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어버이를 공경하라" 이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혈육은 부모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우리들의 정신과 인격형성에 음으로 양으로 지대하게 영향을 미친 분들도 바로 부모인 것입니다. 한국에는 오랜 유교적인 가르침을 쫓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모든 윤리와 도덕의 근본이라는 것을 계속 가르치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라에 와서는 급격한 사회의 변천에 따라 유교적인 도덕관이 약해지고 복잡한 산업사회의 구성과 생활환경 및 핵가족제도의 확산에 의해서 구 시대적인 윤리관이 우리의 환경가운데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버이를 공경하는 효성을 다하는 미풍양속도 금일에 와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옛 이야기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기독교 윤리의 기본은 바로 효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다른 계명은 모두다 지키지 않을 때 엄한 벌을 주시겠다고 말씀했지만은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제목에 와서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상급을 명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얼마나 마땅히 해야 될 일이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이와 같은 사항이 이루어 질 것을 깊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모를 진실로 공경하고 효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 문제 관해서 여러분과 함께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서는 남 중심으로 부모를 사랑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데 부모를 공경하거나 부모에게 효을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인 사랑인데 그것에 대해서 왈가왈부할게 있겠느냐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은 부모를 생각할 때 그 본능적인 사랑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날 길러주고, 날 교육시켜주고, 날 사랑해 주고 돌봐아주신 것에 대한 그 추억과 기억에 의해서 부모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반드시 부모가 날 낳아주었다고해서 본능적으로 부모가 날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이것을 사람들은 반드시 기억하고 여기에 대해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말에도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많다고 나를 길러줄 때 부모께서 어떻게 해 주셨는가 이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남는 하나의 개인적인 역사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부모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기들이 자라날 때 깊이 사랑해 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그리고 잘 길러주셨다. 이것이 마음속 추억에 남아서 언제나 부모가 염려해줘도 부모하고 만났었을 때는 부모하고 따뜻한 감정이 넘쳐 흘러가는 것입니다. 좋은 추억을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람들이 사물을 바라보고 평가할 때 그 당시에 즉시 느끼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가 과거에 경험한 것 추억이 바탕이 되어서 그것으로부터 사물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란 현재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과거에 여러분께서 경험한 것이 총체적으로 오늘의 여러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린아이 때 자라는 과정에 부모와의 좋은 관계를 맺어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에 와서 부모를 사랑하는 절대적인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슬픈 추억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음에 부모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라, 공경하라, 효도하라 하면 그 무엇인지 모르게 속에서 숨은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윤리와 도덕에 순응하기 위해서 억지로 효하는 체 하지만은 중심에서 우러나지 않은 효를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혹은 많은 억압을 당한다든지 그리고 우리를 잘 길러주지 못했다는 그런 감정이 있으면 이것이 상처입은 추억이 되어서 오늘날 와서 부모하고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해도 이 상처입은 추억이 머리를 들고일어나므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거센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내 부모를 공경하라, 내 부모를 사랑하라 할 때 먼저 우리의 마음속에 내적인 치료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추억이 치료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은 치료받을 필요가 없지요. 부모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즐거워지고, 부모와의 좋은 대화를 가지고 부모를 사랑하며, 공경하며, 효를 다하는 것이 마음의 큰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대면을 할 때 마음에 거부 감정이 생기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려고 할 때 마음에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그 추억을 치료해야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법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부모가 설혹 우리 자랄 때 우리를 잘못 대해주고, 억압하고, 고통을 가하고, 사랑을 해 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용서해드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의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장 가까운 부모를 내 마음속에서 진실로 용서해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옛날 성장할 때 부모와 나의 관계 속에서 잘못된 것들을 모두다 찾아내어서 그 하나하나에게 예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용서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치료하는 역사로 그 기억을 치료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치료받지 못하고 항상 상처 입은 그대로 피를 흘리는 기도를 그대로 눌러 놓으면 평생을 지나는 동안 언제나 그 기억 속에서 거센 거부반응이 일어나며, 쓴 물을 토해 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께서 부모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속에 거부반응이 생기고, 반항의식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상처입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대한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입은 추억을 치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막연하게 기도하지 마시고, 여러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가십시오. 기억의 테이프를 더듬어서 과거에 부모와의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가, 내 나이가 몇 살때부터 몇 살때까지 부모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는가를 상세하게 기억하고 그 한 조목조목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해 드리십시오. 예수의 피로 그 상처입은 심정을 씻어달라고 하십시오. 그 장면 장면에 부모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용납하십시오. 이해하십시오. 동정하십시오. 그래서 부모와의 잘못된 원한을 풀어버리십시오. 오늘날 예수께서는 여러분의 현재 일을 돌봐줄 뿐 아니라 과거의 일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오늘의 예수는 여러분의 어제로 돌아가서 어제 잘못된 상처를 치료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이 부모에 대한 가슴에 쓰린 잘못된 추억과 상처를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치료하고 진실한 의미에서 부모님 과거에는 잘못되었지만은 나를 이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동정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진실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현재 생존해 계시든지 생존해 계시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과 부모에 대한 연결은 바로 맺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상처입은 것은 치료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 않으며, 여러분과 하나님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내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데 눈에 안 보이는 부모의 부모인 하나님을 공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진실로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서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크나큰 변화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기억 속에 치료가 되지 아니하고는 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부모와의 막힌 담을 헐고 상처받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해 드리고, 우리가 용서를 받고 치료함을 받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께 일상 필요한 것을 공급하므로 효를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를 사랑합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전형 공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효도가 될 수 잇는 것입니까? 마가복음, 야고보서 2장 15절로 17절에 보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무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고 효한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쓸 것을 공급하지 아니하고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헛소리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실로 부모를 사랑하면 우리 스스로의 생활가운데서 우리가 누리는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이 납니다. 어느 집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굉장히 나빴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저 며느리가 빨리 죽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늘 생각했었습니다. 하루는 견디다 못해서 그 며느리가 어떤 사람에게 가서 카운셀링을 받았습니다. 빨리 우리 시어머니가 죽어야 우리 가정이 평안하고 내가 잘 살겠는데 어찌한지 시어머니를 법에 걸리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길을 가르켜 주십시오. 인터뷰하는 말이 좋은 방안이 있다. 내 시키는대로 하면 시어머니가 죽는다. 어떻게 할까요? 매일 저녁으로 아주 값비싼 밤을 사와지고서 이를 정성스럽게 삶아가지고서 그것을 꿀에다가 잘 감아가가지고서 그래서 시어머니를 대접하면, 여섯달만 그렇게 하면 시어머니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얼씨구나 좋다하고 그때로부터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모아가지고서 제일품짜리 밤을 사와가지고서 그것도 정성들여 삶아서 제일 좋은 진짜 꿀, 요사이 사탕바른 꿀 아니고, 진자 토종꿀을 가지고 잘 꿀에 발라서 그래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이고 어머니 잡수세요. 혹시 안 먹을까 싶어가지고서. 그러니 시어미가 보니까 아니 세상에 며느리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수가 없어,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 달이 가도 그렇게 해주지 두 달이 가도 그렇게 해주지 석 달이 가도 그렇게 해주니까네 그 시어머니 마음이 너무 감동을 해서 천하에 이런 며느리가 어디 있느냐, 이런 며느리를 내가 빨리 죽기를 소원했으니 이거 내가 정말 나빴구나, 이 며느리 살아야지 그때로부터 시어머니가 며느리라하면 아랫목에 있다가 화닥딱 일어납니다. 그저 며느리를 쓰다듬어주고, 잘 돌봐주고, 며느리가 수고하는 것 같이 격려해주고, 누구든지 집에서 아들이나 시누이들이 며느리에게 말만 거슬렀다가는 시어니가 눈을 막 이 호랑이이 같이 뜨고 호통을 하고 세상에 이렇게 좋은 며느리가 어디있다고 야단이냐 이럽니다. 며느리가 한 다섯 달쯤 되니깐 어찌 시어머니가 잘하는지 어이 이 시어머니가 죽으면 안되겠다 큰일났다. 아이고 내가 시어머니가 죽으라고 이렇게 밤에다가 꿀을 발랐는데, 여섯달되면 죽을 것인데 큰일나겠다. 그래서 도로 카운셀링을 받은데를 갔습니다. 아이고 나 큰일났습니다. 나 시어머니 죽으면 안되겠어요. 너무 너무 시어머니가 요사이 변화가 되어서 잘 해주는지라 우리 친정 어머니보다 잘해주는데 이 시어머니가 죽으면 내가 어떻게 삽니까? 그러므로 아휴 인제 시어머니 안 죽는 방법을 해주십시오. 한 달만 있으면 죽을 것인데 이 큰일 났다고 그러니깐 그 분이 하는 말이 시어머니의 그 미움이 죽고 사랑이 살아났으니 밤을 가지고 계속 꿀로써 해주는 것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난 것이니, 살아났다고 괜찮다고 계속하라고 그래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해결되었다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여러분, 이 세상에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것을 통해서 사랑이 교제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내가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해도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것의 교제가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왜 성경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반드시 사랑에 해당하는 증빙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부모를 진실로 사랑하면은 부모에게 잡술 것, 입을 것, 있을 것을 공급하면서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되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므로 효도하는 것입니다.
뭐 먹고 입고 마시는 것 주는거야 사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새 짐승가운데 까마귀는 새끼가 꼭 자기가 어미에게 받아먹은만큼 그 어미를 먹입니다. 까마귀도 새끼가 나중에 크면 어미에게 자기가 받아먹은 만큼 주워다 먹이는데 뭐 사람이 부모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주는 것 뭐 그거 했다고 해서 큰 일 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마땅히 해야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위에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려면 부모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먹고 입고 자도 마음이 평안하지 아니하면 그 효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를 해서 마음을 평안하게 할까요? 최근에 여러분 보면 비극적인 사건들이 신문에 늘 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생 외아들이 시위하다가 감옥에 갖혔다는 소식을 듣고, 시골에서 아버지가 헐레벌떡 와서 감옥에 갖힌 아들을 보고 난 다음 내려가서 병이 들었었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그는 세상를 뜨면서 내 아들이 나를 놀라게해서 보고 싶다. 그러고 나서 세상을 떴습니다. 세상에 불효막심해도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자기가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한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은 그러나 그 아버지가 그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해 울화병으로써 내 아들이 나를 놀라게 해서 그리고 세상을 떴는데 그 다음 죽고 난 다음 그 영전에 엎드려서 내가 효도합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먹을 것 주고, 입을 것 주고, 있는대로 정성을 다 바쳐 공부하라고 했는데 아 일선에 가서 5박6일동안 훈련을 받으라는 것이 뭐 그렇게 나쁩니까? 그거 안 하겠다고 분신 자살을 했습니다. 물론 자기가 행한 행동이 정치적 동기가 어떠하든지 그것은 저가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부모를 가진 자식으로서 부모가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하여 기르고 대학까지 보냈는데, 그래 여간 분노가 되더라고 그래 그 부모 앞에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서 분신자살을 하다니 그 부모의 가슴속에 비수를 찔러도 그런 비수가 없습니다. 이런 자식을 차라리 두었을바에는 원수를 드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들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부모가 안 되어 본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비극은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효가 이 세상에 무엇으로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부모를 공경하고 효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할 수 있으며 어떻게 세계를 구원한다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비극은 우리가 다시 우리의 사회와 환경에서 연출되지 말아야될 것은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부모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살아야 부모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밤낮 술이나 먹고 도박이나 하고 방탕하고 나쁜 친구와 놀기를 좋아하면 부모 마음이 편하겠어요. 나는 저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할머니 한 분이 옷도 잘 입고 귀하게 생긴 한 분이 그 추운데 담요 한 장 덮어쓰고 칠십이 가까운 분이 밤낮 교회 와서 울고 있습니다. 그것도 여름에는 괜찮은데 추운 겨울에는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사무실로 가면서 할머니 사무실로 오십시오. 난로 피운 다음 앉혀놓고 왜 이러십니까 할머님 할머니 아들이 다섯이 있는데 맏아들이 그렇게 잘 살고, 둘째 아들도 잘 살고, 셋째도 잘 사는데 넷째는 이 막내이고, 다섯째는 아직 대학을 안 갔는데, 왜 이 세 아들이 잘 사는데 잘사는 아들네 집에 가지않고서 이렇게 추운데 와서 벌벌 떨고 엎드려 있습니까? 아들 다섯 중에 넷째가 도박하고 술 먹고 방탕하고 집안 일을 안 돌보고 아주 망나니입니다. 그러니 잘사는 세 아들 그만두고 이 넷째 위해서 밤낮으로 그 추운데 와가지고서 하나님이여, 이 아들을 돌이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주책입니다. 주책. 제발가서 맏아들 둘째아들 집에 가서 계세요. 또 며느리들이 어머니 데리려 늘 옵니다. 어머니 데리러 늘 와도 안가고 뿌리칩니다. 그때 나는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할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조 목사, 조목사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니 내가 할 말 모르겠지. 나중에 자식 한번 나아보세요. 잘 사는 자식은 잘 사니까 걱정이 안되지만 못 살고 방탕한 자식은 이 때문에 내가 잘사는 집 아들네 아랫목에 누워있어도 마음이 편치않아, 추운데 교회와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것이 내 마음이 편해.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혹시 나를 보시고 그 아들을 돌이켜 줄지 모르니깐, 이것이 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내 속으론 돌았다 돌았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자식을 갖고 보니 바로 그 할머니의 생각이 내 마음속에 납니다. 왜냐하면 우리 희재가 미국가서 공부하는데 하루에 두 번씩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를 한다 말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 희재 차타고 다니는데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운전 빨리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험한데 당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밥 잘먹고 건강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거 노래처럼 나옵니다. 안 할라캐도 자꾸 나옵니다. 입에서 노래처럼. 그 말이 나올 때마다 그 할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잘사는 자식들 다 두고 그 추운데 와서 엎드려서 담요를 덮어쓰고 울고 있던... 부모에게 참된 효도를 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살아서 마음에 평안을 드려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서 몸이 건강해야 되고, 자식이 병들어 가지고서 드러누워 있으면 부모가 잘 먹고, 잘 입은 들 그 것이 마음에 평안이 올 턱이 있어요. 자식들이 그러므로 몸이 건강해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생활고에 허덕이지 말아야 되요. 못 먹고 잘 못 살면은 그 부모가 잘 사는 집에 가서 뭘 좀 빼앗아와서 갖다줄라고 그저 잘사는데 가서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보고 아들보고 좀 내다하면 며느리가 있으니깐 며느리 눈치 봐 가면서 그것 좀 훔쳐다가 못사는 집에 좀 갖다줄라고 그게 부모 마음입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잘 사는 놈은 잘 사니까 괜찮은데 늘 못사는 것이 마음속에 괴로운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느 정도 의식주 생활을 해결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서 부모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이것이 부모의 마음에 평안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바로 효도인 것입니다.
넷째로 여러분, 부모를 효도하는 것인 부모님을 영화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자식들이 사회에서 모범된 일을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아무개 자식아닌가 그 정말 훌륭하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모범된 일을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 부모는 그것을 영화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식이 잘되면 부모가 자연적으로 마음이 즐겁습니다. 나도 우리 애들보면 내 옷장에 와서 내 허락도 안 받고 좋은 것 척 자기가 입고 나가도, 넥타이도 턱 뽑아나가도 하나도 밉지가 않아요. 그런데 동생이 와서 그렇게 하면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런데 자식이 그렇게 하는 것은 조금도 밉지가 않아요 오히려 대견스럽게 보이고 이 녀석이 이젠 자랐구나. 아버지 가져갑니다. 넥타이도 좋은 것 있으면 가져가고, 옷도 좋은 것 있으면 자기가 입고 나가버리고, 구두도 이거 내 신읍시다 하고 신고 가버리는데 이것이 하나도 믿지가 않고 대견스럽고 좋아 보이는 것이 바로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식이 잘 되어서 세상사람에게 칭찬을 받게되면 부모가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모두다 그렇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적으나 크나 자기 환경가운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칭찬받는 그런 삶을 살 때 이것이 진실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일을 성취해서 자기의 각 맡은 일에 성공했을 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일이나 큰일이나 낭패와 실망당하지 말고 성공해서 아버지 어머니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 그 부모가 자기가 성공한 것 보다 더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 그 마음속에 부모에게 큰 행복과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가 자기 소원하는 것을 자식에게 강제로 덮어 씌워서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되겠지만은 그러나 부모가 평소에 원하는 것을 자식이 이루어줬을 때 부모는 그것을 영화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를 하라고 성경에 명한대로 명을 합니다. 마땅히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마디 부모된 나로서 또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식을 괴롭게하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다 어느 부모의 자식이지만은 또 자식의 부모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라고 하면서 자식을 몹시 괴롭히는 부모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밤낮 싸우는 부모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자매님 한 분이 그는 아주 중노동을 하면서 부모의 생활을 돌보고 동생들의 공부를 시키는데 그가 내게 신앙상담을 와서 이렇게 말합디다. 목사님, 나는 시집갈 정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업에 나가서 중노동을 하고 일해서 부모를 받들고 자식들을 공부시키는데 내 마음에 괴로운 것은 밤낮 아버지 어머니가 싸웁니다. 이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들은 자식들을 잘 기를려고 교육을 시키지 못하면 인정이나 있게 살아야지 밤낮 자식 앞에서 싸우니깐 그것이 자식을 괴롭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혹은 또 부모들이 돈이 헤퍼가지고서 주는 돈 다 쓰고 난 다음에 이리저리 다니면서 고슴도치 오이밭에 구른 것처럼 온 천지에 빚을 잔뜩지고 자식이 모른 곳에 전화가 자꾸와서 당신 아버지가 돈 빌려갔습니다. 당신 어머니가 돈 섰습니다. 이건 뭐 뒷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럴바에야 빨리 천당가는 것이 좋아요, 만당을 가든지. 왜 자식 괴롭히는 일을 하는 것입니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가지고서 술주정뱅이가 되고, 도박꾼이 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아이고 저것도 인간이라고 사느냐하면 그 자식에게 얼마나 괴롭힘을 주는 것입니까? 이러므로 일방적으로 자식들에게 효도만 하라고 하지말고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는 부모가 되야 되겠다고 이러한 것도 부모로써 우리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어비이날을 맞이해서 우리들은 진실로 새롭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쫓아 어버이를 공경했는가 이것을 생각해 보고 또 나는 어버이로서 자식을 괴롭히는 어버이가 되지 않았는가 스스로 반성해 보는 귀한 기회를 가져야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인간으로서 가장 우려해야 될 것은 우리의 어버이의 어버이 되시는 하나님을 공경해야한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사는 사람들 치고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그런 호로 자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격과 영을 주셨으니 이러므로 우리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영원한 삶의 어버이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진실로 하늘 아래 있으면서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고 살려면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사랑하고 공경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내 친부모 양친을 경외하면서 살아 갈 때 우리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서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만군의 야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만 입이 있은 들 무엇으로 감사하리이까?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버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걸머쥐시고 십자가가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 죄를 속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고려말에 아들이 부모를 고려장하려고 지고 가니 아들이 돌아가는 길에 길을 잃으까 싶어서 가는 곳마다 나무가지를 꺽어서 길을 표시해주었다는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읽어보았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이 이 세상 부모와 어찌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 그러므로 아직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우리 죄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늘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힘입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 품에 안기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만일 부모에게 불의하고 살았었으면 오늘 진실로 돌이켜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자식을 괴롭히는 부모가 되었었으면 회개하고 돌이켜 올바르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부모가 될 수 있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1986
어버이를 공경하라
by 삶의언어 posted Sep 06, 2024 Views 6 Replies 0
?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
예배드린 날 | 1986-05-11 |
오늘의 성구 |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arunswZTIto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