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새출발"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한 인생이 새인간이 되어서 새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좀처럼 이 세상에 살면서 절망에 처했다가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그러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이 성경말씀 가운데 보면 처절하게 버림받은 한 인간이 새출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 거지 바디메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그 아버지 거지 디메오의 집에서 태어났었습니다. 거지를 아버지로 하고 태어난 것도 원통한데 태어날 때부터 장님으로 태어났었어요. 그래서 그는 천지를 보지 못하고 광명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은 동냥해서 먹고 사는 것밖에 배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뼈가 굵어져서 독립을 하게되자 여리고 성벽 밖에 나와서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그는 구걸하는 것을 그의 생업으로 삼고 살게된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나오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푼 적선 주십시오. 한푼 적선을 주십시오 하고서 그들은 구걸하고 먹고사는 고달픈 인생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그의 귀에 오고가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병인의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을 주고계신이 그 예수님께서는 문둥병도 개이치 아니하시사 고쳐주시고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아니 하신다. 이 말씀을 거듭거듭 듣자 그 마음속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뜨거운 심정이 생겼었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그 인생을 새출발할수 있다는 기대가 그 마음속에 살아났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그의 사업이 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이 여리고 에서 나오는데 뭐 돈 구걸하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번쩍 생각이 난 것은 이 웬일인가? 평상시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안나오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리고성을 나가는가? 그래서 한사람을 잡고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러니 그사람은 이 사람아! 잠잠 하라.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구걸하던 깡통도 내어 던져 버리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어나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보아 주시옵소서. 뭐 천방지축으로 뛰면서 고함을 쳤습니다. 사람들마다 야 이 녀석아 시끄럽다. 장님 거지가 무슨 잔소리냐! 잠잠해라! 그의 입을 막을려고 했지만은 그는 더욱 더욱 고함을 쳐서 부르짖어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고함 쳤습니다. 얼마 있지 않다가 예수님께서 가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뛰어 일어나서 거지의 옷을 던져 버리고 거지 깡통도 던져 버리고 그는 예수님을 찾아나가서 그 앞에 섰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꼬?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자 즉시로 눈을 떠서 광명을 바라보고 산천초목을 바라보게 되고 그는 다시 거지의 깡통을 도로 찾으러 들어가지 아니하고 거지 의복을 도로 입을려고 돌아가지 아니하고 그 길로 예수를 따라서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해서 나갔다는 기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과 나에게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여러분과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 거지로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 영이 죽어서 에덴에서 쫓겨나고 난 다음에 그는 이 우주에서 장님 거지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이 죽어서 이제는 영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도 그 아들 예수님도 천국도 그는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말았었습니다.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나서 광야 같은 인생에 가시와 엉겅퀴를 밟으며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그러한 처지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벌써 아담의 후예로 태어나서 영이 죽어서 영적인 장님이 되고 우리의 생활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수밖에 없는 존재적인 거지가 되어서 태어났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과학도 발달되고 문화도 발달되고 생활도 향상되어서 우리다 잘입고 잘먹고 잘사는데 왜 거지냐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요한계시록 3장 16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것과 네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못하는도다" 우리는 진실로 죄의 거지 옷을 걸쳐 입고 이 우주에서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잃어버린 버림받은 우주의 고아가 되어서 먼지와 티끌 속에 살다가 먼지와 티끌로 돌아가는 비극적인 장님 거지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이 이대로 내버려두면 한사람도 남지 않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했었습니다. 너희 *를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인생으로 태어난 사람 치고 영적으로 장님 안된 사람이 없고 영원한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거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세상의 여리고 길거리에 동냥하고 살다가 사라져 버려야 될까요? 우리의 운명은 여기에서 무릅을 꿇어야만 합니까?
여기에 두 번째 우리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거지 바디메오는 비록 그가 여리고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살 지만은 믿음의 말씀을 들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하는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 이 세상에 살면서 거지 바디메오가 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들도 듣고있고 지금도 여러분 듣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야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지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디메오가 미리 복음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할 때 그 기회를 포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요번 스리랑카에 갔는데 스리랑카에서 일주일 동안은 참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여러분 서남아시아는 스리랑카 인도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할 것 없이 참못삽니다. 아마 여러분 못가본 사람은 얼마나 못사는지 모를 겁니다. 스리랑카도 역시 한가집니다. 스리랑카에 국민 대다수가 신발을 신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맨발벗고 삽니다. 옷이란 것은 뭐 형편없구. 한 가정이 한 달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평균으로 도시생활에서 만오천원을 가지고 삽니다. 만오천원 가지고서 다섯에서 열이 넘는 식구가 살자니깐 여러분 거기에 피복비 빼고 의료비 빼고 뭐 학비 그런 것 조달하고 나면 뭘 먹고삽니까? 그것도 잘사는 사람을 중심으로 친 것이 한 가정에 한 달에 만오천원 수입입니다. 그 이외에 뭐 솔직한 말로 have no입니다. 그런데 가니깐 거기에 몸이 뚱뚱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어요. 왜냐하면 다 못 먹어서 영양실조가 돼서. 나는 거기에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고는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낀 것은 스리랑카는 어떤 나라냐? 국민의 95%가 불교신잡니다. 그리고 불교가 국교고 세계 불교 총본부가 스리랑카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여태까지 믿어온 그 불교가 오늘날 그들에게 헐벗고 굶주리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세상 사람에게 쓰레기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존재밖에 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목이 터져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음을 가지고야 거지 바디메오같은 처지에서 살아나갈수있지 그들이 과거에 믿었던 불교가 오늘날 그들의 현실적인 처참한 생활로 만들어 놓고 말은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도 복음을 증거해 주지 아니하면 누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다행입니다. 우리 한국은 처처에 방방곡곡에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모두 다 예수의 복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디메오가 예수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결정적인 때가 왔습니다. 그의 앞을 예수님이 지나가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에게도 예수에 대한 소문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의 창문을 두드릴 결정적인 기회가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교회 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혹은 병들었을 때 혹은 낭패와 실망을 당하였을 때 혹은 고난에 처했었을 때 결정적으로 예수께서 나를 찾아와서 "볼지어다 문밖에 서서 내가 두드리느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 결정적인 때를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늘이야말로 예수께서 나를 찾으신다는 이러한 부르심이 마음속에 다가올 때 그때 바디메오와 같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지 깡통도 던져버리고 일어나서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부르짖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찾으실 때 그때 결정적인 순간에 주를 부르짖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라도 여러분의 곁에 예수께서 지나가고 계십니다. 이와같은때 바디메오와 같이 부르짖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바디메오가 부르짖을 때 시끄럽다 이 거지 장님아 잠잠 하라고 했지 그러나 그는 그럴수록 혼신의 힘을 다하여 더 부르짖은 것처럼 오늘날 여러분과 내가 예수님을 만날려고하면 마귀는 와서 여러분과 나에게 협박 공갈을 합니다. 너희 가문에 없는 예수를 믿겠느냐? 너가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을 하면은 친구들이 비웃을 것이다. 너희 가정에서 쫓겨날 것이다. 너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바보 천치취급을 받을 것이다. 여러 가지 마귀의 훼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극복해버리고 여러분께서 주를 부를 때 주님은 가는 발걸음을 멈추시고 저 사람을 내게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르짖지 않는 사람은 통과해 버립니다.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찾지 않을 때 예수님은 그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를 때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말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곁을 예수님께서 아무리 지나가신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찾아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셋째로 이 바디매오에게 가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은 사람들이 가서 안심하라! 주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할 때 그는 그 자리에서 거지 깡통을 버리고 거지 옷을 벗어서 내어 던져버렸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는 거지는 특별한 거지 옷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허락해서 그 거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동냥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나 동냥을 못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거지 옷은 자기의 직장이요 자기의 밥줄입니다. 이 거지 옷을 벗어버리고 나면은 동냥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께서 오라고 한다고 말하니깐 거지 옷을 벗어서 그냥 내어 팽개쳐 버리고 주님을 향하여 줄달음질 쳐 간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주님께 나아갈 때 여러분과 나도 벗어 던져 버릴 것이 있습니다. 죄악의 넝마 옷을 벗어 던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는 천국을 못들일수도없고 주님을 모셔들일 수 없습니다. 회개가 없는 구원이란 첫째 희롱에 불과합니다. 여러분께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교회 아무리 왔다갔다해도 그 거지 넝마 옷을 입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거지의 넝마 옷을 벗어 제껴 던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생애 속에 불의한 삶을 살았습니까?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까?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렇다면 이 불의하고 거짓되고 거룩치 못한 넝마 같은 죄악의 회개해서 던져버리고 예수께로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가 바로 거지 옷을 벗는 방법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러분과 나의 이 죄악의 넝마를 벗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비춰 주실 때 우리는 하나 하나 없이 회개해서 거지 넝마 옷을 내어 던져 버리고 주님께 나가야 됩니다. 또 우리 도덕적인 거지넝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거지 넝마도 있습니다. 자기를 비하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과 숙명에 짓밟힌 거지 옷이 있습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못산다. 나는 저주받았다는 이와같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절망적인 이와 같은 정신적인 거지 넝마 옷도 벗어 내어 던져 버리고 예수께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절망이다. 나는 패배자라는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나와서는 예수님과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속에는 예만 있고 아니오가 있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께 왔다갔다 하면서도 도덕적인 죄악의 거지 넝마를 그대로 입고 정신적으로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의 넝마의 옷을 그대로 집어 입고서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성찬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실 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피를 만나서 예수 안에서 내가 새사람 되는 것을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에 이것을 아무리 먹고 마셔도 내게 아무런 변화가 다가오지 않는 것은 내가 거지 죄악의 넝마 옷을 입고 부정적인 파괴적인 절망적인 정신적인 넝마 옷을 입고서 회개하지 않고 나오니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회개로서 넝마의 옷들을 다 벗어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스리랑카에 가서 첫날 지도자들 실업가들 모인데서 설교를 했는데 한 육백여명이 모였는데 공산당 당수로부터 경찰서장 육군 참모총장으로부터 쟁쟁한 지도자들만 모였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그 사람들에게 세 가지 제안을 했었습니다. 세 가지 넝마를 벗어버리지 않은 이상 *** 올해 삼십육년간 있었단 것도 왁 왁 하고서 고함을 치는데 사백 오십년동안 영국과 화란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었으니 민족 자아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스리랑카라는 한 국민 한 민족의 자아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그저 외국사람 이라면 사족을 못써요. 외국사람이라면 사족을 못써요. 그 사람들 여러분 거기 가면 한국사람들도 옷자락을 잡아서 천당에서 온줄 알아요. 한국서 왔다면. 한국 경남기업이 가서 거기서 크게 건축공사를 하고 있는데 한국사람들은 천당에서 온줄 알고 있는데 나를 만나면 또 우리 붙잡고서 한국에 식모로 좀 가게 해달라. 한국에 이 노동자로 좀 가게 해달라. 사정입니다. 그런 가난한 생활 속에서 오랜 외국 식민지로 붙잡혔기 때문에 주체의식이 사라졌습니다. 나라와 민족 우리 국민 우리 백성 이게 없어요. 말도 스리랑카 말이 있는데 스리랑카 말 다 안 씁니다. 영어를 다 씁니다. 나는 그래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내 나라를 사랑하고 내 민족을 사랑하고 내 역사를 사랑하고 내 언어를 사랑하는 주체의식을 갖지 않는 이상 이 나라는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셨고 여러분 나라를 주시고 언어를 주셨기 때문에 자기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돼야 된다. 그 다음 제가 말한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열등의식에서 일어나야 된다. 뭐 얼마나 열등의식에 부쳤든지 우리 한국 사람도 보면 언제나 우리를 부를 때 그냥 부르지 않고 사람들이 마스터라고 합니다. 주인님 그저 주인님 주인님 마스터 마스터 이건 뭐 완전히 열등의식과 좌절합니다. 우리 나라 상품 우리 나라 제조품은 이거는 못쓴다. 전부 외제가 좋다. 열등의식과 좌절감으로 짓눌리고 그 다음에 절망적인 것이 숙명론자입니다. 불교가 가르치는 숙명론 우리가 못사는 것도 카르마다. 카르마라는 것은 전생에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 업보를 여기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발전할려고 안해요. 절름발이도 카르마다. 업보다. 못사는 것도 카르마 업보다. 병신 되어도 업보다. 거지가 되어도 업보다. 전부 카르맙니다. 뭐 카르마라 하니깐 전생에 잘못한 것 여기에서 갚으는 것이니깐 이제 뭐 우리로서 뭐 할 수가 있냐 숙명이다. 운명론잡니다. 이 운명론자의 옷을 벗어서 던지기 전에는 절대로 그 나라가 일어나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도 살아보자. 한번 일해보자. 하는 그것이 없는 것은 이거 다 전생에 죄를 지어서 지금 업보로 갚는 것이니깐 뭐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의식이 없는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의 의복을 벗어버리고 열등의식을 벗어버리고 숙명을 벗어버리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새로운 자원 예수를 믿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얻게되고 믿음 소망 사랑을 얻게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이와 같은 적극적인 신앙을 얻기 전에는 그 나라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제가 거듭 거듭 그들에게 외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도덕적인 거지 옷을 벗어버리고 정신적인 그러한 거지 옷을 벗어 던져 버려야 예수께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너덜너덜 걸치고서 아무리 주여 주여 부르짖어 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 도덕적인 죄악을 회개하라. 정신적인 부정적인 잘못된 생각을 회개하라. 넝마 옷을 벗어버려라. 그리고 예수께로 나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여기에서 배워야 될 것은 이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께 나와서 섰을 때 내가 네게 무엇해주기를 원하느냐 하니깐 보기를 원하나이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니깐 눈을 번쩍 떠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어두움에서 광명의 세계를 봤다. 바디매오는 장님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직 하늘이 어떻게 생겼으며 산천초목이 어떻게 생긴지 몰랐었습니다. 예수를 만나자 비로서 눈을 떠서 자기를 바라보게 되고 광명을 바라보고 산천초목을 바라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께서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에 주께서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내가 아담과 하와의 후예로 태어난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마귀의 포로와 죽음의 노예된 인간이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로운 세계의 시민이었다는 것을 밝히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왔다갔다 하면서 종교만 바라보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눈을 떠서 내가 새롭게 된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게 되면 여러분 우리는 하나의 종교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 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눈을 떠서 천국이 내 것인 것을 보게되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내 구주가 되시고 성령이 보혜사가 되시고 내가 용서를 받고 영생을 얻고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보게 되는 것이고 그뿐 아니라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죄가 용서받은 것 그리고 채찍에 맞은 공로로 말미암아 영육간에 병이 다 고침을 받고 현재 내 몸에 병이 들어 있어도 실제 내 속에는 이 병이 나은 것을 바라보고 그 지식을 얻어 믿을 수가 있게 되고 그리고 나의 환경에서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나의 생활이 저주와 절망의 회오리바람이 친다고 하더라도 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저주와 절망과 가난에서 해방되었다는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나는 죽음 저 건너편에 영원한 영광이 있는 것을 압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을 철폐하고 영생을 주신 그곳에 내 고향이 있는 것을 내가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와서 예수 앞에서 눈을 뜨고 천지를 바라본 것처럼 여러분과 내가 예수 앞에 나와서 영안을 뜨고 우리의 영적으로 하나님이 예비한 천지를 밝히 바라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김을 받은 것을 바라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눈으로 밝히 보고 이것을 믿고 이것을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일어나서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켜 줄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로부터 시작해서 다시 옛날의 거지 생활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옛날의 그 죄악의 거지넝마를 다시 도로 돌아가서 주워 입지 말고 옛날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잘못된 생각의 넝마를 다시 주워 입고 깡통 차지 말고 이것을 뒤로 영원히 던져 버리고 이제는 예수만 향해서 따라가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다시 여리고 옛길로 돌아가지 않았었습니다. 옛 그 깡통에 옛 그 거지 옷을 주워 입고서 도로 주저앉지 않았었습니다. 그것은 뒤로 영원히 던져 버리고 그는 새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향해서 따라 간 것처럼 여러분과 나도 예수 안에서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죄악의 넝마 절망과 저주의 넝마 질병과 죽음의 넝마를 벗어버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광명한 영안을 열고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알아서 이제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게 없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지나갈지라도 예수 십자가 안에서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밝히 보고 그래서 주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 내모습을 부여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정말 이 세상에서 이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던져주고 도와주고 그 길로 천국까지 우리는 유유히 위대한 해방되고 승리를 얻고 구원받은 사람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한때의 거지 바디매오와 같이 이 세상 여고성 밖에서 구걸하며 사는 우주의 버림받은 고아들이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찾아오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눈을 떠서 새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참석한 우리 성도들 한사람도 남김없이 이 거지옷 벗어버리지 않은 사람 없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의 넝마 질병과 저주와 절망의 넝마들을 다 벗어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사람이 되어서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에 참여할 때 이 넝마들을 하나도 없이 다 벗어버리게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승리와 축복의 사람이 되어 믿습니다로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 보혜사 성령이시여 넝마를 벗어 던져 버리고 나오는 사람마다 눈을 밝히 떠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축복과 승리를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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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새출발
by 삶의언어 posted Dec 31, 2023 Views 3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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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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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2-12-05 |
오늘의 성구 | 마가복음 10장 46절로 52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8vXVUjN_guA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