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최초의 질문에 대한 최종의 대답"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만세 전에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기 이미 전에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다 지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서 하나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지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빛이 있었고, 하늘이 있었습니다. 육지가 있었고, 모든 만물이 육지에서 생겨났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이루어졌고, 공중에는 새가 있고, 물 속에는 물고기가 있었고, 땅위에는 짐승이 뛰고 놀았었습니다. 그 무엇하나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동방에 에덴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에덴을 다스리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모자람이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모든 동산의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이 예비한 모든 것을 다 누리게 하시되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심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인간 사회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꾀임을 받아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짓밟고 자기들이 하나님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떠난 것을 알게되고 죄책으로 말미암아 벌거벗은 수치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무뒤에 숨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오셔서 물은 질문이 있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신 하나님께서 나무 뒤에 숨어있는 아담을 몰라서 찾았었겠습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물은 것은 아담이 그 몸을 어디에 숨겼는가, 이것을 하나님께서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 너희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가, 너희 처지가 어떻게 되었는가, 너희 실존적인 형편이 어떻게 되었는가, 이것을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난 다음에 어떠한 운명에 떨어지고 말은 것입니까? 아담은 죄악가운데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너가 어디에 있느냐? 죄악가운데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나는 분리되었고, 하나님의 반역의 죄를 짊어지고 내 영혼은 죽고, 처참한 전경에 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하나님과 원수된 가운데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라도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반역하고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나는 원수된 가운데 있습니다. 영광은 떠나갔고, 하나님의 성령은 떠나갔었습니다. 나는 버림받고 처절한 절망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이제 죽음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영원히 사는 생명은 빼앗겨 버렸고, 내 육체는 지금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모든 주위는 갑자기 생명이 사라지고, 나뭇잎은 떨어지고, 꽃은 시들고, 새들은 울면서 죽어가고, 짐승들은 죽어갑니다. 나도 육체니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니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질병과 고통은 이제 나의 운명적인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제는 질병과 육체의 죽음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담아 그거밖에 없느냐 너는 어디에 있느냐? 아담은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전에 없던 가시가 꾸부져 나왔습니다. 엉겅퀴가 생겨났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저주가 마치 폭풍우처럼 휘몰아쳐 왔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저주 아래 있습니다. 이제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삽니다. 그래도 나의 생애속에 고통과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혼속에 저주의 가시가 솟아납니다. 가정과 환경에서 저주의 가시가 솟아나고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이제 영원한 멸망 중에 처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내 육체가 시들고 나면 내 육체의 장막 집이 무너지고 내 영혼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마귀와 그 사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는 영원한 절망밖에 놓여진 것이 없습니다. 아담의 후예들 여러분과 나도 아담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오늘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을 할 때 이러한 처절한 절망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서 살아왔습니다. 우린 다 태어날 때부터 질병과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저주의 가시채를 몸에 감고 살았으며, 영원한 멸망의 운명속에 처해 있습니다. 이 처참하게 버림받은 이 자리를 누가 옮겨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인간은 인간의 그 처참한 운명을 제껴보기위해서 여러 가지 주의를 만들어 보았었습니다. 제국주의도 만들어보고 독재주의도 만들어 보고 공산주의도 만들어 보고 민주주의도 만들어 보고, 과학도 발전시켜 보고 철학도 전개해 보았습니다만 오늘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질문한 그 질문에 아직도 속 시원하게 인간이 대답한 대답은 없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 처절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이상 인간의 운명은 버림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버림받은 처지에서 건져내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인간이 이 문제에 대해 아무도 대답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에 친히 이 인간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대표해서 이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천년 전에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서의 인간이 되어 오셔서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인간의 모든 절망을 짊어지셨습니다.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저지른 그 죄악, 하나님께서 너의 처치가 어떤 것이냐고 물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원하셔서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없는 자로서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으로서 원수된 것을 대신 짊어지고 그리고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한 몸에 걸머쥐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사야서에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각기 그릇 행하여 어린 양처럼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가장 인류에게 던져진 처절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다.
아담의 후예들이여, 아담아 너희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 주님께 말할 수 있습니다. 예, 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가 다 청산을 받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맡긴 모든 죄가 다 청산받았기 때문에 예수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입어서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되었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참소를 해도 예수 십자가에서 넘쳐나는 그 보배로운 피가 나의 운명을 덮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이제는 나는 용서받고 의롭게 된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가슴 펴고 떳떳이 설 수 있고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대답입니까? 이제는 여러분과 내가 우리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그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에 의지해서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하 모든 인간에게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사람들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없이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이 될 수가 있다, 혹은 과학을 통해서 혹은 심리학을 통해서 혹은 종교를 통해서 될 수 있다고 꾀고 있지만은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하나님이여, 저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나는 용서받은 자의 안에 있습니다. 나는 의로움을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 품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우주를 향해서 역사의 복도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져진 이 질문을 통해서 주님이시여 나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리에 있습니다. 원수된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제껴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우리의 손을 잡고 당신의 가슴에서 십자가에 넘쳐 나오는 보혈로 하나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원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아들된 증거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여러분, 생명을 이어받아야 생명을 준 자에 대해서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길거리에 수많은 남자가 있어도 모든 남자를 다 잡고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전달한 자를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 원수된 것은 다 사라지고 말은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겠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부름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아버지께로 나갈 때 이제 원수된 담을 다 무너졌었으니 남녀노소 빈부귀천할것없이 모두 다 하나님의 친자식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자리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생명의 근원이 되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가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난 요번에 미국에 가보니까 미국의 카리슨마츠에서 통계를 냈는데 미국의 평신도가 하루에 기도하는 것이 60초, 목사가 하루에 기도하는 것이 90초, 여러분 60초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통이 있을 수가 있으며 90초를 기도하고 어떻게 강단에 서서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래 저가 가니까 하루에 십오분씩 미국 성도 백만을 기도하게 하자 그런 제목이 있기에 내가 그걸 고쳤습니다. 15분이 뭐야, 어디 성경에 15분 기도하라는 말이 있더냐.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그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질 때까지 기도하고 난 다음 제자들에 와보니 제자들이 잠이 든지라 예수께서 제자들보고 하신 말씀이 너희가 깨어서 나와 함께 한 시간동안 기도할 수 없느냐 질문했던 것입니다. 최소한은 한시간도 기도할 수 없더냐? 크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는 시간이 안 바쁘고 기도하면 시간이 바쁘더냐? 그래서 저가 아라바마의 몽고메리에서 고쳤습니다. 15분이 뭐냐, 15분이. 한 시간 기도해라, 한시간. 모든 평신도와 모든 목사와 모든 교회가 적어도 한 시간씩 저녁에 텔레비전 보지말고 기도하라. 그리하면 개인의 문제가 해결되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라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저가 외쳤습니다. 과연 여러분께서 기도를 해주셔서 성령이 하늘에서 비와 같이 쏟아졌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성령의 은혜가 오니깐 얼마나 뛰고 춤을 추는지, 여러분 돈준다고 그렇게 뛰고 춤 안 춥니다. 회개하고 성령이 오니까 남녀할 것없이 일어나서 춤을 추는데 강단에 내가 부럽더라구. 설교를 한 나는 못 뛰는데 들은 사람은 뛰더라고요.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서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사라지고 나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하나님의 손길이 와서 우리를 붙들어줄 때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와 있느냐? 아담은 이제 우리는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가운데 와 있습니다. 이제는 영혼이 치료받고 마음이 자, 미움에서 치료받았습니다. 공포에서 치료 받았습니다. 좌절감에서 치료받았습니다. 죄책에서 치료받았었습니다. 마음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강물같이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뿐아니라 우리의 몸이 치료받았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기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절망적인 병에서 우리는 고침을 받았습니다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저가 외국에 나가서 수많이 말씀을 증거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했지만은 요번 몽고메리에서만큼 병자가 많이 나은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것은 물론 여러분에게 제가 기도를 간절히 부탁했기 때문에 그런줄 압니다만 간증하러 나오라하니깐 일시에 병 나은 사람들이 한 400명이 앞으로 나오는데 도저히 간증을 할 수가 없어요. 시간이 없어요. 앞서거니뒷서거니 막 물밀 듯이 간증을 서로 하겠다고 뛰어 나옵니다. 병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마치 하늘에서 소낙비와 같이 쏟아집니다. 그 자리에 온 병자들이 모조리 다 나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꽉 들어찼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병과 썩음 가운데 있지 않고 치료 가운데 있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이제 치료받은 자 가운데 있습니다. 건강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축복가운데 우리가 들어와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의 가시채는 사라졌었습니다. 엉겅퀴는 사라졌었습니다. 여러분과 내 마음 가운데서 저주의 가시채와 엉겅퀴를 뽑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오늘 미치는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므로 여러분과 나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이제는 우리는 더 이상 저주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주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을 얻었습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자리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담대한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 교회에서 기복신앙을 전파한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복을 안 받으면 그러면 세상에 무당믿고 복을 받으라는 말인 것입니까?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후예로서 복이 없는 저주 가운데 살았는데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서 저주에서 해방되었다고 성경에 분명히 말하는데 왜 예수 믿고 복을 안 받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유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유케하심이라고 고린도후서 8장9절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저주아래 있는 아니하고 축복아래 들어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담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이 우리의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혼도 내 생활도, 저가 어느 곳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해도 나는 이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지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저주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저주를 받고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을 얻어서 무엇을 해도 내 길이 형통할 것이다라고 믿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여 주셔서 형통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과 내 마음에 가시와 엉겅퀴를 제해버리게 되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제 우리는 담대하게 말합니다. 영생과 천국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옥은 사라졌었습니다. 사망의 권세는 철폐되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안에서 지옥을 다 철폐하고 사망 권세를 철폐하고 영생의 자리에 들어왔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마음속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에 벌써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희락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내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우리는 담대히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담대하여 차라리 이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더 좋다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 주를 믿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망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쏘는 것과 이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다 철폐되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오직 영생과 부활만이 남아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육천여년 전에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께 에덴에서 아담아 너의 처지가 어디에 있느냐? 너의 신세가 어디에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질문했었습니다. 아담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원수된 가운데 있었고 질병 가운데 있었고 영원한 죽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인류는 지금까지 인간의 모든 주의나 철학이나 수단이나 방법이나 과학을 통하여 이 질문과 운명에 대하여 대답할려고 했지만은 실패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그 몸 찢고 그 피 흘려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를 지불하고 죽음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영원한 질문이요 숙제에 대한 최종적인 대답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예수 안에서 죄는 이기고 의의 밖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서 원수된 것은 사라지고 성령이 충만하고 화목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질병은 사라지고 사망을 사라지고 치료와 영원한 부활만 남아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저주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형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지옥은 사라지고 음부는 사라지고 천국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은 최종적인 대답을 주고 말은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도망자, 늘 쫓기며 살아 온 자인 것입니다. 인간은 불안하고 두려웠으며, 언제나 벌거벗은 부끄러움, 열등의식 속에서 버림받은 심정을 가지고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쫓기지 않습니다. 이제는 평안과 안식이 있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의 가슴속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삶의 처소를 우리는 이제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제 쫓기지 않습니다. 죄가 아무리 쫓아와도 우리는 죄에 쫓기지 않습니다. 의의 속에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원수된 두려움이 우리를 쫓아와도 쫓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가운데 있습니다. 질병에 쫓기지 않습니다. 치료와 건강이 있습니다. 환경의 실패와 낭패와 저주가 우리에게 힘을 합쳐와도 쫓겨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가운데 들어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쫓아와도 쫓기지 않는 것은 우리가 영생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아무 유익도 없는 이 시점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잃은 것을 다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얻는 축복은 도저히 우리가 인간으로서 헤아릴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두 손을 활짝 내밀고 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이제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하겠다. 내가 다 이루었다. 이젠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인간의 가장 처절한 절망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 모든 절망을 깨뜨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원천이 되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용서가 있으며, 이제는 화목이 있습니다. 이제는 치료가 있습니다. 이제는 저주의 해방이 있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일어나서 운명과 환경을 정복할 수 있는 마음의 용기와 힘이 생겼습니다. 우리 기도의 자원이 생겨난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원수가 마치 파도처럼 밀려와도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보다 더 큰 능력으로 우리를 밀어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오, 부활하신 우리 구주 나사렛 예수여. 오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망을 다 철폐해버려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속에 부활의 영광으로 가득차고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으로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큰 축복가운데 일어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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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최초의 질문, 최종의 대답
by 삶의언어 posted Aug 07, 2024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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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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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6-03-30 |
오늘의 성구 | 요한복음 1장 18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AM2lMVExe8c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