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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구원

by 삶의언어 posted Sep 16, 2024 Views 2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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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믿음/순종
예배드린 날 2005-08-07
오늘의 성구 에베보서 2장 8절로 9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lnRNm2m1j4I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장 8∼9절


인간은 죄에 빠져서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 없어
종교 철학 육신적인 노력으로 구원은 불가능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사후에 영생천국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알면 누구든지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인간은 불멸의 영혼도 없고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천국도 없다’고 합니다. ‘인간 생명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합니다. 또 불가지론자들은 ‘영혼 불멸도, 신도, 천국도, 지옥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종교인들은 영생도 사후의 세계도 믿지만 각각 저들의 종교가 그곳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는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말합니까?

 

 1. 성경이 말하는 인간

 

 인간의 기원은 성경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불멸의 영혼이 육체의 옷을 입고 사는 존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닮아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인 것입니다. 이 불멸의 존재가 흙으로 된 집에 살고 있는 것이 인간의 실상인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 없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큰 죄를 짓고 하나님께 쫓겨 나와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타락하므로 영이 죽고 육체와 혼만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오늘날 감각과 이성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인간의 감각과 이성도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어서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지 아니하고 세상과 육체와 마귀만 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키니라는 작고 아름다운 무인도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섬에는 해마다 거북이들이 모래 속에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가는데, 그러면 뜨거운 모래의 열기로 알이 부화해서 새끼 거북이들이 태어납니다. 그러면 보통 알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이들이 바다로 가는데 어느 해에는 섬의 거북이들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바다로 가야 살 텐데 산으로 가서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조사해 보니 얼마 전에 이 섬에서 실시했던 원폭 실험이 문제였습니다. 실험으로 방사능이 노출돼 온 섬을 덮고 있어서 거북이의 감각기관이 제기능을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끼 거북이들이 바다로 가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이 타락하고 변질되어 오직 육과 혼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오염된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히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마귀는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라 꾀임을 받아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마귀는 스스로 타락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만 구원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2. 구원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음

 

 그런데 구원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요사이 바캉스에 간 많은 사람이 물놀이 갔다가 익사하는 사고가 생기지 않습니까?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있다면 빠져 죽을 리가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못 나오니까 빠져 죽습니다. 저도 한번 물에 빠져서 거의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물을 많이 먹어 호흡할 수 없는 고통은 말로다 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헤엄쳐서 나올 수 있으면 물에 빠져 죽을 리가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의 바다에 빠진 것입니다. 죄악의 바다에 빠져서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죄와 절망, 허무와 무의미, 죽음의 큰 바다에 빠져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오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노력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행위와 노력으로 마음의 평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죄악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행하므로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불교는 참선이나 선행, 고행을 통해서 열반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교 역시 매일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고 매년 한달동안 금식을 하고 일생에 한번 메카로 성지순례를 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극심한 고행을 통한 구원을 주장합니다. 장기적인 단식, 걸식, 불 속으로 뛰어 들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한쪽다리로 서있기, 가시덤불이나 오물 위에 누워 생활하기, 몸에 재를 뒤집어쓰기, 손톱과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기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종교적 행위와 노력으로 무언가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인간은 스스로 죄악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지 못합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철학적인 탐구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인 깊은 사고를 통해서 인간의 죄와 절망, 죽음과 멸망에서 건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2장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말씀한 것처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대승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30년 동안 면벽을 하면서 도를 닦았습니다. ‘면벽했다’는 말은 눕지도 않고 앉은 자세로 참선하며 벽만 바라보고 도를 닦았다는 뜻입니다. 심지어는 잠도 앉아서 잤습니다.
 그의 이런 소문이 외국에까지 퍼졌습니다. 미국의 한 종교철학자는 소문을 듣고 이 스님을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수도 없이 편지를 보내고 연락을 취해 5년 만에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승을 만나면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꼭 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서 통역까지 구한 후 산에 올랐습니다. 드디어 절에 도착해서 스님을 발견했는데, 이 스님이 뒤도 안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죽었고, 나도 죽었소!”
 그리고는 절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철학자는 기가 막혀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아, 인생은 죽는 것이구나’ 하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연구하고 묵상하고 고행하며 깨달은 사실이 “인생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의 삶은 어떻게 합니까? 바로 이것이 인간의 종교가 가진 한계입니다. 죽음 그 너머로 갈 수 없습니다. 고작해야 죽음 이전의 삶의 원리만을 깨달을 뿐입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 일은 모르는 것은 인간 철학의 한계인 것입니다. 죽음 이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다른 종교나 철학은 대답할 수 없는 한계점인 것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의롭다고 하나 더러운 옷 같고 쇠패한 나뭇잎사귀 같습니다. 그러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3.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선물을 받는 데는 자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식하다고 선물 못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은 우리의 자격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는 자가 호의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선물은 믿음으로 감사히 받아 들이는 것이 마땅한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다 선물 아닙니까? 지구와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구를 사람이 만들었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우리가 만들었습니까? 다 만들어진 것 주어진 것을 우리가 받아서 누리고 있으니까 만물이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만물을 다 지어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과학이 발달합니다. 게놈지도가 등장하고 복제양 돌리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생명연장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생명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세포나 유전자가 있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오늘날 복제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이미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세포나 유전자를 사용해서 복제기술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구와 생명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제 아무리 발버둥친다 할지라도 인간의 최대능력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생명을 이용해서 복제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 인간의 과학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도 땅도 세계도 생명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구원까지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예비하고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우리의 죄, 더러움, 질병, 저주, 절망, 죽음을 다 청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 것을 지나가게 한 것도 우리 힘이 아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한 것도 우리 힘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전 것을 청산하고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희망을 얻고 긍정적인 삶을 얻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청산하시고, 모든 더러움을 청산하시고, 질병을 폐하시고, 저주를 속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시므로 이 모든 것을 다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4. 은혜와 믿음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주는 선물을 말합니다. 은혜에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부모님의 은혜로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났지 않습니까? 부모님의 은혜를 대가를 주고 사겠다고 돈을 드리면 부모님이 얼마나 모욕감을 느끼겠습니까? 이렇듯 은혜라는 것은 대가를 지불할 수 없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공짜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은혜는 우리가 자격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로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믿는 사람을 용서하고 의롭다고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주신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나면 성령을 주셔서 아름다운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죄가 너무 많기 때문에 구원 못 받는다고 합니다. 교회는 죄를 씻는 영적인 목욕탕입니다. 교회에서 죄를 씻지, 교회 밖에서 죄를 다 씻고 교회에 나올리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보혈로 씻음 받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그 다음부터 인격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 받아야 구원받는 줄 알고 있는데 구원을 받아야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게 되면 그 마음과 행동에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선해지거나 선행을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행위로 선하게 될 수 없고, 선행 역시 선한 사람이 된 후에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고 아름답게 보이는 행위라 할지라도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모두 헛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구원과 성화, 이 두 가지 모두가 믿음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고서는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과일이 열매를 맺을 때 과일나무를 심자마자 열매 맺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야 과일이 열매를 맺습니다. 먼저 꽃피고 그 다음 작은 열매로써 세월이 흘러가면 자라서 탐스러운 열매가 되는 것처럼 예수 믿고 변화 받는 것도 한가지입니다. 조그맣게 나타나던 성령의 열매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꾸 커지고 자라서 나중에 탐스러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먼저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가 속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 변화된 행동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빨리 열매 맺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멸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좋은 행위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주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토요일날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십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선행을 행해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인간의 선행을 더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말하는 것 같이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세상을 떠나실 때 남긴 마지막 말이 “내가 다 이루었다”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의 원뜻은 ‘단번에 완전히 끝마쳤다’는 뜻입니다. 이미 다 끝났기 때문에 영원히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은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거기에 조금도 보탤 수 없고 뺄 수도 없습니다. 완전히 이룬 것을 우리의 행위로 보태어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열매와 행위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따라오는 것이지 열매와 행위로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믿고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는 선물을 우리가 믿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사밖에 할 것이 더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도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나가면 그로써 우리 구원의 역사는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이 2000년 전에 이미 몸을 찢고 피 흘려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도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티끌만큼도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보탤 수 없습니다. 주님이 완성해 놓으신 구원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감격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구원을 가지고 우리에게 선물로 받으라.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이며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가 할 일은 믿고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세계 제일의 강철왕 카네기는 ‘빚은 다 갚을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영원히 갚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갚을만한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감사와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거룩한 행위는 믿음의 열매이지 믿음의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는 고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지 변화된 삶을 살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나 깨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일어서나 앉으나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입니다. 울어도 못합니다. 힘써도 못합니다. 애써도 안됩니다. 참아도 안됩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값 주고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햇빛도 값 주고 못사는 주제에 공기도 값 주고 숨 쉬지 못하는 주제에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도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값 주고 사려고 합니까? 그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감사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구원을 받아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주시고 천국도 영원히 믿는 자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선물 받아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죄악의 바다에 빠져서 우리 힘으로 발버둥 쳐도 헤엄쳐 나올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종교도 철학도 고행도 우리를 건져 주지 못하고 우리는 헤엄쳐 나올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우리를 건져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이 되시고 우리는 영원히 주님께 신세를 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스스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닌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영원히 주님께 신세지고 주님을 믿고 경배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사는 우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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