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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인물

윌리엄 캐머런 타운센드

by 삶의언어 posted Jan 11, 2024 Views 4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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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현지어로 쓰여진 성경입니다"
복음 전파 위해 미전도 종족언어 성경번역 힘써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 설립해 선교사 양성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선교지 현지인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이다. 성경은 안식년도 필요 없고 외국인이라고 배척받는 일도 없다."

20세기 성경 번역 선교의 선구자 윌리엄 캐머런 타운센드가 남긴 말이다. 타운센드는 1896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호수에서 수영하다 익사 직전에 구출된 타운센드는 일찍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경이 어려워 일과 학업을 병행함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했다. 1914년 옥시덴탈 대학교에 입학한 타운센드는 해외 선교를 독려하는 단체 '학생자원운동'의 책임자인 존 모트의 설교를 듣고 해외 선교에 큰 도전을 받았다. 이듬해 그는 자신의 열정을 확인해보고자 방학기간 동안 남미 지역 성경 판매원으로 자원해 1917년 과테말라로 떠나게 된다.

타운센드는 친구 로비와 함께 과테말라의 여러 지역에서 전도지를 나누며 성경을 판매했다. 복음의 불모지에서 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사명을 가졌던 그는 현지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20만명의 카크치켈 인디언 중 스페인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타운센드는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자 결심하고 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선교 활동 중 한 인디언의 "당신네 하나님이 그렇게 똑똑하다면 왜 우리말을 모릅니까?"라는 질문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때부터 타운센드는 구어로만 있던 현지 인디언들의 언어인 카크치켈어를 배우고 문자를 직접 만들어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매진했다.

수많은 난관이 있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던 타운센드는 1926년 카크치켈 문법책을 완성하고 1929년에 카크치켈어 신약성경 번역을 완성했다. 성경 번역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이후 캐머런 타운센드는 문자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디언들에게 보급할 성경 번역을 위한 선교사 양성학교를 시작했다. 1934년 미국 아칸소 설퍼 스프링의 농가에서 '성경 번역가 지망자를 위한 여름 캠프'를 시작했다. 1942년에는 훈련받은 선교사들을 선교지에 파송해 성경 번역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를 설립했다.

타운센드는 이밖에도 정글 항공대 및 라디오 선교회를 통해 페루 아마존 정글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에게도 성서를 보급했고 1968년 남미 사역을 마무리 지었다.

타운센드는 72세에도 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으로 떠나 러시아어를 배우며 1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코카서스인들에게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캐머런 타운센드는 1982년 향년 86세로 하나님 품에 안길 때까지 세계성경번역선교회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가 일평생을 성경번역에 투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경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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