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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니

by 삶의언어 posted May 21, 2024 Views 13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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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축복
예배드린 날 1990-01-07
오늘의 성구 마태복음 6장 25절로 34절 말씀
설교 영상으로 이동 https://youtu.be/9wzmWDI-wh4
설교영상 관련 설명 위 주소는 본 말씀 전용 유튜브 주소입니다. - 설교영상은 [조용기목사님의 평생설교] 전용 유튜브채널에서 공개중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항상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분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먼저 할 일을 나중 하고 나중 할 일을 먼저 하면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고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 먼저 할 일은 젊을 때 열심히 그 때를 잊지 말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이 먼저 할일인 공부는 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서 먹고 마시고 놀아 버리면 그 젊은 청춘의 시절은 가버리고 나중에는 아무리 탄식하고 통곡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일에 시달려서 가정을 버리고 일에 열중하다가 나중에는 가정이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예수 믿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일을 하기 위해서 가정을 가지고 있는지 가정을 위해서 일을 가지고 있는지 도무지 그 순서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국가와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인데 그것보다도 자기 정당의 당리당략을 먼저 구하면 이것도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정당과 정치가 필요한 것이지 당리당략을 위한 정치는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삶 자체가 정당하고 바른 순서를 지키고 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피조물로서는 먼저 할 일은 먼저하고 거꾸로 인간이 해야 될 나중 할 일을 나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시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은 내가 더하여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지으시고 어느 곳에나 계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내가 더하여 주겠다고 하시면 그 이상 더 다른 약속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1990년 정월 첫 주에 우리가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은 먼저 할 일을 먼저 하고 나중 할 일을 나중 하는 순서를 올바르게 선택하는 지혜를 얻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그 나라를 구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해야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벌써 세상 나라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나라는 영적으로 본질적으로 인본주의적이며 무신론적이며 마귀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 없는 세상으로 쫓겨 나왔을 때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는 영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죽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사람은 뱃속에 벌써 잉태될 때부터 하나님 없이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며 평생을 죄인으로 살며 세상 습관을 좇아 살고 무신론적으로 인본주의적으로 마귀의 지배하에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나라에 살았지 하늘 나라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그 순간에 하늘 나라가 이 땅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 땅에 와 계실 때는 천국이 가까워 있었지 우리 속에 천국이 들어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대속하기 위해서 죄 없이 태어난 그 어른이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몸을 찢고 그 피를 흘려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대신 속한 이후로부터 시작해서는 이제 천국이 가까워 온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 속에 천국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에 와서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천국이 그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정치적인 그와 같은 천국은 예수님이 강림하실 그 날에 완전히 이루어지겠지만 이미 지금 역사 속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천국은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믿을 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우리 속에 십자가를 통해서 임하여 있는 천국의 영적인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나라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죄 사함을 구하는 길이 바로 영적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좋은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죄를 지은 영혼은 반드시 죽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에 용서의 나라가 임하여 있는데 열심히 죄를 자백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구원을 받아야되고 이것을 열심히 전할 때 우리는 영적인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화해를 통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결의 삶을 구하는 것이 영적인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셨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은 무너지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화해가 되고 하나님은 사람을 친자녀로 받아들이시고 하나님의 성령을 보내주셔서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만들어 주셨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시켰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성령이 오늘 우리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을 통하여 성결의 삶을 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받도록 열심히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 바로 영적인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내어쫓으며 병을 고치는 것이 바로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다 해제해 버리고 우리 주님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으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땅에서 영적인 하늘나라를 구하는 것은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에게는 예수 이름으로 나아가서 꾸준히 계속해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병을 물리치고 치료를 가져오는 이런 역사를 베풀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을 받았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의식과 성공의식 속에서 살도록 구하는 것이 바로 천국을 구하는 것입니다.
옛날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저주 아래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났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못 산다.'는 부정적인 저주와 가시가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정에도, 사회에도, 생활에도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가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주님은 저주의 가시채를 제하시고 엉겅퀴를 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으므로 이제 오늘날 우리가 천국을 전한 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 속에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저주의 가시를 제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우리 한국의 신문을 보면 저주의 글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을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금년도의 예언을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생활면에서 어둡고 암울하고 발전이 없는 것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저주의 가시채로 자기를 얽어매는 것입니다. 주님은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 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믿음이지 다 잘되는 것을 보고 믿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 나라를 구하는 것은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도 빛을 가져오는 것이 바로 저주에서 해방을 가져오는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활동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두움에선 빛을, 무질서에는 질서를, 저주에서는 축복을, 절망에는 소망을, 죽음에는 삶을, 가난에는 부요를 창조하고 가져오는 그러한 결단을 가지고서 그러한 마음의 태도로 나가는 것이 바로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금년도 크리스찬들은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이나 부정적인 말이나 부정적인 행동으로서 우리의 운명과 환경에 정복당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뒤로 물러가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바로 부활의 희망과 주님 재림에 대한 복된 소식을 힘차게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제 쉬 강림하십니다. 우리 주께서 늘 강림하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이 이제 우리 눈앞에 역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역사의 종말을 고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 하늘을 세우시고 새 땅을 세우시고 우리의 거할 새 예루살렘을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모두 부활할 것입니다. 죽은 자들은 살아 일어날 것입니다. 산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찬란한 소망에 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욱 확인 시키고 이 사실을 열심히 증거하는 것이 바로 그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있는 이 나라를 우리는 열심히 증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있는 가장 첫째 되는 의무인 것입니다. 그 나라를 구하는 일,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이 나라를 잃어버리면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한 것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사실 요사이 사진 공세 때문에 골치를 앓습니다. 어느 곳에 가도 자꾸 사진 찍자고 해서 사진을 찍는데 제 생각에 이 세상에 누가 사진기를 발명해 가지고서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느냐.
저가 눈이 어두워져서 안경을 끼는 것도 사진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 부서에서 사진 찍자고 하면 그분들은 한 번 두 번 찍지만 나는 후레쉬 불이 번쩍 하는 것을 수백 번 받아야 됩니다. 수백 번 후레쉬가 번쩍이는 것을 바라본 다음에 집에 돌아가면 눈이 안 보여요. 글자도 안보여요. 그래서 눈이 이렇게 나빠졌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진기를 발명한 사람 별로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제 우리가 어떤 모임에 가서 사진을 찍는데 어떤 우리 부형이 하는 말이 "목사님, 그래도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요. 아, 그 말이 맞았어요.
지나가는 세월을 붙잡아 놓을 수 없고 잡아 놓는 것은 사진 밖에 없어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지나가는 세월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그리고 정치권력을 가지고 부귀영화를 가졌다 해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하나도 잡아 놓는 것 없습니다. 잡아 놓는 것은 예수 믿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 밖에 잡아 놓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것 이외에는 여러분께서 지나가는 세월 중에 잡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 삶의 환경 중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을 그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천당만 구하고 우리 자신 천국 가기만 원하고 이 세상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보고 그 다음은 땅을 보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먼저 하늘나라를 구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하늘나라의 정의를 이 땅에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예수 믿는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개인의 생활에서 정의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개인 생활에 예수믿는다고 주여주여 하면서 불의와 타협하고 부정과 손을 잡고 부당한 일에 함께 마음을 맞추어서 산다면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구하는 것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서 실천해내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불의를 척결하고 부정과 손을 잡지 말고 타협하지 말아야 되고 정의에 서서 생활하는 이러한 삶 속에 살아야 됩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셔서 불의와 부정과 타협하지 않고 정의에 서서 살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은 또한 사회적인 정의를 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사회는 탐욕과 이기주의로 꽉 들어찬 곳입니다.
이곳에서 크리스찬으로서 사회적인 부정과 부패와 불공평과 싸우며 약자와 소외된 자와 가난한 자와 불이익을 당하는 자를 위해서 보호하고 저들의 대변자가 되어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나는 천당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야 썩어 문드러지든 될 대로 되라. 내가 상관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참으로 크리스찬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럴 바에야 주님께서 천국에 앉아서 예수 믿는 사람보고 너희는 올라오라고 하셨지 무엇 때문에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고 주리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지나면서 그들과 먹고 마시고 울며 그들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졌겠습니까?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단호하게 일어나서 사회적인 정의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불의와 부정이 꽉 들어차 있는데도 우리는 예수 믿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불의와 부정에 대항하고 싸우고 이것을 정하게 하는 이와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만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또한 국가적인 정의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국가 정의를 독재 권력에 빼앗기고 살아왔습니다.
우리 한국이 일제 36년의 독재하에 살다가 해방이후로 오늘까지 실제로 사회 정의가 구현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국가 정의를 독재 권력에 빼앗기고 시키는 대로 순종해서 살아왔을 따름인 것입니다. 그 동안에 부패한 정권이 엄청난 부정을 행하여 왔습니다. 그럴 때 한국의 기독교는 돌이켜보건데 이 나라에 하나님의 정의를 갖고 오는 일에 무슨 도움을 베풀었냐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정과 부패를 행하는 정부 권력에 함께 타협해서 손을 잡고 거기에 아부를 한 일이 많았지 부정과 부패의 독재 권력에 대항한 일은 지극히 적었습니다. 오늘 이것이 한국 기독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얼굴을 붉혀야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어떠한 부정과 부패와 독재 권력에도 기독교회가 타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한 대로 하늘 나라의 의를 이 땅에서 우리는 반드시 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정의가 우리의 국가에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정의 사회가 구현되고 정의의 국가가 성립되지 않은 곳에는 절대로 화해도 사랑도 신뢰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의를 짓밟은 곳에는 그곳에 모든 것이 의식과 형식과 거짓말과 위선만이 있을 뿐이지 참된 승리와 발전과 복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걸머지고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 정의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현실에 노동 현장에서 노동의 정의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업의 독단과 폭리를 규탄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좁은 땅에 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소수의 사람들이 국고의 대부분을 다 가지고서 불로소득으로 써 잘먹고 잘입고 잘살고 돈이 넘쳐나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속에 살고 있다면 이러한 것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좁은 땅에 우리는 모두 다 나누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바라는 바는 이 한국의 전 국토를 정부가 다 소유해서 정부가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형식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땅 장사해서 부자 될 수 없도록 우리 다같이 이 땅에서 태어난 것인데 이 땅은 어떠한 개인적인 소유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거지가 되도록 만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은 정부가 소유하고 국민들에게 빌려주고 그리고 난 다음 거기에 대한 세를 받아서 못 사는 사람 도와주고 그리고 국민들에게 될 수 있는 한 최대한대로 정부가 많은 집을 지어서 임대 주택으로서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열어야 될 것입니다. 자유 민주주의요 또 자본주의라고 해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내가 다 독점할 수 있다는 이러한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 하나님의 백성이 다 골고루 나누어 가져야지 왜 하나님이 주신 땅을 어떠한 사람만 독점하고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기업가의 독단과 폭리를 우리는 규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땅 장사해서 돈벌이하는 기업가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의미에서 국가의 도움을 받고 국민이 저축한 돈으로 융자를 받아쓰면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개발하고 그리고 사업에 투자해서 많은 사람에게 고용의 기회를 주고 나라 경제를 부흥시키는 애국적인 견지에서 사업을 해야 될 것이요 노동자의 비합법적인 투쟁과 다반사의 집단 투쟁 행동도 우리는 비난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고 집단적인 힘만 가지고서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을 하면서도 불구하고서 임금만 올려라, 안 하면 집어 치워버린다, 공장도 부숴버린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난 저가 최근에 들었는데 어떤 아주 첨단 회사공장 컴퓨터인데 그 컴퓨터를 입력해서 그것을 가지고 기계를 만드는데 거기에 노동자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 컴퓨터를 뒤흔들어 버렸었습니다. 그 거대한 공장이 지금 그 컴퓨터를 새로 입력하는데 아무리 적은 시간이 걸려도 2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2년 동안 공장이 일 못합니다. 아무 것도 생산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와서 돈은 계속 내놓으랍니다. 이런 폭력과 이런 집단 행동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동 현장의 정의도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앞서서 나아가서 정의를 구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업과 노동자가 한 배를 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적정선에서 서로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이와 같은 노동의 정의가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먼저 하늘을 보고 살아야하고 다음에는 땅에 있는 불의와 단호히 대결해서 싸워야 참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이 나라 이 민족에 하나님이 복을 내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교회에 모여서 찬송이나 부르고 기도나 하고 기도원에 가서 통곡만 하고 눈물만 흘리면 된다 이 세상이야 부정을 하든 부패를 하든 살든 죽든 우린 상관할 바 없다, 우린 다가오는 천당만 바라보고 가면 된다고 이러한 정신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구하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하늘 나라 정의를 이 땅에서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늘 나라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올바르게 투표도 해야 되고 올바로 선거도 해야 되고 올바르게 우리의 의견을 외치기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저보고 왜 교회에서 국민일보를 세우는가, 왜 교회에서 세상 신문을 만드냐고 말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세상 신문을 만들어서 하늘 나라의 정의를 세상에 외치지 않으면 누가 올바른 말을 외칠 수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의 정의를 통해서 정치인에게도 우리가 외치고 기업인에게도 외치고 노동자에게도 외치고 사회인에게도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만 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의, 하늘 나라 정의를 이 세상에 구현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회가 실패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일천 만이란 방대한 숫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나라의 정의는 못 본 체 고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온통 뒤끓고 나라가 영 썩어 내려앉는다 해도 기독교인들은 나는 모른다, 나는 천당만 가면 된다는 그러한 잘못된 태도를 취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저 자신이 바로 그와 같은 생활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1990년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를 하고 내가 잘못 살아왔구나, 내가 우리 성도들에게 잘못 설교해 온 죄를 나는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에 이 세상일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부정과 불의와 싸우면 고통이 다가오고 괴로움이 다가옵니다. 그것을 피하고 적당히 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한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렇게 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구하고 세상에 정의가 다가오면 이 세상에 안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하늘나라를 구하고 이 하늘나라의 정의가 이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노동 현장이나 모든 일에 다가오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문제는 문제없이 해결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먹을 것도 많게 하겠거니와 많이 있어 먹어 남는 사람들 것 좀 모아다가 못먹는 사람 나누어주는 사회적인 정의가 이루어지면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문제가 문제없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마실까하는 문제도 해결됩니다.
왜, 이 세상에 돈 있는 사람은 사업한다고 해서 온 하천을 다 오염시켜서 우리는 수돗물도 못 먹는데 그들은 생수를 비행기로 수입해와서 마시고 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회 정의가 이루어진다면 공장 폐수라든지 이러한 것 전부 다 정화시켜 놓아서 모두 다 똑같이 마시고 살 수 있는 좋은 시대가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 너무 돈 있고 사치해서 백 만원 짜리 구두 아니면 못 신고 일 천 만원 짜리 아니면 옷을 못 입는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무겁게 때려요. 백 만원 짜리 구두를 신는 사람들에게는 99만원 세금으로 빼앗아야 합니다. 일 천 만원 짜리 옷을 입는 사람들에게는 990만원 세금을 때려서 빼앗아야 되요. 도대체 이 정부가 무엇을 정치를 어떻게 한단말입니까? 왜 근로 소득을 하고 땀흘려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겁게 세금을 매기고 불로소득을 해서 돈 버는 사람들에게는 왜 세금을 가볍게 합니까.
불로소득 하는 사람에게 세금을 무겁게 때려서 아예 다시 불로소득을 못하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렇게 잘 입는 사람들 빼앗아 못 입는 사람들 같이 입혀줘야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민족은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한 형제들인 것입니다. 잘났다고 자기만 잘 살고 못났다고 발길로 차 버리는 것은 못되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라를 구하고 우리는 그 정의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회 정의를 구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나는 부자들 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들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벌어서 하나님 주시는 능력대로 벌어서 많은 세금 내어서 그래서 많은 사람 도와주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얼마나 국민들에게 큰 봉사를 합니까. 이런 것에 가치를 느껴야 합니다. 부자가 점점 좋은 자동차를 타고 점점 더 호화로운 집을 짓고 점점 더 호화로운 레저 생활을 하고 그것이 자기의 가치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부자는 많이 벌어서 하나님 사업 많이 하고 그리고 세금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 많이 도와주고 살므로 말미암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 내가 하나님께서 이러한 능력을 주셨으므로 능력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입히고 먹이고 살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또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나중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상급을 줄 때 보통 사람에 비해서 30배, 60배, 100배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능력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기업 할수는 없어요. 모든 사람이 다 부자는 못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대통령 되나요? 모든 사람이 다 정치인 되나요? 사람들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서 달란트를 주시는데 그 달란트를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사용하면 우리가 다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입을까도 염려할 것 없고 어디에서 살까 문제가 왜 염려가 됩니까?
정부가 세제 정책을 잘 하고 또 주택 정책을 잘 한다면 많은 임대 주택을 지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 못 사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주택을 지어서 저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정부가 이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난 대단히 희망차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땅에 90년대는 내 집이 없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도록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 이와 같은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구하고 그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열어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이 하는 일마다 일이 척척 잘됩니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아무리 농사를 지어 놓아도 비가 안 오고 햇빛이 안 비치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기 때문에 잘 되고 공의롭고 진리가 넘치는 사회와 국가에서는 용서와 사랑과 신뢰가 넘쳐나고 좋은 협력 관계가 이루어지므로 최고의 효율성이 나타나게 되므로 자연히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1990년 우리 개인이나 조국이 문제를 해결하고 잘 살 수 있는 길은 결코 멀고 어려운 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의 가슴속에 있고 우리의 삶의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하늘나라를 열심히 구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우리 사회와 우리 생활 속에서 열심히 구하고 산다면 이 모든 인생의 문제는 자연적으로 해결되고 우리는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잘 살다가 주님 오시는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 잘 사는 길을 성경에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먼저 하늘 나라를 구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정의를 우리 사회에 구하게 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또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불평,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아니하므로 서로 마음을 열고 협조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손과 손을 마주 잡으므로 어찌할 도리 없이 모든 것이 다 더하여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그러한 아름다운 영육 간의 복지국가가 되고 인간의 삶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 나라에 다가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 전체가 하나님을 찾고 예수를 믿고 하늘 나라를 구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금년이야말로 진실로 모든 부정부패가 청산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회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 아버지여 절대로 국민들의 화합도 이루어지지 않고 신뢰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철저히 사회와 국가 정의가 이루어지는 해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범사가 잘 되는 이 민족적인 거대한 역사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회개하고 통회하며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며 그 나라를 구하고 그 의를 구하는 마음의 자세를 취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를 위해서 그 몸을 찢어 주시고 그 피를 흘려주셔서 우리를 죄에서 사하시고 하나님과 화해케 하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저주에서 놓아주시고 그리고 천국의 부활의 영광의 소망을 이루어 주신 것을 감사 드리옵나이다. 이렇게 해서 하늘 나라 백성 된 사람들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하늘 나라 정의를 가져올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성찬이 1990년 살아가는 위대한 에너지의 원동력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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