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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삶과 고난

by 삶의언어 posted Jul 06, 2024 Views 13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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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고난
예배드린 날 2007-12-16
오늘의 성구 시편 119편 67절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XsYEoh3zcJI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편 67절

고난의 연속 중에 태어난 우리 인생
하나님께 의지하고 도우심 간구할 때
영광스러운 승리의 길 얻을 수 있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생로병사 그 자체가 고난의 연속인 것입니다. 저도 짧은 70년의 삶을 뒤돌아 볼 때 온통 자욱한 고난의 연기 속을 통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군의 한반도 강점의 말기 그 한없는 강제노동과 수탈, 해방 후 5년간의 좌우충돌과 사회 혼란, 1950년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 살아남기 위한 고난의 몸부림이 없었던 때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왜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을까요?

 

 1. 인생과 일반적인 고난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고난을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조상 아담이 타락할 때 인류에게 삼대재앙을 유산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삼대 재앙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은 결과로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며 하나님은 재앙을 선포하셨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영혼이 죽은 것입니다.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고 영이 죽고만 것입니다. 마치 옹달샘에서 끊어진 도랑의 물이 썩어져서 더러운 물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생명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졌으므로 온갖 부패와 부정이 그 영혼을 썩게하고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재앙은 환경 재앙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지구상에 환경재앙이 가득합니다. 환경재앙이 일어나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왔습니다. 세 번째 재앙은 죽음의 재앙입니다. 너는 식물을 먹고 고생하고 땀을 흘리며 살다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재앙입니다. 사람은 원래 죽지 않도록 만들어졌는데 죄 때문에 죽게 된 것입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재앙은 모든 인류에게 상속으로 넘겨준 재앙인 것입니다. 어떠한 민족도 어떠한 개인도 이 삼대 재앙에서 벗어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천년 전에 하나님은 인류를 이 재앙에서 벗게 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보내어서 이 재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죽음만이 이 재앙을 철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다 죄를 지었으므로 죽고 살아나지 못하므로 재앙의 희생물이 되지만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친족이 친족의 빚을 대신 물어주는 것처럼 예수님은 인류로 태어나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기고 피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섯시간 동안 십자가에 고난 당하신 후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인류를 삼대 재앙에서 삼중축복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우리 아담 조상으로부터는 삼대 재앙을 물려 받았으나 새 인류의 조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중축복의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영광스런 고난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영광스러운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이 영광스럽다구요? 그렇습니다. 영광스러운 고난이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 알버트 슈바이처 같은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스스로 택한 고난인 것입니다. 타인을 고난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남의 짐을 대신 짊어진 고난은 영광스러운 고난인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 때 자기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되고 삶의 참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이 풍요의 생활속에 사람들이 살면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 없던 좋은 집도 가지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 등을 사용하고 자동차도 타고 다니면서 옛날에 그런 것 없이 살던 때보다 사람들은 더 많이 싸우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살상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많이 소유하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마귀의 철학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인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행복은 나누어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웃과 나누고 행복을 나눌 때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고 기쁨과 행복이 주어진 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5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9살에는 이미 오르가니스트를 할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를 하기 위해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 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30살이 되면서 다시 6년간의 의학과정을 밟고 아프리카 랑바레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유럽을 떠났습니다.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프리카에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그때 받은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우며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다가 1965년 일생을 마쳤습니다. 유럽에서 행복하고 존경받고 유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서 다 버리고 가장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아프리카의 나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남을 섬기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도저히 슈바이처 박사가 마음에 느낀 삶의 의미와 가치와 행복과 기쁨을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인생은 자기 자신을 섬기기 위해서 살므로 행복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남을 섬기는 생활에는 십자가를 걸머지는 고통이 따름과 동시에 십자가 이후에 다가오는 부활의 기쁨과 행복도 같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생에 참 기쁨과 행복이란 고통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괴로움과 함께 짜릿한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남을 섬기는 것,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것, 나의 가진 것을 서로 나눌 때 비로소 내가 왜 사는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안가르쳐 줘도 스스로 깨닫고 삶이 뿌듯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영혼 깊은 곳에 행복과 기쁨의 샘물이 터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영광스러운 고난을 택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특별 고난

 이 세상에는 특별한 고난도 있습니다. 이 특별한 고난은 자아를 깨뜨리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해서 인본주의로 자기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사람 중심, 자기 욕심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언제나 고통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8장 11절에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은 술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포도를 밟아서 그것을 그릇에 잔뜩 담아 놓으면 찌꺼기하고 포도즙하고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 그릇을 옮겨서 부으면 찌꺼기는 밑에 남고 다른데서는 꽤 맑은 포도즙이 모이는 것입니다. 그 포도즙을 또 다른 그릇에 옮기면 또 찌꺼기는 남고 더 맑아지고 이렇게 반복하여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저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면 자꾸 찌꺼기가 남고 나중에는 아주 맑은 맛있는 향기로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모압도 한가지입니다. 모압이라는 나라가 강성한 이스라엘의 이웃국입니다. 그러나 모압은 젊은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가 되어 나가는 전쟁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썩었습니다. 냄새가 나고 찌꺼기가 꽉 들어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깨뜨려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다시 평안을 제하고 포로가 되게 하고 전쟁에 들어가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서 찌꺼기를 제하고 그래서 맛과 향기가 변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자아가 꽉 들어차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는 체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옛날맛이 그대로 남아있고 냄새가 변하지 않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평안을 제하고 고통을 보내어서 찌꺼기를 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고난입니다. 자아를 깨뜨리고 변화를 가지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징계로 자기 생각, 자기 중심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링컨이 어느 한가한 날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링컨은 농부에게 인사를 하려고 다가갔는데 마침 말 엉덩이에 파리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는 파리가 말을 귀찮게 하는 것 같아 파리를 쫓아버리려고 손을 흔들자 그 순간 농부가 말했습니다. “그만 두세요. 그 파리 때문에 이 늙은 말이 그나마 움직이고 있는 것이랍니다” 말이 노쇠하여 그 어떤 일에도 꿈쩍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파리가 여기 저기 날면서 말을 귀찮게 굴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게을러서 움직이지 않는데 파리라도 오면 괴로우니까 꼬리를 흔들고 귀를 흔들고 일어나서 털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삶 가운데 어느 정도의 고난과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찾아오는 고난은 오히려 우리 신앙의 성장을 위한 자극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크고 작은 고난이 연속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크게 사용하려면 더 큰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당히 사용하려면 적당한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 말씀합니다.

 정신과 전문의사 에릭 린드맨 박사가 위기를 당한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병든 사람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또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위기를 당했던 사람들을 전부 조사한 결과, 위기를 당한 사람들의 85%가 결국 위기가 축복이 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고, 가정이 바르게 회복되었고, 또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게 되고, 시간과 물질을 절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기도 하고, 또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 절대로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직 그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내를 배우고 연단을 배우고 소망을 얻을수 있는 것은 고난을 통해야 얻을수 있는 귀한 값진 선물인 것입니다.

 

 4. 특별 고난 때 할 일

 특별한 고난 당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될까요?

 특별한 고난 당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우리 힘으로 이길수 없습니다. 깨어지고 회개하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엎드리면서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고난을 견디게 해주시옵소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5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9절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이 많을 때 건지시는 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우리 고난 당할 때 왜 내가 고난 당하는지를 반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꾸짖어도 반성하지 아니하면 앞길이 캄캄한 것입니다. 부모가 왜 자꾸 꾸짖습니까? 반성하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반성만 하면 사랑을 해주지 왜 꾸짖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 보내시는 걸까요? 우리가 변화되지 않고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꾸짖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당할 때 ‘내가 뭘 잘못했는가’ 돌이켜 생각하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말씀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배우게 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로 18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이 있어야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이후에 영광이라는 짜릿한 행복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헨리 워드 비쳐 목사는 고난에 대해 “고난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슬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진실하게 하며, 불쌍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현명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씨를 백 배, 천 배로 늘리기 위해 쟁기질로 땅을 비옥하게 하듯 고난은 우리에게 더 큰 기쁨과 영적인 결실을 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 좌절과 실의에 빠질 것이 아니라 유익을 생각하며 축복의 기회로 삼아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쳤습니다. 실직한 그녀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출판사마다 원고를 가져갔지만 다 외면 당했습니다. 이 출판사 가도 안되고 저 출판사 가도 안되었습니다. 낙심해서 원고를 버리려고 하다가 네이슨이라는 출판사 사장이 여행을 하는 것을 알고 뛰어가서 기차역에서 기차에 탄 네이슨에게 원고뭉치를 던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원고인데 한 번 읽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네이슨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심심하니까 무심히 원고를 읽기 시작했는데 잠시후에 놀라움으로 원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원고가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원작이었습니다. 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마가렛 미첼이라는 여자가 지은 것인데 이 책은 5만 부 이상 팔렸고 12개 국어로 번역 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화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멋진 원고가 수많은 출판사에서 거부당했습니다. 이 여자는 고난에 사무쳐서 절망적이 되었습니다만 참고 기다리고 낙심하지 않자 그것을 알아주고 출판해준 사람이 있어 일약 유명한 작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도우심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할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는 것입니다.

 고난은 이상한 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전반적인 경험입니다. 고난당할 때 싸울 것은 싸우고, 연단을 받을 것은 받고, 회개하고 깨어질 것은 깨어지고 주님 품에 더 깊이 안기는 것이 승리의 길인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고난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난 당할 때 불평, 원망, 탄식하지 말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게 도와 주시옵시고 오히려 영광스러운 고난, 자원해서 고난 받음으로 말미암아 삶의 의미와 가치도 깨닫고 짜릿한 기쁨과 행복도 느낄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끊임없이 고난 당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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