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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크리스마스 때 오신 그 사람

by 삶의언어 posted Dec 25, 2023 Views 1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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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절기
예배드린 날 2005-12-25
오늘의 성구 이사야 32장 1절로 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PzzWg5Z5bSc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이사야 32장 1∼4절

 

생수와 그늘을 공급하시는 예수님 의지해야
광풍 잠재우고 심판의 폭우 막아주시는 예수
구주로 모실때 영혼육의 강건함과 풍성한 생명 얻어


 크리스마스 때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크리스마스에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확고히 가지면 우리의 생애속에 놀라운 은총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지식이 예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바울 선생은 그 당시 유대 종교의 율법에 통달했고 헬라의 철학에 일가견이 있었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귀중하여 세상 모든 것은 분토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로 9절 말씀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고백하는 바울의 심정을 기억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사막에서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광풍을 만나 모래산이 순식간에 동서남북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련한 여행자라면 사막을 여행할때 높은 모래산을 지표로 삼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광풍이 불면 아무리 높은 모래산일지라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지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광풍의 위력이 그만큼 강합니다. 그런 사막의 광풍을 만나면 사람도 짐승도 순식간에 매몰되어 버리고 구출 가능성 또한 희박해집니다. 얼마전 미국에 허리케인이 불어와서 뉴올리언스라는 유서 깊은 도시 하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허리케인이 거대한 도시 전체를 삼켜 버리고 만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와 같은 광풍이 인생에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죄악의 강풍이 불어오면 죄악이 인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공산주의라는 광풍이 불어와서 국민들의 먹을 권리, 입을 권리, 치료받을 권리, 정치적인 자유와 권리도 빼앗아 버렸습니다. 세속의 광풍도 끊임없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문화, 퇴폐적인 세속 문화가 오늘날 모든 사람의 생활 가까이에 광풍처럼 불어오고 있습니다. 질병의 광풍 또한 거셉니다. 신종질병으로 알려진 조류독감은 과학자들의 조사결과 과거에 이미 존재했던 질병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가난과 저주의 광풍이 있습니다. 저주와 가난의 광풍은 이 지구상을 휘돌고 있으며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영양실조에 걸려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역사 이후로 이 가난의 광풍을 잠재워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마귀의 흑암과 사망의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마귀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자랑의 광풍의 노예가 되어 탐욕을 섬기고 탐욕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의 광풍을 피하지 못하고 다 이 세상을 떠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악의 광풍, 세속의 광풍, 질병의 광풍, 가난과 저주의 광풍, 마귀의 흑암과 사망의 광풍에 휩쓸린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 1장 27절에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현대인은 두려움과 재앙과 근심과 슬픔의 광풍에 휩쓸려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 광풍을 잠재울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몸 찢고 피흘리심으로 광풍을 잠재워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사야 53장 4절로 6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로 생긴 이 거대한 광풍을 예수님께서 다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잠재워 버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가 우리를 구출하여 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5편 11절에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광풍이 아무리 몰아쳐와도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로 우리가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를 들여다보면 언제나 그리스도의 복음운동이 사회개혁과 사회부흥의 원동력과 밑거름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제적십자사, 국제기아대책본부, 월드미션, YMCA, YWCA 등 수많은 단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운동에서 출발했습니다. 또한 유수한 세계 대학 대부분이 미션스쿨에서 출발했습니다. 조지 폭스의 구령운동이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사회운동이 되었고 그 영향으로 노예해방운동이 일어났으며 절제운동, 평화운동, 구호사업이 일어났습니다. 조지 폭스는 이러한 업적으로 1947년에 노벨 평화상을 탄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럽사회의 부흥도 역시 기독교 복음운동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독일사회의 부흥은 진젠도르프 백작을 중심으로 한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서 30년 동안 종교분쟁으로 혼란했던 독일사회에 놀라운 정화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불어오는 죄악과 세속, 질병과 가난, 저주와 사망의 광풍은 예수님만이 십자가에서 잠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품만이 이 모든 광풍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광풍을 피하는 피난처가 되시기 위해서 그 날개를 활짝 펴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 품에 오라고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2. 그 사람은 폭우를 가리는 곳

 

 폭우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는 것입니다. 쏟아지는 폭우를 우산으로 가리는데 한계가 있듯이 인간의 선행과 고행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지 못합니다. 인간의 종교나 인간의 수행과 도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야훼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듯이 아무리 사람보기에 근사하게 보여도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 중심을 들여다보고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로 12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시편 1편 5절에도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행위와 노력으로 마음에 평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행하므로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불교는 참선이나 선행, 고행을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교 역시 매일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매년 한달동안 금식하며 일생의 한번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힌두교도 극심한 고행을 통한 구원을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행위와 노력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인간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노력이나 고행을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악과 불의를 다 가슴에 품으시고 십자가위에서 심판의 폭우를 대신 맞으시며 대속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들어오면 폭우로부터 안전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9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4장 10절에 “야훼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야훼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뿐 아니라 말세에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이 열렬한 불에 녹아지는 마지막때의 심판이 임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다 변화되어 공중에 올라가 주를 맞이하고 난 이후로 7년 환난이 이 땅을 폭풍우같이 휩쓸 것입니다. 그때에 모든 사람의 지은 죄가 다 드러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이사야 13장 9절로 11절에 “보라 야훼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7절에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하고 있고, 10절 말씀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심판은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를 보호할수 있다고 생각해도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지식으로는 폭우와 같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결단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밑에 나와야만 이 폭우를 피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모시고 살다가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빛들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예수를 믿지않는 사람들은 죄악을 품에 품고 죄악의 썩어짐의 부패로 말미암아 마귀의 종이 되어 있다가 육신의 장막집 벗어지면 탐욕의 근원인 마귀와 함께 영원한 어둠으로 내어 쫓기는 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심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영광으로, 그리스도 없이 죄악으로 부패하고 썩어진 삶을 산 사람은 영원한 지옥의 심판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래에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심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구원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그 사람은 마른 땅의 냇물

 

 물은 동식물의 생명줄입니다. 물이 사라지면 땅은 황폐한 사막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가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고대문명의 발현 또한 그러합니다. 중국의 황하유역, 인도의 인더스 간디스 강 유역, 메소포타미아 즉 오늘날 이란, 이라크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에서 고대 인류문명이 시작되고 발달되어 왔습니다. 서울의 성장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이룩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온 그분은 마른땅에 냇물같다고 말합니다. 냇물이 없으면 사막이 되어 버리듯이 사람의 가슴속에도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시면 사막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곳에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소망도 자라지 않습니다. 사랑도 자라지 않습니다. 의가 사라집니다. 평안이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세상 쾌락의 웅덩이를 파서 그것을 저장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터진 웅덩이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만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9절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야훼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생수가 흐르지 아니하면 마음이 황무지가 되고 그것이 마음에 고통과 패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생명수가 없으므로 마음이 황무지가 되고 그 결과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급하며 쾌락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생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면 우리 마음속에 모든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살아나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살아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가 흐를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 12절에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야훼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 가운데 물이 없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나뭇가지를 꺾어 쓴물에 던져 달게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샘 열둘이 있고 종려나무 70주가 있는 엘림동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엘림은 오아시스입니다. 오아시스가 있으니까 사막 가운데라도 생수가 넘쳐나고 종려나무 70주가 있고 온갖 과일과 동식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예수님이 오아시스 이십니다. 우리의 엘림동산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면 생수가 넘쳐나기 때문에 어떠한 사막도 오아시스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아시스를 갈망하는 모든이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네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 예수님 그가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것입니다. 죄악도 세속도 질병도 저주도 죽음도 다 생수의 근원 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시면 그것이 바로 승리의 삶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4. 그 사람은 곤비한 땅의 큰 바위 그늘

 

 뙤약볕 아래 광야에서 지친 발걸음을 끌고 가는 탈진한 나그네에게는 큰 바위 그늘 밑이 생명과 소생의 피난처가 됩니다. 큰 바위 그늘이 나타나면 그는 그곳에 피난처를 얻고 휴식을 얻고 생기를 찾을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광야를 걷는 나그네 신세입니다.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라고 말합니다. 잠시 있는 것 같으나 곧 시들어지고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이 세상에 전쟁과 전쟁 소문이 끝이 없습니다. 인간들은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과 수고를 해왔습니다. 1912년 제네바 회의에서 세계 여러나라 대표들이 모여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쟁영구 종식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선언을 한지 채 2년도 지나기 전인 1914년 7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므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4년에 걸친 전쟁으로 군인 1000만명이 죽고 1100만명이 부상을 입는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종전후인 1919년 1월 전성국의 27개국 대표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강화회의를 열었습니다. 국제연맹을 창설하여 스위스 제네바에 그 본부를 두고 이제부터 모든 국가간의 분쟁과 문제들은 이곳에서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부터 1939년까지 19년동안 4568회나 평화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1939년 일어난 2차세계대전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땅의 삶은 곤비한 삶입니다. 끝없는 싸움과 분쟁으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 분쟁과 싸움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그는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바위 그늘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피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의지하면 주께서 우리의 바위그늘이 되십니다. 큰 바위 그늘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피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고 이사야 40장 27절로 31절에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야훼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곤비한 땅에서 야훼 하나님을 앙망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면 새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국경을 접한 상태에서 계속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입니다. 이 두 나라는 1899년에 국경분쟁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양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랑만이 양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전쟁과 증오는 후손들에게 살상을 유산을 물러줄 뿐”이라고 하며 국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국민들은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용 무기들을 녹여 양국의 국경인 안데스산맥에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우고 이런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후로 두 나라는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종교지도자들의 충고를 듣고 예수님의 바위 그늘에 들어가 국가분쟁의 고통이 사라지고 평화가 임한 것입니다. 끝없는 분쟁, 고통, 괴로움, 곤비한 이 땅에 우리가 쉴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바위 그늘밖에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오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사막의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마른땅에 냇물, 곤비한 땅의 큰 바위 그늘같이 되어서 우리를 향하여 두 손을 활짝펴고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막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어주심을 감사합니다. 폭우를 가리우며 마른땅에 냇물이 되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 되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고 넘치게 얻을 수 있고 영원한 천국을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축복이 모든 사람에게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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