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생활 중에서 우리는 수많은,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에 우리 마음이 당황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 문제에 해답을 갖지 못할 때인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올 때 거기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즐거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해답이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예비하고 계신다고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예비해 놓은 것을 인간적인 눈으로나 귀로나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는 신비한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문제의 해답을 예비하고 계심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얼마나 마음이 기뻐지고 담대해 지고 어떠한 역경이나 환경에 처하더라도 평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모든 것을 예비하는가 성경을 통해서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구약에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한번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은 이미 창조에서부터 예비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이 스스로 예비하기를 원하셨다면 창조의 첫날에 사람부터 먼저 지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너희 살아갈 길을 너희 스스로가 예비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첫날에 어두움에서 빛을 지으셨습니다. 이튿날에 궁창을 지으셨습니다. 사흗날에 뭍이 드러나고 각종 열매 맺는 나무와 풀이 나게 하시고 나흘째 해와 달과 별을 지으셨으며 닷새 째는 공중의 새들과 물 속에는 물고기들을 지으셨습니다. 엿새째는 각종 곤충들과 짐승들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신 것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위해서 땀흘려 예비할 필요 없이 하나님이 예비한 일치의 사물가운데서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이를 즐기며 살수 있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에덴동산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 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창세기서부터 이미 당신 자신을 계시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성경전체를 통해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출애굽사건에서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삼백만이 모세를 따라서 홍해수 가운데 나왔습니다. 창일한 홍해수가 넘실거리니 그 홍해수를 건너갈 수 있는 다리도 없고 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왕이 전군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포로로 잡기 위해서 질풍노도와 같이 쳐들어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니 살길이 전혀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앞에는 창일한 홍수요 뒤에는 노도와 같은 애굽의 대군대가 밀려오니 거기에 샌드위치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 속에서 아우성을 쳤습니다. "모세야, 어디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홍해수가에 데리고 와서 죽이려고 하느냐?"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혼자만은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길이 없는 가운데서 길을 내시고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세 혼자서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응답하사 권능의 지팡이를 홍해수 위에 내밀고 갈라질 것을 기도하자 길이 없는 홍해수에 바람이 밤새도록 불더니만 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지처럼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적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문제의 해답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이 알지 못할 때 홍해수 가운데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스로 광야에 들어가서 사흘동안 물을 얻지 못하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호수를 발견했는데 뛰어가서 물을 마셔보니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만 또다시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사흘동안 물을 못 마셨는데 물을 발견하고 마셔보니 독이 있어 그들이 먹자 말자 토하고 배를 안고 뒹굴고 말았습니다. 또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고함 고함을 쳤습니다. 모세는 또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문제가 있는 곳에는 해답을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원망하는 동안에 모세는 엎드려 기도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 그 호수 옆에 한 나뭇가지를 지시하시는지라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곧 해독되고 달아져서 백성들이 마음껏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그 곁에 이미 해답을 예비해 놓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이 무슨 물을 예비했으며 무슨 양식을 예비했겠습니까 삼백만이 광야를 지나가는데 그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실 물과 양식이란 광대한 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예비해 두셔서 하늘에서는 만나가 쏟아지고 바위에서는 물이 터져서 그들이 먹고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냥 너희 살길을 마련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복된 땅을 미리 예비해 놓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예비해 놓은 길로 인도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불순종하고 불신앙하며 하나님을 괴롭혔지마는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가서 살수 있는 땅을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전체를 살펴 볼 때 하나님은 야훼이레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절대로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신약에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찾아보십시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한 이후로 인류는 그 영이 죽고 육체는 병들어서 죽게되고 환경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저주가 오게 되고 가족들간에 분열과 갈등이 생겨나고 인간은 처참한 절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종교를 만들어 내었고 철학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인간은 학문을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켰지마는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죄책과 절망에서 건져 나올 수도 없고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허무와 무의미에서 건져 나올 수도 없으며 죽음에서 벗어나올 도리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다 처참한 죽음에 이르는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이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랴." 탄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사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이 땅에 삼십년 동안 무명으로 지내시다가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충만하여 나오셔서 하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죄 없고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죄의 대가로서 제물로 삼아 십자가에 올라가게 하사 못박았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이사야는 외쳤습니다. 성경에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구원자 예수님을 예비하시고 그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찢어진 살과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탕감하시고 우리에게 용서와 의의 길을 열어 주시고 천국 가는 길을 확실하게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종교를 만들 필요도 없고 철학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을 통해서 로케트를 타고 우주로 올라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이미 예비해 놓으시고 완성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 우리는 흑암에서 광명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영원한 멸망에서 영원한 구원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예비하신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야훼이레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간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그 어머니와 제자들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아서 한참 잔치가 무르익는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음식 전체가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온 집안이 당황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의 어머님께 찾아와서 "우리를 좀 도와 주십시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의 어머님께서 예수님께 와 말했습니다.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럴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했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아주 가혹할 정도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님께서 그 어머니 마리아를 무시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만일 마리아의 말을 듣고서 예수님이 일을 했다고 하면 이것을 후대 사람이 사용해서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예수께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또 한사람의 구세주, 마리아를 만들어 놓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날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예수님보다 앞세워서 모든 기도를 마리아에게 하고 마리아를 통해야 예수께 나갈 수 있다는 이와 같은 성서에 없는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확산될까싶어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그 어머니의 부탁을 거부해 버린 것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예수님이 있으면, 바로 예수께서 우리문제의 해답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주께서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대로 시행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으로 사상할 때 문제의 해답은 없었습니다. 돈도 없지요. 포도주도 없었습니다. 절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한참만에 종들을 부르시더니만 거기에 결례통 여섯 개가 있는데 그 결례통 여섯 개에 물을 가득가득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대로 순종해서 채웠습니다. 그러자 그 물을 퍼서 연회장에 갖다주라고 말씀했습니다. 종들이 연회장에 갖다주매 연회장의 사람들이 그 포도주 맛을 보니 기가 막히게 좋은 포도주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기를 보통 다른 집에 가면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었다가 나중에는 물을 섞어서 희석된 포도주를 내는데 어떻게 이 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포도주를 내느냐고 감탄을 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고 살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포도주처럼 맛좋은 인생을 살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처음에는 좋았다가 슬슬 식어져서 끝이 나빠지는 것이 대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같이 계시면 처음보다 끝이 더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래요. 젊었을 때보다도 백발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곳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벳세다 광야의 사건을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 나가매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합치면 약 이만 명 내지 이만 오천 명이 광야로 모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증거하매 심취했었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좀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은혜롭고 심취하겠습니까? 모두다 취한 사람들 같았어요.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매 거기에 취해서 정신 없이 말씀을 듣고 있다가 벌써 해거름이 되니 지쳤습니다. 허기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끝나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야겠는데 그대로 그냥 들어 눕습니다. 힘이 없어서 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보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빌립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빌립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물었습니다. "빌립아,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구하여 이 많은 사람들로 먹게 할꼬?" 예수님이 사람에게 어드바이스를 구한 적은 이때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할 줄을 다 알고 계시면서 빌립을 시험하셨습니다. 빌립은 곧장 다른 제자들과 모여서 의논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모두다 인간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생각해보고 생각해봐도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곳은 광야고 떡살 곳도 없고 또 시간도 늦었고 또, 떡을 사려고 하면 적어도 이백 데나리온 이상의 돈도 필요한데 그 돈도 없다. 그러므로 불가능하다. 이 결론을 내리고 빌립이 대답을 가지고 예수께 나와서 보고했습니다. "주여, 이곳은 광야요. 떡살 곳도 없고 군중도 많고 시간도 늦었고 돈도 없으니 이 사람들을 흩어서 각자 동리에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런데 그때에 안드레가 기왕 예수님이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까 주께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이다. 에라 믿음의 씨앗이나 한번 심어보자. 그래서 나가 어린아이의 점심도시락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그 군중에게 비해서 안될 일입니다. 그래서 안드레 자신도 말했습니다. "주여, 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되겠습니까마는 이것이 우리 믿음의 표시이니 주님 받으십시오." 믿음의 씨앗을 예수님께 심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것을 받으시고 축사하시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고 제자들이 군중들에게 나누어주매 나누어주면 또 생기고 나누어주면 또 생겨서 그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차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문제가 있는 곳에 반드시 해답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해답을 받지 못하지 기도하면 반드시 주님은 문제의 해답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인간이 당하는 가장 무서운 문제인 죽음이 다가와도 조금도 겁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1-3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죽음이 다가와도 문제의 해답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죽음 저 건너편에 우리를 위해 영원히 있을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처소를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훼이레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사는 이상 여러분과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해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놓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믿지 아니하고 세상에 사는 사람. 하나님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서 주께서 예비하시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까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사는 것이 사랑입니다. 믿지 않고 순종도 아니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우리가 믿고 순종하면 그 도는 다를지라도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주께서 상세하게 돕는 예비를 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주님 중심으로 주님께 순종하고 살면은 우리의 모든 크고 작은 문제를 하나님께서 이미 해답을 예비해놓았다는 것을 알아야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가장 최선의 해답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놓으신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해답을 구할 때 수평적인 해답이 아닌 수직적인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됩니다. 사람들은 수평적인 세상에서 삽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그리고 체험한 것으로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해답은 길이 없는 가운데 길을 내는 수직적인 해답인 것입니다. 수평적인 세계를 아무리 살펴봐도 절망적입니다. 오른편을 봐도 절망이요. 어느 곳에 가나 절망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될 것은 오른편, 왼편, 앞, 뒤를 봐도 길이 막혔어도 위로는 길이 뚫렸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해답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당할 때 무릎을 꿇고 하늘의 하나님께 수직적인 방향으로 기도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해답은 수직적인 해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기적적인 방법으로 해답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만 해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고는 해답을 받을 수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했었으며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했었으며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해답이 수평적인 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인 면에서 오기 때문에 하늘에서 해답이 오도록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의심하고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다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러한 사람은 무엇을 구하며 주께 얻을까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나에게 해답을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서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님의 인도를 항상 기다려야합니다. 여러분과 나의 해답으로 이끄는 분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성령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이시나니 성령 하나님은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사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를 깨닫게 하려 하시느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해답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이 일어나게 해서 그 소원을 통하여 해답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도 하고 또, 기도할 때 마음에 뜨거운 확신이 들어와서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에 아주 하늘과 땅을 움직일만한 확신이 들어와서 이 길로 간다는 신념을 주어서 문제 해답으로 이끌어주시며 혹은 갑자기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깨달음이 다가옵니다. 어두움이 거쳐지고 깨달음이 다가옵니다. 커튼이 열리고 안보이던 길이 환히 보이더니 마음의 문제의 시종이 확 깨달아져서 그 길로 가게 하시며 혹은 성령께서 환경을 통하여 도저히 생각하지 못한 처소에 우리를 이끌어 가시며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하며 이리 연결하고 저리 연결되어서 문제의 해답이 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누구나 다소간 차이는 있지마는 이미 체험한 사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렇게 인도할 것을 여러분도 기대하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시면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나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알 것은 이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셔서 천지를 예비하시는 하나님. 그 아들을 보내주셔서 구원을 예비하신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하는 모든 전반에 걸쳐서 주도면밀하게 이미 그 해답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문제에 봉착할 때 당황하지 말고 깨어져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수직적인 응답을 기대하며 성령께서 해답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전혀 마음속에 믿고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기이하고 놀라운 역사로서 우리에게 문제의 해답을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히브리서 3;15-19절에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일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았지마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불신앙하고 불순종하고 사사건건 하나님께 트집을 잡다가 버림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인생광야를 살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할 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 들어가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고 오늘 여러분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몸부림치고 노력해봤자 무의미로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불가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 경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주님 앞에 나와서 이제 하나님의 성호를 찬미하며 우리를 위해서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마련하시고 절망에서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야훼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오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이제 수평적인 방법에서 방법을 찾아 방황하지 말고 수직적인 면에서 기도를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한 길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축복하여 주시어서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고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이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나아지게 도와 주시옵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발전적인 삶을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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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예비하시는 하나님
by 삶의언어 posted Oct 29, 2024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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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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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8-07-24 |
오늘의 성구 |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2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a1kghxw4BuI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