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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하나님, 나 그리고 세상

by 삶의언어 posted Aug 23, 2024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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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하나님/하나님 나라
예배드린 날 1986-09-28
오늘의 성구 히브리서 3장 15절로 1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wV6qSxHd7Wk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 나 그리고 세상"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새상에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문제의 수풀을 헤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고 크고 적은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한시라도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수많은 문제에 부딪힐 때 우리들은 그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크게 두가지를 채택합니다. 그는 첫째로 예수를 안믿는 사람들이 채택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오면 거기에 자기의모든 수단과 방법과 노력을 총 동원해서 인간의 힘으로 부딪혀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행히 그것을 해결하면 성공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실패하고 낭패하고 혹은 산산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이 문제에 부딪힐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는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하고는 완전히 틀립니다. 세상 사람은 문제에 부딪히지만은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딪히는 것입니다. 왜그러냐하면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고 또 하나님은 이 만물을 소유하시고 또 이것을 다 다스리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며 우리의 모든 운명을 그 손에 들고 계심을 잘알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려고 하지 직접 문제에 부딪혀 가지고서 해결하려는 세상적인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그 자세를 통해서 환경적인 운명을 변화시킬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알아보고자 싶은 것은 하나님과 우리 조상 아담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이 천지와 만물을 위해서 있는게 아니라 천지와 만물이 아담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해 주시냐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엿새동안에 만물을 다 아담을 위해서 준비하시고 난 다음 마지막 아담을 지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에덴동산도 아담을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주중에 하나님 마음속에는 인간이 관심의 초점인 것입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와성 같은 이와같은 우주의 별들이나 저 안드로메다성좌나 그렇지 않으면 저 수많은 은하성좌 이런 것이 하나님의 관심의 중심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과 나 인간이 하나님의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에게 있고 인간을 위해서 모든 자연 만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속에 있을 때 모든 주위환경은 좋았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살아갈 동안에 자연만물은 조화가 꽉 넘치고 생명이 넘치고 열매맺고 영광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와서 그만 자기의 신분을 버리고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나쁜 생각을 하자마자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교제에 금이 갔었습니다. 급기야 아담이 마귀의 꾀임을 받아 하나님의 금하신 금단의 열매를 따먹자 마자 하나님은 아담을 내어 쫓아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결별이 온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담의 영은 심판을 받아 죽고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 결과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지자 아담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모든 만물에 저주가 다가온 것입니다. 자연은 저주가 휘몰아쳐와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새들은 노래하다가 나무가지에서 죽어서 떨어지고 아름다운 꽃들은 시들어지고 그리고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슬픈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 우리 환경 가운데 이 모든 더러워지고 썩어지고 부폐해지고 처절한 싸움이 있는 것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져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 환경 가운데 수없이 많이 불어오는 문제의 태풍, 문제의 지진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사람들을 자기 정욕대로 내버려두사 자기 마음대로 살게끔 해버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담의 후예들은 하나님께 쫓겨나왔고 그 태어날때부터 영이 죽어서 하나님과 교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운명은 자기의 팔로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다가오면 자기 소매를 걷히고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려고 부딪혀 보는 것입니다. 요행히 해결되면 다행이거니와 해결이 안되면 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성서적으로 인류의 근원을 살펴보게 될 때 진실로 문제는 하나님과 사람 관계에 있지 환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면 세상은 그대로 조화되어서 굴러가게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올바른 관계에 서지 아니하고 아무리 세상을 좋아할려고해도 저주받은 세상에 어느곳에 가나 부조화와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살상으로 꽉들어차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제가 이 사실을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고 싶은 것은 야곱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 이삭이 나은 아브라함의 손주인 것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에게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 쌍둥이가 바로 에서와 야곱입니다. 한날 한시에 났지만은 에서가 먼저 나고 야곱은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이름을 교활한자라 그래서 야곱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점점 자라나매 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창던지고 활쏘아서 짐승을 잡아 아버지를 즐겁게하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하나 하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은 굉장히 교활했었습니다. 그래서 부엌일을 도와주고 엄마를 따라서 어머니가 야곱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형이 들에서 열심히 창을 던지고 활을 쏘아서 짐승을 잡다가 허기증에 걸렸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깐 부엌에서 야곱이 붉은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너 그거 죽한그릇 다오 그러니깐 형이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아 하나님 앞에 맹세하면 내가 죽한그릇 주겠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장자의 명분을 얻은자가 부모를 상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에서는 말하기를 내가 배고픈데 장자의 명분같은거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나님앞에 맹세하고 자기의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죽 한그릇 주었었습니다. 세상에 죽 한그릇 얻어먹고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리는 이러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에서는 그렇게 망령되었었습니다. 야곱은 그처럼 교활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의 수단과 방법으로 인생문제를 해결하였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나이 많이 세상이 뜨게 되었을 때 눈이 어두었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 뜨기 전에 맏아들 에서를 불러서 축복을 해주고 그리고 상속을 할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으면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을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에서를 불러서 내 장자 에서야 내가 이제 눈이 어둡고 이제 세상 뜰날이 가까워왔으니 너는 가서 짐승을 잡아서 내 맛있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실컷 먹고 기분이 좋을 때 너를 한껏 축복해 주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에서가 짐승을 잡으러 갔을 때 어머니가 즉시 야곱을 불렀습니다. 너 아버지가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줄려니깐 안되겠다. 너 빨리가서 짐승의 우리에서 짐승한마리 잡아오너라. 요리야 어머니가 잘하지 에서가 잘하겠습니까? 짐승을 잡아오자 그 어머니가 큰 맛있게 별미를 만들어서 야곱을 불러서 에서의 옷을 입히고 그리고 야곱이 에서처럼 털이 많게 양털을 온몸에 붙여 가지고서 아버지에게 나가서 내가 아버지의 장자 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적히 짐승을 만나게해서 짐승을 잡아 별미를 가져왔으니 아버님께서 잡수시고 마음껏 나를 축복해 주옵소서. 그 아버지가 가만히 들어보니 목소리가 야곱의 목소리거든. 어디 내 가까이 오거라. 옷에 냄새를 맡아보니 에서의 냄새가 나고 몸을 만져보니 양털을 묻혔으니깐 털이 북실북실하니 거참 괴이하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린데 옷은 에서의 냄새가 나고 몸의 털은 에서의 몸의 털이니 틀림없이 장잔가 보다. 형제간에 목소리가 닮기도 하겠지. 그러면서 별미를 실컨 잡수시고 기분이 좋아서 그만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다 주어 버렸었었습니다. 실컷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나오자마자 에서가 짐승을 잡아와서 요리를 해서 아버지! 장자 에서가 왔나이다. 그러니깐 아버지가 벌벌떨면서 일어나서 그럼 조금전에 와서 축복받아간 에서는 누구냐? 내 동생 야곱이 교활하게 나를 속이고 나로 가장해와서 아버지에게서 나의 축복을 다 빼앗앗나이다. 아버지여 나도 축복하여 주소서. 통곡을 하고 울었었습니다. 그러자 그 형이 동생을 죽일려고 했습니다. 엄마가 그것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야곱을 자기의 친정으로 보내었었습니다. 외아저씨 집에가서 야곱은 어머니가 세상 뜨는데도 와보지 못하고 이십여년동안 외아저씨 집에서 붙어 살았는데 외아저씨를 속이기도 하고 외아저씨에게 속기도하고 야곱은 교활하게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문제에 부딪혀서 이십년을 살았으나 자기는 말하기를 아직까지 자기 집하나 세울수 있는 재산도 모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련과 고생을 통하고 진땀을 흘렸지만은 이룬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면 팔이 뿌러질때까지 일을해도 이룬 것이 없고 고통과 괴로움밖에 없습니다. 이제 근 사십이 다 되어가자 야곱은 고향땅에 돌아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외아저씨 몰래 처자들을 모아서 자기가 얻은 재산 모아서 야밤도주로 피해오다가 그만 외아저씨에게 길 중간에서 잡혔습니다.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야곱에게 손대지 말라고 안하셨으면 외아저씨가 야곱을 죽일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외아저씨가 하는말이 다시는 내게 오지마라. 오는날에는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야곱은 또다시 얍복 나루터에 왔을 때 자기의 종을 보내어서 고향땅 에서에게 소식을 보내었습니다. 동생 야곱이 들어오니 용서해서 받아 주옵소서. 형이 이십년동안 원수를 갚을려고 칼을 갈다가 야곱이 온다는 말을 듣고 자기 집에서 기른 사병 사백명을 거느리고 일어나 질풍같이 야곱을 향해서 뛰어오니 그 소식을 접한 야곱은 간담이 녹고 뼈가 녹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그는 교활한 수단으로 형의 마음을 녹여 볼려고 한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짐승의 떼중에 한떼, 두떼, 세떼를 갈려서 구간을 정해가지고서 형이 오는길로 먼저 보내고 두 번째 떼를 보내고 세 번째 떼를 보내서 한떼, 두떼, 세떼 짐승의 선물을 보고 형의 마음이 녹도록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얍복강을 자기의 처자들은 다 건너가게하고 자기 혼자 얍복강 나루터 이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형이 많은 짐승의 선물도 거부하고 와서 자기의 처자들을 처죽이면 그때는 자기를 죽일 의사가 뚜렷하니 그때는 자기 전력을 다하여 도망을 쳐보자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교활한 수단을 다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와서 이제 야곱을 깨뜨리려 하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야곱에게 너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앞에 깨어져서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라. 너의 부딪힌 문제를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주고 하나님께 순복해서 깨어져서 하나님앞에 문제를 해결하라. 그러나 야곱은 거기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하나님도 억압해 버리고 자기의 수단과 방법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합니다.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다가 정 안들으니 아침에 하나님의 사자가 손을 들어 야곱의 환도뼈를 쳐버리니 그의 환도뼈가 어그러져서 절름발이가 됐습니다. 절름발이가 된이상 이제는 달아날수가 없습니다. 이제 형이 오면 별수없이 잡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막다른 골목에 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를 붙잡고 이제는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 이제 하나님의 축복 아니고는 나는 문제가 해결이 안됩니다. 이제 나는 환경에 부딪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교활한 수단과 방법으로 안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시여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셔야 환경의 문제가 해결되겠나이다. 이제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습니다. 야곱의 앞길은 칠흙같이 어둡지만은 그는 수평적으로 문제를 해결할려고 하지않고 수직적으로 하나님이여 이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옵소서. 그러자 내 이름이 뭐냐 그랬습니다. 교활한 자 야곱입니다. 이제부터 교활한 자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꿔라.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자 하나님의 왕자라고 이름을 바꿔라. 이제는 문제를 수평으로 교활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하나님과 관계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너가 됐으니 이름을 바꾸라. 이름을 바꾸고 난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절뚝 절뚝 절뚝 하면서 그는 자기의 처자가 있고 짐승떼가 있는 얍복강을 건너갑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때는 야곱은 인제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형이 분해서 사백여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질풍같이 다가오는데 그 형의 앞에 절름발이가 된 그가 짐승떼와 처자를 거느리고 들어간다는 것은 새가 악어 입으로 기어들어가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별도리없이 인간으로 보아서는 절망입니다. 수평적인 방법으로 봐서는 야곱이 문제에 부딪히려 가는데 아무런 문제 해결의 방칙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고 말은 사람인 것입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 사람이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비록 몸은 절름발이가 되어서 절뚝 절뚝 하고 가지만은 하나님이 야곱과 같이 걸어가셨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러 질풍같이 달려오다 보니 야곱에게 가차와질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마음에 비취매 눈이 봄날의 따듯한 기운에 안녹을수가 있습니까? 얼음이 뜨거운 불앞에 녹아지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까? 점점 그 분노가 녹아지고 미움이 사라지고 이상하게 야곱 근처에 오자 통곡이 솟구쳐 올라서 그는 말에서 뛰어내려와서 그가 동생의 목을 안고 야 이녀석아 이십년동안 집과 형을 떠나서 무엇하고 이렇게 절름발이가 되서 돌아오느냐? 목을 서로 부비며 통곡을 하고 울었었습니다. 잘왔다. **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야곱이 이십여년동안 고생과 눈물밖에 얻은 것이 없는데 그가 하나님앞에서 수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자 그의 수평적인 문제는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돼 저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 나라와 그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일은 더하여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여러분하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요셉에서 우리가 배우자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릴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형제들 모두다 하나님에 관심이 없고 먹고 마시고 목축이나 하는데 관심이 있었지만은 요셉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어릴 때 벌써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었습니다. 그는 하루 꿈을 꾸었는데 밭에 나가서 곡식을 거두는데 자기 단이 가운데 서고 열한형제의 단이 둘러서서 자기를 향해서 절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또한번은 꿈을 꾸니깐 밤에 해와 달과 열한별이 하늘에서 줄을서서 자기를 보고 절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 가정에서 으뜸이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식탁에서 말했다가 형들이 분개해 가지고서 모두다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만 아버지는 요셉을 사랑해서 채색옷을 입혀주고 극진히 요셉을 귀하게 여겼었습니다. 여름에 형들이 한 두서너달 들에 나가서 목축을 합니다. 아버지는 형들의 안부를 물어보기 위해서 요셉에게 음식을 만들어서 가지고 형들에게 보냈는데 형들의 밭에 오자 형들이 말하기를 저 꿈쟁이가 오는 것 봐라. 우리가 저놈을 잡아 죽여버리고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자. 그리고 비웃으면서 요셉을 잡아서 음식은 빼앗고 옷은 빼앗아 버리고 그리고 그는 마른 우물에 던져 버렸다가 나중에 아라비아 대상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우물에서 끌어내어서 아라비아 대상에게 돈으로 팔아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웃었습니다. 자 꿈쟁이가 애굽으로 종으로 팔렸으니 자기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우리 가족중에 으뜸이 되는가 보자. 찌글 찌글 웃었습니다. 요셉은 울며 울며 끌려내려 갔지만은 요셉은 인생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형들과 싸울려고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문제해결은 하나님 앞에서 해결한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요셉과의 사이에 아무런 막힌 담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신뢰했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순복했기 때문에 그는 비록 현실적인 환경에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가시밭이 전개되어도 하나님께서 종극적으로 합동하여 유익하게 만들어 줄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서 뼈를 꺽는 고생을 하고 일을 했지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요셉이 손대는 것 마다 일이 잘되며 얼마 있지 아니하여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종들을 부리면서 편안하게 지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디발의 아내가 끊임없이 요셉을 유혹하다가 안되니깐 나중에 누명을 덮어씌워서 남편에게 고발하여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요셉은 많은 매를 맞고 시위대 감방에 갇혀 버렸었습니다. 시위대 감옥에 있어도 또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요셉이 하는 모든일에 복을 주시매 전옥이 완전히 감옥 열쇠까지 요셉에게 맡겨버리고 요셉이 감옥에서 온전히 자기가 죄수들을 돌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술장관도 만나고 떡장관도 만나고 그들의 꿈도 해결해 주고 그 꿈 그대로 떡장관은 목이 매달리고 술장관은 도로 복직되어서 바로의 술잔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이년후에 바로가 꿈을 꾸고 난 다음 그 꿈을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애굽에 대한 큰 문제를 하나님이 보여 준 것입니다. 애굽에 칠년 풍년이 다가올 것과 칠년 흉년이 다가올 꿈을 보여줬는데 아무도 애굽의 박사나 술객들이 해결하지 못한지라 술장관의 권면을 쫓아서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내니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하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다 알려주매 바로왕이 감동해서 이런 지혜로운 사람을 어디에서 얻겠는가? 그 자리에서 요셉을 국무총리로 만들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요셉은 왕의 버금가는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여러분 형들이 요셉을 종으로 팔고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 종으로 있다가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시위대 감방에 들어오고 그곳에서 세월이 흘러가도 끝없이 그는 감방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절망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은 요셉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려고 부딪히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서서 하나님과 나와 문제를 해결해 놓으면 세상의 문제는 실올이 풀려지듯이 자연적으로 풀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안되는 것이 점점 되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종국에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 그대로 요셉은 안되는 것이 모두 되는 것이 되어서 결국에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그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대국 애굽을 한 손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요 칠년 흉년동안에 곡식을 잘 모아놓고 칠년 풍년동안 곡식을 잘 모아놓고 칠년 흉년이 다가올 때 이 곡식으로 애굽을 잘 돌보고 세계를 돌보게 되었으니 그때에 자기의 아버지와 형들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고센땅으로 다 내려와 요셉앞에 절을 하게되 나중에 여러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열한형제가 겁이 덜컥 났습니다. 우리가 요셉을 애굽에 팔아서 과거에 죄를 지었으니 틀림없이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으므로 우리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래서 열형제가 모여와서 요셉앞에 무릎을 꿇어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에 우리를 불러 말씀하기를 요셉에게 찾아가서 비록 아버지가 세상을 떴지만은 너희들의 죄를 용서해주도록 하라! 그렇게 아버지가 유언을 하십디다. 그럼 요셉이 거짓말 하는거 뭐 모를턱이 있나! 요셉이 그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요셉은 깨어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요셉이 한 말이 나는 마음에 큰 감동을 줍니다. 창세기 50장 20절로 21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도다. 여기에서 요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을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방법에서 해결했지 수평적으로 부딪혀서 해결하지 않을려고 한 것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요셉이 믿은 신앙의 신념의 고백을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의 신앙태도인 것입니다. 아무리 형들이 나를 괴롭게 하고 보디발이 나를 괴롭게 하고 감옥에 들어오게 해도 이러한 해가 내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올바른 관계만 맥어놓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일일이 다 가지고서 선으로 변해 버리고 말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셉은 그 형들에 대해서 원한을 품지 않았었습니다. 원한을 품을 필요가 없습니다. 동남풍은 불어오고 서북풍은 언제나 불어옵니다. 가시밭은 언제나 있어요.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만 맺고 하나님앞에 올바른 사랑과 신뢰와 소망과 순종의 생활을 하면은 모든 환경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 사천만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산다면 아무리 소련이나 중공이나 이북의 공산주의가 악날하게 우리의 도발해도 하나님은 그들의 악을 일일이 때마다 선으로 변화시켜 버리고 말게 되실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신앙이란 환경에 부딪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하고 부딪히고 아내하고 부딪히고 형제하고 부딪히고 이웃하고 부딪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졸렬한 방법이요 이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앞에 부딪혀서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 소유주, 통치주가 되시며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하나님앞에 올바른 사랑과 믿음과 충성의 태도를 갖고 선 사람은 운명과 환경을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환경과 운명에 내힘으로 부딪힘은 인본주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설 때 신본주의로 서게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일해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한말을 기억하십시오. "너희는 오늘 두려워말고 잠잠히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것을 보라 오늘 너희가 본 이 애굽사람을 영원히 다시보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이것이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이 문제 해결의 방법인 것입니다. 원수를 내손으로 갚지 않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내 주먹으로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올바로 서서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문제해결을 수평에서 찾지않고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만물이 사람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는데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면 만물이 다 조화될것이요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면 만물이 다 거역하게 될것이요 저주가운데 사망으로 꽉 들어차게 될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것을 아시고 우리가 자나깨나 하나님앞에 올바로서게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그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전능의 손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사로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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