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37년전 우리나라가 일제에 36년동안 포악한 학정을 당하다가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1982년 8월 15일입니다. 우리는 그때 우리 개인의 이름도 잃어버리고 우리의 말도 잃어버렸었습니다. 국권도 잃고 슬픈 종살이를 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총알받이로 끌려가고, 우리 장년들은 탄광으로 징용으로 끌려 가버리고, 우리 젊은 처녀들은 정신대라고 해서 일본군인들의 위안부로 끌려가고 우리 삼천리 강토는 일본의 말 발굽하에 처참하게 착취되고 짓밟혔던 사실을 우린 새삼스럽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슬펐던 날들은 이제 옛날의 역사로 돌아가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역사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그 역사를 되살려서 격한 분노와 감정에 사로 잡혀서 이성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영국의 저명한 수상이었던 처칠은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현재에 사는 사람이 과거의 역사에 집념을 해서 그것을 판단하고 울분을 가지고 탄식하며 시간을 보내면 미래를 잃어버리고 만다고 말한 것입니다. 역사는 역사로써 우리에게 교훈을 주었었으면 그로서 충분한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에 집착해서 우리가 흥분하고, 분노하고, 이성을 잃어버리고, 파괴적이 된다면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로 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에 와서 우리는 과거 일제 침략을 당하고 거기에 노예와 종속국이 되었던 것은 37년 전의 일인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우리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글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국이 있고 국권이 회복되어 있습니다. 종살이가 끝난 것은 이미 37년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에나 이성을 잃거나 감정적인 격돌을 해서는 안됩니다. 의젓하고 장성한 사람으로서 우리들의 올바른 주장을 굽히지 않게 당당하게 우리는 하루하루 옛날을 경험삼아 힘을 길러 나가서 앞으로는 결코 이런 슬픈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요, 국권이 강해지고 민족이 강해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믿음 소망 사랑과 물질적으로 남에게 나누어줄지라도 남을 착취하는 우리들이 되지 않아되겠다는 깊은 각오를 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한국이 해방된지 37년만에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우리가 하나의 국가적인 해방을 얻은 것으로 즐거워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무섭고 더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노예생활이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활을 파괴하는 죄인 것입니다. 마귀인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인 것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식민지로써 노예생활 한 것은 불과 36년이었지만은 여러분 죄와 마귀와 절망과 죽음의 노예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잠시 잠깐의 생활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영원무궁토록 버림을 당하고 지옥에서 불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어찌하든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다 영적으로 죄책과 정죄의 절망에 묶인 종에서 정신적으로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의 포로에서 육체적으로 죽음과 무의 절망의 사슬에서 놓여나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과거에 37년전에는 미국과 유엔군이 우리의 일제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었지만은 이제 오늘 이 죄와 마귀와 절망과 죽음에서는 누가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해방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해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거기에 대해서 이와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우리의 이름을 잃고 우리의 말을 잃고 글을 잃고 국권을 잃었었을 때 우리들은 민족적으로 우리의 신분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우리의 과거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과 내가 죄와 마귀와 저주와 절망에 종살이하고 있을 때 여러분과 나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군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의 신분도 잃어버리고, 자기의 뿌리도 잃어버린 살았다하나 죽은 허수아비의 생활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누군지 압니까? 영원한 우주 앞에서 여러분의 신분이 누군지 압니까? 여러분의 신분을 알 수 없고 거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알 수 없다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자요, 여러분은 포로된 사람이요, 종살이하는 사람이요,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나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신분을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는가, 우리의 신분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신분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아시고 우리의 신분을 찾아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전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인간 경험속에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니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찾아주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고 창을 받아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어서 장사지내고 사흘만에 부활해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 존재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과 내가 뿌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 사람은 떠돌이 인생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갈보리 산 십자가 밑에 우리가 올 때에 여러분과 나는 우리의 뿌리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잃어버린 여러분과 내 자신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바라볼 때 죄책과 정죄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죄인인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로써 잉태되고 죄인으로 태어나서 우리는 죄를 물먹듯이 먹고 마시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죄를 지은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죄책과 그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정죄로서 우린 버림받고 소외된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올 때 예수님께서 너의 죄, 나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걸머쥐고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그 목숨의 피를 다 쏟고 그 살을 찢으므로 말미암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 죄악의 그 권세와 능력을 다 찢어버리고 다 청산해 버리므로 말미암아 우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고 죄의 세력에서 해방을 얻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입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품에 영접함을 받는 구원받은 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갑자기 나는 용납받은 존재를 발견합니다. 용서받은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랑받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책과 정죄에서 해방을 얻어 우리는 그 뿌리에 우리의 삶을 접붙임을 얻은 것입니다.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무섭게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악마의 속박에서 해방을 얻은 것입니다. 악마는 죄로 말미암아 우리를 속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서 풀려나자말자 이제는 마귀는 낚아챌 수 있는 그러한 채권자는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죄의 채무 때문에 마귀의 채권자 앞에서 온갖 시달림을 다 당했지만은 죄가 다 청산받은 이 마당에서는 이제 마귀는 여러분과 나를 괴롭힐 아무런 권한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에게 악마의 속박이 끌러지는 것을 우리는 보았었습니다. 이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했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악마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다시 십자가에서 예수를 쳐다볼까요?
그 뿌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 십자가를 통해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가 친히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우리 병을 짊어지셨도다. 저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도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받기를 원하사 우리의 질고를 당케하셨으니 이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에 찢는 질병, 이 무질서에서 우리를 치료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질병에서 해방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서 또다시 한번 우리 십자가를 쳐다볼까요? 그 십자가의 고통에서 우리에게 무슨 자유를 주었을까요? 여러분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저주의 가시채를 몸에 감고 엉겅퀴를 밟으며 피투성이가 돼서 살아오지 않았었습니까? 우리의 영혼속에는 불안과 초조와 절망의 엉겅퀴와 가시가 솟아오르고 마음에는 미움과 분쟁과 분노와 살상의 가시채가 되고, 가정에는 가정대로 분쟁과 싸움이 쉴 날이 없으며, 나라는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민족은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우리의 생활 속에는 저주가 끝나지 않았었습니다. 이 가시와 엉겅퀴, 이 피투성의 발걸음을 누가 고쳐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가시관을 쓰시고, 그가 나무에 높이 달리므로 성경에 말씀한 대로 '여호와의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달릴지어다'하고 말했는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여 주셔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볼 때 우리에게서 모든 저주의 가시채와 엉겅퀴가 다 풀려나가 버리고 여러분과 나에게 아브라함의 창대케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볼까요? 예수님께 산천초목이 다 울리도록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쳤었을 때 인류의 철천지 원수인 사망은 철폐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바울이 외친 것처럼 우리를 영원한 절망으로 휘몰아 놓던 사망은 예수님께서 친히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망을 안고 무덤에 들어가서 사흘만에 그를 다 멸하고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부활과 생명의 상속자가 되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를 쳐다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한없는 참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준다고 했는데 죄책과 정죄에서 자유를 얻었었으며, 악마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었었으며, 질병과 고통에서 자유를 얻었었으며, 저주와 슬픔에서 자유를 얻었었으며, 사망과 염병에서 자유를 얻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고 승리자된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해방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뿌리에서 이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한시라도 우리의 뿌리를 잃어버리면 여러분과 내 신분은 상실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의 뿌리를 잃어버려서 우리의 이름과 말과 글과 국권을 상실해 버리면 민족적인 신분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처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생명의 뿌리에서 우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지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잃어버린 자가 되고 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새 것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 아담의 족속에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아담 예수 우리의 새 뿌리에 접붙임을 받은 것이요, 여러분은 속박받은 자가 아니요 해방을 얻은 자임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호세아가 말하기를 나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말했는데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으므로 이 진리를 알고 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걸머쥐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아무 ...
... 불과하다. 그래서 칼막스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하나의 물질로 취급하고 생산의 도구로 취급하고 인간이 물질 생산을 할 수 없을 때는 대량 학살로써 인간을 사과 밑에 거름으로 만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따라가는 어리석고 처참한 무리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칼막스의 유물론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알프렛 아들러 같은 심리학자는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목적은 권력에의 의지, 인간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산다. 바로 히틀러가 이 알프렛 아들러의 논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안 민족, 즉 독일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독일 민족이 모든 주권과 권력을 가져야 된다고 해서 그는 처참하게 세계를 오유화하는 제2차 대전을 일으키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알프렛 아들러와 같이 인간의 모든 욕망이 권력에의 의지로 권력을 얻는 것이 인간 삶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은 약한 육은 강한 것이 먹고 살상의 피흘린 비극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명한 심리학자 시그몬드 프로이드 같은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은 이 세상에서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사는 것 그리고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이것이 인간 생명의 전부인가요?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과 어떠한 이념을 위해서 자기 쾌락을 다 버리고 일신을 내어 던진 사건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그몬드 프로이드와 같이 쾌락주의 추구가 우리 전체의 인생의 목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빅토르 프란케는 말하기를 인간의 존재의 근본적인 의미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참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일까요? 빅토르 프란케는 말하기를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는데 오늘날 이 세상에서 참으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역사상 누가 우리에게 지금까지 주었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참으로 영원히 사는 의미와 가치를 얻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 나는 오늘 이 이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무슨 의미와 가치를 주었는가를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영원한 의미와 가치인 사랑의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랑으로서 실천하고 살지 않은 곳에는 그가 어떻게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쾌락을 추구했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세상의 의미를 추구했다 할지라도 이것은 한푼어치 가치도 없이 이 세상 종말과 함께 다 사라져버리고 없어지고 말 것인 것입니다. 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한 것입니까? 사랑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으로서 실천하는 것만이 여러분과 내가 이 땅에서 일평생 살 동안에 추구해야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에 이와같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모든 것을 비교하고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창한 웅변을 하고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는 쓸데없는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가합니다. 예언하는 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다 알아서 온 천지가 그 사람 앞에 무릎을 끓는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는 아무 유익이 없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성과가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주고 있는 것 다 구제해도 참 사랑이 없이 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는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이제는 사랑을 살아야 됩니다. 사랑을 위해서 남편도 사랑을 위해서 아내도 사랑을 위해서 자녀도 사랑을 위해서 성도들도 세계도 우리는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을 널리 펴기 위해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이 없으면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 공명이라는 것은 다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된 것에 불과하고 한 줌의 흙에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사랑을 실천할까요? 우리의 사랑의 실천에 가장 중대한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우주와 만물에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낳으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사랑한다고 말하겠습니까?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살 때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는 모든 것은 한푼어치 가치도 없으며, 그것은 자기 영광과 자기 교만 때문에 하는 것이요, 이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줄기차게 진행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가장 진실한 사랑은 복음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잠시동안 먹을 것 주고 입을 것 주고 몸으로 치료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 공명 사회 국가와 제도는 다 일시적인 것이지만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느냐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에게 천하를 주는 것보다도 예수의 복음을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온 가산을 다 상속하지 못할지다도 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 영혼을 구원해 주면 여러분은 그 자녀를 위해서 더 위대한 것을 준 것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웃에 대한 참 사랑이란 불타는 세계 속에서 불타가고 있는 사람에게 거기에서 건져내 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웃사랑의 가장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애를 쓰십시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우리 나라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우리 세계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에 더 위대한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기에 보태어서 우리는 이웃을 성공시키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의 그 타락한 성품을 배워가지고서 이웃을 못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하는 일인 것입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잘되면 배가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던지 이웃을 할퀴고 못 살게 구는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끼리도 그렇고 이웃나라끼리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면은 아무리 자기가 잘 살더라도 그것은 필경 아무 의미도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보다도 이웃을 성공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때 그 성공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주라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고 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오늘 이 시간부터 남편은 아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아내는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웃은 이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여러분께서 사랑을 베풀어주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영적 성장하도록 돌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예배하고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아서 자기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애쓰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 자기를 지적으로 성장시켜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진리를 깨달을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자기가 아는 분야에서 지식에서 자기를 성장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내어 던져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리고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리고 필요없는 인간이 되는 사람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필요하고 환영받고 남에게 도움이 되도록 지적으로 자기를 성장시키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성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어야지 사회의 짐이 되고 사회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영적으로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자기를 성장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내 자신을 사랑하고 이 사랑을 매일같이 더 풍성하게 만들면서 살아갈 때 이것이 참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온 세계가 떠들썩하게 알아주는 지위나 명예나 권세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환영을 받고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칭찬하시면 이에서 더 큰 위대성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나 유명은 바람이 불고 나면 그 위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여호와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살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고 부딪쳐도 이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자신을 예수 안에서 발견하고 여러분 삶의 뿌리를 영원히 예수님 안에서 두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개인 개인이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사시고 영화로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37년전 일본의 제국주의의 포악한 말발굽에서 시달리다가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이미 37년전에 지나간 사실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현재 우리는 그보다 더 무서운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죄와 마귀와 절망과 죽음의 종살이인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제는 우리의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안에 오늘 우리 다 나와서 그 안에서 우리가 해방을 얻고 참 삶을 살아가는 진리, 사랑으로서 실천하는 삶을 얻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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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나는 누구인가
by 삶의언어 posted Sep 14, 2024 Views 1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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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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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2-08-15 |
오늘의 성구 | 고린도후서 5장 17절로 21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8wT9HXAh4jg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