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06:00 AM
Korean language education
(Based on Washington)
.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2005

풍랑을 잠재우신 예수님

by 삶의언어 posted May 07, 2024 Views 7 Replies 0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Viewer Up Down Go comment Print
Extra Form
오늘의 주제 그리스도인
예배드린 날 2005-07-31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8장 23절로 3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ss-tgN2nOQM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중략)…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가 쫓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 한대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 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태복음 8장 23∼34절


삶에 풍랑이 온 까닭은 예수님을 주무시게 했기 때문
마음속에 세상 들어오면 세상 주인 된 마귀도 들어와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


 바다의 풍랑이나 육지의 폭풍우는 자연현상입니다. 그러나 자연현상이 아닌 풍랑이나 폭풍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살이 중 다가오는 삶의 풍랑이나 폭풍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우리 삶의 내면을 살펴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은 왜 우리의 삶에 풍랑이나 폭풍우가 다가왔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오늘 우리는 자연현상이 아닌 특이한 풍랑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을 주무시게 한 제자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는 중에 예수님께서 주무셨습니다. 제자들끼리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예수님 홀로 물끄러미 바다를 보고 계시다가 그만 팔을 베개로 하고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시게 된 것은 크나큰 비극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데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들 사이에 조그마한 실개천 하나가 생겼습니다. 실개천을 개의치 않고 손잡고 서로 대화하며 가다가 실개천이 점점 커져서 개울이 되자 팔을 뻗쳐서 손을 잡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개울이 강이 되니까 이제는 손을 잡을 수 없어서 서로 쳐다보면서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강은 나중에 더 넓어져서 바다가 되었고 이제는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서로 고함을 쳐서 대화할 수도 없고 각각 다른 세상으로 나뉘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쾌락의 실개천이 들어오면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 실개천이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주님과 우리의 거리는 구만리장천만큼 멀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놓인 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은 신령한 세계 속에서 하늘나라 일을 이야기하고 깊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는 중에 그만 제자들의 대화가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곧장 예루살렘에 가서 만왕의 왕, 만주로서 등극하게 되면 큰 권세와 영광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상천국의 도래와 함께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가 되면 제자들도 다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누릴 것을 생각하고 세상 쾌락과 영화에 마음이 뺏겨 정신이 없었습니다. 세상적인 교제가 들어오자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간격이 생기고 만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가슴속에 세상에 대한 사랑이 들어오자 예수님과 멀어졌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생각하고 그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 동안에 예수님은 홀로 대화의 상대가 없이 계시다가 주무시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각각 다른 세계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하늘나라 일을 말씀하는데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여서 세상나라 이야기를 하고 세상 생각을 하니까 하늘나라와 세상나라가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거기에 간격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는 하늘나라가 그들 속에 있었지만 예수님과 멀리 떨어지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대화를 그치자 세상나라가 들어오고 세상이 그 마음속에 들어와서 세상의 대화를 하니 예수님과 거리가 멀어지고 만 것입니다.

 

 2. 세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늘 마음속에 기억해야 됩니다. 무엇이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면 탐욕이 우리와 주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성경에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했는데 탐욕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 가는 다른 신인 것입니다. 탐욕이 들어오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갑니다. 하나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탐욕에 빠지면 점점 주님과 멀어져서 세상을 섬기고 세상의 성공에 집착합니다. 결국 세상으로 말미암아 도적질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또 교만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틈내어 놓는 것입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교만은 바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루시퍼가 왜 사단이 되었습니까? 그가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자기를 우상화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사이가 멀어지고 쫓겨나 사단이 되고 만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보다 자기를 바라보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자랑하고 섬기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는 천리만리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리하는 것은 말씀공부가 등한히 되어서 신앙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 없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말씀이 멀어지고 신앙이 멀어지면 하나님과의 교통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신앙이 들어오면 그 믿음이 하나님과 열린 문이 되어서 하나님과 교통하지만 말씀을 등한히 하면 신앙이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을 늘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너무나 귀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을 내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 종의 위치를 떠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요, 우리는 종입니다. 성경에는 종이 주인을,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봄같이 우리가 야웨 하나님을 바라고 긍휼을 기다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면 안됩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6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으로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마음에 작정하고 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쉬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3. 세상이 들어오면 풍랑이 인다

 

 만일 우리 마음속에 세상이 들어오면 그 틈을 통해서 풍랑도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상이 들어오면 세상의 주인 된 마귀가 따라 들어오는 것입니다. 탐욕이 들어오고 교만이 들어오고 불신앙이 들어오고 불순종이 들어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제자들을 주님으로부터 격리시켜 놓을 때 마귀는 공격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예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말씀을 하는데 제자들은 세상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생각을 하셨는데 제자들은 세상일을 생각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과 사이에 교통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팔베개하고 주무셨습니다. 그 틈에 사단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낮에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고 천둥번개가 치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갈릴리 호수에 거대한 풍랑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풍랑을 제자들이 잠재워 보려고 무수히 애를 썼습니다. 물을 퍼내고 돛을 감아 들이고 온갖 일을 다 해도 배는 물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과 간격이 벌어져서 풍랑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 없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산주의의 지도자 칼 마르크스나 스탈린은 한때 신앙인이었을 뿐 아니라 신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과 기아, 사회악이라는 풍랑 앞에서 주님을 찾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인간의 힘으로 가난과 질병, 저주와 고통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세상에 다가온 이 풍랑을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해 보겠다고 그들이 만든 것이 공산주의였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풍랑을 잠재우려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낙원은커녕 가난과 독재에 시달리는 수많은 나라들을 양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다가오는 풍랑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일으키는 세상의 풍랑은 인간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찾아야 풍랑이 잠잠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풍랑을 잠재우겠습니까?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큰 풍랑이 일어나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그때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배에 같이 탄 것을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세상이 들어와서 예수님이 함께 계신것조차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풍랑이 들어와서 죽게되자 예수님이 함께 배에 타고 있고 예수님이 주무시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서 주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그들의 형편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선 것입니다. 부귀, 영화, 공명 다 가져도 물에 빠져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무엇보다 귀한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그들은 다시 한번 마음속에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을 떠나고 버려야 예수님을 깨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틈을 내었습니까? 바로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이 그 틈을 내었는데 그 틈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회개하고 교만을 회개하고 불신앙을 회개하고 불순종을 회개하고 주님께 손들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성봉 목사는 1900년에 출생하여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 아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소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게 되면서 그는 하나님보다 물질에 더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그에게 질병이라는 풍랑을 일으켰습니다. 불과 21세의 나이에 이름 모를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6개월 동안 평양 기흘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면서 곰곰이 인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보려 하지만 백만장자도 죽어버리니 허사요, 땅을 사고, 뫼를 사고, 밭을 사고, 고대광실 같은 집을 지어도 죽으면 땅 한 평, 수의 한 벌, 관 한 개 밖에 못 가지고 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천문지리 상통하는 많은 지식을 가졌어도 나 죽을 날 알지 못하고, 영웅호걸 미인들도 죽음 앞에서 다 항복하고 마니 이 얼마나 허무한가!’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주님을 떠났던 죄를 회개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죄인임을 알았다. 법률상으로 지은 죄, 도덕적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수많은 죄로 인해 내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죄인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순복했고 한 번만 살려주시면 복음을 모르는 불쌍한 인생들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침 받은 후,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해 오늘날까지 ‘한국의 무디’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때 하나님을 저버리고 물질을 따랐으나 마귀가 일으킨 풍랑을 만나 회개하고 돌이키자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받은 것입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물질을 따랐으나 마귀가 일으키는 풍랑을 만나 회개하고 돌이키사 주님을 찾아오니까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는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 회개하고 주님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풍랑을 잠재워 주십니다. 그리고 풍랑이 왔을때는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깨우는 일에 우리가 게으르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친 것처럼 우리가 고난당하면 인간의 힘으로 수단과 발버둥치지 말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44편 23절에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위기가 다가오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피하려 하지 말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최고입니다. 회개하고 주님의 얼굴을 찾고 찾으면 주님이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채찍을 맞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점점 채찍이 굵어지는 것입니다. 큰 채찍이 오기전에 우리는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되어 주님 품에 안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깨어나시면 풍랑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어나사 바다를 꾸짖으시는데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가지고 계십니다. 풍랑과 홍수도 주님 수하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 명령 한마디면 풍수도 풍랑도 잠잠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만 주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 한마디면 모든 풍랑은 물러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4. 귀신을 쫓아내신 주님

 

 주님은 풍랑을 일으키신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다를 향해서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물을 보고 꾸짖습니까? 풍랑을 일으킨 배후에 있는 마귀를 보고 주님이 꾸짖으신 것입니다. 고요하라. 잠잠하라.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돌멩이 보고 꾸짖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무보고 꾸짖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살아있는 존재는 꾸짖으면 그 꾸짖음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꾸짖은 것은 바람과 파도의 배후에 있는 원수 마귀를 꾸짖은 것입니다. 풍랑은 귀신이 일으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건너오지 못하도록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는 군대마귀가 풍랑을 일으킨 것입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이 풍랑도 잠잠케 하시고 군대마귀도 쫓아내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가정이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교회가 잠잠해지고 직장과 사회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조용해지는 것입니다. 귀신은 예수님께서 오시면 쫓아내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가장 먼저 하신일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불행과 풍랑은 귀신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귀신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귀신을 쫓아내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탐욕을 회개하고 교만을 회개하고 불순종과 불신앙을 회개하고 주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 일으키면 주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와 귀신들을 일격에 내어 쫓아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28장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 어떤 풍랑이라도 잠잠케 하시는 분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우리 삶에 풍랑을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무시게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의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는 구만리장천으로 멀어지고 풍랑이 다가옵니다. 구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을 새롭게 모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풍랑도 귀신도 쫓겨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주님의 은총의 손길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세상이 좋아서 세상 속에 살고 세상의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을 따라가면 주님과 사이가 멀어지고 원수마귀가 들어오고 온갖 풍랑이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결코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이 벌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일에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탐욕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교만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불신앙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불순종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셔서 풍랑에서 건져 주옵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