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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by 삶의언어 posted Aug 28, 2024 Views 3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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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축복
예배드린 날 2007-08-26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6장 11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hQpwEEr_fKA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6장 11절


예수님의 가난함으로 우리가 부요케 돼
주안에서 긍정적 선한 마음 가질 때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한 축복 누려


 돈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 선하게 쓰면 선하게 되고 악하게 쓰면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물질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1. 구약시대 하나님의 사람과 물질

 구약시대 하나님의 사람과 물질에 관한 관계를 알아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에덴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낙원이요, 금은보화가 가득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노아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빈손 이었으면 120년 동안 어떻게 방주를 지었겠습니까? 창세기 6장 3절에 노아는 거대한 방주를 지을 만큼 큰 부자였다고 나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해서 가나안 땅에 왔는데 큰 기근이 들어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서 애굽 땅으로 내려갔지만 설상가상 바로에게 아내도 빼앗기고 인생 가운데 가장 어두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창세기 13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금과 은과 짐승떼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속에 고난은 많았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 정말 큰 부자였습니다. 그 아들 이삭을 장가 보내기 위해서 아람 땅에 종 엘리에셀을 보내 아내를 구하게 했을 때 그 사돈될 집에 엘리에셀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창세기 24장 35절에 “야훼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종의 입으로 직접 사돈될 집에 가서 아브라함은 큰 부자요, 은과 금이 풍부하고 짐승떼도 많고 종들도 많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창세기 26장 12절로 14절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가난하지 않았고 노아도 가난하지 않았고 아브라함도 가난하지 아니했고 이삭은 성경 말씀대로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들이 많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외삼촌 집에 도망을 가서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올 때는 많은 짐승을 거느린 거부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이러므로 구약시대를 통틀어 볼 때 하나님을 섬기고 충성한 주의 백성들이 고난은 많이 당했지만 물질적으로 헐벗고 굶주리고 남에게 구걸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동시대에 살았던 욥도 마귀의 시련을 겪어서 한때 큰 고통을 당했으나 하나님이 다시 배로 축복을 해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빈털터리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족하게 복을 허락해 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물질에 관해서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많은 시련과 고난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헐벗고 굶주리고 벌거벗겨 놓아서 살게 하지는 않습니다.

 

 2. 신약시대 하나님의 사람과 물질

 예수님이 가난한 이유는 우리의 가난을 대신 갚기 위해서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 가난함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나의 가난함을 통해서 너로 부요케 하려고 내가 고생을 했으니 나를 믿는 너희는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난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한 가난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늘 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되므로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독일을 떠나서 아프리카 험한 오지에 들어가서 산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입니다. 선택한 가난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가장 가난한 인도 캘커타의 빈민굴에 들어간 것도 자기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들은 장차 얻을 상을 위해서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과 특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어 던져 버리고 스스로 가난을 택한 것은 칭찬하고 찬양할 일입니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해서 교회에 짐이 되고 나라에 짐이 되고 일가친척에 부담이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분명한 물질관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물질관은 우리가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므로 아담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저주를 받아 쫓겨났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아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이 되었으므로 집에 들어와도 축복이 있고 들에 나가도 축복이 있고 떡 반죽 그릇을 만들어도 축복이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도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조차도 결국에 복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욥은 크게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입었으나 나중에 하나님이 배로 축복해 준 것처럼 고난도 결국에는 우리의 신앙을 높여주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3. 일용할 양식

 그러므로 성경에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사이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준비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일용할 양식이라니까 하루 삼시 세 때 밥만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바로 우리 일용할 양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에게 모든 일에 복을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의 창업주 ‘샌더스’는 6살 때 아버지를 잃고 12살에 어머니마저 재혼하며 그들을 떠난 이후에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65세 때 그는 그동안 어렵게 모았던 모든 재산을 잃고 파산해서 아내도 떠나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들도 죽어서 정신병이 걸렸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있을 동안에 하루는 병원 교회에서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찬송을 따라서 교회에 가서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구원도 받고 정신병에서 놓여남을 받고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있을 곳도 없고 나이가 이제 65살인데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닭고기를 굽는 기술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시험을 해본 결과 11가지 양념으로 닭튀김을 하니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65세에 창업해서 80세에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전 미국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젊은 나이에만 하나님이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65살에 파산해서 정신병이 걸렸어도 재기하여 80살에 억만장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젊으나 늙으나 주님께서 함께 해서 복을 주시고 들에 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생활은 복받는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일류 국가가 된 나라는 과거에 조상들이 잘 믿었던지 지금 잘 믿던지 주를 경외하고 섬기는 나라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하나님을 잘 믿었던 소련이 하나님을 버리고 공산주의를 택하고 난 다음 얼마나 비참하게 망한 사실을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교회 문을 닫으면 하나님은 하늘문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문을 열어 놓으면 하나님은 하늘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 부족함이 없이 축복해 주겠다는 것이지 흥청망청 살게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편 34편 9절로 10절에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낭비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함이 없게 해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되 돈이나 물질을 사랑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으며 히브리서 13장 5절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심히 질투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랑하고 살아야지 돈이나 물질을 사랑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돈이나 물질은 우리가 사용하는 물질에 불과하지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서 우리가 그를 사랑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꾸짖으시고 그 물질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함이 완전히 심령을 점령함으로 돈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게 물질의 유혹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물질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소유주가 아닌 청지기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나누어 주기 위해 물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그를 통해서 사용하시는 이도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이 주셨으면 그 물질을 하나님의 청지기로 우리가 사용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써야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선교헌금을 드리라면 드리고 이웃에 나눠 주라면 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뜻에 따라 물질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리가 잠시 맡아서 청지기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나눠주기 위한 물질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주면 돌아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워 놓은 법칙인 것입니다. 우리가 산을 향하여 고함을 치면 저쪽 산에서 산울림이 울려 오듯이 물질을 주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스스로는 근검 절약 하지만 이웃을 위해서 사용할 때는 듬뿍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존 머레이는 검소한 생활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떤 할머니 한 사람이 존 머레이에게 구제금을 요구하러 갔습니다.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낡아서 학교를 새로 짓는 구제위원회의 위원으로 존 머레이를 찾아 갔을 때 그는 서재에서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촛불 2개를 켜놓고서 글을 읽고 있다가 할머니가 오니까 촛불 하나를 꺼버립니다. 그 할머니는 ‘아이구 이 깍쟁이 봐라. 나 만나서 이야기하는 동안에 촛불 2개 중에 하나를 꺼버리니 이 사람에게 무슨 구제물자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기왕 왔으니 말은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존 머레이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낡아서 새로 짓기 위해서 위원회에서 모금을 하러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존 머레이는 “모금해 드려야죠”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수표를 끄집어 내어서 5만 달러를 적습니다. 깜짝 놀란 할머니가 “아니 어떻게 5만 달러나 주십니까? 내가 들어오니까 촛불 2개를 켰다가 하나를 불어 버리는 양반이 어떻게 5만 달러를 줍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존 머레이는 허허 웃으면서 “책을 읽을 때는 눈이 잘 안보이니까 촛불 2개가 필요하지만 대화할 때는 촛불 하나만 있어도 대화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근검 절약해서 모은 돈을 좋은 일을 위해서 쓴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생활에 근검절약한 사람이 남의 일에도 많이 헌금할 수 있고 도와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흥청망청 다 써버리면 남에게 도와줄 돈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우리는 남과 나누기 위해서 근검절약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삶에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했습니다.

 심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심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못 거둡니다. 내버려 두면 황폐하게 되거나 잡초가 무성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로 9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을 시행하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에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주셔서 모든 일에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되는 이유입니다. “나는 없어요. 나는 안돼요. 나는 빈손 들었어요. 나는 못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항상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난 그 자체는 선한 것이 아닙니다. 가난은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가난은 죄 때문에 온 저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긍정적으로 사는 마음은 선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해서 가난하게 되는 것은 크게 상급을 주시지만 게을러서 가난하고 저주받아 가난한 것은 원치 아니하십니다. 또한 부자라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주님을 모신 청지기 삶에서 물질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이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부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많은 사람에게 직업을 주고 많은 사람의 삶을 도와준다면 부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것을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아서 누리고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새 인류로 만드실 때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시키는 역사를 해주셨습니다. 항상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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