 전체가 다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를 듣다가 어느 구절이 내 마음속에 부딪힙니다. 어느 말씀을 듣거나 어느 예화를 들을 때 내 마음에 확 부딪히면서 ‘저것은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인 것입니다. 그저 평범하게 들으면 ‘그것 참 좋은 말씀이다. 내가 못 깨닫던 것을 깨달았네’라는 생각만 드는데 그것은 로고스입니다. 내 마음에 성령의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때 그 말씀이 레마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 체험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밤에 배를 타고 가는데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니까 모두들 유령이라고 고함을 치고 머리를 숙이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갔으니까 나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믿음으로 걸어가자!’고 생각하고 나갔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신 것을 직접 들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물위로 걸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로고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와서 레마가 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에 방탕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10대에 여자와 동거하여 사생아를 낳았고, 이교에 물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거스틴이 정원을 거닐다가 어린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 그 말이 꼭 자기를 보고 하는 말 같아서 그 자리에서 성경을 폈는데 로마서 13장 13절에서 14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런데 이 말씀이 마음을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운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그 말씀을 듣기도 하고 읽기도 했으나 아무 감동이 없었는데 그날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서 읽었을 때는 마음에 깊이 감동이 되고 크게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 말씀에 크게 감동돼 이후 그의 신앙과 삶이 획기적으로 변화됐고 기독교 역사 가운데 큰 인물이 됐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말했습니다. 보혜사란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로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걸머지셔서 다 이루어 놓으셨고 성령님은 다 이루어 놓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가지고 항상 우리를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살기를 간구할 때 성령께서는 특별계시, 마음의 소원, 주위 환경,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생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담대하게 믿으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못 믿는 것을 우리는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이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 같이 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도와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서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도전에 응전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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