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하였으니 귀신이 나갔느니라'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사람의 영혼으로 구원하시고 병든 자의 병을 고치시며 귀신에게서 자유를 주시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주시는 역사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시는 곳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였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출입하시기조차 어려우시고 진지를 잡수실 수 있는 시간조차 빼앗겼었습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할 수 없이 군중을 피하셔서 제자들은 데리고 두로와 시돈 북부지역에 가서 좀 쉬시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서 집에 들어가시자 예수께서 오신 소문이 즉시에 퍼진지라 또다시 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비참한 상황에 이른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헬라인으로써 수로보니게족의 한 여인이었는데 그 딸이 무섭게 귀신이 들려서 인사불성이었습니다. 자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고함, 고함을 칩니다. 옷을 찢어 버리고 이부자리도 찢어 버립니다. 부모, 형제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합니다. 이 어린 소녀 때문에 온 집안은 마치 무덤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약을 다 먹여 보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의원들에게 다 가서 보았지만 낫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칠흑같은 어두움이 그 가정을 둘러싸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 여인을 결심을 했었습니다. 기어코 예수님께 나아가서 내 딸의 고침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계시는 곳에 와서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아무리 외쳐도 예수님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이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곧장 가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붙잡고 설득을 시켰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여 이 여인이 몹시 고함을 치니 고쳐서 보내드리지요" 그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이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직 때가 오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이후로 이방인에게 자비를 베풀기 시작했었습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유대인을 위해서 오신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의 간청도 안 들어준다는 것을 알자 이 여인은 직접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께 간청했습니다. "주님이여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사오니 내 딸을 고쳐주소서." 예수께서 준엄하게 바라보시고 난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에게 먼저 배부르게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해서 개에게 주는 것은 마땅치 아니하느니라"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말하기를 "옳소이다. 그러나 개들도 상 아래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감탄했던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이 말을 하였으니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그래서 집에 돌아가 보니 과연 귀신이 떠나가고 그 딸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전의 아름다운 딸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온 가정에 눈물은 기쁨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칠흑같은 어두움은 광명천지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께서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지만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스토리를 통해서 중대한 교훈 몇 가지를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귀신의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깊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20세기말에 처한 오늘날 이렇게 과학이 발달되었는데 무슨 귀신이 있다고 귀신같은 소리를 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실상은 여러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속에 들어간 귀신은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으며 먹을 것과 모든 것이 있는 에덴의 낙원을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는데 누가 아담과 하와를 파멸시켰습니까? 그 배후에 와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악한 영향을 미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였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첫째 아들인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들에 데리고 나가서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무엇이 형이 아우를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도록 마음속에 불붙는 질투심을 일으킨 것입니까? 성경은 여기 밝히 말씀하기를 요한1서 3장 12절에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가인에게 들어가서 불같은 질투심을 일으키매 그 아우를 쳐서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귀는 눈에 안 보이지만 배후에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왕에게 무엇이 왔기에 그 인격이 그렇게 변화되고 만 것일까요? 사울왕은 하나님이 택한 기름부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는데 그가 하나님을 반역하자 악신이 그에게 임하였었습니다. 악신이 그에게 임하자 그는 고통으로 완전히 인격이 일그러지고만 것입니다. 흉악하고 난폭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윗이 와서 수금을 타면서 야훼 하나님을 찬미하자 악신이 들어가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악신이 임하면 그의 손에 든 방창을 가지고 누구든지 찔러 죽이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안보이지만 악신이 사람들의 인격을 변화시켜서 흉악하고 난폭하고 흉포한 인간으로 만듭니다.
오늘날 레바논 사태를 보십시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흉악한 사건들이 생기고 인질사건이 생겨납니까? 이러한 일들은 그 배후에 우리가 계산에 넣지 않은 악한 원수 마귀와 귀신들의 횡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광야에서 누가 시험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시험하여 마귀가 하나님을 반역하도록 예수님을 꿰었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이기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그냥 판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최후의 만찬날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이 중에 누구가 한 사람 나를 팔 것이라고 하매 제자들이 내니이까? 내니이까? 내니이까? 할 때 예수께서 내가 한점 찢어서 국에 적시어서 주는 그 사람이 나를 판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떡을 국에 찍어서 가롯 유다에게 주매 가롯 유다가 그것을 받아먹으매 성경에 말씀하기를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니 캄캄한 밤이더라"고 말씀했습니다. 마귀에게 잡혀서 나가는 인생길은 밤밖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가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팔도록 괴계를 만들었고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은 삼십냥을 받고 팔아먹고 자기는 나중에 절망에 처해서 목메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인격적으로 부족해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에게 마귀가 사주했던 것입니다. 그는 마귀의 손에 잡히어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32절에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베드로를 마치 키로써 밀 까부르듯이 까불렀기 때문에 사탄의 사주에 이길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여러분 마귀와 그 종자인 귀신들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풍속을 쫓도록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게 하고 육체의 정욕과 마음의 탐욕을 쫓아서 하나님 없는 영원한 파멸로 이끌어 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대한 것은 무관심이요. 세상풍속을 쫓아서 탐욕의 포로가 되어서 나가다가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에는 다시 재기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한 파멸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쳤다"고 하심으로 수많은 병들이 마귀에게 눌리어서 병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약을 투약하고 수술을 받고 의사들이 치료해도 재발하고 다시 낫지 않는 이유는 그 마귀를 제하기 전에는 마귀의 억압에서 놓여남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미줄을 아무리 없애도 거미를 잡지 아니하면 거미가 자꾸 거미줄을 치는 것처럼 악한 원수 마귀를 내어쫓지 아니하면 질병은 재발하고 재발합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우리가 이 마귀를 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의, 거짓, 더러움, 탐욕, 미움, 세속적인 것의 배후에는 귀신이 있는 것입니다. 귀신은 자기 본인과 타인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단지 사회과학적인 면에서 철학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생활의 배후에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노리고 있는 원수 귀신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우리 주 예수에게 찾아왔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눈에 안 보이는 세계, 흑암의 세계를 정복하고 여러분과 나를 자유케 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의 시험을 당할 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귀의 유혹을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는 마귀가 한 발자국도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을 통해서 어느 곳에 가나 천국 복음을 증거 하시고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성경 어느 페이지에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던 중에 귀신을 쫓지 않고 지나간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12제자에게도 천국복음을 전파할 때 귀신을 내어쫓으라고 말씀하시며 70인의 제자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마지막 부활 승천할 때 최후의 가장 중요한 명령을 남기실 때 말씀하기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귀신의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예수께서 그 일생을 통해서 집요하게 귀신을 쫓아내시고 마지막 남긴 말 중에도 믿는 자는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원해서 오늘날 귀신의 미혹가운데 들어있습니다. 심지어 귀신이 없다는 말조차도 귀신에게 속하게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개인이나 가정이나 우리의 생활에 자유를 얻고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귀신의 역사를 멸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십자가상에서 마귀와 그 종자인 귀신들을 파멸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마귀는 죄악의 괴수인 것입니다. 죄인들은 얼마든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도 있고 파멸시킬 수 있지만 예수님은 죄인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는 죄 없이 태어났고 일생을 죄를 지은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인 예수를 마귀가 죄악의 괴수로써 십자에 못 박았다는 것은 중대한 우주의 법칙을 어긴 것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의인을 심판합니까? 그러므로 마귀가 유대인과 로마 사람을 충동해서 의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십자가에서 마귀는 무장이 해제되고 권력이 다 찬탈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셔서 못 박히셨을 때 마귀는 파탄에 이르고 파멸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보혈은 마귀로 하여금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를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우리의 환경에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일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대적해서 내어쫓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속에 모시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 예수가 여러분 속에 지금 와 계십니다. 여러분 속에 계시니까 저 밖에 있는 마귀보다 강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여러분이 단호하게 대결하면 마귀는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여기에서 배워야 할 것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의 진지함과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쉽게 낙심하는 타입이 아니었었습니다. 그는 처음 예수께 와서 기도해도 대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을 위해서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설득시켜도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예수께 나와서 엎드려 기도하는데 가장 모욕적인 말을 들었었습니다. 자녀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주지 아니한다. 여러분 보통사람 같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응답을 안 주면 안 주시지 그래 개라고요 해도 너무 합니다. 해도 너무해요. 어느 정도 응답 안 해주겠다고 말했으면 좋지만 개라고요 정말 정말 너무합니다. 주여 너무해요 안 해도 좋아요 안 해줘도 좋아요.' 그러고 나갈 만도 한데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가혹한 대답에도 그는 그 대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옳소이다 마는 주여 개들도 상 아래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아마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를 것입니다. 저는 경상남도 울주군 삼난면 교동리 31번지에 태어났습니다. 심신 산중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추워지기 전에는 밥을 언제나 뒤뜰에서 먹습니다. 멍석을 깔아놓고 아버님만 밥상에서 잡수시지 우리는 그냥 밥그릇, 국그릇 뭐 김치, 된장 전부다 멍석 위에 펼쳐놓고 그리고 둘러앉아서 먹는데 먹으면 멍석 밖으로 개들이 와서 꼬리를 흔들고 앉아 있어요. 밥 먹다가 보면 개가 먹고 싶어서 자꾸 입맛을 다시면서 낑낑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나 혼자 먹지 않고 밥 먹다가 한 숟갈씩 개에게 줍니다. 개에게 주다가 어머니에게 들키면 혼이 나면서도 애들은 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밥 먹다가 밥의 일부를 덜어서 개에게 줍니다. 개가 그것을 받아먹고 꼬리를 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예를 든 것입니다. 개에게 안 준다고 하니까 주님이여 개들도 어린아이 밥상 밑에서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으니 내게는 부스러기만 주셔도 우리 딸이 병에서 낫습니다. 여러분 병고침은 바로 예수님께서 자녀에게 주는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떡이란 우리 한국말로 말하면 밥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병고침 받는 것 그렇게 신기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병은 낫게 되어 있어요.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밥 안 줍니까? 내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게 세 때 밥을 주듯이 주님께서는 병고침은 바로 자녀에게 주는 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담대하게 병들었으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면 낫게 되어 있습니다. 안 낫는 것이 신기하고 낫는 것이 보통인 것입니다. 병은 고침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밥 부스러기만 먹어도 요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오늘 이 시간에 부스러기만 먹어도 이 병고침을 받고 건강을 얻겠다는 갈급한 심령에 요기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얼마나 깊이 믿었던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요 우리에게 좋게 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 심령으로 믿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의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다. 비록 내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실지라도 이것은 나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여인은 모욕적인 언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었습니다. 절대로 마음을 고깝게 해서 받아들이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이 말조차도 내게 유익 되게 하기 위해서 주신다는 것을 믿고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긍정적으로 주의 말을 수용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상 아래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께 고할 때 머리로 구하지 아니하고 그는 아주 논리 정연하게 구했었습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서 법정에 나가서 재판장 앞에 논리 정연하게 변호해 주듯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 앞에 무조건 병고쳐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개에게는 안 준다고 말하니까 개들도 밥상 아래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논리 정연한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후퇴할래야 할 수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코너에 몰아 세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논리 정연한 기도를 통해서 코너에 몰아 세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와서 서로 의논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흰눈 같이,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의논하기를 원하고 여러분이 논리 정연하게 여러분의 요구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하게 아주 자기 멋대로 부르짖지 말고 여기 6법전서인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서 약속을 가지고 나가십시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아니하는 말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성경말씀에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고 나왔으니 주여 이 말씀하신 것 그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어떻게 부인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거짓말할 수 없는 확실한 인격이시지 예수 이름으로 구합니다.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하나님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정연한 태도로써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하신 말씀대로 여러분 보고서 하나님이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넷째로 이 스토리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은 예수께서 주시는 이 중대한 선언입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귀신이 나갔느니라"
사람의 말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 성경은 말하기를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입을 말로 우리가 묶였으며 우리 입의 말로 우리가 사로잡힌 바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께서 이러한 과대 용법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말하고 그 말한 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 얼마나 과정법입니까? 세상에 우리가 명한다고 산이 옮겨서 바다로 던질 수가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이런 과장용법을 사용하신 이유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맺는지 우리의 살고 죽는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이 있는지 이것을 우리에게 강조하다 못해서 우리의 말 한마디면 산이 바다로 옮긴다고 까지 우리에게 인상깊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내가 그저 장난으로 한 말 한마디라고 그것이 여러분 자신과 세계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압니까? 말은 인간과 인간과의 대화의 광장입니다. 그와 함께 또다시 말은 인간과 하나님의 대화의 광장이며, 인간과 마귀와 그 귀신들과의 대화의 광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을 하면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귀신이 좋아하는 말을 하면 귀신이 들어옵니다. 이 성경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이 말을 하였으니 귀신이 나갔느니라" 여러분의 말로써 귀신이 나가기도 하고 여러분의 말로써 귀신이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로써 하나님이 찾아오시기도 하고 여러분의 말로써 하나님이 찾아오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늘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남 험담하고 헐뜯는 말만 하면 귀신이 그 말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람의 중대한 문제는 세 사람만 모여도 그저 앉아서 떠나갈 때까지 시아버지 흉, 시어머니 흉, 남편 흉, 아내 흉, 뭐 시집식구 친정식구 흉, 늘 흉보다가 볼일 다 봅니다. 그러므로 뭐라고 한 줄 압니까? '네가 이 말을 하였음으로 마귀가 들어왔느니라' 일어나서 나갈 때는 모두 얼굴이 시컴해서 나갑니다.
오늘의 우리 한국을 보십시오. 라디오나 TV나 신문이나 어디를 보아도 늘 스캔들 이야기만하고 좋은 일은 이야기하지 않고 늘 헐뜯습니다. 헐뜯습니다. 헐뜯습니다. 그래서 늘 여당과 야당이 얼굴이 다 시커멓습니다. 왜 우리가 허다하게 좋은 일이 많은데 왜 좋은 일을 말하지 않습니까? 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말을 합니까?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파멸된다. 이 말을 하였음으로 마귀가 네게 들어왔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무슨 말을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 성경중심, 예수님 중심, 십자가 대속 중심의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오냐 네가 이 말을 하였음으로 죄가 너를 떠나갔느니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화목을 통해서 성령이 나와 같이 계십니다. "그래 네가 이 말을 하였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네게 임하였느니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귀신이 쫓겨나가고 저가 채찍에 맞았음으로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냐 네가 이 말을 하였음으로 네가 병에서 놓여났느니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 저주에서 해방을 받고 낭패와 실망과 가난에서 놓여남을 받았습니다. "오냐 네가 이 말을 하였음으로 네가 저주와 가난에서 놓여남을 받았느니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가 재림하실 것과 내가 부활해서 승천할 것을 믿나이다. "네가 이 말을 하였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날 너는 티끌에서 부활해서 일어나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영생에 참예하게 되리라" 이렇게 말씀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먼저 말로써 익스티비를 잡으면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땅에서 매어야 하늘에서 하나님이 묶으십니다. 내가 땅에서 먼저 풀어야 하늘에서 하나님이 푸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을 움직이는 그 위대한 능력을 우리 입 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먼저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은 그에 따라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한 이 말인 것입니다. "네가 이 말을 하였음으로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여러분의 말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마귀를 박멸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받으며 짓밟히면서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고 살았었습니다.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배후에 어떤 힘이 나를 이렇게 파탄에 이르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여 도적이 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삶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수로보니게 여인의 가정에 먹장구름이 마귀에게서 왔으면 찬란한 태양은 예수님이 비추어 주셨습니다. 아버지 죽음 대신에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셨은즉 우리도 우리 개인과 가정의 모든 생활에 흑암을 가져오는 원수 마귀를 단호하게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게 도와 주시옵소서. 단호하게 대결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으로 대결하여 오늘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갈리디아서 5장 1절에 말하고 있사오니 이 말씀대로 순종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 보혜사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 모두들은 다 깨어주고 변화받고 그리스도의 품속에 깊이 들어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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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이 말을 하였으니 귀신이 나갔느니라
by 삶의언어 posted Aug 29, 2024 Views 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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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믿음/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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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7-02-15 |
오늘의 성구 | 마가복음 7장 24절로 30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dHrYtAr6Hlk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