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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인물

주기철 목사(1897∼1940)

by 삶의언어 posted Feb 05, 2024 Views 3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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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각오’ 정신으로 항일 투쟁한 운동가

  “나는 내 주님 밖에 다른 신 앞에서 무릎 꿇고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더럽게 사는 것보다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나의 절정을 지키려 합니다. 주님을 따라서 가는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주기철 목사의 각별했던 나라 사랑은 그의 마지막 설교를 통해 잘 드러난다. 이 설교를 마지막으로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 거부로 다섯 번째 수감됐고, 숱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평양형무소 한 귀퉁이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민족 독립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항일운동가 주기철 목사. 민족 독립을 주장하고 절개를 지킨 주기철 목사는 종교를 떠나 독립운동가로서 존경을 받은 가운데 정부로부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또 2007년 국가보훈처로부터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주기철 목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최근 영화 ‘일시각오’를 통해 오늘날 재조명되고 있다. 1897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주기철 목사는 오산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으나 안질로 중퇴했다. 이후 남학회를 창설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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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철 목사는 부흥사로 알려진 김익두 목사의 설교를 듣고 성령을 체험, 그 후 신학 공부를 결심했다. 1926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해 부산 초량교회 목사로 부임했다. 경남성경학원을 세워 후진 양성에도 힘을 썼다. 1931년 마산 문창교회를 부임한 후에는 저명한 목사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평양 산정현교회 목사로 활동하게 된 것은 1936년으로 그때 산정현교회에는 민족주의자인 조만식, 유계준, 오윤선 등이 출석하고 있었다. 주기철 목사는 이들과 함께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애국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때마다 일제 경찰의 폭압은 거세졌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의 괴롭힘 속에서도 신사참배 거부에 대해 강한 입장을 표명하는 등 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1939년 7월 경상북도 의성의 농우회사건에 연루돼 검거됐다. 농우회는 1930년대 평양신학교 학생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농촌계몽을 위해 만든 농촌연구회를 말한다. 농우회를 중심으로 전국 여러 지역의 농촌 기독교 청년들이 야학을 열고 가르치거나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사개량 등 다양한 지식을 알려줬다. 하지만 일제 경찰이 농우회를 통해 반일 사상이 확산되고 있다며 여러 교회 지도자를 체포했고 이중 한 명이 주기철 목사였다. 주기철 목사는 1940년 2월에 석방돼 평양으로 올라왔지만 산정현교회에서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뒤 검거되고 산정현교회 목사직을 파면 당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설교였던 것이다.

 죽음도 불사하며 일제의 폭압에 항거한 주기철 목사의 민족애는 후대인 우리가 반드시 배우고 따라야 할 정신이다. 이러한 주기철 목사의 신앙과 사상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경남 창원에는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세워졌다. 2015년에 개관된 주기철 목사 기념관은 2층 규모로 그가 사역했던 교회와 가족이 보관하던 유품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1층은 주기철 목사의 어린 시절, 독립운동, 민족 계몽 운동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어린시절 역사 선생이었던 김창환으로부터 민족 교육을 받은 탓에 그는 남다른 애국 정신을 갖게 됐다. 전시관에서는 주기철 목사가 시국 강연회와 계몽활동을 전개했던 활동을 찾아볼 수 있다. 2층은 주기철 목사의 순국과 목회자의 길, 민족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이 담긴 기록물들 또 문창교회 사역 당시 기도를 위해 자주 찾던 무학산 십자바위 모형 등 영상 및 전시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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