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엘리사의 마지막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사가 나이가 많아서 이제는 노환으로 말미암아 죽을병에 걸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엘리사가 있는 집에 와서 엘리사의 침실에 들어와서 그 침상 위에 허리를 굽히고 눈물을 비같이 쏟으면서 울고불고 그리고 엘리사에게 부르짖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요 마병이요 그러자 엘리사는 요아스왕의 그 간절한 호소와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왕 요아스를 축복해 주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하나님의 성령의 계시해줌을 쫓아서 요아스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활을 취하소서. 왕이 활을 취하니깐 활의 시위에 살을 먹이십시오. 살을 먹이니깐 가까이 오소서. 가까이 가니 엘리사가 손을 들어서 그 요아스의 손위에 손을 얹어서 안찰을 해주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동편 창문을 여소서. 이래서 요아스가 가서 동편창문을 확 여니깐 활을 동편 창을 향해서 겨눠 시위를 땡겨서 활을 쏘시옵소서. 이래서 요아스는 활을 힘껏 잡아 땡겨서 쏘니깐 화살이 휭하는 소리를 내면서 창밖으로 ** 하면서 날라갔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말하기를 왕이여 화살을 한웅큼 쥐십시오. 그래서 한웅큼 쥐니깐 이제는 땅을 치십시오. 그래서 요아스가 한번 치고 또 두 번 치고 세 번째는 맥빠진 대로 툭치고 그 다음 허리를 툭툭 치고 일어났었습니다. 그러자 병들어서 지금 기진맥진해 있던 엘리사가 갑자기 노발대발했습니다. 왕이여 왕이 세 번만 칠 것이 아니라 다섯 번 여섯 번 칠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렇게 세 번밖에 안치나이까? 여호와께서 말씀하기를 이제는 왕이 이스라엘의 원수인 이 아람을 세 번만 당신이 격파하고 그 다음에는 아람에게 패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왕이 다섯 번 여섯 번 계속 쳤더라면 야훼께서 아람을 쳐서 완전히 진멸해 버리고 이스라엘이 다시는 외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당신이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렇게 밖에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렇게 예언하고 엘리사는 세상을 뜨셨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에 하나님의 심각한 계시의 말씀을 받아들여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왜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가 죽을병에 걸려서 앓고있는 자리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여 마병이여 하고 부르짖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시리아의 침략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시리아는 대천지원수가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공략 때문에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있는 이상 이스라엘은 안심해도 좋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리아 왕이 아무리 이스라엘을 칠려고 해도 엘리사가 미리 그가 진을 친 것을 왕에게 말해주어서 미리 가서 막게 하고 또 그렇지 않으면 시리아가 쳐들어오면 엘리사가 그들을 몰 생포를 해고 그 하나님이 위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보호함이 마치 전 이스라엘이 병거와 마병보다 더 좋았었습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의지하고 있었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엘리사가 병들어서 세상을 떠버리면 이제 이스라엘은 무방비상태가 되고 시리아의 대군을 맞아서 싸워 이스라엘을 보호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해서 요아스는 이제 죽음의 병에 들린 엘리사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고 나의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요 마병이요 하고 통탄하여 부르짖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배워야 될 것은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국가와 민족의 복지와 안위가 인간의 수단과 방법에 있지 아니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안 사람이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하나님께 기도해 주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개인이 삶 뿐 아니라 우리의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파요 오메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손에 잡혀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놓으면 닫을자도 없고 문을 닫아 놓으면 열 자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 신바 되었었으며 또 예수께서 말씀한대로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 개인의 흥망성쇠나 한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만군의 여호와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성경에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국가적으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주님께서 우리 민족의 안위와 보위와 축복도 하늘에서 다 더하여 주시겠다는 것이요 내 개인적으로라도 하나님을 나이 삶의 전적인 자원으로 삼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주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꼬 하는 문제를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근원이 되시고 자원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요아스가 엘리사앞에 와서 고백한 신앙의 고백이 이것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의 삶의 근본이 되시고 자원이 되어 주셔도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선 일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신 이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구하라 얻을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무엇이든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데 뭘 우리가 구태여 구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다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다 알고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더라도 여러분과 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들은 예루살렘의 복구와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으로 하여금 쉬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가 부르짖어야 하나님의 손길이 쉬지 않고 그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일 요아스가 죽어 가는 선지자지만은 엘리사 에게 와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요 마병이요하고 부르짖지 아니했었더라면 시리아를 세 번이나 칠 수 있는 은총도 임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심판하는 것처럼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여 구하여도 받지 못하면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 구함이라"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인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부흥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목사로부터 솔선해서 교회 장로 권사 집사 모든 신도들이 마음을 합쳐서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부르짖고 철야기도하고 금식 기도하여서 부흥을 달라고 외치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흥의 역사를 주지 않겠습니까? 기도는 하지 아니하고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이나 조직을 통해서 교회 부흥을 가져와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조직은 마귀의 진을 훼파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의 싸움을 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진을 훼파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기도의 능력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의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엘리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문제를 가지고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휠씬 위대한 일들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졌다고 시인 테니스는 그의 노래에서 기록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러므로 여러분과 내가 기도할 동안에 우리는 멸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동안에 우리는 패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도하고 있을 동안에 멸망할 수가 없습니다. 왜?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여러분 오늘 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부르짖은 요아스처럼 우리의 모든 전적인 삶의 자원을 근거를 하나님으로 삼으십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살려주시면 살고 주님께서 죽으라하면 죽고 주께서 흥하게 하시면 흥하고 망하게 하시면 망하고 주께서 성하게 하시면 성하고 쇠하게 하시면 쇠하고 전적으로 주님께 영과 마음과 몸과 삶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내어 맡겨버리고 주님을 앙망할 때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렇지 않게 할 바에야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이런 책임 있는 말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려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돌보시리라고"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발은 세상에 걸치고 다른 발은 하늘나라에 넣고 있습니다. 자기의 수단과 방법도 반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반 의지하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들어와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주님께 내어 맡기고 기도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을 위해서 오늘날도 주의 그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어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둘째로 이제 엘리사의 교훈에 관해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의 계시를 통해서 기발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말씀한 것은 활을 취하고 살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손에 안찰해 주고 난 다음 동편창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창문을 안 열고야 아무리해도 활을 쏠 수가 없지요.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니깐 그 다음에는 동편을 향해서 활시위를 댕겨서 화살을 쏘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여기에서 중대한 것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뭐냐하면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주는 것은 하늘을 향한 마음에 창문을 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아담 하와 이후로 우리는 영이 죽어서 하늘의 창문이 닫혀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하늘의 창문은 바로 우리 영입니다. 영이 죽어버리자 하늘의 창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이래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 나온 일로부터 하늘의 창문이 닫혀버리기 때문에 우린 하늘나라 소식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놓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늘의 창문인 우리의 영을 통해서만 역사하기 때문에 하늘의 창문인 우리의 영이 죽어서 닫혀버린 이상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와 교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지 않고 영이 죽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관해서 아무리 말을 해도 마이동풍인 것입니다.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은 아담 하와 이후로 타락하고 난 다음에 하늘의 창문이 닫혀버리기 때문에 그때로부터는 인간의 이성을 개발하고 인간의 지성을 개발하고 인간의 감각에 의지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이성과 감각에 의지한 완전히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서 이성적으로 추리하고 계산하고 조직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았었습니다. 이래서 인간은 완전히 이성의 지배하에 놓이게되고 그리고 감정과 감각에 포로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 중심으로 살고 인본주의로 살았었습니다. 하늘의 창문이 닫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이나 철학이나 신학을 통해서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먼저 하늘로 향한 창문을 열어제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줄수 있습니까? 하늘의 창문은 우리의 엘리사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열어줄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아무도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 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창문이 닫혀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란" 말씀대로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와 불의와 추악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 박히시고 창을 받아 심장이 터져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그래서 인간의 모든 죄악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것을 깡그리 다 자기의 몸으로 청산하시고 난 다음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서 확 찢어지자 여러분과 나의 하늘로 향한 창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는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하늘 창문이 열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 속에 하늘 창문이 열리자 이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일반사람에게는 깨닫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아니한 하나님의 예비한 것이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가 알려지고 영생이 있는 것을 알려지고 성령의 충만한 것이 알려지고 우리가 부활할 것이 알려지고 세상이 다 심판받을것이 알려지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있는 것을 알려지고 여러분과 내가 다 잠잘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변화되어 이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서 주님과 함께 영생토록 살며 다스리게 될 것을 우리는 깨달아 알게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아무리 전해도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늘 창문이 닫혀있기 때문에 이 소식은 전혀 깨달아질 수도 없고 어리석게 보이고 또 도저히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도와 복음 전도를 통해서 예수를 구주로 믿자말자 하늘 창문이 열리면 이러한 것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지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하늘 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소리를 먼저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천정에만 창문을 내도록 허락했었습니다. 왜? 풍랑이 일고 온천지가 물바다가 될 때 그가 바깥을 바라보면 낙심할 것이기 때문에 오직 천장에만 창문 하나 열어서 홍수가 끝날 때까지 하늘밖에 쳐다보지 못했었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과 내가 엎드려서 기도하면 하늘창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편창문을 열었었을 때 요아스에게 지시한 것이 뭡니까? 왕이 아벡에서 아람을 진멸하도록 치리이다. 그와 같은 약속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면 우리의 영의 하늘창문이 열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에게 어떻게 해야 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계시와 지혜를 받지 않고 일을 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함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하늘창문을 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까요? 소원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소원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념을 통하여 이끌어 주십니다. 내가 하늘창문을 열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할 때 안될 것은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지 않고 될 것이면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믿음을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직접 계시를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마음에 직감으로 알려주시고 묵시나 음성이나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갈 길을 깨달아 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희한하게 환경을 통해서 그 길로 인도하도록 해놓고 하늘창문을 통해서 이 길이다 이 길이다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과 나의 삶이 마치 그 열린 창문으로 화살을 쏨과 같이 삶의 길을 분명히 알고 삶의 목표를 알고 나아가야 성공을 하지 내가 어디로 가는가 목표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가 방향도 모르고 길도 모르게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요행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실패하고 맙니다. 마음에 계시의 창문이 열려서 계시를 받고 난 다음에 분명히 성경께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화살처럼 목표를 보여주시고 이 길로 가라고 명하실 때 그 길로 향하여 전력을 기울여 나갈 때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 생활 속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 선생의 체험을 통해서 보게될지라도 바울선생이 하늘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지 아니 하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아시아로 복음 증거 하러 갈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비두니아로 가다가 실패하고 드로아에 내려와서 엎드려서 요아스처럼 예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깐 하늘창문이 열리고 그 다음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며 그리로 하나님께서 성령의 화살을 쏘아서 방향을 잡아준걸알고 마게도냐로 배를 타고 갔더니 그것이 오늘날 구라파 문명의 시초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는 모두 다 요아스처럼 예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부르짖어 여러분의 마음의 창문이 열려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알려질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주님 앞에 기다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여러분은 성령의 이와 같은 인도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주장하십시오. 이것을 하나님 앞에 염원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기에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한 것은 화살을 취해서 땅을 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일 일까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계시를 주시고 갈 방향을 정해도 역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시고 또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 믿음대로 될지어다가 아니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여러분의 건실과 여러분의 충성과 여러분의 열심을 통해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요아스에게 계시를 주시고 요아스가 나아갈 방향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요아스가 그것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무서운 인내로서 수고해 나갔었으면 위대한 승리를 가졌을 것인데 그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거기에 대한 별로 큰 열심과 흥미를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화살을 취하여 한번 툭치고 두 번 툭 치고 세 번 툭치고 허리를 툭툭 두드리고 일어나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노한 것입니다. 왕이 다서 여섯 번을 쳤으면 당신이 아람을 진멸했을것인데 이제 세 번 쳤으니 세 번밖에 못 이긴다. 이것 보십시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도 여러분을 위해서 일할 때는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뭐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 통해서 일할 것이 뭐냐!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지 천만 에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지 않고는 오늘날 역사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하늘에서 마치 별똥 떨어지듯이 은총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능력과 권세와 기적과 이사와 일의 성취를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하지 않고 역사하는 하나님은 우린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면 맹렬한 기세로 끝장을 볼 때까지 실천해야 됩니다. 열심과 인내가 부족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할 수 없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보게될때도 여호수아의 여리고성 돌기 보십시오. 분명히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었다고 하지만은 그들은 일주일 내내 하루 한바퀴씩 여리고성을 돌고 마지막날에는 여리고성을 여섯바퀴돌고 일곱바퀴째 고함을 쳐서 외치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엿새 돌고 이레째 포기했더라면 성은 무너지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또 이레째 여섯 바퀴만 돌고 그만 포기했다면 성은 무너지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정열적으로 이것을 실천하면서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요단강의 기적을 보십시오.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와서 일곱번 목욕하라 했는데 한 두서너번 목욕하고 난 다음에 뭐 나을만한 것 같으면 벌써 표적이 날 것인데 표적도 없는 것 보니깐 안 나을 것이다 포기하자 하고 포기했더라면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으로 돌아가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여섯 번째 물에 들어갔다 나와도 아직 문둥병이 그대로 온몸에 붙어있어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인내를 가지고 요단강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그의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보십시오. 다니엘이 여러분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하루 이틀 기도하고 말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루 기도하고 일주일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이주일째 기도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이주일 기도하고 보름만에 짐보따리 싸고 내려왔습니까? 아닙니다. 다니엘은 내가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나는 인내하겠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응답하여 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끈질기게 삼주간째 계속했습니다. 스무 하루가 되자 갑자기 하늘 문이 열리고 찬란한 영광의 천사가 앞에 서서 말하기를 사랑을 받은 다니엘아 니가 첫날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었으나 하나님께선 나를 보내셔서 응답하게 하였으나 공중권세잡은 파사루꾼 즉 파사를 다스리는 악령들이 나를 막아서 이십일 동안 뒤쳐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무 하루만에 이 악의 영의 진을 깨뜨리고서 내가 응답을 가지고 너에게 올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지만은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한다는 것을 아시고 요아스가 저지른 실수와 같이 이렇게 열정도 보이지 아니하고 인내력도 보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씩 접해보다가 그만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다고 환경이 거세고 어지럽다고 해서 낙심하고 돌아서는 어리석은 사람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셔서 오늘날도 위대한 기적과 역사를 베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기도-
사시고 영화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와서 하나님의 위대한 교훈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교훈을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늘 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난 다음믿음으로 말미암아 끈질기게 어떠한 역경과 환경과 폭풍우 속에도 낙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지 말고 열정을 식히지 말고 믿음으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 나가서 결실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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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엘리사의 마지막 교훈
by 삶의언어 posted May 27, 2024 Views 2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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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 전도/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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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드린 날 | 1981-10-04 |
오늘의 성구 | 열왕기하 13장 14절로 19절 말씀 |
설교 영상으로 이동 | https://youtu.be/YRy4_1SehZc |
설교영상 관련 설명 |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