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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산상보훈 그 둘

by 삶의언어 posted Sep 20, 2024 Views 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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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전도/선교
예배드린 날 1982-10-10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5장 7절로 12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lWLNweMweSU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산상보훈 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산상보훈 제일은 전번주일에 제가 1부와 2부와 5부에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증거 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우리 순복음 뉴스나 카세트 테이프를 구해서 산상보훈 제일을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산상보훈 제이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복이 오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없고 복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 놀라운 사실은 아무나 복을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자기 분수의 넘치는 복이 오면 복도 없어지고 그 사람도 망해 버리고 맙니다. 복이란 반드시 자격 있는 사람이 받아야지 자격 없는 사람이 임하면 그 사람은 그 복 때문에 멸망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여러분 어느 곳에 있던지 복은 그사람따라 오는 것입니다. 복이 지역과 환경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따라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신명기 28장 1절로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복이 네게 임하면 네게 미치리니 성전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에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임이라" 여기에 복있는 사람이 거처하는 곳에는 어느 곳에 가나 복이 따라오겠다고 약속을 하고있는 것입니다. 스산한 환경에 갔다놓아도 그 환경이 봄바람같이 부드러워집니다. 광야 같은 사막에 갔다놓아도 복있는 사람이 들어가면 사막이 완전히 아름다운 녹지가 되고 축복의 동산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복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여덟 가지 우리가 자격을 구비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그중 네 가지 후반의 자격에 관해서 말씀을 해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자격은 자기의 일생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구비해나가야 축복이 그 사람에게 임하여 머물러 있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다 인간을 재는 자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자를 가지고서 자기는 별로 심각하게 재지 않지만 이웃사람에 관해서는 가차없이 그 율법의 척도로서 사람을 잽니다. 그래서 자기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뽑지아니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자꾸 뽑으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판단하지 않지만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잘못할 때 판단을 합니다. 이러므로 가정에도 불화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부모 자식간에 서로 원수가 되는 일도 있고 혹은 일가친척 이웃간에 늘 서로 불화가 있는 것은 잘못된 판단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가혹한 판단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축복을 받고 가족간에 화목하고 이웃간에 화목하고 서로 단체간에 화목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복이 와서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볼 때는 긍휼히 봅니다. 부모가 자식을 긍휼히 보지 않고 자식을 죽어라고 때리거나 꾸짖는 사람 없습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그것이 혹시 장차 그 자식의 장래의 행복에 걸림돌이 될까 싶어서 자식을 불러다가 잘못한 것을 꾸짖고 혹은 종아리를 때리지만은 그러나 부모는 그 마음속에 눈물을 가지고 때립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서 자식을 그저 교훈 합니다. 나도 아들이 세놈있는데 잘못할 때 심히 꾸짖기도 하고 그리고 종아리를 걷어놓고 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식을 때리면 언제나 그 종아리에 내가 때린 가시에 자기 가슴에도 매가 내립니다. 자식 때려 놓고 난 다음 기분 좋다고 허허 웃고 나오는 사람은 그건 정신병자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언제나 자식을 때리거나 꾸중해놓고 나면 기분이 좋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또 가만히 보면 집에서 남편이 자식을 꾸짖으면 부인이 듣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나도 가만히 보면 우리 집사람이 애를 꾸짖고 때리면 마누라가 미워져요. 저거 왜 애를 갔다가 저렇게 쥐어박고 괴롭히냐!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긍휼함이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식을 꾸짖거나 때리더라도 마음속에 긍휼과 눈물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긍휼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부모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나으셨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여러분과 나를 보실 때 율법의 척도로 가지고서 보셨으면 여러분 나는 벌써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 남김없이 다 멸망을 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러므로 영육간에 다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하게 보아주시기 때문에 불쌍히 보아주셨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여러분과 나의 모든 반역과 죄악 그 불의와 추악을 예수에게 담당시켜서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그 구로함을 통해서 그 고통을 통해 우리의 죄와 불의와 추악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서 다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없이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구원받고 난 다음에도 생각으로 말로 행위로 우리는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야 우리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자격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긍휼의 눈으로 보셔서 우리의 잘못할 때 때리나 주님께서 곧 쳐매주시고 주님께서 꾸짖으시나 곧 우리를 품어주시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빚진 자들입니다. 무엇에 빚졌느냐? 긍휼에 빚진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받았으니 나도 긍휼에 짐을 져서 남을 긍휼히 여겨야 되고 부모에게 긍휼을 받았었으니 나도 다른 사람을 긍휼히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긍휼하게 보아야 되요. 아내도 남편을 긍휼의 눈으로 불쌍히 보아야 됩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불쌍하게 보아야 되고 우리는 모두 이웃들끼리 서로 긍휼을 가지고서 불쌍히 보는 마음으로 잘못이 있으면 이 잘못은 꾸짖고 잘못은 바로잡되 미움과 원한으로 하지 말고 긍휼을 가지고 해서 이찌하든지 이웃이 성공할 수 있도록 잘살 수 있도록 축복을 받게 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긍휼의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긍휼을 베풀면 남도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줍니다. 우리가 남을 가혹하게 하면 남도 우리에게 가혹하게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재는 그자로 재어집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넓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관용할 수 있는 긍휼함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래서 남의 결점만 보지 말고 장점도 보며 결점은 불쌍히 여겨서 고쳐주어서 성공할 수 있게 해주는 이와 같은 마음 긍휼의 마음의 있어야 그 마음도 가정도 변하고 생활도 편합니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면 자기 마음이 병들고 그리고 남에게 병들게 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겨서 용서해주면 자기 마음도 편안하고 치료를 받고 남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특별히 남편은 아내를 불쌍히 보고 아내는 남편을 긍휼한 마음으로 보는 것을 가져야 그 가정이 편안하지요 완전한 아내도 없고 완전한 남편도 없습니다. 남편에게 완전을 구하면 그 남편은 걸림돌이 되고 아내에게 완전을 구하면 아내가 걸림돌이 됩니다. 긍휼이 없는 사람은 여러분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긍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복받기 위해서는 여러분 긍휼을 베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했었어요.
구름낀 하늘에는 태양이 없나요? 아무리 구름이 끼어있어도 태양은 구름 위에 찬란하게 비취고 있습니다. 오직 구름이 가리웠을 따름인 것입니다. 구름이 벗어졌기 때문에 태양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태양은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구름이 끼었을 때는 구름이 덮히었기 때문에 태양이 안보였을 따름인 것입니다. 나치스 독일인에게 잡히어서 가스채임버에 들어가기 전에 유대인 한사람이 벽에다가 갈겨놓은 문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구름이 끼여 태양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구름 위에 태양이 있는 것을 나는 안다. 비록 인생이 스산하고 슬픔과 고통이 꽉 들어차 죽음이 다가올지라도 나는 죽음 저 건너편에 나를 사랑하고 돌봐주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안다. 여러분 신앙이란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이나 학문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청결해지면 하나님은 그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창세 이전에 계셨고 창세 이후에도 계셨고 지금도 우리하고 계시는데 오직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은 무슨 내가 과학을 많이 공부해서 안보이는것도 아니요 철학과 지식이 많아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에 죄가 들어와서 죄가 구름처럼 내마음을 가려놓았기 때문에 내 눈이 어둡기 때문에 높은 산 깊은 계곡 아름다운 시냇물이 흐르고 기화요초 만발한 것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없기 때문이 그런게 아니라 내눈이 어둡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하나님은 늘 계세요. 지금도 이 자리에 우리와 같이 계세요. 그러므로 신앙이란 과학적인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와 경외의 대상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청결해지면 하나님은 그대로 보이고 그대로 계시되고 그대로 하나님은 경외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무슨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 판단할 정도의 하나님이면 그는 하나님이 될 수가 없고 사람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탐욕과 교만의 때를 씻기만 하면은 하나님은 연구대상이 아니라 마음에 그대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복음을 전할 때 논쟁으로 아무리 해도 사람을 예수 믿게 못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논쟁으로 안됩니다. 토론으로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대로 봐야돼요. 그 하나님이 그대로 보이는 것은 내 마음이 청결해지면 그대로 보인다구요. 구름도 꺼지면 달 보이듯이 눈 밝아지면 기화요초 만발한 것이 보이듯이 내 마음에 죄만 회개하면 하나님이 그대로 보인다구요. 어린아이보고 여러분 하나님 믿어라 예수 믿으라고 설교할 필요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마음이 청결하고 그 마음속에 아직 죄악과 탐욕과 교만이 들어가지 안았기 때문에 야 하나님께 기도하자. 두말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야 예수님 믿자 두말하지 않고 믿습니다. 어린아이는 마음이 청결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점점 살아오면서 사람의 마음속에 죄와 탐욕과 교만이 때로서 끼이자 그만 구름하늘 끼이듯이 끼여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큰소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파리에서 성회를 인도할 때 거기에 있는 유명한 대학교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가 기억납니다. 특별히 파티 하는데 그 교수님이 와서 나보고 이런 말을 해요. 나는 대학교 교숩니다. 나는 무신론자였었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 어리석게 보고 바보천치같이 보았었습니다. 그리고 열렬하게 토론해서 예수 믿는 사람마다 나한테 박살이 났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나에게 집시 한사람이 전도하러 왔습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집시 몸에는 기타 하나를 걸치고 내게 와 가지고서 나에게 전도하는데 나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저 집시 오늘은 이 동리 내일은 저 동리 구름에 달에 구름 가듯 왔다갔다하는 저 사람이 무슨 전도를 하느냐! 그래서 여보 당신 하나님 봤소? 그 집시가 하는 말이 봤어요. 봤으면 증명하시오. 증명 못해요. 그럼 어떻게 하나님을 보오? 당신도 보고싶소? 그러더니 그래 보고싶소. 그러면 회개하고 예수 믿고 세례 받고 성령 받으시오. 아 이 사람아!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하나님을 어떻게 보지고 못하는데 어떻게 회개한단 말이오? 나는 더 이상 몰라요. 나는 내 마음에서 하나님 봐요. 하나님은 확실히 보여요. 나는 의심하지 않아요. 당신도 하나님 볼라 거든 회개하고 예수 믿고 세례 받고 성령 받으면 당신도 하나님 볼 수 있소. 마 이 사람하고는 논쟁할 필요가 없소. 뭐 말이 안돼. 말만하면 회개하고 예수 믿고 세례 받고 성령 받으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볼 것이요. 그 사람을 떠나고 난 다음 자기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진짤까? 에라 밑져야 본전이다. 나도 한번 해보자. 그래서 꿇어앉아 가지고서 안 계시는 하나님 나는 당신이 안 계신다고 확실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죄를 회개해 보죠. 그러면서 자기 속에 생각난 죄를 하나 두나 회개하기 시작하는데 그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소리로 죄를 회개하다가 나중에는 크게 회개하고 자기 하는 말이 막 감동이되서 눈물 콧물을 막 흘리고 통회하고 자복하니깐엔 그만 예수님이 마음속에 확 믿어지더랍니다. *** 완전히 깨달아 져요. 이거는 인간의 감각이나 인간의 추리를 초월해서 그만 하나님께서 믿어집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는 의심하지 않고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도 이제 전도할 때 다른 말 안 한답니다. 오로지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러 가면 논쟁을 하고 논쟁을 걸면 논쟁을 하고 논리 걸어서 하나님 모른다. 회개하고 예수 믿고 세례 받고 성령받으라. 마음이 정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음이 정결해지면 하나님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증명할려고 하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회개만 하면 하나님이 보이고 천국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도 안보이고 천국도 내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가 축복이 있다고 말씀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이 정결하면 하나님이 보여요. 정결한 물에는 여러분 산천초목이 다 비추어 오는 것입니다. 물이 흙탕물이고 바람이 불어서 막 나부끼면 그 물에 아무 것도 안 비취지 물이 명경같은데 어떻게 거기에 산천초목이 안 비취리요? 마음이 정결한데 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안보이리요?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분 논쟁이나 논리를 펴지 마십시오. 아무리 논리나 논쟁을 펴도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마음이 정결해지면 의심 없이 예수님이 구주인 것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삶의 자원으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 때 이 풍랑 많은 세상에서 마음에 한없는 위로와 평안이 넘쳐납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풍랑이 많아요? 이 세상 얼마나 변화가 많습니까? 무얼 하나 우리가 완전히 의지하고 살수있는게 어디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십니다. 눈탁감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내 아버지여 살던지 죽던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나는 하나님께 맡겼으니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옵소서. 믿습니다. 그런 마음이 얼마나 배짱이 튼튼하고 마음속이 편한지 몰라요. 아 이렇게 좋은 그래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먹는 것이 복이 되고 잠도 편안하게 자고 옷이 없어 잘못 입어도 부끄럽지도 아니하고 이 세상에 사는데 배짱 있게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셋째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이 세상에는 분쟁과 분리는 사탄이 가져옵니다. 마귀는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도 하나님이 잘지어놓은 좋은 에덴동산에 들어와 가지고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분쟁을 일으켜 분리를 시켜서 쫓겨나게 하고 아담과 하와끼리 서로 분쟁하게 하고 그들이 낳은 자식이 가인이 아벨을 돌로쳐 죽이는데 요한1서에 요한이 말하기를 가인이 왜 그 동생 아우를 죽였느뇨?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가 오면 분쟁을 가져옵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마귀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분쟁이 있습니까? 마귀가 들어와 있어요. 교회에 분쟁이 있습니까? 사탄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업과 생활에 분쟁이 다가옵니까? 사탄이 역사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제자들에게 부탁하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 나아두고 그대로 화평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오늘날 세계가 과학이 발달되고 물질을 풍성히 사람들이 가지고있고 옛날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이 돼도 옛날보다 더 분쟁이 많잖아요? 더 가정이 많이 파괴되고 더 많이 이혼하고 더 많이 불행하고 이거 왜이래요? 이 사탄이 있어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기 때문에 이 도적을 잡아서 내어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제일차로 믿는 자들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이 와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인간과 인간간에 불화를 가져오고 또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화목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분쟁요소인 죄악과 불의와 반역을 직접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매달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대신하여 심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 시켜 주었었습니다. 이제 누구나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예수를 통해서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나오면 하나님 앞에 화목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원수끼리도 서로 예수그리스도로 다리를 놓아서 예수 믿고 그리고 서로 용서해주고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과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환경과 화목이 되는 것입니다. 난 전번에 우리 세미나 할 때 오신 분 중에서 루이벨 켄터키에서 오신 사업가 한사람이 일어나서 간증하는 그 간증이 마음에 참 깊이 감명을 줬습니다. 그분은 큰 건축업을 했는데 그만 건축업을 하면서 사교술을 마시다가 술주정뱅이가 되고 그래서 술도 먹게되고 도박도 하게되고 싸움도 하게되고 결국에는 그 가정이 파탄되었습니다. 그 부인이 자식들 데리고서 이혼을 해버렸어요. 이혼을 하자말자 그는 막 정신적으로 파탄이 되가지고서 사업도 다 망해버리고 이제는 이 친구 집에서 저 친구 집으로 이 모텔에서 저 모텔로 떠돌이 신세의 불쌍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 앞에 눈물로 회개하고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과 화목을 했습니다. 비로소 마음속에 평화가 들어오고 기쁨이 들어왔습니다. 자기의 모든 잘못을 다 씻어내었었습니다. 이러고 난 다음 교회 열심히 나가면서 주택건설 사업에 손을 대었습니다. 사람들이 주택을 여기서 짓고 저기 지어서 생활이 점점 안정이 되어서 다시 자기 집도 사게되고 생활이 안정되자 자기 부인하고 한 사오년 이혼이 되있었는데 부인이 있는 거처를 수소문해서 알아보니깐 아직 시집을 안가고 혼자 살고있더랍니다. 애들 데리고. 그래서 그 부인에게 찾아갔어요. 찾아가서 뭐 도로 결혼해달란 말은 안나오고 어찌나 자기 부인하고 자식이 그립든지 그래 부인에게 찾아가서 전도를 하러 갔어요. 가가 뭐 도로 살자 말도 안하고 여보 예수 믿어라. 예수를 믿어서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아야지 이러면 안 된다고 아 그렇게 부인에게 하니깐엔 이 술망쟁이가 말이야 이 어떻게 되었길래 또 예수쟁이가 되가지고 와 가지고서 그런데 보니깐 이제는 옷도 말쑥히 입고 뭐 몸도 말쑥하고 그래 당신 어떻게 사오? 그러니깐 나 회개하고 예수 믿고 난 다음 이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자 내 마음에도 화평이 왔소. 그래 주택사업해서 이젠 꽤 잘살게 되었다. 그 예수를 믿자 하니깐 그 부인이 그 말에 감동이 되어서 그 남편 나오는 교회에 같이 나오게 됐어요. 그 교회 나와서 가만 댕겨보니깐 보통 멋진 신사가 된 것이 아니라 그래 부인이 아이고 도로 시집가야겠다 싶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서로 또 좋아져서 애들 다 불러놓고 난 다음에 교회 목사님 청해 다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오십이 넘어 가지고서 또 결혼식을 올려 가지고서 그렇게 부부간에 우리 여기 세미나에 신혼여행을 나왔어요. 하나님이 화목케 해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화목 되니 이렇게 오랫동안 이혼되었던 부부간에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화목을 시키십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 아닙니까? 여러분! 오늘날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화목케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서로 불화를 도모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북아일랜드를 보십시오. 카톨릭교회와 신교가 지금 몇 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카톨릭교와 신교가 막 기관총에다가 박격포에다가 그 다음에 수류탄에다가 서로 예수이름으로 하고서 던집니다. 그게 무슨 예수 믿는 것입니까? 카톨릭 신교 할 것 없이 전부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예수 이름으로 그래 기관총 쓰고 박격포 쓰고 수류탄 던지면서 예수 이름으로 하는데 이름 아무리 불러봤자 그 이름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영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어느곳에가나 화목과 평화를 가져오도록 힘을 써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영입니다. 그래야 화목과 평화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고 화목과 평화를 도모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어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집안에서도 그냥 싸움판이고 시장에 가서도 머리채 자꾸 잡아 댕기면서 싸우고 가는 곳마다 분쟁을 가져오면서 주일날에 와서는 주여! 하고있으면 자 그걸 일컬어 뭐라 그러냐! 가짜라 그럽니다. 가짜! 카운터페히(counterfeit) 가짜 그 가라지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은 화목의 영인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화목을 가져오고 화평을 가져오기를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와 같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곳에 행복이 다가옵니다. 축복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사람이 평안해야 축복이 다가오지 온 가정과 온 생활에 폭풍우가 불어오고 지진이 일어 막 흔들리면 무슨 축복이 다가옵니까? 평안이 없는 곳에는 절대로 축복이 없습니다.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태산처럼 쌓아놓아도 여러분 평안이 없으면 그것은 다 저주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한술 밥을 먹어도 그것이 영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초가삼간에 살아도 그 행복이 다가오는 것이지 평안이 없는 곳에는 아무 것도 다 공수레 공수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나니 하나님이 아들이 부르짖는데 하나님이 응답 안 하시겠어요? "그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식에게 좋은 것 주려하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그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되어야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셨습니다.
의란 것은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 믿고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영적 두세계의 실상이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6장 14절로 18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 세계에 보면 아버지의 자녀가 있고 사탄의 자식이 있습니다. 이 두종류의 사람이 섞여 사니깐 여러분 서로 둘이가 멍에를 같이 메고 나란히 살아갈 수가 있나요? 성경에 믿는 자와 불신자를 분별해서 말하기를 믿는 자는 의라고 했고 불신자는 불법이라 했으니 의와 불법이 함께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믿는 자는 빛이라고 말했고 안믿는자는 어두움이라 했으니 서로 사귀지 못하지요. 믿는 자는 그리스도고 믿지않는자는 벨리알이라 했으니 부조화가 되지요. 그리고 또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믿지 않는 자는 우상이라고 말했으니 성전과 우상이 일치가 안되지요.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같이 같은 집에 살수도 있고 같이 싸움도 하고 같이 일도 하더라도 물과 기름입니다. 같은 양푼에 물을 붓고 기름을 갖다 부어놓으면 같이 있지요. 같은 양푼에 살아도 물과 기름이 서로서로 일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백성들이 멍에를 같이해서 일치가 되질 않습니다. 왜? 그 속에 세계가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속에 천국이 들어와있고 내 천국으로 향해서 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 세상에 악령이 들어와있고 또 탐욕의 세계가 들어와 있으며 지옥으로 떨어져 갑니다. 같을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인생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고 우주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몸은 같이 있어도 마음은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자연히 충돌이 되고 핍박이 다가오게 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을 핍박할 리는 만무하고 이제 믿는 사람이 핍박을 당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고 여러 가지 압박을 당하고 온갖 거짓말로서 참소를 당하고 악한 말로서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게 살기 때문에 핍박을 당한 거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했습니다. 우울한 얼굴 하지 말고 부정적인 말 하지 말고 예수 믿다가 핍박한다고 탄식하지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냐? 핍박받을 때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다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상주시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세상에 될 수 있으면 핍박을 많이 받아 놓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다니면서 핍박받으러 다닐 필요는 없겠지만은 그러나 내가 예수 믿었다가 핍박을 받고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면 이것은 그것이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위대한 상급을 받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에서 상받는것도 좋은데 하늘나라 가서 영원히 하나님께 상받는 조건이 되니 이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이러므로 여러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은 벌써 그 사람 천국 사람이란 것은 증겁니다. 왜? 속에 천국이 들어와있기 때문에 그의 적이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마귀와 또 귀신들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을 동원해 가지고서 그를 내어쫓는 것입니다. 찢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이 그 사람 것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천국을 가지고 있고 천국에 가는 사람 치고 그 이상 더 큰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 복 아무리 받았다 해도 이것 무어 천국 복에 비교하겠습니까? 참으로 인간이 행복될라면 삼위일체가 돼야 됩니다. 첫째 마음속에 복을 받아야 됩니다. 둘 째 영원한 천국 복을 받아야 됩니다. 셋째 물질적인 환경의 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되어야 참으로 복을 받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자꾸 물질 물질 부귀영화 바깥만 자꾸 취할려고 하는데 내 마음에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천국이 없는 사람에게 물질을 아무리 갖다놔도 그 물질 누리지를 못합니다. 그 물질 가지고서 허랑 방탕하고 시기 분노 질투하고 파멸되고 맙니다. 환경 적인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누릴려면은 마음에 복을 받아야 되고 천국에 복을 받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환경에 복을 받으면 그 환경 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해야 이 모든 것이 더하여져서 축복이 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얻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더해넣도 축복이 안됩니다. 저가 전번주간동안에 일본 삿뽀르 저 홋까이도 추운 곳 삿뽀르에 가서 하루 설교하고 그 다음 오사카에서 이틀 예배를 인도했음니다만 삿뽀르에 가니깐 그 첫날 성회를 하는데 아주 건장하게 생긴 청년 네사람이 기타를 가지고와서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때 저희 집회에 흥을 돋구기 위해서 그런데 그 네청년이 간증을 하는데 우리는 작년까지만 해도 예수를 믿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반대하고 그런 사람인데 작년에 조목사님이 여기 왔었을 때 그 설교를 듣고 우리가 회개를 했습니다. 그 회개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목사가 여기서 부흥회 하면서 병자가 낫는다 그러기에 우리 친구 세사람이 이층에 우리 서있는 네사람중에 한사람이 정신병에 걸려서 정신병원에 있는걸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 조목사 집회에 함 데려나가보자. 그래서 정신병자를 병원에서 퇴원시켜서 집회에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네사람이 다 누가 정신병잔지 말은 안해요. 장가 못 갈까 싶어 가지고 그러는지. 그런데 우리 네사람중에 한사람이 정신병자 였는데 그때 그 집회에 나와서 정신병이 깨끗이 나아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우린 그 결과로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게되고 일년동안 우리는 이렇게 교회를 잘 섬기고 이젠 성령이 충만해서 또 조목사님 집회에 나와서 이처럼 이제는 우리가 기타를 가지고서 복음 증거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것을 크게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을 보게될 때 그들이 정말 예수를 믿고 영혼이 잘되니깐 그 다음에는 그들이 하는 일도 다 잘되고 또 정신병에서 놓여나서 강건하게 되고 삼박자 축복을 받은 것을 보았었습니다. 일본은 우리 한국보다 훨씬 잘삽니다. 그러나 저는 삼년째 일본에 매달마다 거의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 발견한 것은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훨씬 불행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린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보다 못사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개인 단위로 보고 가정 단위로 볼 때 한국사람에게 얼굴에 웃음이 더 많고 한국 사람에게 즐거움이 더많고 한국사람에게 행복이 더많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본은 그렇게 행복하지를 않습니다. 많은 가정이 불행하고 많은 부모자식간에 알력이 있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돈은 악착같이 모았는데 행복은 없습니다. 왜? 마음에 복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천국에 복을 받지 못하면 환경 적인 것 물질을 아무리 끌어 모아도 물질이 복이 안됩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의 그 축복을 이제는 부러워 안 합니다. 전혀 부러워 안 합니다. 행복이 없는 그물질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한국이 하나님께 나와서 성령이 임하여 하늘나라 복얻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조그만큼 가지더라도 이걸 가지고서 참 즐겁게 살아가는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한국도 괜히 일본처럼 물질적인 환경만 잘살아 가지고서 나중에 하나님 버리고 마음속에 평안과 축복을 잃어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처참하게 불행하게 될까 싶어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예수께서 가르치는 이 여덟 가지 복을 우리가 우리의 생활 속에 체득해서 나갈 때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마음에 복 천당의 복 환경의 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사람은 세 가지 일체된 복을 다 받아야 되는데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환경 적인 것만 추구하다가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마음에 축복 영생의 축복 그 다음 물질적인 축복은 가장 나중에 오는 것이고 가장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옵니다. 우리 아버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생활 속에 필요한 것이옵니다. 오늘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다 복받는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복인이 되면 이 사람이 어느 곳에 가도 축복이 따라온다는 것을 성경에 말씀하고 있으니 이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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