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먼저냐 나중이냐’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을 살아 가는데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일들 중에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할 일을 먼저하고 나중할일을 나중할 수 있는 분별력 있는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지만 전후를 가리지 못하고 앞에 할 것 뒤에 하고 뒤에 할 것 앞에 해서 혼돈을 가져오는 사람은 인생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욱 적합한 일입니다. 학생시절에 가장 먼저 할 일은 시간의 춘분을 쪼개어서 공부에 열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인격을 도야하고 실력을 쌓아 그래서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실력에 모자람이 없이 일할 수 있는 이런 자리에 들어가야 되겠는데 학생들이 먼저 할 일과 나중할 일을 혼돈해서 공부해야할 그때에 공부는 하지 아니하고 사회 정치에 참여나 하고 경제, 교육, 문화에 대해서 나와서 이러쿵, 저러쿵 해서 대모나 하고 이렇게 한다면 그들은 전후를 바꾸어서 혼돈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도 망하고 나라도 망치는 일을 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먼저 할 때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삶의 순서를 분명히 올바르게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켜 달라고 오셨을 때도 주님이 기도할 때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할 것을 분명히 분별해서 말씀했습니다. 기도에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 성호의 영광을 먼저 구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 오며 그 다음 나라에 임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라. 먼저 하나님의 영광부터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할 것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사함을 주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여 주시고 악에서 구원하여 줄 것을 간구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는 순서가 있고 기도에도 앞서고 뒤서는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서를 바꿀 때 우리에게 낭패와 실망이 다가오고 수많은 슬픈일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실증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에덴에서 아담이 왜 실패해서 쫓겨났을까요?
인간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만드신 작품 중에 가장 위대한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히 사랑하시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이 사람 발아래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는 아름다운 에덴을 만드시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실과를 나게 하시고 그곳에서 청지기로써 다스리며 살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나고 저주를 받고 사형을 받게 되었나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아는 실과를 두시고 난 다음 모든 열매를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아담과 하와의 생활 중에서 가장 먼저 섬기는 주권자로서의 마음의 못이라는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실과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주권 행위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에는 손대지 마라. 이러므로 너희가 인생을 살 때 하나님이 주권을 먼저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섬기고 믿고 예배하고 순종하고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너희 모든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행할 것 먼저 행하고 나중 행할 것 나중에 행해야 된다는 것을 에덴에서 분명하게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순서를 어기는 날에는 너희가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 아내 꾀임을 받고 하와는 뱀의 꾀임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욕망보다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될 그 선악과로 그만 욕망 때문에 손을 내밀어서 따먹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섬겨야 될 것을 짓밟아 버리고 자기들이 하나님 주권보다 위에 올라 서려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순서를 바꿔 버렸습니다.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에 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고 그 다음 자기의 욕망을 채워야 될 것인데 하나님 주권을 짓밟아 버리고 그 다음 자기 욕망을 앞세워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심판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말했고 그들은 쫓겨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슬픔과 고통과 눈물과 탄식이 다가온 이유는 바로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 해야 될 순서를 바꾸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둘째로, 마지막 아담 예수를 보십시다.
예수님은 이제 전체로 망해서 절망에 처한 사형을 받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인류구원을 위한 기도로써 사십 주 사십 야 금식하고 난 다음에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그 마귀가 또 다가와서 마지막 아담인 예수를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께 와서 사십일을 굶었으니 배가 얼마나 고프겠습니까? 와서 제일 먼저 말한 것이 뭐냐면 “너는 떡을 만들어 먹으라. 돌을 변하여 떡을 만들어 먹으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육체의 배고픔을 먼저 채우는 욕망을 앞세운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기다릴 것 없다. 너희 배가 고프니까 먼저 먹고 난 다음에 그 다음 하나님 말씀을 찾으라.” 떡을 먼저 세우고 하나님 말씀을 뒤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떡보다 말씀을 앞세웠습니다. 순서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떡을 먹기 위해서 말씀을 짓밟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앞세우고 난 다음에 떡은 그 다음에 먹기로 한 것입니다.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먹겠다는 것입니다. 순서를 바꾸지 않으니까 마귀가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또다시 예수님을 그 영혼 심령, 마음을 시험했습니다. 그를 예루살렘교회의 뾰충탑 위에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물결치듯이 예배 보러 오는데 뛰어 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까지 인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명하여 그 손으로 네 발을 받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겠다고 성경에 기록했으니 뛰어 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도 네 명예를 먼저 취하라. 너의 수단과 방법으로써 먼저 명예를 얻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먼저 출발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뾰충 탑에서 뛰어 내리면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상하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고 사뿐히 내리는 것을 보고 박수갈채를 하고 예수 그 발 앞에 엎드리고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명예를 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명예를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서 결정하도록 순종하는 것에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사탄아 물러가라! 내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단호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는 명예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단호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때가 오면 하나님이 명예도 주시겠지만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명예를 먼저 취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높은 산위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게 하는 말이 “이것은 아담이 내게 다 넘겨준 것인데 내게 절하는 사람을 내가 네게 주노라.” 사람들은 천하영광을 얻으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살레만 같은 사람, 나폴레옹 같은 사람, 히틀러 같은 사람, 스탈린 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모두다 천하영광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하다가 망해버린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귀라는 말이 “네가 내게 절하면 천하영광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종으로 왔지 천하영광을 취할 왕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알것과 나중 알 것을 분명히 구분했습니다. 예수님 말하기를 “사탄아, 오직 하나님께만 절하고 그만 경배할 것이다. 물러가라!” 그는 천하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종의 자리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천하영광을 앞세우고 종의 자리를 뒤세우는 순서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말씀보다 떡을 앞세우지 않았고 순종보다 명예를 앞세우지 않았고 하나님의 종의 생활보다 천하영광을 얻는 것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고 하나님의 종의 자리를 지켜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했기 때문에 원수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 속에 틈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점령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활 가운데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 육신의 정욕을 먼저 구하고 안목의 명예 자랑을 먼저 구하고 그리고 이 세상의 자랑인 천하영광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뒤로 제켜 놓으면 마귀는 얼씨구나 좋다고 와서 우리에게 들어와 점령하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마음대로 자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에 순서를 바꾸면 마귀의 시험에 듭니다. 일에 순서를 바꾸지 말아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나는 여러분에게 성경의 예를 들어서 보여 주겠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야훼를 저버리고 아합 왕이 이방신을 섬기는 이세벨을 아내로 취하고 난 다음 이방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가지고 와서 온 전 국민으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야훼의 종들을 잡아서 죽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위대한 종 엘리야는 자기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먼저 섬겼습니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구원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이 바알과 아세라에 무릎을 꿇듯이 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목숨을 걸고서 먼저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호하여 주셔서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시냇물을 마시고 하루에 세 번씩 까마귀를 보내어서 떡과 고기를 물고 와서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그릿시냇물이 마르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말씀하기를 “너는 사르밧에 가서 과부의 집에 가라. 그곳에서 내가 과부를 통해서 삼년 육개월 가뭄이 지날 때까지 내가 너에게 먹을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하며 하나님께서 가뭄을 보내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야가 사르밧의 과부 집에 가니까 영양실조가 되어 시커멓게 말라 뼈만 앙상한 할머니가 밥 달라고 울부짖는 단백질이 부족해서 배가 이렇게 불러진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서 나무를 줍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냐고 물으니까 “하나님의 사람이여, 나는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병에 기름 조금밖에 없습니다. 이것으로써 마지막 떡을 만들어서 과자를 구워 먹고 죽으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하는 말이 “그것은 너희 마음대로 하거니와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너는 가서 먼저 그 과자를 구워서 내게 가져오고 물 한 사발을 가져오라. 그렇게 하면 이 가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 통에서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서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선택하라.”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할 선택의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르밧의 과부는 여러분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내가 배고파 죽을 지경이고 자식도 떡 달라고 야단인데 세상에 고기와 떡을 하루에 삼시 세 때 먹어 가지고서 얼굴에 기름이 철철 흐르는 이 건장한 남자가 이런 고약한 소리가 어디 있냐고 일격에 반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게 사르밧의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인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가서 밥 달라고 울부짖고 몸부림치는 애를 제켜 놓고 그 떡을 구워서 그래서 물 한 방울 피한방울 처럼 구하기 힘든 물을 한사발 구해 가지고서 엘리야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배가 고파서 손가락을 빨며 쳐다보는 그 어린 아이 앞에서 먹다가 반 조각이라도 나눠 줄것이지 반조각도 안 나눠 주고 그 떡 다 먹고 혼자서 그 물 다 마셨습니다. 그 얼마나 사람으로 볼 때 괘씸하기 짝이 없어요? 그러나 여기에서 사르밧 과부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사르밧의 여인은 그 마지막 떡과 마지막 물 한 사발을 엘리야에게 주어서 엘리야가 먹고 마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엘리야는 그 가정에 들어와 거하시매 그 가뭄이 다 지날 때까지 밀가루 통에서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서 기름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더하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똑같은 일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처음 기적을 행하신 가나의 혼인잔치 말입니다. 가난한 신랑, 신부가 있는 힘을 다해서 잔치를 준비했으나 음식이 충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여러분 지혜롭게 행한 것은 일의 순서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잔치를 베풀어서 사람들을 많이 대접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어머님과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불러다가 대접을 했습니다. 먼저 대접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하는 순서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어머니와 예수님과 제자들이 와서 음식이 있을 때 먼저 대접을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잔치 중간에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음식 달라고 아우성이고 포도주를 달라고 아우성인데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께 오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먼저 할 것 먼저 한 이 사람 순서를 바꾸지 않은 이 사람을 위해서 주께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를 만들어서 이 사람들에게 주므로 말미암아 나중 포도주가 처음보다 더 낫다는 칭찬을 받고 잔치를 잘하고 처음 결혼하는 이 가정에 멋진 성공으로 인생에 출발하도록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먼저 할 것을 먼저 하면은 나중할 것은 주님께서 오셔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이고 잔치에 음식도 없는데 예수님을 먼저 대접할 것이 뭐냐. 나중에 다 잔치하고 남거든 적당히 대접하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먼저 할 것을 나중하고 나중할 것을 먼저 했기 때문에 질서가 무너지고 그래서 마가 틈타고 사탄이 틈타고 실패와 낭패가 틈타서 중간에 가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처음 할 것 처음하고 나중할 것 나중할 것을 분별해서 질서를 넣지 않으면 벌써 패망의 씨가 심어집니다. 무질서의 씨가 심어지고 낭패의 씨가 심어져서 얼마 있지 않다가 처음은 잘된 것 같으나 나중에는 낭패와 실망과 처참한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우리가 질문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 일이 하나님의 성호에 영광을 돌리는 일이냐? 이 일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되는 것이냐?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느냐. 이것부터 먼저 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을 묻기 전에 이것이 내게 돈벌이가 잘되겠는가. 이것으로써 내가 출세하겠는가. 이것으로써 내가 부자가 되겠는가. 이것으로써 내가 잘살게 되겠는가. 그것을 묻기 전에 먼저 물을 것 먼저 묻고 나중 물을 것 나중 물어야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이름에 영광이 될 것이냐.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 것이 될 것이냐. 하나님이 뜻에 합당한 일이 될 것이냐. 여기에 우선권을 주고 여기게 그렇다고 그렇게 된다고 말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행하십시오. 손 닿는데로 행하십시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실생활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먼저 모시십시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말했는데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을 중심으로 먼저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의 생활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시간을 먼저 드려야 됩니다. 오늘 날씨가 몹시 덥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과 들로 혹은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도 수없이 유혹을 받아서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온 여러분들은 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중에 처음날인 이날에 주님을 먼저 섬기기 위해서 일주일 즉 첫날을 먼저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시간을 내어서 주님을 먼저 섬기고 난 다음에 그 다음 나의 할 일을 나중에 하면은 나중에 하는 그 일에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여러분이 일어서고 하는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요구하고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나가서 여러분 물질문제입니다. 사람은 여러분 그 물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했습니다. 왜, 천당보다도 물질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영혼도 팔아먹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성경은 정말 이러한 사람보고 어리석다고 탄식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는가라고 탄식하지만 그러나 먼저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현재 내 구복을 채워 주니까 천당은 나중 일이니 집어 치워라. 그리고 물질부터 먼저 구해서 포로가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사람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는 말과 동일한 것입니다. 멸망하는 짐승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만 취하다가 급기야 세상이 끝나고 내 생명이 끝나서 이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영원 무궁토록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떨어지는 이곳을 알고도 그리로 들어가는 인생은 정말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물질도 먼저 순서를 주어서 하나님께 드릴 것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가 취할 것 나중 취하도록 순서를 정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 말3:7~9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물질문제에 관해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 열조 때부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어떻게 돌아갑니까? 십일조 헌물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섬기고 우리를 나중 섬기기 위해서 우리의 수입 중에 10분의 1을 주님께 먼저 드려서 주님을 공경하면 그 다음 주님께서 10분의 9 남은 것에 축복을 해주셔서 이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팔이 짧아 도와주지 못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함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악의 담이 가로막힘이 하나님이 역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물질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그리고 내 먹고 입고 마시고 내 할 일 다하고 난 다음에 나머지 찌꺼기 중에 얼마를 주의 연보 통에 집어 넣고 난 다음에 나는 주님께 할 일을 다했다고 하는 사람은 이 사람은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생애 어느 순간에 그의 물질 생활에 비극적인 타격이 다가옵니다. 그가 현재는 잘된다. 사업이 진행 잘되어 나간다. 나는 부자다. 곧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할지 몰라도 어느 순간에 벌써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패와 낭패와 절망의 씨앗이 심어져서 어느 순간에 가면 이것이 곤두박질치고 모든 것이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현재 입에 달다고 현재 눈앞에 잘된다고 현재 모든 것이 무사하다고 계속해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하는 순서를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수레를 말 앞에 두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말이 수레 앞에 있어야 수레를 끌고 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 앞에 수레를 두면은 말이 그것을 밀고 갈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고 인간을 하나님 앞서서 섬길 때 벌써 낭패의 씨앗을 심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세계가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가 하나님 앞세우지 아니하고 인간을 앞세우고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있어 그래서 세계 문화와 문명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멸망의 씨앗을 심어 놓았습니다. 앞설 것을 뒤세우고 뒤세울 것을 앞세워 놓았기 때문에 세상에 전쟁과 전쟁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다가오고 연병이 있고 혼란이 세계에 다가오고 세계는 이대로 멸망하고 말 것 입니다. 왜, 앞설 것 앞세우고 뒤설 것 뒤세울 순서를 혼돈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을 혼돈하지 말고 올바른 질서 뒤에 서서 믿음으로 힘차게 기도하고 살아나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되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여기 3부예배로 수많은 당신의 백성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와서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들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하는 인생에 질서를 바꾸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낭패의 씨앗을 심어놓고 마귀가 발을 들여 틈을 탈 수 없게 만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먼저 구하여 마귀 틈탈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이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호위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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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먼저냐 나중이냐
by 삶의언어 posted Oct 25, 2024 Views 2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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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하나님/하나님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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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1-08-02 |
오늘의 성구 |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xZ1cBlUeOE8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