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신대륙에 복음 전한 탐험가
유럽인 최초 아프리카 횡단에 성공
어떠한 절망에도 맡겨진 사명 다해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아프리카를 횡단한 최초의 유럽 탐험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탐험가이기 전에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평생을 헌신한 선교사이다.
1813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리빙스턴은 12세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 14시간씩 방적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리빙스턴은 가난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의료 선교사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836년 리빙스턴이 23세가 됐을 때 그는 일해서 모은 돈으로 앤더슨 대학교에 입학했다. 리빙스턴은 2년 동안 의학을 공부했고 이후 런던 전도협회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다.
평소 미지의 땅에서 현지인들을 진료하며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던 리빙스턴은 중국 선교를 꿈꿨지만 1840년 아편전쟁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했다. 이때 리빙스턴은 남아프리카 선교회의 창시자 로버트 모펫 선교사의 추천으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됐다.
1841년 7월 31일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쿠루만 선교기지에서 원주민을 대상으로 전도, 진료, 문화 연구 등의 사역을 시작했다. 1845년 그는 모펫 선교사의 딸 메리와 결혼한 후 본격적으로 내륙지역을 탐험했고 유럽인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했다. 아프리카에서 유명한 빅토리아 폭포도 리빙스턴이 발견했다. 그는 잠베지 강 탐험 중 1500m가 넘는 너비의 대 폭포를 발견했고 이곳을 빅토리아 폭포로 명명했다.
리빙스턴은 잠베지 강 유역을 조사하다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원주민들이 노예로 팔리는 비참한 광경을 보기도 했는데 이때 직접 개입해 수백 명의 노예를 해방시키기도 했다.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리빙스턴은 교회의 양 무리를 덮친 200㎏ 이상 되는 사자를 직접 쫓아내려다 왼팔을 물려 목숨을 잃을 뻔 했고 각종 벌레와 맹수에 시달렸다. 또한 폐렴과 말라리아 등의 질병으로 태어난 지 6주 된 딸 엘리자베스와 아내를 먼저 천국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는 여러 좌절의 순간을 경험했지만 아프리카 탐험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틈 날 때마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그리고 원주민과 소통하며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리빙스턴은 1873년 60세의 나이로 지금의 아프리카 잠비아 치탐보에서 소천 받았다. 발견 당시 그는 침대에 기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의 심장은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고 헌신했던 아프리카에 묻혔고, 그의 시신은 11개월 반 만에 영국으로 옮겨져 영국 왕과 위인들이 묻힌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안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