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큰 기쁨이 있었더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말씀과 표적이 항상 같이 따르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말씀만 있고 그 말씀을 증명하는 표적이 없는 그러한 상태로 증거 된 적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도 듣고 따르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빌립의 가르침을 좇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빌립이 증거 하는 말씀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빌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인생들에게 행한 그 위대한 축복과 구원의 표적을 보고 그들 마음이 감동하고 변화를 받아서 일심으로 빌립의 가르침을 좇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의 복음 증거로 나타난 표적은 도대체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귀신이 소리치며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성에 전에 없던 큰 기쁨이 있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빌립이 증거 하던 그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거 하는 그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부활하셔서 살아 계셔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한 것이나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나 동일한 복음이요 동일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빌립의 복음 증거에 나타난 이와 같은 증거가 여러분과 나의 생활 속에서도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 우리의 생활 속에 어떠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의 생활 속에 귀신이 쫓겨 나가는 것을 우리는 당연지사로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보면 예수님의 사역에 관해서 한결같이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증거 하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과 귀신을 내어쫓는 것은 분리할래야 분리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소위 말하는 현대주의자나 신신학자들이 귀신이란 없다고 그렇게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그 사람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지혜롭고 더 현명한 사람입니까? 예수님이 복음 증거 할 때 귀신을 쫓아내시고 열두 제자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시고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시고 마지막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 최후의 명령으로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누가 예수 그리스도보다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예수님께서는 집요하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귀신 쫓아내는 일에 관심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의 생활 속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하게 귀신들이 생활에 파괴의 작전을 행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도 오늘날 매일같이 귀신을 쫓아내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귀신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할까요? 성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떠한 경우에 귀신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까요? 귀신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 죄를 지을 때 그것을 말미로 해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파괴의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죄라고 말하면 죄가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때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란 것은 성경에 십계명으로 우리에게 간단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다른 신을 섬기도록 여러 가지로 흉계를 꾸며서 이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말하기를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호를 장난으로 불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함으로 그것을 틈타서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부모와 안력이 생기고 부모에게 불효하므로 말미암아 그를 통해서 마귀가 우리를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살인할 정도로 마음에 미워하면 그로써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간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을 통해서 마귀는 우리를 점령하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가 이웃 것을 불의 하게 도적질하면 이로써 마귀는 우리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또한 우리의 마음을 사주해서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 거짓 증거를 하게 하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모함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마귀의 궤계에 떨어지면 마귀는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우리를 점령하여 파괴합니다. 성경에는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마귀는 우리 마음속에 탐심을 갖다 줘서 우리보다 더 잘 사는 사람, 더 나은 사람, 더 향상한 사람을 끌어내리고 비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해서 파괴를 가져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만들고 계명을 어기면 그를 틈타서 귀신들이 우리를 점령하여 우리 가운데 온갖 파괴적인 행위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귀신은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과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어려운 고통을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가오는 수많은 파도를 헤치고 시련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자세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인생을 도전해야 우리가 환경을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와서 여러분과 내 마음을 파괴해서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의 마음도 비관으로 꽉 들어차고 부정적이 되면 그 사람들은 무능력하게 되고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이 비관적이 되고 여러분의 마음이 부정적이 되어서 소극적으로 뒤로 물러가는 삶을 살게 한다면 이것은 원수 귀신이 여러분을 붙잡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런 귀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되며 어떠한 절망과 흑암 가운데도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흑암 가운데서 찬란한 빛이 솟아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여기에 속아 넘어지면 귀신은 이를 점령해서 무한한 파괴를 작동하는 것입니다. 또한 귀신은 우리에게 와서 거룩치 못한 생각, 거룩치 못한 말, 거룩치 못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집에 파리가 많은 온다고 불평하지 말고 파리가 붙을 수 있는 쓰레기 더미를 치워야 되는 것처럼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거룩하지 못한 더러운 세속적인 생각이나 말이나 그런 친구나 그런 모임에 들어가면 그를 통해서 귀신이 붙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기도하는 힘을 빼앗아 버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싶은 마음을 빼앗아 버리고 파괴를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귀신은 사람들에게 와서 탐욕으로 무엇이든지 무리를 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으로 정상을 벗어나 무리를 행하게 해서 우리를 파괴시킵니다. 의식주생활도 무리로 사치하게 만들게 하고 혹은 사업이나 일반적인 행동 중에도 무리를 하게 해서 상처를 주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셨지 무리로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밥도 무리로 먹으면 위장병이 납니다. 물도 많이 마시면 고장이 납니다. 운동도 너무 무리를 하면 오히려 운동 안한 것보다 못하게 상처를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무리를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귀신은 와서 우리에게 탐욕을 불어넣어서 자꾸 좀더 무리하라, 무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해서 쓰러지면 그 다음 귀신이 들어와서 우리를 무한대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무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옛날에 깨달았습니다. 해외 여행하면서 저는 언제나 조깅 슈즈를 가지고 다니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는 뛰었습니다. 그런데 불란서의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성회를 할 때였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 혼자 새벽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조깅 옷으로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낯선 스트라스부르크 길거리로 나가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 혼자 새벽 일찍이 조깅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뛰고 난 다음에 내 마음속에 이젠 그만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슨 생각이 또 마음속에 들어오기를 '좀더 뛰어라. 그러면 더 건강해진다. 네가 더 심장이 튼튼해야 더 이 선교사업을 잘 할 수 있으니까 좀더 뛰어라' 그런데 배 뱃속에서는 '그만 뛰어라' 하는데 내 이 머리에서는 좀더 뛰라고 합니다. 그래서 에라, 욕심이 생겨서 좀더 뛰면 더 건강해질 줄 알고 좀더 뛰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중지하는 것 같더니 그만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데 70에서 80에서 90에서 100에서 120에서 150에서 200으로 뛰더니 심장이 밖으로 나오려고 해요. 저는 그 스트라스부르크의 길거리에 드러누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동네에 그 아스팔트 바닥에 누웠는데 그대로 죽겠어요. 그만 내 마음속에 온갖 생각이 납니다. '조용기 목사 불란서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조깅하다 심장마비로 죽다' 이런 신문 기사가 대서특필로 나는 것이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마귀가 나에게 와서 공포심을 갖다 주는데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이젠 죽었구나. 아무도 못보고 내가 여기서 혼자 죽는구나. 어두운 새벽길 캄캄한 곳에 나는 일어나서 아스팔트길을 벌벌 기어서 호텔까지 왔습니다. 호텔에 와서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정 살지 못하겠습니다. 심장이 뛰고 진땀이 나고 호흡은 급하고 그래서 하나님이여 살려달라고 내가 고함을 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하니까 그 다음 귀신이 내게서 쫓겨나가는데 억압하는 귀신이 쫓겨나가고 그리고 난 다음에 마음이 평안해지고 상쾌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또 그 길로 설교하러 나갔습니다. 내가 그때를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조깅 슈즈를 내버리고 이제 다시는 안 뜁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마귀는 우리에게 탐욕을 가지고 무리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라도 무리를 하면 그로써 파괴되고 파괴되면 그 가운데 들어와서 불안과 공포와 좌절을 집어넣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신이 우리에게 붙거나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에게 불안을 가져오고 공포를 일으키며 슬픔을 가져오고 불행을 느끼게 하며 절망하게 하고 고통하게 하며 좌절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귀신으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을 어떻게 쫓아낼까요? 귀신이 들어와 있으면 우리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회개하고 거룩치 못한 생각을 회개하고 탐욕을 가지고 무리한 죄를 모두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깊이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예수께 의지하며 단호하게 원수 마귀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대결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를 억압하는 원수 귀신아, 묶음을 놓고 떠나갈지어다.' 그렇게 대결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가장 신속히 쫓겨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즉시로 쫓겨나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 경험을 통해서 내가 말로써 기도하는 것보다는 귀신과 싸울 때 방언으로 기도하니까 신속히 귀신이 소리치며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께서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여러분이 귀신에게서 놓여남을 받아 영혼이 상쾌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둘째로,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 되자 많은 중풍 병 환자와 앉은뱅이가 나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이 세상에 중풍 병이 걸린 사람이나 앉은뱅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내적으로 인격적인 중풍이나 앉은뱅이에 걸린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중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인격적인 중풍이나 앉은뱅이에 걸려서 정상적인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정상적이고 행복한 대인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중풍이나 앉은뱅이만 고치길 원할 뿐 아니라 육신의 질병만 고칠 뿐 아니라 여러분의 내적, 인격적 질병인 성품의 중풍이나 앉은뱅이가 된 사람들을 주님은 고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 생활에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품 적으로 마음의 중풍이나 앉은뱅이에 걸렸는데 이것은 어떠한 것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삐뚤어진 성격을 가지고 병들어 있습니다.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사람은 성을 잘 냅니다. 무엇이든지 참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자기에게 거슬리면 화를 냅니다. 그래서 파괴를 합니다. 어떠한 사람은 삐뚤어진 성격을 가지고 모든 일에 오해합니다. 자기가 듣는 말도 그것을 오해하고 남의 말도 들어서 남에게 오해로 전달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잘 토라지는 성격도 삐뚤어진 성격입니다. 조금만 하면 삐치고 그 삐친 마음을 풀지 않고 몇 주일이고 한 달씩 갑니다. 이러한 남편이나 이러한 아내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사람과 사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야말로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중풍 병 환자요 앉은뱅이인 것입니다. 이것을 고치지 않고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아집이 센 성격도 병든 성품인 것입니다. 아집이 세서 전혀 이해심이 없습니다. 남의 입장에서는 추호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입장에 서서 자기 고집만 세우는 이러한 사람도 중대한 인격적인 병이 든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요사이 정치인들처럼 전혀 타협하지 아니하고 내 정치, 내 이념만이 옳다, 이대로 안 하면 박살내어 버린다. 요사이 한국 정치인들은 모조리 인격적으로 중풍 병이 걸리고 앉은뱅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나라에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이 그 내적 성격의 중풍병과 앉은뱅이에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인생이란 것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타협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 고집대로 하고 아내는 아내 고집대로 하고 자식은 자식 고집대로 하면 그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서로 대화해서 조금씩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해서 나가야지 인생을 타협 없이 나간다는 것은 그것은 중풍 병이 걸린 인격을 가진 사람이요 그런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남을 무시하는 사람,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 모두다 성격이 삐뚤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가 뭘 그렇게 잘났다고 남을 무시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자기 주장만 절대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러므로 모든 것은 우리가 대화를 통하여 타협을 통하여 살아나갈 수 있는 이런 마음의 고침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어떠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병든 사람이냐 하면 몰인정한 성격의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 유익만 생각하는 사람, 나는 많은 가정을 상담했는데 그 중에서 제가 굉장히 마음에 슬픔을 느낀 것이 있습니다. 어떤 남편은 자기 유익만 생각합니다. 집에 들어와서 아내야 어떻게 되든 자식이 어떻게 되든 자기 유익만 생각합니다. 자기만 잘먹고 자기만 잘 입고 자기만 잘살고 자기만 술 먹고 이렇게 지내면 됩니다. 월급 받으면 자기 할 일 다하고 쥐꼬리만큼 있으면 가져오고 안 가져오면 그뿐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생활하라고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도 양심에 추호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그런 남편들은 내가 많이 봤습니다. 자기 유익만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처자들은 처참한 슬픈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자기 유익만 생각하는 아내들도 많이 봤습니다. 남편이 세상에 나가서 얼마나 수고하고 고생하고 마음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집에 들어와서 그 마음을 위로하거나 격려해 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자기의 취미, 자기 생각만 가지고 치맛바람만 날리면서 돌아다니는 그런 여성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몰인정한 성격으로 마음이 병들어 중풍 병이 걸린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전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삽니까? 우리 혼자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절의 고도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타인의 슬픔과 타인의 고통과 타인의 괴로움을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울고 함께 짐을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 나만 의로우면 된다. 나만 안전하면 된다. 타인이야 죽든 말든 알 것이 뭐냐?'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은 인격적으로 중풍이 걸린 사람이요 앉은뱅이 된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런 병도 고침을 받아야 됩니다. 남의 감정을 짓밟아 버리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들은 다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자존심을 무한대로 짓밟아 버리고서 자기 혼자 살아가는 사람 많습니다. 우리는 쉽게 말 한 마디로 남의 자존심을 찢어 버리고 짓밟아 버릴 때가 많습니다.
나는 결혼하는 부부들이 내게 와서 신앙 상담을 하면 언제나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들 결혼하고 살 때 절대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라. 사람이란 것은 모두다 자기의 최후 방어의 진 속에 있는 것이 자존심이다. 자존심 하나 잃어버리면 그때로부터 모든 것은 끝장나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서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라." 제일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은 부인은 남편보고 "당신 아버지, 당신 어머니 너무 잘났더라." 하고서 아예 시집을 평하면 남편은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또한 남편이 자기 아내보고 "너희 어머니, 아버지 기가 막혀. 기가 막혀." 이렇게 해서 여러 가지 흉을 보면 그 부인이 싱긋이 웃지만 속으로 '어디 두고 보자.' 사람들이란 것은 모두다 자기 자존심이 있는데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의 감정을 짓밟아 버리고 자기 혼자 독야청청해 나갈 것 같은 이러한 사람도 마음의 중풍 병 걸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삐뚤어진 성격, 아집이 센 성격, 몰인정한 성격의 사람이라도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마음의 중풍 병, 마음의 앉은뱅이를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속사람이 치료를 받고 고침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앉은뱅이와 중풍 병은 모두 나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여러분의 성격상의 장애가 고침을 받아서 변화를 받아 믿음, 소망, 사랑, 이해력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기의 마음에 성격적인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 기도하고 그 장애가 고침을 받도록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지 않는데 하나님 직접으로 와서 치료하고 고쳐주지는 않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사마리아 성에는 큰 기쁨이 있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에 억압되어 죄의 종이 되고 부정적인 마음의 병이 들고 거룩치 못하여 탐욕으로 무리할 때 큰 불안과 고통과 슬픔과 좌절감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거기에다 성격적인 불구가 되어서 삐뚤어지고 아집이 세고 몰인정한 심정을 가지고 있으면 이러한 사람에게 기쁨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를 얻으면 여러분 기쁨이 다가올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이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면 여러분과 내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해방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에게서 해방되고 성격적인 장애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 마음속에 넘치는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기뻐서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밖에 나가서 행진을 하면서 기뻐했는지 그 감격이 지금 마음속에서도 새롭습니다. 이와 같이 해방이란 것은 우리 마음속에 기쁨을 가져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해방된 체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귀신에서 해방되고 성격적인 장애에서 해방되고 그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흐르는 이러한 중생의 체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에 기뻐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양손에 맛있는 것을 잔뜩 들고라도 심산유곡 산골짜기에서 자기의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 옷과 그 음식이 무슨 기쁨을 가져오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삽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릅니다. 왜 사는지 모릅니다. 어디 가는지 모릅니다. 그저 매일같이 사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추구하고 그 가운데서 부귀, 영화, 공명, 권력을 추구하고 삽니다. 그러다가 일시에 죽음이 다가오면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눈을 뜨고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존재인 것입니다. 지금 살아서 움직여도 자기가 누군 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뿌리도 모르고 자기의 가는 길도 모르고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사니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깊은 삶의 기쁨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삶의 뿌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담의 후예이며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셨으며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살며 이 육신의 장막 집 무너지면 영원한 천국 집으로 가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발견하면 그 마음속에 기쁨이 넘칩니다. 잘 사나 못 사나 내가 갈 길이 환해지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어서 자기를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자기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오는 기쁨은 이 세상이 갖다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여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 품에 안기면 여러분은 기쁨의 샘물에서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적극적인 증거는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쁘지 아니하면 마음에 병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정말 병들지 않았는가? 내가 정말 신앙 속에 있는가를 찾아보는 것은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는가 없는가를 찾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기쁨을 주노니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선생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도할 때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이란 좋을 때도 기뻐하고 환경이 스산할 때도 기뻐하며 살 때도 기뻐하고 필요해서 순교를 당할지라도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신앙인 것입니다.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는 사마리아인들에게 크나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삶에 자유와 변화를 가져다주며 진정한 기쁨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린 신자는 이미 그 마음이 도로 병들기 시작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우리들은 진실로 사마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위대한 변화가 다가온 것처럼 우리도 이 변화를 기대하고 이 변화를 쟁취하십시다. 오늘 예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붙었던 귀신을 내어 쫓아버립시다. 우리의 성격적인 장애가 고침을 받도록 주님께 구하십시다. 그리고 기쁨을 구하십시오. 기쁨을 누리십시오. 기쁨이 충만해서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광명하고 찬란한 얼굴에 빛을 비춰 주시기를 바랍니다.
- 기 도 -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 빌립 집사를 통해서 사마리아에 복음을 증거 할 때 그리스도가 전파되매 거대한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났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붙어 있던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가고 성격적인 중풍 병과 앉은뱅이가 낫고 육신 적인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기쁨이 성에 충만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그와 같은 역사가 이 예배에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이 예배를 TV로 보고 잇는 여러분에게도 이 큰 변화가 다가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오늘 이 시간에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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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큰 기쁨이 있더라
by 삶의언어 posted Oct 24, 2024 Views 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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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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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7-03-29 |
오늘의 성구 | 사도행전 8장 4절로 8절 말씀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