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마음의 변화"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변화무쌍하며 소용돌이치는 환경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을때는 인간이 환경에 노예가 되어서 살것이 아니라 운명과 환경을 창조하고 지배하면서 살수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환경의 저주속에서 죄의 포로가 되고 질병의 노예가 되고 가난과 절망과 공포와 죽음의 종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우린 바로 그와같은 생활속에 오랫동안 슬픔을 짓씹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천년전에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그 피값으로 값주고 사내주심으로 다시한번 우리에게 운명과 환경을 지배하며 왕노릇하며 살수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연 그대로 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만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다고 해도 믿음을 충만하게 개발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누릴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란 변화된 마음의 바탕위에서 산출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믿음으로 충만하여 이미 눈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속에서 운명과 환경을 지배하고 있으면 그 믿음이 밖으로 나와서 환경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믿음 대신에 의심과 불안 공포와 절망 부정적인 상태 등으로 억눌려 있으면 그 환경은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아무 저항없이 집행할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데 마음이 부정적인 것으로 점령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그 사람을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도와줄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고 했고 또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즉 마음의 그릇에 넘치도록 하나님께서 능히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해야 마음에 변화를 충만히 가져올수 있는가? 그길을 안내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여러분 마음에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이유와 동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없이 나는 오늘부터 마음에 변화를 갖겠다 이런다고 마음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하던지 이유가 있어야 그 이유에 해당하게 마음에 변화를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실로 오랜 세월동안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의 노예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마음에 변화를 어떻게 가져올까요?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는데 회개란 메타노이아란 헬라어로는 죄를 지은 것을 통회하고 자복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마음의 생각을 변화시키라는 말인 것입니다. 변화된 세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변화를 가져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워온 것은 이 악마의 세계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거대한 변화의 세계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변화의 세계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생각이 달라져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생각을 어떻게 달라지게 할까요? 이천육백년전에 이사야가 환상가운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바라보고 그는 마음에 한없는 충격을 받고 위대한 변화를 입을수가 있었습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어린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도다"고 이사야는 외쳤습니다. 이사야는 죄악과 질병 저주와 절망과 죽음에 찌들어진 인생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를 청산해주는 장면을 보고 너무 감격해서 그는 외쳤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우리 마음에 변화를 바딕 위해서는 이사야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마음속에 격렬한 변화르 체험한 것처럼 십자가밑에서 여러분과 내 마음의 자세가 바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밑에서 마음이 바뀌어지지 아니하면 아무곳에서도 바뀌어질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낡은 사람을 그 몸에 안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낡은 사람을 청산하고 낡은 마음과 생각을 청산하고 새사람 새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우리가 새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린 십자가를 바라보고 죄악의 대속을 통해서 용서와 의를 얻은 마음을 가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존잽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를 물먹듯이 먹고 마셔서 누구든지 죄인이란 그 자격지심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와서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청산할뿐 아니라 태어날때부터 가져온 원죄까지 십자가에서 다 청산한 것을 보고 마음에 변화를 받게 됩니다.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마음에 위대한 변화를 십자가를 통해서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니고는 우리 죄인이라는 그 마음에 고통에서 피할길은 전혀없는 것입니다. 우린 십자가밑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을 얻게될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처참하게 찢어지고 피를 흘렸었습니다. 모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과거를 심판아래서 다 청산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부어진바 되었으므로 이제는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그곳에 나타내 준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제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두려움없이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마음에 변화를 가질수 있습니다. 예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님과 우리는 원수되어 있습니다. 분리돼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서비로서 용서받고 사랑받는 존재란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이여 성령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린 비로서 질병의 대속을 통한 치료의 확신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연약과 잘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것을 알기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볼 때 비로서 내병과 내연약을 예수님이 짊어지셨으므로 나는 이제 연약과 병을 다스릴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야 우리가 병과 연약을 지배할수 있다는 어떠한 보장도 얻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구주가 되셨으므로 예수께서 짊어지고 가신 것 내가 왜 또다시 짊어지고 갈 필요가 있는가? 그러므로 질병과 연약이 다가오면 우리느 단호하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명령할수 있는 자신을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한 저주에서 해방의 확신도 십자가밑에서 얻을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야훼께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개인을 위한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저주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피투성이가 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한 이 저주가 우리를 떠나지 않던 삶에서 이젠 예수를 통해서 저주에서 해방되어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축복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를 따를 것이라는 그런 확신은 십자가밑에서만이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나는 비로서 저주에서 해방을 얻었구나 하는 긍정적이고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의 자세를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비로서 내 자신조 죽더라도 영생을 얻고 부활의 영광을 얻을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아니하고는 내 자신속에 영생과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어떠한 신념도 얻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내마음의 변화는 십자가 밑에서만이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대속을 통해서 비로서 나의 생각이 달라지고 내 마음에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한 의미에서 회개인 것입니다. 이 변화된 마음에 천국이 와서 깃들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지 아니하고 종교적으로 의식적으로 교회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여러분의 생애속에 천국의 역사는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마음에 변화를 얻은데 보태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새마음을 얻어야 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 계속 말씀을 일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이와같은 마음의 바탕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면 여러분과 나는 비로서 인생에 왕노릇하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지배권을 누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마음의 변화는 계속된 과정이란 것을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마음의 변화는 일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은 이것은 계속적으로 변화속에서 장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번 교회와서 은혜받고 십자가로서 마음에 변화 얻었다고 해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계속 변화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흙을 던집니다. 진흙을 던집니다. 의심을 던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우리는 매일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묵상하고 우리 마음에 변화를 계속 안하면 안됩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예수여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죄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나는 사랑받고 있으며 성령이 나와 같이 계십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연약과 질병에서 벗어났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저주에서 해방을 얻었습니다. 십자가가 있기에 나는 부활하고 영생을 얻어 천국 들어갑니다. 주님께서 이 오중복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매일아침 저는 이것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 전체가 완전히 변화된 마음의 바탕에 굳어지고 이 속에 자라가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여러분 마음에 변환느 또다시 세속에서 짓밟혀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말씀의 공부를 통한 영적생명과 건강을 유지해야 돕니다. 여러분 성경말씀이란 주일에 한번와서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어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아무리 해도 적어도 하루에 한번이상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내 영혼이 지속적으로 강건하고 생명으로 넘치고 변화속에 계속할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육신의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손으로 잡는 감감세계속에 살기 때문에 감각은 부정적인 홍수를 몰아쳐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현재 살아있는 대화의 마음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멀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도 매일 만나고 서로 대화하면 오해가 사라지고 사랑하고 친해지게 되지만은 사람도 대화가 끊어지면은 오해가 들어오고 서로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옛말에도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형제보다는 이웃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친밀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깊은 신앙의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마음에 변화가 늘 계속될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적어도 하루에 한시간이상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는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가 깨어서 한시간도 나와함께 기도하지 못하느냐? 시험에 들지않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의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내안에 내가 하나님안에 있는 그 감격속에 살려면은 적어도 한시간이상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번 일본가서 일본 목사님들의 앙케이트를 조사해보니깐 일본 목사들은 평균 하루에 사십분을 기도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럼 평신도들은 얼마나 기도하는지 그건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주의 종들이 하루에 사십분 기도해 가지고서는 절대로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가 없습니다. 평신도라도 하루에 적어도 한시간 이상씩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와 기도는 마음의 거울을 닦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마음이 거울이라면 끊임없이 자꾸 마귀가 진흙을 던져서 거울이 엉망이 돼 버립니다. 이것을 회개로서 닦고 기도로서 정하게해서 마음이 십자가의 오중복음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환하게 비춰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깊은 기도의 생활을 반드시 해야 마음의 변화를 계속할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성령충만을 언제나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충만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쫓아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면 언제나 성령충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 무엇 때문에 하냐그러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쓸데없으면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었습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순절날에 백이십문도가 모두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모두 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쫓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혀는 적은 것이나 온 몸을 다스린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방언으로 말하면 온몸 전체가 성령의 지배하에 들어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방언기도를 많이 하므로 늘 성령충만을 유지하고 성령이 늘 충만할 때 마음에 확신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쓸데없는 은사는 절대로 주는법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제 변화된 마음이 나타내는 위대한 힘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마음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변화를 받고 그 변화를 우리가 계속하고 있으면 그 결과로 우리 마음속에 변화된 꿈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 대한 변화된 이미지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옛날에 우리 자신을 볼 때 열등의식으로 꽉 들어차고 좌절감, 패배의식이 만드는 부정적이고 무력한 자아의 모습을 가지고 살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 자기 마음속에 자기가 자기를 보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깥의 형상이 어떻다고 할지라도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이미지를 통해서 자기 영상을 통해서 행동을 합니다. 열등의식에 꽉 들어찬 사람은 언제나 비굴한 행동을 합니다. 생각도 열등하게 하고 말도 열등의식에 꽉 들어찬 말을 하고 반항하고 오해하고 투쟁적이 되는 것입니다. 좌절감에 빠지 사람은 모든 것은 다 나는 못한다, 할수없다, 안된다 부정적이 되어서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패배의식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일하기 전에 벌써 실패자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자기를 바라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 마음에 변화를 받으면 이제 나는 용서받은 자아,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아, 치료받은 자아, 축복받은 자아, 영원한 천국에 주소를 준 자아,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함을 얻은 자아라는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한 신념이 생기면 이러한 사람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생활태도를 가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아에 대한 이미지만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전반에 대한 꿈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확신에 차며 창조적이고 승리적인 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왜 꿈이 중요하냐 하면 여러분 꿈은 믿음을 산출한 어머니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꿈이 비로서 여러분 마음속에 믿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요, 꿈을 안꾸는 사람은 믿음도 가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십자가밑에서 소망을 얻고 소망은 꿈을 꾸게하고 꿈은 믿음을 산출하고 믿음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믿음을 우리 마음속에 얻는 길은 변화된 마음에 가져오는 변화된 자기의 이미지와 그리고 생활전반에 대한 변화된 꿈을 통해서 위대한 믿음이 산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산출되면 그 믿음을 통해서 이제는 변화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에 여러분 운명과 환경은 우리 마음속에 온 믿음과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믿음과 말씀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은 창조와 변화의 원천적인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했으니 빛이 생겼죠, 궁창이 생겨나라하니 궁창이 생겨나고 늪이 육지가 드러나고 열매맺는 풀과 나무가 생겨나라니 그대로 되었었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니 해와달과 별들이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공중에 새들이 나르고 물고기가 물에 가득차라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곤충이 생기고 짐승이 생기라니 그대로 되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만물은 말씀으로 지었지만 사람만은 말씀으로 짓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말할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동물가운데 아무리 지성이 발달되어 인간의 가차이 따라온다는 침팬지도 말은 할줄 모릅니다. 말이란 창조할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천사들이 말하고 인간이 말합니다. 말한다는 것은 창조하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면 창조도 지배력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었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변화를 받아서 변화된 자기 이미지와 변화된 꿈을 가지고서 믿음의 말씀을 함으로 우리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가복음 11장에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누구든지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그것이 이룰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변화받은 마음에 변화받은 믿음을 가지고서 입술로서 강하게 믿음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나가서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과 나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마가복음 3장 1절로 2절에 보더라도 "혀는 적은 것이로되 우리 온 몸을 억응한다고"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로서 여러분의 인격전체를 죄우하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고 말하면 여러분 인격 전체가 못나집니다. 나는 승리한다고 말하면 여러분 인격전체가 승리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자라고 계속 말하면 여로분 전체가 실패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입술에 말로서 우리 묶인바 되고 입술에 말로서 사로잡힌바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살고 죽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저를 사용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가고 성경은 말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 입술의 말을 필요없이 부정적인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인생을 수렁에 집어넣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것이요, 또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성경은 말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으로서 매고 풉니까? 내가 어느 자매님 한분 보니까 기도하면서 혼자서 뭐를 자꾸 묶으고 풀고 그래요. 기도하면서 자꾸 묶고 자꾸 풀고 그래서 자매님 뭐한다 그럽니까? 아이 목사님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 했는데 하나님이 무슨 줄도 안주고 새끼도 안주었기 때문에 나는 믿음으로 묶으고 믿음으로 푼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묶으고 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묶으고 푸는 것은 말씀으로 묶으고 풀으라는 것입니다. 땅에서 믿음의 말씀으로 묶어 놓으면 하늘에서 묶이고 믿음의 말씀으로 풀어놓으면 하늘에서 풀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말씀의 선언은 땅에서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기 때문에 위대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말씀을 시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말한번 했다고 해서 변호가 안온다고 염려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반복해서 입술에 믿음의 말씀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은 위대한 창조의 능력이 되어서 폭발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에서 "사람의 마음은 그 병을 능히 이기거니와 심령이 상하면 누가 저를 일으키겠냐"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이 믿음으로 꽉 들어차면 육신의 병같은건 능히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그러나 심령이 상해버리면 그를 도와줄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지킬만한 것보다 네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죽는 것이 이 마음의 믿음에서 쏫아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운명과 황경을 지배합니다. 마음에 주어진 희망 십자가를 통한 새로운 꿈과 믿음과 언어는 변화 무쌍한 환경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하나님은 변화되지 않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처럼 이 마음속에 십자가밑에서 희망을 가지고 변화된 마음으로 꿈을 꾸고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말씀을 시인하며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나가는 이러한 사람들을 주님께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세상에 올 때 믿는자를 보겠느냐고 탄식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운명론자가 되고 환경에 지배되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날줄 모르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린 오늘 이시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서 여러분과 나의 과거를 다 청산해버리고 우리의 잘못된 생각 잘못된 모든 마음의 바탕을 씻어버리고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입술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고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을 다스리며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이 죽어가는 세대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나가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의 환경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화되지 않았었습니다. 죄가 있고 질병이 있고 저주가 있고 절망이 있고 죽음이 있고 마귀가 있고 귀신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데 우리의 마음은 아담 하와 이후로 완전히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 마음의 변화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십자가밑에서 회개하는 도리밖에 없사옵나이다. 죄를 회개하고 마음의 생각의 바탕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십자가 아니고 누가 마음을 변화시킬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 믿는다고 종교적으로 왔다갔다만 하지말고 도와주시옵시고 십자가밑에서 주님의 오중복음을 통해서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게 도와주시옵소서. 항상 그 변화를 유지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지속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성령이 충만해서 그 변화된 마음에서 변화된 희망과 꿈과 믿음으로 창조적인 입술의 시인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할수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믿음을 통해서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키며 창조하고 개척하며 나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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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마음의 변화
by 삶의언어 posted Nov 04, 2024 Views 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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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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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8-06-12 |
오늘의 성구 | 에베소서 3장 20절로 21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BxNt_EFJjpM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